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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군가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한국방송 <아침마당>이란 프로그램에서 육이오전쟁 특집 방송을 하고 있다.

군대 다녀온 지 까마득한 옛날인데, 아직도 그때 부르던 군가소리가 들리면 고개가 돌아가고, 귀가 쫑긋 일어난다.

유신 군대, 폭력 군대 다녀온 트라우마다.

나처럼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군가, 군복, 무기 같은 것에 별나게 관심을 갖는 듯하다.

얼마 전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해병대를 먼저 다녀온 친구가 아직도 꿈을 꾸면 병영에 묶여 있다는 말을 했다.

난 군수부대 출신이라 10여년 정도 꿈꾸다 말았는데, 그래서 이젠 군대가 꿈에 나오는 일이 없는데 해병대를 다녀온 그는 아직도 군대 꿈을 꾼단다.

 

실전을 겪어보지 않은 우리도 이런데 육이오전쟁이나 월남전 등에서 전우가 죽어가고, 내가 쏜 총탄에 누군가가 맞아 쓰러지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이 트라우마에서 해방되지 못할 것같다.

 

나는 전쟁소설을 많이 쓰면서 전쟁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전에는 야만이요, 인간에게 남아 있는 짐승 시절의 폭력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단순히 치부했는데 막상 전쟁사를 훑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마찬가지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란 너무 더러워서, 너무 치사해서 가까이 가면 내가 더러워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막상 친구들 구하러 다니다보니 정치야말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중요한데, 내 손길이 미치지 못하니 늘 깎아보려고만 했던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선거가 매우 과학적이며 논리적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선거나 정치보다 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게 있으니 그게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운으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재수 좋아 이기는 것도 없다. 

반드시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작전이 분명해야 한다. 이긴 이유, 진 이유가 자로 잰 듯 반듯하다. 

 

물론 전쟁을 안하면 좋지만 인간의 이성으로는 전쟁을 막을 도리가 없다. 인간이라는 종의 수준이 아직은 전쟁을 피할만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같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립하는 걸 보면 대화로는 불가능한 게 꽤 많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이런 걸 전에는 군사적으로 풀어버렸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옳고 그름이 늘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4대강이나 세종시는 본질은 옳지만 과정이 그른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옳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절차에서 그른 것으로 바꿔버렸다. 국가간에도 이런 일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독도 문제 같은 경우 섬이 워낙 작아서 그렇지 그 규모가 제주도만큼 크다면 한일 양국은 기어이 전쟁으로 결론을 지으려 할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같은 국민끼리도 대화가 불가능한데, 나라가 다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휴전이라는 이 묘한 상황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렸다는 건 거의 분명한 사실이다. 북한도 저 소말리아나 에디오피아 정도로 전락해야 마땅하지만 휴전이라는 긴장감이 그들을 유지시키고 있다. 물고기 수송선에서 그 물고기를 잡아먹는 메기를 몇 마리 넣으면 며칠씩 두어도 물고기들이 싱싱하게 살아 있단다. 그런데 메기가 없으면 물고기들은 며칠만에 죽거나 병들어 버린다고 한다.

전쟁은 이런 아이러니를 안고 있는 괴물이다. 인간이 국가를 이루고 사는 한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천안함 피격 사건을 다루는 중이다. 이 블로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질타하는 글을 몇 편 올렸는데, 매우 위중한 사건이다. 전쟁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정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불안하다. 군대 다녀오든 안다녀오든 전쟁을 알아야 하는데,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소설조차 읽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기업하는 일이나 공사하는 일은 전쟁하고는 다르다. 건물 짓는 건 아무리 욕먹어도 마지막 준공식에서 빛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는 준공식이 없다. 그때그때 전투가 있고, 그 결말이 있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투에서는 늘 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4대강, 세종시, 지방선거, 다 그가 패한 전투들이다. 국가간의 일에서는 준공식 날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건물은 짓는 동안 누구도 건드리지 않지만 국가간 일, 전쟁터에서는 짓고 있는 건물이라도 때려부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험이란, 현대건설의 신화란 국가의 보호 아래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제는 그가 국가가 되었다. 시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혼란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직도 군가가 들려온다. 우리는 휴전 중이다. 짧게 말해 전시 국민들이다.

아래 사진 보라. 누군들 이럴 줄 알았겠나, 이러고 싶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