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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고구마꽃을 보러가다

용인시민신문에 고구마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올라왔길래,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직접 구경하러 갔다.

<기사보기>

고구마는 열대식물이라 우리나라 위도에서는 꽃이 안피고, 더러 기온이 높은 해에 이따금 꽃을 피울 수가 있다고 알던 터다.

 

마침 안성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에 들렀는데, 시골마을이라 찾기가 어려워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더 확인한 다음 마을을 돌아다니며 고구마꽃 핀 밭이 어디냐고 물었다.

 

말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라 집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마침내 고구마밭의 안주인을 만났다.

"아주머니, 이 마을에 고구마꽃이 피었다던데 어딘지 아세요?"

"우리집인데요?"

"제가 제대로 찾아왔군요. 좀 구경할 수 있을까요?"

"아침에 와야 보지 지금은 다 입을 다물었어요."

기사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아차 싶었다.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해가 나면 지는 모양이다. 그럼 고구마는 메꽃과다.

 

아주머니를 따라 밭에 가보니 죄다 입을 다물고 있다.

그래도 다녀갔다는 증거는 남겨야 하니 일단 사진을 찍긴 찍었다. 

 

 

"내일 아침에 오면 활짝 핀 걸 볼 수 있어요."

"다시 오긴 어렵지요. 평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꽃이라는데요."

"뭐가 평생에 한번 펴요? 우리 고구마는 해마다 피는걸요?"

응? 기사에 보면 이 아주머니의 남편께서는 "흔하게 피는 꽃이 아니어서 지금껏 한두 송이의 고구마꽃을 본 적이 있어도 밭 전체에 집단으로 핀 것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고구마꽃이 해마다 핀다구요?"

"이건 종자가 그래요. 자색고구마라고 해서 늘 꽃이 피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자색고구마가 뭔지 몰라 이 부분은 더 질문하지 못했다.

 

"그럼 신기할 것도 없네요? 나도 고구마를 길러봤지만 한번도 꽃을 본 적이 없어서 일부러 보러 왔는데요."

"우리 고구마는 심기만 하면 저절로 꽃이 피어요."

"그럼, 나중에 고구마 얻으러 오기는 힘드니 줄기 좀 잘라갈게요. 가서 심어보면 알겠지요."

"그럼 그러세요."

그래서 저 윗사진 줄기를 잘라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와 고구마줄기를 물에 담갔다가 화분에 옮겨심었다.

잎은 순 부분만 몇 개 남기고 나머지는 다 떼어버렸다. 뿌리날 때까지는 그래야 한다.

잘하면 내일 아침에 꽃이 필 것이다.

꽃 피면 그때 우리 고구마꽃을 올리기로 하고 용인시민신문에 난 사진을 감상하기 바란다.

 

자, 그럼 이 신문의 기사가 진짠지 가짠지 연구해보자. 인터넷 검색 들어간다.

 

고구마(학명: Ipomoea batatas)는 메꽃과의 한해살이 뿌리 채소로, 주로 전분이 많고 단맛이 나는 혹뿌리를 가진 재배용 작물이다. 꽃은 나팔꽃과 유사한 꽃이 핀다. 씨앗으로도 번식하나 영양뿌리를 얻기 위해 경작할 때에는 씨앗으로 경작하지 아니한다.  - 위키백과

 

그래서 꽃이 메꽃과 같은 모양이라는 걸 알 수 있겠다.

 

고구마꽃이 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꽃을 실제로 본 사람이 드물어 벼라별 미신이 많이 생겼다. 길조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고, 나라 망할 징조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대체적인 의견은 고온 기후에서 수분이 부족할 때 씨앗이라도 퍼뜨리려고 꽃을 피운다, 또는 고온에서 더러 꽃이 핀다는 주장이 보인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고구마꽃이 대단히 희귀한 것인양 나온다. 미신이나 속설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이상고온 날씨 속에 보기 힘든 고구마꽃 피어/한겨레신문>

<고구마꽃 구경하세요/오마이뉴스>

<연이은 고구마 꽃잔치/뉴시스>

 

그러고 보니 단서가 보인다.

우리나라 고구마 종이 3가진데, 이 중에서 자색고구마만 꽃을 피우는 듯하다.

지금까지 고구마꽃을 다룬 기사를 보면 고구마의 종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나도 오늘에야 알았지만 자색고구마는 내가 기르던 고구마하고는 전혀 다르다.

난 그저 물고구마, 속 노란 고구마 즉 밤고구마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웬걸, 속이 보라색인 고구마가 있다. 가운데가 자색고구마다.

- 왼쪽이 일반고구마, 중간이 문제의 자색고구마, 오른쪽이 속이 노란 고구마다.

 

<자색고구마의 효능과 용도를 자세히 적은 글>

<방송프로그램 <생로병사>에 나온 자색고구마 방송 요약>

<고구마의 종류를 자세히 적은 글>

 

지금까지 검색한 내용으로 보아 일반고구마꽃이 피는 것은 여전히 희귀한 일인 것같다. 보도된 고구마꽃은 어쩌면 모두 자색고구마인지도 모른다. 기자들이 자색고구마에 대한 상식이 없어, 마치 몇 해 동안 풀잠자리알을 보고 우담바라꽃이 피었다고 거짓기사 쓰는 게 유행했던 것과 비슷한 꼴이 된 듯하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서 피는 고구마꽃은 일단 자색고구마다. 그리고 자색고구마는 늘 꽃이 피는 식물일 뿐이다. 앞으로 일반고구마꽃이 피어야 기사거리가 되지 자색고구마꽃은 더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그나저나 내일 아침에 꽃이 피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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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12시경에 꽃봉오리를 보니 통통해졌다. 필 준비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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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7시 30분에 보니 꽃이 피었다. 꺾꽂이를 한 건데도 잘 핀다.

덕분에 남의 사이트에서 자료 사진 가져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