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파란태양*

길 막는다면 신이라도 베겠다는 사무라이

에도시대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이다.

-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 목숨 바쳐 달려나간다. 하늘이 앞을 막는다면 하늘을 벨 것이고, 신이 앞을 막는다면 그 신마저 벨 것이다."

 Musashi ts pic.jpg- <위키그림 가서 자세히 보기>

그래서 일본인들은 "앞으로 갓!" 명령 한 마디면 절벽 아래로 차례차례 몸을 던진다. 명령 한 마디면 가미가제를 몰고 미군 함정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국가에서 총동원령을 내리면 다들 그렇게 한다. 군소리없이 따른다.

천황제가 유지되고 있는 걸 보아도 그러하다.

최첨단 전자산업국가인 일본에서 부적, 미신이 성행하는 것도 그러하다.

한편으로 국가에서 미신이라고 한번 결정해버리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 정신도 유별나다. 한의학은 일본에서 이렇게 추방되었다.

 

한국인은 본디 이런 일본인 정서와 많이 다르다. 억압당한 상태에서야 한국인도 어쩔 수없이 집체화되기도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부산성, 동래성에서는 전 민군이 저항했지만 한양성, 평양성에서는 홀라당 도망가버렸다. 그게 한국인다운 것이다. 이순신도 도망다니다가 적의 허점을 노리고 냅다 들이쳐 승승장구했다. 일본식이라면 이순신도 무작정 부산 앞바다로 달려가 싸우려 했을 것이다.

 

2차대전을 치른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나갔다.

국가 정책을 의결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몇몇 강성인물의 주장이 여과없이 집행되었다. 이기지 못할 전쟁인 줄 알면서도 사수를 명령해 다 죽게 만들고, 돌진명령을 내려 다 죽게 만들었다. 사무라이 정신이란 이런 것이다. 신을 죽이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죽었다. 태평양 곳곳에서 신보다 약한 미군들이 일본군을 전멸시켜버리곤 했다. 하물며 신이라니.

 

박정희가 이런 식으로 국민을 통제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잖은가.

김일성이 이런 식으로 국민을 통제하려 했지만 결국 전국민을 거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야만 통제가 되기 때문이다. 소득 3천달러만 돼도 통제가 잘 안될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체제는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정상적인 한국인을 독재로 다스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소득 3만 달러의 일본이 지금도 저렇게 잘 통제된다는 것은 그들의 미래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사불란, 일로매진, 이따위 구호로는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가 없다.

민주주의가 꽃핀 나라의 목표란 일사분란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거리낌없이 나오고 합의되는 것, 일로매진이 아니라 잘못이 발견되면 즉시 수정하는 것이다.

 

<목표 향해 가는 길 막는다면 신이라도 벨 것이다/조선>

* 사무라이 정신을 찬양하는 듯한 글에서 기자의 '비판 정신'이 부족한 걸 느낀다.

조선일보는 일본 기사가 나오면 좀 이상해지는 듯하다.

 

한편 미야모도 무사시는 1584년생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8년전에 태어났다. 따라서 도요토미가 전쟁을 일으킬 때 그는 8세였다. 이후 조선에 출정했던 일본군 패잔병들끼리 세키하라에서 싸울 때 도쿠가와 측에 참전했다. 이후 집권층을 위해 여러 차례 전투에 참전한 기록이 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무사라고 해봐야 행적이 어지러운 야인에 불과하다. 도쿠가와가 쓴 무사에 불과하다.

 

더러 술 마시다 주막에서 칼부림하여 몇 죽였는지는 모르겠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소설에 나오는 미야모도 무사시라면, 그래서 그런 엄청난 무사가 일본땅에 출현했다면 그건 일본의 불행이지 복이 아니다.  그 칼에 수없이 맞아죽은 사람은 하나같이 일본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사람은 무사시 칼에 맞아 죽은 이가 없다. 집안에 칼잽이 나와봐야 집안 사람 다치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