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 -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생각
-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세우고는 살랑살랑 흔든다. 하지만 고양이는 적개심을 드러낼 때 꼬리를 세운다.
개는 적개심을 나타낼 때는 고양이와 반대로 꼬리를 내린다. 하지만 고양이는 반가우면 꼬리를 내린다.
며칠 전 구두 고치러 나갔다가 기다리는 시간에 한 가정상담센터에 들렀더니 성폭력 문제에 관한 브레인스토밍(말하자면 난상토론. 난상이란 과일, 떡, 과자 늘어놓은 테이블)을 하고 있어 나도 잠시 끼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내 생각을 한번 정리해야겠다 싶어 쓰는 글이다.
집 사람이 밖에 나가서는 절대 그런 말하지 말라고, 특히 여성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맞아죽는다고 누차 경계하곤 하는데,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김영삼 전대통령 시절 기독교 교리에 입각하여 집창촌을 없애기 시작하여 지금은 서울에서 집창촌이라는 것 자체가 다 없어졌다. 어느 여성 경찰서장이 총대를 메고 때려부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다 없어져버렸다.
사실 집창촌은 값싼 성을 공급하던 시설이라 이곳을 이용하던 서민, 청년들은 대단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냥 고통을 겪었다면 겪은 줄 알고 넘어가자. 이 글을 끝까지 읽어내려면, 앞서 전제한 것처럼 고양이와 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서민, 청년이 고통스럽다는 까닭이 있다.
이들이 값싸게 접할 수 있는 텔레비전, 스포츠신문, 인터넷에는 성에 관련된 자극적인 사진, 자료가 널려 있다. 스포츠신문 기사를 보면 여성 탤런트를 소개하다보면 ‘아찔한’이란 표현이 자주 나오고, 섹시하다는 건 거의 일상이 되었다. 아찔하든 섹시하든 한 마디로 성적으로 접촉하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이다.
<중국 20대 여성, 몸 줄테니 BMW 빌려줘, 글 비난 쇄도 / 조선일보>
<치명적인 섹시미 해고당한 여성, 누드화보 제의에.. / 조선일보>
인터넷신문 광고를 보면 눈뜨고 볼 수 없는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성매매를 권하는 스팸메일도 치우기 무섭게 쌓인다. 여성들은 이런 비주얼을 보고 어떤 자극을 받는지 알 수 없지만 남성들은, 특히 신체기능이 왕성한 청년, 청소년들은 거의 무방비로 영향을 받게 된다.
이처럼 언론, 인터넷, 영화 등의 끈질긴 속삭임을 접하고 사는 서민, 청년,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이 욕구를 발산하고 싶을 것이다. 아니면 인간이 아니다. 특히 남성의 성적 특징은 안전핀을 뺀 수류탄 같은 것이다. 곧 터질 준비가 돼 있는 폭탄이다. 그러니 수류탄이 장소를 가려서 터지나 때를 가려서 터지나. 그냥 터진다. 이 점을 여성들도 명확이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사회는 안전핀 빠진 수류탄을 터뜨려서는 안된다고 강제한다. 그러니 기껏 만만한 어린이들, 장애인들, 혼자사는 여성들 등 방어능력이 취약한 곳으로 가서 터뜨리는 것이다.
중산층 이상이나 소득이 있는 중년이라면 훨씬 더 안전하고 고급한 룸살롱에서 마음껏 성을 소비할 수 있다. 텐프로니 뭐니 하면서 예쁘고 젊은 여성만 골라 공급하는 룸살롱이 지금도 강남 일대에서 성업 중이다. 말하자면 돈만 있으면 지금 이 시각에도 얼마든지 성을 사서 소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요즈음의 성문제는 마치 조선시대처럼 부익부 빈익빈이 돼버렸다. 양반들은 본부인이 지겨워지면 언제고 젊은 첩 들이고, 그 첩이 지루해지면 또 들이는 식으로 마음껏 성을 누렸다. 반면 평민이나 천민들은 성을 향유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기껏해야 양반이 쓰다버린 첩을 몰래 만나거나 양반의 첩실로 들어가 성노예처럼 살아가는 같은 처지의 천민 여성이나 건드리는 정도로 참고 살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이런 첩 데리고 도망치는 노예가 생겨 추노꾼이 직업화되어 드라마까지 나왔다. 하지만 양반이 첩이나 여종 데리고 도망다닌다는 말은 없다.
내가 아는 한 남성은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반드시 룸살롱에 가서 여성들을 만나곤 했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고 한다. 그것도 신입 여성들만 골라 몇 주씩 만나다 지루해지면 마담에게 말해 또다른 ‘물좋은 여성’을 물색하게 하고, 그런 식으로 20여년 가까이 그짓을 하고 지냈다. 재산이 넉넉하니 그짓을 해도 표가 안나는 것이다. 그 사람 부인은 나름 잘 생겼는데도 그렇다. 고양이는 그 이유를 모른다. 세계 최고의 미인과 평생 둘이서만 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3년 이내에 변심하는 남성이 상당수 나올 것이다. (이 부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음)
그런데 돈없는 어떤 늙은이는 기껏 등교하는 여덟살, 아홉살 짜리 어린 애 따라가 그 짓을 하다 아이 인생 망치고 제 인생 망쳤다. 어떤 놈은 매주 그 짓을 해도 떳떳하고, 저 늙은이는 어린애 건드렸다가 인생 망친 것이다. 그 늙은이가 돈이 있었다면 아마 어린애를 건드리지 않고 떳떳이 룸살롱 찾아가 수표 집어던지며 "영계 데려와 봐." 이랬을 것이다. 동남아에 가서 영계 찾는 성인남자들이 꽤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그 수요자로 일본남성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대한남성이라는 '떠도는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는 90년대에 집창촌을 없앤 대가로 지금 풍선효과를 당하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성매매가 이루어지는지조차 모른다. 에이즈 단속하는 보건소에서 숫제 손을 놓았다고 한다. 집창촌 있을 때는 그곳만 잘 단속하고 관리하면 더 확대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누가 성매매하는 사람인지 연애하는 사람인지 가릴 수도 없다고 한다. 이발소인지, 안마시술소인지, 마사지업소인지, 터키탕인지 도대체 구분이 안간다. 인터넷으로 은밀히 접선하여 몰래 해치우고 마니 보건소가 알 리가 없다. 그러니 돈도 없고, 인터넷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성범죄를 일으키고, 치명적인 성병을 유포하는 것이다. 룸살롱이나 요정만 찾아다니는 정치인들이 그 이름도 희한한 대딸방을 알겠나, 키스방을 알겠는가.
20년 전 살던 시골마을에서 10세 정도 여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던 60세 가량의 중늙은이가 발각되었는데, 그이는 돈도 없고 마누라도 없는 홀아비였다. 사내라고 성은 꿈뜰거리고 발산할 길은 없자 이 어린 여학생이 학교다니는 산길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이 아이가 오면 사탕 주면서 꾀어 숲속으로 데려가 못된 짓을 벌이곤 했던 것이다. 같은 마을에서, 마누라가 집 나간 한 중년남성이, 이 지지리도 가난하고 무식한 이놈이 급기야 제 딸을 성폭행하기 시작하여 한바탕 난리가 난 적도 있다.
이처럼 성 문제라는 건 막는다고 막을 수 없다. 이건 꼭 치수 문제와 같다. 넘치면 반드시 흐르는 것이다. 범람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물길이 막히면 범람하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 반들반들한 스님들이 무슨 고자나 되는 줄 알고 백일기도 한다면서 무방비로 절간에 머물다가는 반드시 임신해 내려온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 야화에 아주 많이 나온다. 절에 가서 백일기도 해 아이 낳은 사람은 십중팔구 스님 자식 낳은 것이다.
<행복전도사 정덕희 6년 만나던 스님과 고소전 / 주간동아>
< 잘 나가던 여교수가 스님과 불륜 동영상? / 조선일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바나의 생물학적인 특징을 살펴보자.
수컷이 암컷을 바라보면 "씨 한번 뿌려볼까?"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수컷은 씨앗을 많이 뿌릴수록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게 수컷이다. 정자가 3억 마리면 3억 마리의 암컷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싶은 게 수컷의 욕망이다.
그런데 암컷이 수컷을 바라볼 때는 처지가 다르다. "저 녀석 씨는 괜찮을까? 더 좋은 씨가 없을까?" 고민한다. 왜냐하면 씨를 받아 새끼를 낳을 때까지 암컷은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하고, 일정 기간 생산 가능한 난자 는 딱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데도 임신기간은 말할 것도 없고 수유기간까지 치면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 씨나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게 암컷의 처지다.
이런 사바나의 특성 때문에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맨날 전쟁을 치른다. 그러고는 왕이 되는 순간 휘하의 모든 암컷을 차지하여 죄다 제 씨를 뿌려버린다. 열 마리든 스무 마리든 마다하지 않는다. 또 암컷의 용모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뿌린다. 이러한 사바나의 특성이 오늘날 인간 남성의 유전자 속으로 얼마나 따라왔는지는 알 수 없다. 추앙받는 세종 대왕도 무수한 후궁들 거느리고 사바나의 숫사자처럼 살았다니, 인간이 동물과 같은 성생활에서 벗어난 지 겨우 백여년 밖에 안된 셈이다.
사바나에서 암컷들은 수컷들이 싸우면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지켜본다. 이기는 놈, 힘센 놈, 살아남는 놈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긴 놈에게 주저없이 몸을 허락한다. 이러한 사바나의 특성이 오늘날 인간 여성 유전자에 얼마나 따라왔는지는 역시 알 수 없다. 몽골에서는 근대까지 약탈혼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힘센 놈은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남의 마누라를 얼마든지 빼앗아 올 수 있었고, 그게 자랑이었다. 칭기즈칸 어머니도 그렇게 약탈돼온 남의 마누라다.
<신정아와 변양균, 스캔들 3년만에 심경 고백 / 중앙일보>
난 요즘 이혼 러시를 보고 일부 여성들이 뭔가 착각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남성들은 어차피 많은 여성을 만나고 싶어하는 불굴의 욕구를 지녔다. 그런데 일부일처제는 그걸 막고 있다. 죽을 때까지 한 여성 외에 다른 여성을 만나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종교까지 가세하여 옐로카드를 남발한다. 하지만 남성들은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다다익선이 사나이의 자랑인 줄 알고 살아오던 동물이다.
이런 욕구를 집창촌 등 외부에서 은밀히 해결해오던 많은 남성들이 이러한 수단을 잃으면서 어떻게든 본능을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꼈을 것이다. 집창촌이 있던 시절, 이혼 안하고 성매매를 하러 창녀촌이나 룸살롱 등 성 매매 시설을 자주 드나드는 남성들이 있었다. 집창촌 등 공개적인 성매매 시설이 없어진 뒤에도 부유층들은 룸살롱에서 성 문제를 마음껏 해결하기 때문에 부인에게서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다. 또 여성 권익이 오늘날처럼 일반화되기 전, 사무실이나 공장에 근무하는 여성들은 터무니없는 차별을 받았는데, 이때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남성들이 이 여성들을 성적으로 유인하거나 착취하는 경우가 흔했다. 80년대에 나도 여러 건 목격했다. 또 아이엄마가 당시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가장 흔히 들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70년대에서 80년대 사이는 직장을 다니려는 여성들에게는 참으로 겁나던 시절이었다.(2012년 8월 서산에서는 아르바이트 여학생을 강간하여 이 학생이 수치심으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집창촌이 사라지는 시기와 맞물려 대대적인 여성 운동이 일어나고, 성폭력, 성희롱이 중대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전에는 범죄라는 상상조차 안하던 일들이 범죄가 돼버린 것이다.
70년대에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 청소 시키고, 가벼운 성희롱을 하는 것은 거의 일반적인 풍속이었다. 개별적으로 싸워서 해결하던 시절이고, 이 문제로 우리 아이엄마도 한바탕 회사를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늙은 상무 녀석이 어린 디자이너를 첩처럼 데리고 살고, 내가 아는 한 사장은 여직원하고 거의 동거를 하다시피 했다. 또 내 친구 하나는 부하 여직원하고 10여년 정도 외도를 하고, 또 한 놈은 저 이사다닐 때마다 어린 애인을 근처로 같이 이사시키며 끌고다녔다. 돌이켜보니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1990년대 중반부터, 정확하게 말하면 집창촌이 사라지고 여성 운동이 극성기에 이르던 시기부터 이혼 러시가 일어난다.
난 이때의 이혼 중 상당한 원인이 억압받던 여성들이 해방하는 현상이라고 듣고 배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남성들이 다 동의를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갑자기 늘어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요즘에는 남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혼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보았다.
2009년에 이혼한 12만 4천쌍의 이혼사유를 보면 성격차이가 46.6%다. 성격차이란, 이젠 싫다는 뜻이다. 생물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남성은 여성 배우자에게 이미 씨를 퍼뜨렸기 때문에 더 할 일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여성은 남성 배우자보다 더 나은 다른 남성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9년 이혼통계>
이게 어쩌면 집창촌 등 성 매매 시설이 없어지고, 여성운동이 극에 달하던 시절 위기감을 느낀 ‘약한 남성’들이 선택한 생존전략이 아닌가 의심한다. 즉 이혼하면 다른 여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합법적으로 그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한 여성으로부터 아이를 둘 정도 생산한 남성들이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던 듯하다.
내가 알던 한 남성은 이혼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정조를 지키다가 이혼하자마자 두 달에 한번씩 여성을 갈아치우면서 사는 걸 보았다. 봇물이 터진 사람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 남성은 돈조차 들이지 않았다. 이혼 러시기에 마구 몰려나온 여성들이 부나비처럼 달라붙어 그는 밥값도 안내고 모텔비도 안내고, 심지어 여성의 자동차를 타고다니며 여성의 카드를 긁어가며 실컷 놀았다. 이혼여성들이 받은 위자료를 이 남성이 마음껏 탕진해버렸다. 맛을 들인 그는 이렇게 헐떡거리는 이혼여성들이 많다는 걸 알고 그뒤로는 전문 사냥꾼처럼 돌아다녔다. 그는 어찌나 친절한지 이혼여성만 보면 깎듯이 대했다. 그는 전문 사냥꾼이 되어 제법 뜻을 이루었다. 집 사주고, 사무실 내주고, 사업기반까지 닦아주는 여성을 만나고서야 그의 대대적인 사냥이 일단락됐다고 들었다.
난 그의 행동양식을 보면서 이혼남들이 혹 이런 사바나의 원시본능을 마음껏 발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관찰해왔다. 즉 이혼을 핑계로 이 여성 저 여성 마음껏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여성들이 먼저 이혼을 제의하는 게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스포츠칸 조사에 따르면 56.7%는 여성이라고 한다. 아마 여성이 이혼을 제의했다고 하는 게 편해서 그러는 건 아닌지 모른다.) 이것도 제대로 조사를 해보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럴 수 있다. 이혼을 통해 남성은 새로운 여성을 찾을 기회를 얻고, 여성은 더 좋은 남성을 찾는다는 것이다. 즉 남성은 <더 많은 여성>에 대한 탐닉이 있고, 여성은 <더 좋은 남성>에 대한 탐닉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이혼이란 제도는 그야말로 편리한 도구라는 것이다.
최근 키스방이라는 이상한 업종이 번성한다는데, 보도에 따르면 멀쩡한 유부남들이 값싸게 성을 소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또 노래방이나 노래주점에는 도우미 등의 형식으로 많은 여성들이 헐값에 성을 팔고 있다고 한다. 결국 룸살롱이라는 중산층 이상의 고급 성 시설에 불만을 느낀 저소득층을 위한 시설이라고 볼 수 있으며, 변형된 집창촌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여성들이 성을 누릴 시설은 매우 빈약하다. 물론 성매매든 불륜이든 남성과 여성이 일대 일로 만나는 것이니 수치적으로는 공평하지만 여성 중에는 직업적으로 성을 파는 전문인이 많은만큼 일반적인 여성들은 그 기회가 훨씬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생기는 사회현상이 캬바레 문화다. 주유원, 배달원 같은 떠돌이 총각들이 주로 성이 생각나면 돈이 안드는 캬바레로 가고, 여기서 여성들의 지목을 받아 무료로, 혹은 용돈을 받아가며 성을 누린다고 한다. 어떤 이 증언에 따르면 배달원들이 집으로 찾아와 성을 공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성이란 억압해서 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수(治水)하듯이 잘 흐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성은 흘러야 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고자 하는 곳으로 흐르게 하면 된다. 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의 공평한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금세기 들어 인류의 지성은 역사상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어디까지 더 발전할지 모르지만 단 하나, 성의 발달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성의 본질은 천년 전이나 이천 년 전이나 오늘이나 다를 바가 없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성 역시 매일반이다. 인류의 미래를 열어젖히는 데 성이 그 장애물이 돼서는 안된다.
지금의 일부일처제는 계급사회, 봉건사회를 무너뜨린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임시방편의 제도일 뿐이다. 일부일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겨우 백여 년, 세계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으로 온세계의 정보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사는 남성은 더 많은 씨를 뿌릴 수 있는 좋은 여성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여성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질 좋은 씨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개와 고양이가 모두 만족하는 길은 얼핏 접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성폭력 범죄는 근절시킬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성폭력 문제는 매우 적극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생물학적인 원인은 덮어둔 채 범죄로, 수치스러운 것으로 방치해서는 인류가 더 멀리 나아갈 수가 없다. 인류는 진정으로 성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성에 탐닉하는 해방이 아니라 그 본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보노보 원숭이는 성에서 해방된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보노보 원숭이 암컷은 모든 수컷과 교미를 하고, 수컷은 모든 암컷과 교미를 한다. 성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생물도 있다. 원하면 암컷이 되고, 또 원하면 수컷이 되는 것이다. 일부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서는 모계사회를 통해 해결한 경우도 있다. 집창촌은 부득이한 면은 있지만 결코 좋은 모델이 아니다. 성이 산업이 돼서는 안된다. 성은 인류가 대를 이어나가는 기초 수단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더 신성하고, 건강해야 한다.
무엇이 가장 현명한 모델인지는 앞으로 인류학자, 생물학자들이 좀더 연구하고 실험해야 할 것이다.
<친자매 넷을 아내로 둔 남자/조선일보>
<일처다부제, 중국의 모계사회 여왕곡 이야기/민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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