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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이기는 백과사전

8. 일은 바쁜 놈에게 시켜라

8. 일은 바쁜 놈에게 시켜라

 

지도자가 되면 일을 분배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누구에게 일을 시킬 것인가, 이 능력이 지도자의 자질을 가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승만은 유구한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을 건국한 사람이지만 조국에서 쫓겨나 남의 나라에서 죽고, 그 흔한 동상 하나 없다. 하필 전국민이 싫어하는 이기붕을 쓴 탓이다. 자신이 어렵던 시절의 비서라 하여 서울시장 시키고, 국방장관 시키고, 국회의장에 부통령까지 시키다가 일족을 다 죽게 만들고, 자기 자신은 남의 나라에서 사무치는 외로움 속에 세상을 하직해야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시대에 훌륭한 일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 차지철 같은 그악스런 인물을 측근에 두고 비판자, 반대자들을 고문하고 학대했다. 덕분에 박정희는 유신독재에 대해 변명 한 마디 못하고 떠나갔다.

 

대통령이 되면 지난날의 비서나 측근을 데려다 요직에 앉히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자기가 한미한 시절의 비서란 역시 한미한 사람일 뿐이다. 대통령의 눈으로 인물을 봐야 하는데, 대개는 옛날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시절의 측근을 찾다 보면 그 시절 이상의 사고를 가질 수 없다. 일단 대통령이 되면 넓게 인물을 구해야 하는데, 기껏 유배다니고 쫓겨다니던 시절의 동지만 찾는다.

 

형님 동생 해가지고는 나라를 이끌어갈 수가 없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그만한 역량을 가진 동지들을 새로 찾아야 한다. 이른바 몸으로 때운 측근은 먹고살게나 해주면 되지 덮어놓고 요직을 안겨주면 안된다.

 

선거를 치르고나면 새로 단체장이 된 사람들마다 전날 한미한 시절의 친구나 후배들을 다투어 부른다. 일정 짜는 놈은 그걸 권력으로 삼아 몽니부리고, 예산 짜는 놈은 제 돈도 아니건만 어깨를 으스댄다. 어디 가서 이름 석 자 내놓을 수도 없는 위인들이 이른바 호가호위한다. 호랑이가 사라지면 그 즉시 여우 본색이 드러난다. 여우가 하는 짓이야 뻔한 것 아닌가.

 

진정 일을 되게 하고 싶다면 바쁜 사람에게 시키라는 건 이런 의미다. 능력이 있는 부하는 늘 바쁘기 마련이다. 능력이 부족한 이는 비교적 한가하다. 시간 많다보니 남 음해하고, 술수 부리는 데는 선수가 된다. 공자가 말한 ‘소인들은 바쁘다’고 할 때의 그 바쁜 것은 아부하고, 이간질하고, 협잡하느라 바쁜 거지 일하느라 바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