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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이기는 백과사전

2등이 1등을 이기는 법

2등이 1등을 이기는 법

 

1980년대, 누가 감히 IBM을 이길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IBM은 바라보기만 해도 경외심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었다.

2000년대, 누가 감히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길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빌 게이츠는 무려 20년 이상 세계 갑부 순위 1등 자리를 고수했으니 경쟁자들이 느꼈을 절망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한국에서 누가 감히 삼성전자를 이길 수 있다고 상상할까? LG? 현대? 글쎄, 지금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 1등은 영원히 1등일까? 물론 아니다.

1등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이 있기는 있는 걸까? 물론 있다. 야망이 있는 2등이라면 귀기울여 들어보기 바란다.

 

IBM은 수퍼컴퓨터에 관한 한 독보적인 대기업이었다. 아무도 IBM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IBM에 자그마한 부품이라도 납품하는 것뿐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삼성이나 현대에 납품하는 걸 영광 내지 복으로 아는 중소기업들이 꽤나 될 것이다. 뭐, 세상은 그런 거니까.

당시 IBM을 이긴다는 건 ‘도저히’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가 나서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1등이 정한 룰로는 2등이나 3등은 이길 수가 없다. 하물며 10등, 100등은 말할 것도 없다.

 

저 공룡같은 IBM에 도전한 것은 무일푼의 스티브 잡스, 순위에도 없는 풋내기 청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IBM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수퍼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다만 그는 남이 만든 킷트형 소형 컴퓨터(이게 진정한 의미의 최초의 PC다)를 일체형으로 손질해 내다 판 것뿐이다. 그게 애플1이다. 이어서 그는 부품을 모아들여 좀 더 성능 좋은 애플2를 직접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이 놀라운 발명품에 흥분한 시장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PC 분야에서 스티브잡스의 애플은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섰다.

 

컴퓨터계의 빅브라더인 IBM은 깜짝 놀랐다. 컴퓨터라고 하면 덩치 크고 비싼 수퍼컴만 있는 줄 알던 인류에게 그만 PC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IBM의 룰을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 수퍼컴이 아닌 PC를 만들어냈고, 그제야 IBM은 긴장했다. IBM 역사 수십 년만의 첫 긴장이었다.

 

당황한 IBM은 빅브라더답게 스티브 잡스가 정한 PC의 룰을 바꾸기로 했다.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1등 자리를 지켜온 IBM이 터득한 비밀 중의 비밀이다. 그러니 싹을 잘라야 한다.

IBM은 빌 게이츠라는 꼬마를 꼬드겨(IBM이 보기에 빌은 하찮은 아이였다) DOS를 만들게 하고, IBM식 소형 컴퓨터를 만들어 설계도를 공개해버렸다. 소형 PC 시장에서는 누구도 강자가 되지 못하게 하고, 그냥 애들끼리 놀라는 룰이다. 그래놓고 IBM은 그들이 구축한 수퍼컴 시장을 방어하며 영원토록 지배할 생각이었다.

 

IBM이 공개해버린 PC 설계도면을 받아든 한국, 대만 기술자들은 마음껏 <IBM식 PC>를 만들어냈다. 룰이 달라지자 애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가격, 공급, 기술에서 애플은 <IBM PC>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IBM은 쾌재를 불렀다. PC의 싹을 잘라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때 IBM이 미처 바꾸지 못한 룰이 한 가지 있었다. 빌 게이츠가 만든 DOS를 사들이지 않고 쥐꼬리만한 로열티를 줘가며 쓴 것이다. 대기업은 늘 약자의 기술에 무임승차하는 법이다. 이 룰이 어떻게 발전했을까.

 

한국, 대만 등지에서 생산된 <IBM식 PC>들은 빌 게이츠가 만든 DOS를 사서 끼워팔았다. DOS가 없으면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지만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조립 PC가 고객에게 팔릴 때마다 단 한 사람 빌 게이츠가 만든 DOS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누가 만든 컴퓨터이든 빌 게이츠의 DOS를 써야만 했다. 이미 조립법이 공개된 뒤라 <IBM식 PC>는 싼값에 무제한 공급되었다. 어마어마한 시장이 새로 열린 것이다.

 

PC 시장은 승승장구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그럴수록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거둬들였다. 불과 수년 내에 PC산업이 수퍼컴산업을 앞질러 버렸다.

IBM은 자신들이 만든 룰에 자신들이 당했다. 이후 세계 컴퓨터 시장은 수퍼컴이 아닌 PC가 장악하게 되고, 이 시장에서 빌 게이츠는 당당히 승자가 되었다. 그 반대로 IBM과 애플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빌 게이츠의 룰이 새로 시작된 것이다. 그는 IBM이 DOS로 따라오면 Windows로 달아나면서 시장을 선도해나갔다. 남 따라가는 룰로는 역전히 어렵다.

 

최근 구글이 크롬이라는 OS를 만들어 무료 보급에 나섰다. PC 시장에서 절대적인 아성을 쌓아온 마이크로소프트는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글은 크롬을 만든 실력으로 비장의 무기를 개발해냈다. 바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장을 위한 OS를 내놓은 것이다.

스마트폰이 출현하면서 시장이 요동쳤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새로운 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시장은 PC에서 스마트 폰과 스마트 PC로 급격히 이동했다. 시장의 룰이 바뀌자 마이크로 소프트는 역사의 무대에서 비껴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20세기초 전신기로 통신하던 무렵, 세계최대의 전신기회사는 직원이 발명한 전화기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전신으로도 똑똑한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 잘 들리지도 않는 사람 목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의심한 것이다. 이 회사는 그뒤 조용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작은 농아학교 교장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앉고, 그는 GE라는 세계최대 기업을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세계 최고의 발명가 에디슨도 자신의 룰만 고집하다 새로운 시장에서 참패한 사례가 있다. 그는 너무 유명한 나머지 그가 누군가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가 원가면 상대가 찾아왔다. 길이 아무리 멀어도 에디슨을 만나러 찾아왔다. 그래서 전화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에디슨은 갑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을이었다. 이러다보니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특허등록한 다음에야 겨우 전화기에 관심을 가졌다. 천재답게 그는 단 1주일만에 더 성능 좋은 전화기를 만들어냈지만 특허권은 이미 벨에게 넘어간 뒤였다. 또한 그가 개발한 직류장치를 고집하면서 그의 조수 테슬라가 만든 교류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테슬라는 에디슨을 떠나버렸고, 그러자마자 교류가 송전 시장을 휩쓸고, 직류는 건전지에나 쓰이게 되었다.

 

무성 영화가 한창 인기를 끌 때 변사의 출중한 목소리는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그때 누군가 유성영화를 만들어내자 워너브러더스 창업자 워너는 굳이 배우의 목소리를 듣고싶어하는 관객이 어디 있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시장은 유성영화로 돌아서버렸다.

이 영화가 세상을 휩쓸던 1925년 텔레비전을 발명한 존 로지 베어드는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누가 그걸 보겠느냐고 비아냥거렸지만 텔레비전은 영화를 눌러버렸다.

 

컴퓨터 업계만 봐도 룰을 바꿔 1등이 된 사례는 넘친다.

일본 계산기 회사에 반도체 칩을 납품하던 인텔은 세계 최고의 CPU 회사가 되었다. 물론 반도체 칩을 사가던 회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구글은 검색이란 아이템 하나로 인터넷 시장의 최강자가 되었다. 룰을 바꾸니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스마트폰, 태블릿 PC, 이 모든 것이 룰을 바꿔 이뤄낸 승리자의 이름들이다.

 

일정 지분이 보장되는 2등이 되고 싶다면 열심히 일하면 된다. 그러나 이기고 싶다면 룰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 분야가 무엇이든 룰을 바꾸지 않고는 결코 1등을 이길 수 없다. 야망이 있다면 남의 룰을 파괴하고 자기만의 룰을 창조해야 한다.

지금 자신에게 적합한 룰을 이끌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이가 만든 룰을 따라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