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허신행을 읽다

세력의 의미와 원천

세력의 의미와 원천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어느 곳이나 힘, 권력 그리고 세력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것들은 잘 이용하면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지만, 잘못 이용하면 고통과 파멸을 초래하기도 한다. 또 약육강식이란 말처럼 세력이 약한 생명체는 강한 생명체에게 먹히거나 지배당한다. 따라서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의 사회생활이란 힘과 권력 그리고 세력의 배분 내지 상호 역동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힘겨루기에서 갈등과 반목이 생기고, 권력의 다툼에서 정쟁政爭과 파당이 일어나며, 세력의 확장을 위한 견줌과 욕구로부터 전쟁이 발생한다. 힘과 권력 그리고 세력이 없어지면 당연히 이러한 불행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러면 아예 인간의 삶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이들은 필요악이라 할까, 어쩌면 삶 자체가 힘의 발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삶이 없으면 힘이 없다. 삶이 있으면 힘은 생긴다. 그러므로 삶과 힘은 동시이다. 힘을 상징하는 한자의 ‘力’은 동물의 근육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는 그 자체가 힘의 역동작용이다. 힘이 없으면 먹이를 찾거나 만들 수 없고, 있어도 입에 넣을 수 없다. 먹을 힘마저 없으면 죽는다. 설령 옆에 있는 누군가가 떠먹여준다 해도 씹거나 삼킬 수 있는 힘마저 없으면 죽는다. 이처럼 힘은 생명의 원천인 것이다.

권력은 남을 지배하거나 굴복시키는 힘이다. 여기에는 직·간접적인 강제성이 개입된다.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면 희생이 따르지만, 잘만 이용하면 경제력 창출과 함께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꾀할 수 있다. 권력은 가정이나 직장 또는 몇 사람만의 자연스러운 모임에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가권력이다.

 

세력은 힘과 권력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난 기운, 즉 권력이나 기세의 힘이다. 그것은 위력을 가진다. 어떤 사람을 세력가라고 부를 때 떠오르는 영상은 막강한 힘의 소유이다. 권력과 돈이 많은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력가가 되고 싶어한다. 이 세력 다툼으로 싸움과 전쟁이 일어난다. 국가는 세력의 확대를 위해 나라 안팎으로 온갖 노력을 경주한다.

세력의 원천은 크게 보면 세 가지이다. 완력, 금력 그리고 지식, 이 세 가지가 세력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이 가운데 완력이란 말이 약하게 생각되면 폭력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좋다.

 

모택동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런 신념을 끝까지 실천에 옮김으로써 중국을 통일한 사람이다. 금력 또는 돈이 권력과 세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몸소 체험하는 것이므로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고 우리의 격언에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앎, 즉 지식은 곧 힘이다. 프랜시스 베이컨도 ‘지식은 힘이다’라고 역설하였듯이 지식이란 참으로 고상한 힘인 것이다.

일본 신화에 나오는 세력의 세 가지 원천에 대한 상징성은 대단히 흥미롭다. 해의 여신인 아마테라스에게 바친 세 가지 보물, 즉 ‘산슈 노 진기三種の 神器’는 칼, 보석 그리고 거울이다. 칼과 보석이 갖는 권력의 상징성은 매우 명료하지만 거울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거울은 동양철학에서 흔히 진리 또는 지혜에 비유된다. 거울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진리도 현상계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나타낼 뿐이다. 그러니까 거울은 진리와 같은 것이요, 거울에 비춰진 그림자는 진리에 의해서 생겨난 현상계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거울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진리나 선험적인 지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서는 거울을 지식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앨빈 토플러가 그의 최근 저서 《권력이동》에서 밝힌 것 중 흥미로운 대목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권력의 세 가지 원천이 내부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그가 중요하게 다룬 것은 사회적인 권력의 이동형태이지만, 권력의 원천 자체가 변한다고 본 것은 대단히 예리한 관찰이다.

완력에 의한 권력은 또 다른 완력을 부르고 융통성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저항과 희생이 많이 따른다는 의미에서 그는 이를 저질低質 권력이라고 보았다. 금력에 의한 권력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긍정 혹은 부정적 측면과 함께 약간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하여 중질中質 권력으로 분류하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지식에 의한 권력은 고질高質 권력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식은 전에도 그랬지만 근래 과학문명의 발달로 가일층 향상되면서 완력과 금력을 증식시키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이들과 대체되기도 하여 한결 많은 영향력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완력과 금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오늘날 놀라울 정도로 지식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최대의 완력과 금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가 전쟁 없이 평화로워지고 사회가 질서를 회복하면 할수록 완력에 의한 세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완력이 거의 필요없게 될지도 모른다. 또 금력 역시 생활의 기본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그 힘은 약화되게 마련이다. 결국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세력의 동원이란 측면에서 볼 때, 지식만큼 양질의 것은 없다.

 

따라서 지식 그 자체는 세력의 최고품질의 원천이며 완력과 금력의 증식을 위해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편, 완력과 금력의 대체라는 차원까지 감안하면 지식은 세력의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컴퓨터 없는 조직의 운영이나 기업의 경영은 생각할 수 없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없는 가치창조는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은 권력이나 세력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천으로 탈바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