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의 이동과 재편
옛말에 한 가정의 1세대가 잘 살려면 3대에 걸쳐 덕德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가세家勢를 유지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부자가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경험적으로 나타낸 말일 것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듯이 아무리 높은 권세라도 10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경쟁자가 많아지고 시기와 질투를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 자만하기 쉽고, 수양에 필요한 지식의 습득과 반성의 기회가 적어진다. 자칫하면 권력의 날카로운 칼날에 다치는 사람이 많아지고 원한을 갖는 저항세력이 늘어날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였건 권력을 오래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힘도 마찬가지이다. 힘도 성장과정과 비례하여 20대 청년시절에 가장 원기왕성하여 힘이 솟고, 그후로 나이가 들수록 약화되어 생을 마감할 때에는 힘도 함께 소멸된다. 힘은 생·노·병·사와 마찬가지로 변한다.
이렇게 보면, 힘과 권력 그리고 세력이란 것은 한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생명체처럼 변하고 또 변한다. 세력이 변하는 모습 역시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변화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호수의 물결처럼, 바다의 파도처럼 세력이란 것도 흥망성쇠를 반복하고 부침浮沈을 거듭한다.
세월이 가면서 주변을 살피면 부자가 가난해지고, 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살다보면 행복하던 가정이 불행해지고, 불행하던 이웃이 다복해지는 사례를 많이 접하게 된다. 돈은 구르고 굴러 있는 사람에게서 없는 사람에게로 모이고, 권력 역시 돌고 돌아 박해받던 사람에게도 돌아간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이 실감날 때가 많다. 그래서 인생살이를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힘과 권력 그리고 세력이 이처럼 무상하게 변한다면, 지금 그것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력의 이동 내지 흐름을 거역하거나 역행하면 살아가기 힘들 것이고, 그러한 흐름에 잘 순응하여 활용하면 엄청난 힘을 모으거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의 이동은 세력의 재편을 수반하기 때문에, 그 움직임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이고 리더십에는 결정적인 지식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세력이 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대개 봉건영주들이 막강한 지주세력들을 등에 업고 군림하거나 위력을 발휘하였다. 지주세력 가운데에서도 토지를 얼마나 소유했느냐에 따라 세력의 판도가 달라졌다. 따라서 농경사회에서는 토지쟁탈전과 영토분쟁이 끊이질 않고 일어났다.
농경사회에서는 가족 간에도 토지배분이나 상속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흥미있는 것은 토지상속제도에 따라서 동서양에서 미래가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일자상속一子相續 제도를 주로 도입했던 유럽의 경우, 토지상속을 받지 못한 2세들은 해외로 이주하거나 신대륙 발견에 주력하여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에 반하여,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주로 다자상속多子相續 제도로서 아들들에게 토지를 고르게 배분하도록 허용하여 해외로보다는 국내거주를 선호하게 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인구밀집 국가로 남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세력의 원천인 토지를 누가 얼마나 갖느냐 또는 그 배분제도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한 가정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형태가 달라지고 나라의 흥망성쇠가 각각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세력이 자본가들에게로 이동하였다. 토지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공장을 중심으로 한 자본을 누가 얼마나 가졌는가에 따라서 세력의 재편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자본가 중에는 과거 농경사회의 지주들이 끼여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산업사회의 자본가들은 경영능력을 갖지 않으면 세력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산업사회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개발 의지와 계획, 각종 지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부 세력은 관료들이나 그들을 지배하는 집권계층과 결탁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예산이나 인·허가권 또는 외자 등의 배분과 조정 그리고 종합의 권한을 가진 이들 행정관료와 정치권의 세력이 당연히 막강해질 수밖에 없다. 저개발국일수록 정경유착政經癒着이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산업사회를 마감하고 새로운 문명시대로 진입하는 이 단계에서 세력은 과연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는 물론 창의력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새로운 문명시대에는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서처럼 세력의 이동과 집중이 단순하지 않다. 그 이동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에 의해서 지구촌 시장이 하나로 통합됨에 따라 지식과 정보량 그리고 창의력이 엄청나고, 갈수록 늘어나는 이들 새로운 힘의 원천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많은 계층, 가지지 못한 계층, 창의력이 높은 젊은 계층으로 거대한 세력이 이동하기 시작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남편으로부터 아내로, 직장에서는 상위직에서 하위직으로, 사회에서는 기성세대에서 신세대로, 정부에서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지식과 그에 따른 세력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세력의 재편이 소리 없이 혁명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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