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 자랑 말고 신용 자랑하라
정치지도자들은 말로 나라를 이끈다. 말(馬) 같으면 채찍으로 가게 하고, 자동차라면 엑셀을 밟겠지만 국민은 말로 움직여야 한다. 지도자의 말이 곧 그 지도자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낸다. 말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고사를 하나 보자.
중국 춘추 시대 진(晋) 문공이 소국 원(原)나라를 칠 때다. 출전에 앞서 ‘이레만에 적이 항복할 것이며, 우리는 이레만에 철군할 것이다!’ 하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막상 싸움을 하다보니 이레가 되도록 원나라는 항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공은 자신의 말은 법이라며 처음 약속대로 철군해버렸다.
다음 해가 되어 문공은 재차 원나라를 치러 가면서 ‘이번에는 원나라의 항복을 받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고 선포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원나라는 즉시 항복해버렸다. 문공은 화살 한 대 허비하지 않고 두 나라를 얻었다. 신용으로 나라까지 사는 것이다.
진문공은 그뒤 패자가 되었다. 자신의 말을 스스로 지켜 말의 위력을 끌어올린 덕분이다. 이쯤되면 농담을 해도 나라가 들썩거린다. 하지만 훌륭한 지도자는 농담조차 치밀한 계산 끝에 한다.
전국시대 연나라에 있던 실제 이야기다. 연왕 쾌의 정승 자지가 나라를 들이엎었다. 깜짝 놀란 세자는 그 밤으로 달아나 무종산으로 숨어버렸다.
어느 날 세자를 수행하던 스승 곽외 등의 무리는 반격을 가하기로 뜻을 모았다. 자못 흥분한 세자는 허물어진 움막집에서 스승 곽외는 정승, 다른 이들은 공경대부로 각각 임명했다.
그런 뒤 세자 평이 깃발을 들자 민심이 호응해줬다. 곧 승리한 세자는 왕이 되었다. 이 사람이 연나라 소왕(昭王)이다.
신왕은 흩어진 관리들을 모으고 조회도 열고 국사도 처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무종산에서 있던 일은 깡그리 잊고 맹상군이나 오원, 상앙, 범여, 소진, 장의 같은 뛰어난 인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넌 정승, 넌 대부, 넌 객경이라고 한 건 처지가 곤궁해서 해본 소리고, 막상 왕이 되니 미더워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부름을 받지 못하던 곽외가 마침내 작정하고 왕을 찾아가 천리마 고사를 던진다.
- 옛날에 어떤 제후가 내시더러 1천 금을 내주고 천리마를 구해오라고 시켰습니다. 내시가 어느 시골에 이르렀는데, 죽은 말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탄식을 하더랍니다.
이유를 물으니, 천리마가 죽었다고 해서 안타까워하는 중이더랍니다. 내시는 주인을 찾아 5백 금을 주고 그걸 샀습니다.
내시는 죽은 말을 수레에 싣고 돌아와 제후에게 바쳤습니다. 제후야 물론 대로했지요. 내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은 천리마를 5백금이나 주고 샀다는 소문이 천하에 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천리마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야, 우리 군후는 죽은 말도 5백 금이나 주고 사는데, 살아 있는 말은 얼마나 잘 쳐줄까. 이러고서 천리마 주인들이 다투어 찾아올 것입니다.’ 그뒤 그 제후는 진짜 천리마 세 필을 구했답니다.
천리마 얘기를 해주는데도 연왕은 말귀를 못알아먹었다. 그러자 곽외는 왕을 한번 더 깨우쳐 주었다.
“전날 왕께서 산으로 들로 쫓겨다닐 때 신을 정승으로 쓰고 동지들을 공경대부로 쓰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셔야 천하의 인물들이 연왕은 신용이 있구나 하고 모여들 것입니다. 약속을 안지키시면 연왕은 처지가 곤궁하면 거짓말로 모면하는 사람이구나 여겨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제야 연왕은 잘못을 뉘우치고 약속대로 곽외를 정승으로 임명하고, 무종산에서 언약한대로 동지들을 불러모았다. 이후 열국의 인재들이 연나라로 속속 모여들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말의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인간의 무기는 말이다. 이 무기가 날카로워지려면 말이 말다워야 한다. 급하다고 아무 말이나 뱉어놓고 보면 기어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뒤통수를 치게 돼 있다.
자신의 말에 힘을 붙이는 훈련이 안되어 있으면 싸워서 이기는 법을 안다고 할 수 없다. 하물며 자신의 말을 스스로 부인하고, 돌리고, 뒤집고, 꾸미는 일에 익숙해지면 평생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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