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는 가이여!
결혼해서 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이가 안 생겼던 우리 부부에게 도담이와 도롱이는 자식 같은 존재였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감정은 점점 더 깊어져 나중엔 도담이 도롱이가 사람으로 보였다. 어떤 때는 도담이를 쓰다듬다가 꼬리가 손에 잡히면 “얘한테 웬 꼬리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낮에 잠깐씩 와서 도담이 도롱이에게 먹이를 주던 우리 어머니도 정이 담뿍 들어, 두 녀석을 손자처럼 대해 주었다. 어느 날은 도담이가 업어 달라고 하더라며 등에 업고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해서 사진으로도 찍어 두었다.
아이 있는 집 부모들이 대개 그러하듯, 우리도 도담이 도롱이 사진을 많이 찍어 둘의 사진이 앨범에 가득 찼다. 아주 어려서 컴퓨터 모니터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사진이며, 이불에서 뒹굴며 놀던 모습이며, 마루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 넓은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모습 등 사진기에 필름만 들어 있으면 우리는 두 녀석의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 모니터 위에 앉은 도담이.
우리는 틈만 나면 도담이와 도롱이 둘을 데리고 놀러 다녔다.
그러나 개를 잡아먹기도 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두 녀석을 데리고 다닐 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다.
약수터에 갔다가 핀잔을 듣기도 하고, 공원에 데리고 갔다가 동네 할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매일 좁은 아파트에 가두어 놓기도 미안했다.
그래서 일요일만이라도 학교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달리기를 시킨다거나 아니면 한강 고수부지 공원에 가 잔디 위에서 놀게도 했다. 그러나 한강 고수부지도 여의롭지는 않았다. 놀러 온 사람이 많으면 개를 데리고 온 우리를 대하는 그들의 눈총이 매우 따가웠고, 사람이 없는 곳이라도 관리인이 있으면 당장 내쫓겼다. 공공장소에는 개를 데리고 오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개 기르는 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두 녀석과 외출할 때는 항상 비닐 주머니와 휴지를 들고 다녔다. 오줌이야 받을 수 없지만 똥을 싸면 그걸 담기 위해서였다.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개가 똥 싼다며 공원에조차 못 데리고 가게 하니 서럽기만 하다. 우리나라도 개들을 마음대로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공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긴, 사람이 휴식 취할 공원도 부족한 처지인데 어찌 개에까지 신경을 쓸 수 있으랴.
나는 우리 집 개들의 똥이 전혀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냄새가 고약할 때도 있지만, 그 냄새가 오히려 구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녀석을 데리고 양화교 아래 고수부지에 갔을 때의 일이다. 초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길래 나는 강가에 서서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그러자 멀찌감치서 놀고 있던 도담이가 내게 쏜살같이 달려왔다. 달려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 둑의 끝에서 멈추지 못하고 도담이는 그만 강물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내가 서 있던 곳은 강 수면에서 꽤 높은 곳이었다. 배를 대기 위해 시멘트 옹벽 공사를 한 곳인 듯싶다. 수면까지는 90도로 깎아지른 시멘트 절벽으로 그 높이가 2미터 정도 됐다.
“여보, 도담이가 물에 빠졌어.”
물에 빠진 도담이가 물 속에 잠겨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당황해서 잔디밭에서 도롱이와 놀고 있던 남편을 불렀다.
“아이구, 저걸 어째!”
도담이가 빠지는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도 걱정을 하며 모여들었다.
10여 초 정도의 긴 시간이 흐른 후, 도담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머리를 털면서 수면 위로 솟아 올랐다. 그러고는 우리를 바라보며 허우적거렸다.
2미터 아래 강물, 그것도 밑이 깊고 물살이 세어서 시퍼렇게 흐르는 한강물, 거기서 도담이가 살려달라는 애절한 표정으로 허우적거렸다.
“어머나, 어떡하면 좋아.”
여자들과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당장 뛰어들어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수영을 배우기는 했으나 안전한 풀장에서 25미터를 겨우 헤엄쳐 가는 내가 한강물에 뛰어든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더구나, 옹벽이 워낙 깎아지른 듯 공사가 돼 있어서 물에 들어가 도담이를 구한다 하더라도 잡고 올라올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도담아!”
도담이는 고개를 빼고 계속 힘겹게 허우적거렸다.
“도담아, 죽으면 안 돼!”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목이 메게 외치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남편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저쪽에 낮은 곳이 있어.”
남편과 나는 강 하류쪽으로 달렸다.
“도담아, 이리 와. 이쪽으로 헤엄쳐 와.”
우리는 달리면서 도담이에게 외쳤다. 도담이는 우리말을 알아들은 듯 하류쪽으로 따라 내려왔다.
남편의 말대로 하류 쪽에 제방과 수면의 높이 같은, 얕은 곳이 있었다. 도담이가 빠진 데서부터 3백 미터 쯤 떨어진 곳이었다.
숨이 가쁘게 달려간 우리는 상류에서 헤엄쳐 내려오고 있는 도담에게 계속 소리를 질렀다.
“도담아! 여기야, 여기!”
도담이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속 허우적거리며 내려왔다.
“앗! 도담아!”
우리 있는 쪽으로 거의 다 내려와 2미터 정도 가까이 왔을 때 도담이가 그만 물 속으로 쑥 가라앉아 버렸다.
“도담아!”
우리가 몇 번이나 다시 외쳤을 때 도담이의 몸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더니 우리 쪽으로 헤엄쳐 왔다. 우리를 가까이서 보는 순간 긴장이 풀려서 가라앉았던 모양이었다.
“도담아, 힘내. 이쪽으로 와.”
잠시 후 도담이는 침착하게 헤엄쳐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팔을 뻗쳐 도담이를 잡아끌었다.
땅에 올라서자 도담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어 털의 물기를 털어낸 다음 고수부지 잔디 위를 힘차게 달려나갔다.
도담이 도롱이 두 녀석은 어머니가 밥을 주러 올 때 외에는 항상 둘이서만 지내야 했다. 둘만 있으려니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었다. 두루마리 휴지를 물어뜯어 여기저기 너절하게 늘어놓기도 하고, 방바닥을 발로 긁어 갈기갈기 뜯기도 하고, 벽지를 뜯어 너덜거리게 해 놓기도 했다.
집에 퇴근해 보면 그야말로 난장판, 아니 개판이었다. 그래도 우린 두 녀석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우린 어딜 가나 두 녀석을 데리고 다녔다. 시골 시댁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담이는 자동차 타기를 매우 좋아했다. 차에 태우고 가노라면 도담이는 항상 창밖을 내다보았다. 뒷발로 내 무릎을 딛고, 앞발은 차창에 얹고 목은 창밖으로 내놓고 바깥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어떤 때는 광명시서 칠갑산에 있는 청양군 운곡면 우리 시댁까지 네 시간 동안 내내 그 자세로 가기도 했다.
그래서 우린 항상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국도를 따라 천천히 가곤 했다.
도롱이는 정반대였다. 처음 차를 탔을 때는 멀미를 해서 토해 놓기도 했다. 밖을 내다볼 때도 가끔 있었으나 앞에서 차가 마주 오면 놀라서 의자 밑에 들어가 숨기가 일쑤였다. 도담이는 형답게 용감하고 도롱이는 아우답게 무서움을 많이 탔다.
시댁에 가서도 우리는 두 녀석을 방안에서 함께 재웠다. 시골 분들의 눈에, 개와 방안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을 법도 하련만 시부모님은 그런 우리에게 조금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우리처럼 두 녀석을 귀여워해 주셨다.
시아버님만 가끔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개한테 정을 주면 애가 안 들어선다는데...”
하고.
하루는 이웃집 할머니가 놀러 왔다. 팔순이 넘은 그 할머니는 도담이와 도롱이가 방안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시더니 기겁을 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남의 가정사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긴 싫었는지 하고픈 말을 꾹 참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이 얘기, 저 얘기 동네 얘기를 하면서도 못마땅한 눈으로 도담이 도롱이를 흘낏거리던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한마디 던졌다.
“그래도 가이는 가이여!”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시어머니께 여쭈니까, 어머니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개는 개라는 말이여. 느이들이 개를 사람처럼 위하는 게 아니꼬우셨는가 보다. 기어코 노인네가 한마디 하시는구나.”
개는 개다. 그렇긴 하다. 맞는 말이다.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제 혼자 운신하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지체부자유자, 돌보지 않으면 죽는 나약한 생명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과 개를 동급에 놓을 수 있으랴. 그 후로도 비슷한 말을 많이 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개를 내 손으로 수발하며 한방에서 길러 보세요. 개로만 느껴지는가. 사람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질 때도 있답니다- 하고.
- 엄마의 사랑을 놓고 다투는 도롱이(왼쪽)와 도담이(오른쪽).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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