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이의 아우타기
도담이는 말티스종이다. 하얗고 긴 털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리고 까만 눈에 까만 코가 무척 매혹적이다.
까만 눈의 가장자리에 여자들이 눈화장 할 때 쓰는 마스카라로 칠을 해 놓은 것처럼 까만 테가 있어야 말티스 순종이라는데, 도담이는 그렇질 못했다.
그래서 솔직히 다른 말티스와 비교해 보면 좀 못생긴 편이었다. 게다가 웬 말티스가 그리 큰지, 처음에 ‘입양’해 올 때는 1킬로그램도 안 되었으나, 나중엔 10킬로그램도 넘었다. 게다가 털도 직모가 아니었다. 다른 부위는 다 괜찮은데, 엉덩이 윗부분의 털이 푸들처럼 꼬불꼬불했다. 아무래도 푸들 피가 섞인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도담이가 말티스 순종이라고 우겼다. 그러면 개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도담이는 어렸을 적에는 다른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애교가 많았다. 기쁘면 기쁜 표정을 짓고, 기분 나쁘면 뾰루퉁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아직 도롱이가 오기 전, 도담이는 매일 혼자 집을 지켰다. 남편과 내가 모두 출근을 하기 때문이었다.
도담이는 혼자 있는 게 어지간히 심심한지, 현관에 있는 신을 물어다 안방에 갖다 놓곤 했다. 퇴근해서 보면 구두 서너 짝, 운동화 몇 짝, 슬리퍼 할 것 없이 모두 안방에 그득 쌓여 있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신을 신만 내려 놓고 나머지는 모두 신장에 올려 두는 버릇을 길러야 했다.
한번은 남편이 도담이를 야단친 적이 있었다. 화분의 흙을 모두 긁어내어 마루에 흐트러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기 위해 현관으로 나간 남편이 비명을 질렀다.
“으이쿠, 이게 뭐야!”
남편의 구두 속에 똥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도담이의 똥이었다. 남편한테 야단맞은 게 분했는지, 남편의 구두 속에다 똥을 싸 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도담이는 의사 표현이 확실했다. 기분 좋을 때는 품을 파고들며 응석을 부리고 기분 나쁠 때는 어딘가에 숨어 아무리 불러도 나오질 않았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처음엔 그저 귀여운 애완견 정도로만 생각되던 도담이가 차츰 개로 느껴지질 않게 되었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도담이가 아들처럼 여겨졌다.
그런 도담이를 하루 종일 혼자 두는 게 너무도 가슴 아팠다. 정말이지,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도담이가 혼자 집에서 외로이 있을 생각을 하면 심란해서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퇴근했을 때 깜깜한 현관에 있는 내 슬리퍼 위에 하얀 실뭉치처럼 또아리를 틀고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도담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강아지 한 마리를 더 입양해 오기로 했다. 도담이의 동생을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도담이가 그렇게 심하게 ‘아우타기’를 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둘째아들 도롱(道籠)이는 잉글리쉬 코카 스파니엘이다. 짧고 윤기 흐르는 갈색털을 갖고 있다. 귀가 길며 귀를 덮은 털이 퍼머를 한 것처럼 꼬불꼬불한 게 특징이다. 눈이 크고 선량하며 입꼬리가 웃음을 띤 듯 약간 올라가 있다.
어릴 적의 모습은 마치 순진한 소녀 같았다. 그 착해 보이는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볼 때는 한번 안아 주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연민의 정이 물큰 솟는다.
충무로에서 도롱이를 살 때, 우리는 성견이 되면 어느 정도 크는가부터 물었다. 도담이 동생으로 데려오는데 도담이보다 더 커서는 안 되겠기에 말이다.
“걱정 마세요. 말티스보다 훨씬 작은 종입니다.”
애완견 가게 주인은 자신 있게 말하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 말을 그대로 믿었으니, 우리가 개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팔아먹겠다는 일념으로 거짓말을 한 가게 주인이 괘씸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와 도롱이의 인연을 맺게 해주었으니 원망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도롱이의 경우를 보면, 개와 맺은 인연이란 부부연(夫婦緣)보다 더 질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부 중에는 처음의 선택 조건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이혼하는 짝도 꽤 있는데 비해, 강아지는 처음 선택 조건과 영 다른 경우에도 ‘그 놈의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순종이라고 해서 키우다 보면 엉뚱한 피가 섞여 있거나, 작은 종이라고 해서 키우다 보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거나, 집을 잘 지킨다고 해서 기르다 보면 집 식구건 외부인이건 가리지 않고 반기거나...
그러나 본래 원하던 개가 아니라고 해서 남에게 주거나 팔아버리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그래서 나는 늘 개를 자식에 비유하곤 한다. 부모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러저러한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여러 가지 소망을 해 보지만,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그 소망 사항에 부합하든 전혀 그렇지 않든 무조건 사랑하니까 말이다. 자기가 원하던 형이 아니라고 해서 아이를 버리거나 미워하는 부모는 없지 않은가.
도롱이는 도담이를 처음 데려올 때보다 훨씬 작았다. 한 손에 쏙 들어갈 정도였다.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다리 힘이 없어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게다가 설사기까지 있어 몸이 무척 약했다.
도담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이 1989년 8월, 도롱이가 온 것이 그해 10월. 그러니까 도담이는 도롱이보다 두 달이 빠른 셈이다.
따라서 도담이는 도롱이보다 덩치가 꽤 컸다. 석 달밖에 안 된 주제에 숫놈티를 내기 시작해 내 다리를 앞발로 끌어안고는 엉덩이를 흔들기도 했다.(이게 무슨 말인지는 숫놈을 키워 본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도롱이를 안고 들어오자 도담이는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으며 여간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니었다.
“도담아. 네 동생이야. 잘 데리고 놀아. 이름은 도롱이. 예쁘지?”
내가 말을 하자 도담이는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빤히 바라보고는 다시 도롱이한테 코를 갖다 댔다.
둘이 노는 것을 본 남편과 나는 새로 들어온 도롱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기 위해 고기를 사러 시장으로 갔다.
“깨갱깽.”
얼마 후 돌아오는데 도롱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놀라서 얼른 열쇠를 따고 집으로 들어갔다.
“도담아, 무슨 일이 있었니?”
우리가 의아해 하며 묻자 도담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롱이는 비디오 뒤에 숨어 있었다. 무엇엔가 놀란 듯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로 끙끙거리고 있었다.
“도담아, 도롱이가 왜 이러니?”
도롱이를 안으며 다시 물어 보아도 도담이는 무슨 일인가 모르겠다는 듯 딴전을 피웠다.
말 못하는 녀석들한테서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도 없어 우리는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면서 우리는 모처럼 마음이 놓였다. 이제 도담이한테 동생이 생겼으니 외롭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사이좋게 나누어 먹어.”
우리는 도담이와 도롱이가 배부르게 먹을 만큼 넉넉하게 밥을 주고 출근했다.
회사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전처럼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둘이 서로 뒹굴며 재미있게 놀고 있으려니 하고 생각하니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물렸다.
그렇지만 도롱이한테 설사기가 있는 게 걱정이 돼 나는 회사일이 끝나자마자 충무로에 들러 설사약을 산 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문을 따고 집에 들어서자 도담이가 쏜살같이 달려나와 반겨 주었다. 그러나 도롱이가 보이지 않았다.
“도롱아, 어딨니?”
한참 불러도 도롱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롱이가 잘 숨는 비디오 뒤를 찾아 보기도 하고 장농과 벽 틈새를 손전등으로 비추어 보기도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도담아, 도롱이 어디 갔니?”
도담이는 내 물음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저하고 장난이나 치자며 바지 가랑이를 물고 흔들 뿐이었다.
“여보, 도롱이가 없어졌어.”
얼마 뒤 퇴근한 남편한테 말하자, 남편도 걱정어린 얼굴로 물었다.
“현관문이 열려 있지는 않았지? 그렇다면 집안에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우리는 책상 뒤며 텔레비전 뒤, 싱크대 뒤까지 모두 살펴보았다. 도롱이가 숨을 만한, 주먹이라도 들어갈 만한 공간만 있으면 죄다 의심을 하고 찾아 보았다. 그래도 도롱이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람?”
“도롱아, 도롱이 어딨니?”
우리가 망연하게 앉아 있다가 다시 도롱이를 불렀을 때 어디선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났다. 분명 방안이었다.
“도롱아!”
다시 이름을 부르자 도롱이가 또 낑낑거렸다.
“저기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장농 쪽이었다.
“장농 틈새는 내가 아까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는데...”
그러고 다시 장농 틈새를 살펴보았으나 역시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장농 뒤에?”
그랬다. 장농 옆뿐만이 아니라 뒤에도 공간이 있다는 데까지는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던 것이다.
“끙끙.”
도롱이는 우리에게 신호라도 보내려는 듯 다시 한 번 소리를 내어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는 장농을 옮기기 위해 속에 있는 이불이며 옷가지를 꺼내 놓았다. 그리고 조심조심 장농을 잡아 끌었다.
도롱이가 마침내 장농 뒤에서 나왔다. 우리를 보며 반가운 듯 잠깐 꼬리를 흔든 도롱이는 대소변 보라고 깔아 놓은 신문지 위로 비실비실 기어가 쭈그리고 앉아서 오줌을 누었다.(아직 어린 강아지이므로 숫놈이지만 오줌 누는 자세는 암놈 같았다) 하루종일 참고 또 참은 듯 도롱이의 오줌 줄기는 한없이 가늘고 길었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고, 그 가늘고 긴 오줌이 양이 어떻게나 많은지 깔아 놓은 신문지가 흠뻑 젖을 정도였다.
오줌을 눈 도롱이는 다시 비실거리며 내게 걸어 왔다. 도담이가 킁킁거리며 다시 탐색하자, 도롱이는 몸을 잔뜩 움추리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왜 그래, 도롱아. 아직도 형하고 친해지지 않은 거야?”
도롱이를 찾아서 안도의 한숨을 쉰 나는 남편에게 도롱이를 건네주고 저녁을 지으러 부엌으로 갔다. 우리 밥과 함께 도담이와 도롱이의 먹이도 마련했다. 곱게 갈아온 쇠고기(사실, 우리도 손님이 올 때나 먹는데...) 넣고 국을 끓여 밥을 말은 다음 먹기 좋을 만큼 식혔다.
아침에 준비해 준 먹이는 도담이 도롱이 둘이 다 해치웠는지 마치 설겆이라도 한 양 그릇이 깨끗했다.
먹이를 갖다 주자 도담이는 얼른 달려와서 아주 맛나게 먹었다. 그러나 도롱이는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담이가 거의 다 먹도록 밥 그릇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냥 두었다가는 도담이 혼자 다 먹어치울 판이었다.
“도담아, 그만 먹어. 그러다 자귀난다.”
나는 도담이를 밥그릇에서 떨어지게 한 다음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도롱이한테 먹였다. 도롱이는 배가 고팠던 듯 맛나게 받아먹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도담이 쪽을 흘끗흘끗 살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도담이와 도롱이를 방에 두고 나는 설겆이를 하러 부엌에, 남편은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그러자 얼마 후 도롱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깽깽깽!”
무슨 일인가 하여 내가 방으로 뛰어들어가려 하자,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와 나를 말렸다.
“아무래도 도담이 녀석이 수상해. 그렇지 않고서는 도롱이가 저렇게 도담이를 경계할 리가 없어.”
그러면서 남편은 발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방으로 갔다. 나도 발뒤꿈치를 들고 남편 뒤를 따랐다.
우리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고 도담이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도담이는 그야말로 도롱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뒷목덜미를 물어 번쩍 든 채 마구 흔들기도 하고, 눕혀서 뒹굴리기도 하고, 앞발로 툭툭 치기도 하고... 그러니 겁 많은 도롱이가 혼비백산할 수밖에.
“도담아!”
도롱이를 괴롭히던 현장을 들킨 도담이는 머쓱해져서 뒷걸음질을 쳤다. 도담이한테서 풀려난 도롱이는 꽁지가 빠져라 하고 방구석으로 피신했다.
우리는 그제야 도롱이가 장농 뒤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롱이는 도담이의 등쌀에 못이겨 하루종일 그 속에 숨어 있으면서 오줌까지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밥도 못 먹고 굶었을 게 아닌가.
둘만 놓아두었다가는 큰일날 것 같았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한참 동안 궁리를 하던 우리는 묘안을 생각해냈다.
우리는 라면 박스를 구해 왔다. 그리고 라면 박스의 사방을 테이프로 봉한 다음 작은 출입구를 하나 만들었다. 덩치 큰 도담이는 들어가지 못하고 작은 도롱이만 드나들 수 있도록.
그 안에 도롱이를 넣은 다음, 밥 그릇과 물 그릇도 넣어 주었다. 도롱이만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안전지대가 생긴 것이다. 오줌이 마려우면 도담이가 없는 사이에 잠시 나왔다가 들어가면 될 터였다.
다음 날, 나는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퇴근하자마자 아무 데도 안 들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담아, 도롱아.”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불렀으나, 어쩐 일인지 도담이 도롱이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마루를 지나 두 녀석이 있는 안방으로 가는 그 짧은 사이였지만 불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방문을 연 나는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도담이가 라면 박스 출입구에 턱을 괴고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도롱이는 라면 박스 속에서 커다랗고 슬픈 눈을 껌벅이며 밖을 탐색하고 있고...
도담이는 도롱이를 감시하느라 마중조차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도담아, 이 녀석아. 엄마가 와도 못 본 척할 거니?”
내가 나무라자 그제야 도담이는 도롱이한테서 눈을 떼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도롱이도 보호자가 왔으니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라면 박스 밖으로 나와 비실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 다음날은 더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웬일인지 도롱이가 반색을 하며 마중을 나오고, 도담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또 무슨 일이 났는가 싶어 잠시 동안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던 나는 방안에 들어서서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도담이가 라면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그 좁은 출입구로 어떻게 비집고 들어갔는지, 박스 안에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다. 아주 흡족한 얼굴로,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도롱이가 그 안에 있는 것이 퍽이나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종일 그렇게 있었던 듯, 도롱이는 다른 때처럼 기죽지 않고 자유롭게 바깥에서 나다녔다.
도담이는 그 안에 있는 것이 기분 좋은 듯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내게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꼬리는 흔들었다. 꼬리를 흔드는 게 보이진 않았지만 라면 박스에서 탁탁 소리가 나는 걸로 알 수 있었다.
우리 눈에 안 보일 때만 도롱이를 못살게 굴던 도담이는 이제 아예 내놓고 못된 형노릇을 했다.
도담이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도롱이는 지레 겁을 먹고 깨갱거리며 엄살을 피웠고, 도담이는 그게 재미있어서 더욱 장난이 심해졌다. 도롱이가 숨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염없이 지키고 앉아 있다가, 그게 지루하면 방바닥을 박박 긁어 대며 어서 나오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내가 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도롱이를 도담이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나는 항상 도롱이를 안고 다녔다. 부엌에서 밥을 할 때도 도롱이를 싱크대 위에 올려 놓고 해야 했고, 빨래를 할 때는 세면대 위에 앉혀 놓았다. 잠시 시장에 갈 때도 도롱이를 안고 다녔다.
한번은 직장 동료들이 집 근처에 와서 술을 한 잔 하자고 불러냈다. 그때 나는 잠실대교 북쪽에 있는 성동구 자양동에 살고 있었다. 동료들은 2호선 성내역 옆의 레스토랑에 있었는데, 버스로 네 정류장을 가야 했다.
나는 도롱이를 버버리코트 주머니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운전사들이 개 데리고 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숨기느라고 그런 것이다. 개를 데리고 타면 재수가 없다는 게 운전사들의 한결 같은 말이었다. 더구나 한강 다리를 건너는 코스라 운전수한테 들켰다가는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네 정류장을 가는 동안 도롱이가 주머니 안에서 짖을까 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 도롱이는 말썽을 부리지 않았고, 무사히 버스에서 내려 동료들과 만났다. 술을 먹는 동안 도롱이는 레스토랑 탁자 위에서 얌전하게 왔다갔다 하며 놀았다. 동료들은 “술안주가 살아서 돌아다니네” 해 가며 낄낄거렸고 그때부터 내게는 “개엄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항상 도롱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에는 먹이마저 다 빼앗아 먹는지, 도담이는 날로 토실토실해져 가는 반면 도롱이는 배치배치 말라갔다. 보름이 넘었는데도 집에 처음 데려올 때보다 별로 크지를 않았다.
근심이 앞선 나는 도롱이를 극진히 대했다. 밥을 일일이 숟갈로 떠먹여 주고, 잘 때도 옆에 꼭 끼고 잤다. 도담이는 도롱이를 괴롭힐까 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도롱이는 조금씩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붙어 네 발로 제대로 걷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도담이는 전 같지 않았다. 그걸 우리는 한참 지난 뒤에야 알아차렸다.
전에는 우리 발자국 소리만 나도 반가워서 뛰어오더니, 이제는 “도담아”하고 불러도 못 들은 척 개기다가(표준말은 개개다임) 늙은소마냥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방걸레질을 쳐도 전처럼 입으로 물고 흔들며 놀자고도 안했고, 발랑 누워서 배를 만져 달라지도 않고, 밤에 잘 때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오지도 않았다. 혼자 뚱하니 앉아 있다가 우리가 다가가면 슬그머니 자리를 떠 밖으로 나가곤 했다. 사춘기 소년 같았다.
“도담아, 왜 그러니?”
하루이틀 지나면 기분이 풀어지겠지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도담이는 영 우울한 기색이었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가 너무 도롱이한테만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도담이는 아우를 본 아이처럼 아우 타기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이후로 양쪽 눈치를 다 살펴야 했다. 이렇게 하면 도담이가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도롱이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살얼음 걷는 것 같은 건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황희 정승의 옛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가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농부가 소 두 마리를 끌고 쟁기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료해진 황희는 농부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농부님. 저 두 소 중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오?”
그러자 농부가 황희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일은 저기 있는 누런소가 더 잘하지요. 그래도 심성은 검정소가 더 낫다오.”
멀리서 조금 큰소리로 말해 주면 충분히 알아들을 것을 일하다 말고 일부러 가까이 와서 귀에 대고 말을 하는 농부가 의아해 황희가 물었다.
“그걸 무슨 비밀스런 얘기라고 그리 작게 말씀하시오?”
그러자 농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소를 부려 일하는 사람으로 어찌 대 놓고 이러니 저러니 평하겠소. 소가 아무리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하지만 듣는 데서 칭찬하고 험담하는 건 도리가 아니오.”
어쨌든 도담이는 이렇게 부모에게 반항도 해 가며 형으로서 위상을 다져나갔고, 도롱이는 동생으로 제 자리매김을 해나갔다. 도담이는 형답게, 그리고 말티스답게 도도하고 의젓했고, 도롱이는 아우답게, 그리고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답게 착하고 귀여웠다.
둘의 특성은 병원에 가서 예방 주사를 맞을 때 확연히 드러났다.
의사가 주사 바늘을 꽂자 도담이는 ‘윽’ 하고 놀라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사롭게 굴었다.
그러나 도롱이는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깽깽깽”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내 품으로 파고들어서도 한동안 깨갱거리며 뒷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아우를 귀여워하면서도 질시하는 형 도담, 그 형에 치여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비실거리는 도롱이.
이 말썽 많은 형제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가 사는 광명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낮에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 주기 위해서였다.
이 아파트에서도 우리는 도담이 도롱이 형제 때문에 별별 우여곡절을 다 겪게 된다.
- 도담이 장난감으로 입양한 도롱이. 슬픈 눈빛은 제 형한테 늘 당하기만 해서 그렇다. 그러나 6개월 뒤 전세는 역전된다. 도롱이는 사냥개인 코카스파니엘 혈통을 지니고 있고, 도담이는 실내견 말티즈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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