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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이기는 백과사전

주역의 경고, 1등 너는 죽는다

주역의 경고, 1등 너는 죽는다

 

주역을 보면 건(乾)괘의 6효(爻)를 설명하는 글 중에 ‘항룡(亢龍) 유회(有悔)’란 말이 나온다. 건괘는 양(陽)으로만 꽉 차 있다. 소원이 이뤄지고, 일이 완성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섰다.


그런데 왜 괘사는 항룡유회일까?


* 주역이 상징하는 4가지 용(龍)


1. 잠룡(潛龍) ; 새끼용이다. 용인 용인데 저 혼자는 아무것도 못한다. 때를 기다리며 물에 잠겨 있어야 한다. 악어에게 잡히면 죽는다.사람으로 치면 왕의 아들인 왕자쯤 된다.

2. 현룡(見龍) ; 날개가 생겨 가까운 곳은 날아갈 수 있다. 작은 짐승은 잡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멀리 날지 못하고 용의 형상이 다 갖춰져 있지 않다. 나중에 왕이 될 수 있다는 태자로 지명된 상태다. 아직은 신하들보다는 높지만 왕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 한다.

3. 비룡(飛龍) ; 멀리 날아다닐 수 있다. 여의주도 진주알만하게 자라고, 불을 뿜으면 라이터처럼 켜지긴 한다. 아직 구름을 뚫고 치솟지는 못한다. 일이 있을 때마다 왕명을 받아 대리청정하는 수준이다. 왕이 돌아오라면 언제든지 돌아와야 한다.

4. 항룡(亢龍) ; 구름을 뚫고 치솟아 번개를 치고 벼락을 때릴 수 있다. 여의주가 있어 마음대로 비를 내리게 하며, 이 세상에서는 이르지 못할 곳이 없다. 사람으로 치면 왕이 되는 것이다. 여의주를 입에 문 듯, 왕이 한 마디 하면 법이 되고 영이 되어 온 백성이 따른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만큼 올라간 용은 후회할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인데, 과연 그럴까. 항룡유회란 한문을 좀 심하게 의역하자면 ‘1등 너는 죽는다’는 말이다.

여의주를 갖고 있어 구름과 바람을 일으키는 재주가 있는데 뭐? 죽는다고?

그렇다. 1등은 죽는다.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는 재미있고 신이 나는데 막상 목표에 올라서고 보면 내려올 일 밖에 없다는 소극적인 해석이 아니다. 위험하다는 말이다. 등산했다 내려오는 것처럼 간단하면 주역이 굳이 이런 말을 하겠는가?


잘 보라.

목표에 올라서고 보면 눈이 돌아가고, 으스대고, 우쭐대고, 홱 머리가 돌아버려서 초발심을 잃고, 기어이 독재하고, 태어날 때부터 난 이 자리에 오기로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식의 운명론에 빠지고, 갑자기 인간이 아닌 척하는 것이다. 그때 죽는다는 말이다.


선거판에서는 더러운 아스팔트길을 기어다니지만 취임식이 열리자마자 막상 공무원들이 가로수처럼 늘어서서 박수를 쳐대는 붉은 카펫을 걷고, 마주치기만 하면 무슨 바람이 부는 듯 풀잎처럼 납작 엎드린다. 심지어 풍악을 연주하고, 꽃가루까지 뿌려준다.

풍수는 그의 고향집에 찾아가 좌청룡 우백호를 찾고, 도사는 집터에서 기운이 솟구친다는 글을 신문에 올린다. 이름도 기억 안나는 고등학교 동창은 어려서부터 대통령이 될 덕목을 갖고 있었다고 찬양하고, 늙은 어머니는 갑자기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된다. 선거때는 바빠서 혼자 집에 갇혀 있던 애완견이 갑자기 사랑을 받고 청와대 잔디밭을 뛰어다니고, 관광객들이 다투어 사진을 찍는다.


아, 나는 원래 대통령이 돼야 할 천명을 타고 난 사람이었구나, 이 생각이 들면서 한 가지 두 가지 모두가 다 당연하게 보인다. 오십년 친구가 찾아와 "야! 너 대통령되니까 참 보기 좋다!" 이러면 반가운 게 아니라 싸가지 없어 보인다. 커피나 한 잔 먹여 어서 내보내고 싶다. 그러기까지 딱 석 달, 길면 반 년이다. 문을 안열어주면 들어가기 싫고, 갖다 주지 않으면 물도 안먹는다. 여러 놈이 종자들처럼 따라붙어야 걷지 혼자서는 정원 산책도 안한다.


<보수와 진보, 자연법으로 말한다>

* 1등이 죽는 더 자세한 원리.


잠룡은 무슨 일을 하든 조심하고 공부하고 묻고 들으려 하지만 항룡은 보고만 받고 지시만 한다. "그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는 놈이 한 놈도 없다. 세상이 아무리 더워도 청와대는 늘 시원하고, 아무리 추워도 늘 따뜻하다. 온 백성이 다 굻어죽어도 왕의 수랏상에는 산해진미가 오른다. 기근이 덮치고 전염병이 돈다는 소식은 결코 궁궐 담을 넘어오지 못한다.

잠룡, 현룡 시절에는 갖지 못하던 시간이 남아 돌고, 그래서 골프를 치고 낚시를 하고 휴가를 즐긴다. 휴가지 반경 수십 킬로미터 이내에는 경호원과 경찰과 기무사 군인들이 깔려 개미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한다. 절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조차 사실은 이미 신분이 확인되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훈련된 사람이다.


궐 밖 아스팔트를 기어다닐 때는 아픈 사람에게 약을 지어주고, 폐지 주워 먹고사는 노인들에게 용돈을 주고, 취직 못해 노는 청년들 보면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는데, 웬일인지 청와대 사람들은 다 기름지고, 좋은 옷 입고, 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다 행복해 보인다. 마누라조차 가스비, 전화료, 전기료, 보험료, 자동차세를 아예 잊고 산다. 선거비 빌려 준 친구는 아예 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 어쩌다 마주치면 실실 웃기만 한다. 지갑은, 당선 이후 써본 적이 없다. 어디 두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여권이나 주민등록증, 자동차면허증, 이런 것도 어디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죽는다. 왕만 죽는 게 아니라 그를 따라다니던 집권여당도 같이 죽는다. 천안함이야 누가 침몰시켰든 다 귀찮다. 김영철이 범인이든 말든 엎드려 절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며,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이 뭐라든 그건 전임 대통령의 일이고 난 더 큰 일, 더 역사적인 일에 열중하고 싶다. 4대강, 뭐 날씨 뜨거우니 녹조 생기겠지, 한두 마디 장관시켜 훓어보고는 그만이다. 진보는 무슨 진보이고, 혁신은 무슨 혁신인가. 이대로 최고다. 이대로 대만족이다.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 5년? 천만에! 우리는 100년 집권한다! 이런 오만이 뼛속 깊이 스며든다. 적어도 집권하면 즉시 보수가 되고, 진보는 야당 몫이다. 정의당, 너희가 진보해라. 우린 이 권력을 보수할란다, 이게 진심이 된다.


그러다 죽고, 그렇게 죽는다. 

오사마 빈 라덴은 3천억원이 넘는 거액을 상속받아 마치 알라의 후계자인양 굴다가 비명에 가고, 무바라크, 후세인, 히틀러, 가다피 등 한 줌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이들이 이런 착각 속에 자기가 무슨 하늘의 점지라도 받은 항룡이나 되는 줄 착각하며 살다가 벼락을 맞았다. 이명박, 박근혜도 그랬다. 노무현은 아니었다고? 노무현 말년, 2007년쯤 하늘을 날아다니기는커녕 술집의 안주거리로 올라앉아 이리 씹히고 저리 씹혔다는 걸 기억한다면 그런 소리 못한다. 김대중 말년, 김영삼 말년, 그들이 하늘을 날지 못한 채 웅크리고 앉아 한숨만 쉬고 있었다는 걸 잊었는가?

 

음식도 욕심의 7-8할만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고 하는데,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분수 넘치게 뭔가를 지니고 있거나 채우고 나면 반드시 그 화를 입는다. 

복권에 당첨되어 수십억 원, 혹은 수백억 원을 일확천금한 이들 중에서 이 큰돈을 끝까지 유지하거나, 이를 밑천으로 기업을 일으킨 사례가 아직 없다. 통계에 따르면, 도리어 돈을 다 잃고 기초생활자가 되어 정부의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란다. 그러다보니 복권당첨금을 쪼개서 연금식으로 지급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오는 것이다.


돈이라는 건 그 돈을 지닐만한 힘을 지닌 사람이 가지고 있을 때 돈이지, 능력이 안되는 사람이 분수에 넘는 큰돈을 쥐고 있으면 도리어 병에 걸려 일찍 죽거나 정신이 이상해질 수 있다. 사람 하나 버리는 건 시간문제다. 돈 쓰는 법을 몰라 평생 금고지기로 살다 가는 사람도 있다.


돈이 이러한데 권력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봉건시대, 독재시대의 정치권력은 돈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그밖의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오늘날과 같은 민주화시대의 권력도 예전만은 못하다지만 여전히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충 인생을 구르다 역전이 되어 시장, 군수라도 되면 눈이 뒤집혀서 돈 밝히고 여자 밝히고 권세 누리다가 감옥에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시장, 군수가 안되었다면 감옥에 안가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사람들이 하필 감당 못할 그 자리에 앉다보니 이름 더럽히고 패가하고 망신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리가 높을수록 떨어질 때를 생각하여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데, 막상 그 높은 장대 끝에 서고 보면 겁이 나질 않는다. 낭떠러지가 낭떠러지로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례가 있는데도 여전히 감옥 가는 이가 줄을 잇는 이유는, 아래에서 바라보는 윗자리가 달리 보이고, 위에서 보는 아랫자리가 달라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건 변함이 없지만 그 자리란 것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 자리가 바뀌면 정의도 달라지고, 인성도 달라지고, 인생관이며 가치관마저 달라진다.


분수 넘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위태로움이 시시각각 죄어 온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이기려면 너무 크게 이기지 말아야 한다. 완벽한 승리란 실은 패배나 다름없다. 그런 건 꿈꿀 필요도 없다. 감당할만큼 적당히 이겨야지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복인 줄 알던 것이 그만 화가 되어 불행을 쓰나미처럼 몰아다 줄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말로가 행복하지 못한 것도 이때문이다. 일단 자신이 항룡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나 아니면 안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돼 있다. 날아가는 새에게 멈춰라 소리치면 내려앉을 것같고, 태양에거 게 섰거라 하면 진짜 설 것만 같다. 누구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그러니 총에 맞거나 스스로 몸을 던지지 않고는 거기서 내려올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욕심을 거두면 거기서 내려오는 계단이 영광의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일단 항룡이 되면 사다리든 계단이든 다 걷어차버린다. 내려온다는 상상도 안한다. 그래서 저 이슬람권이 재스민 혁명으로 난리 아닌가.

 

대통령들이 갈수록 민심을 잃어가는 이치 또한 이 주역의 괘사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내가 혹시 하늘이 점지한 인물이 아닐까?” 착각하는 순간 불행이 불나방처럼 달라붙기 시작한다. 지방의 시장 군수들도 착각의 대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검찰청 문을 들어서서 어린 검사 앞에 앉아 신문을 받아봐야 주역이 머릿속에 떠오를지도 모른다. 여직원 아파트 사주고 내연녀 삼고, 직위를 이용해 부정하고 뇌물 먹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오라가라, 그러다 교도소 대문하고 이마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때는 너무 늦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란 실제로는 없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란 시조 못들어봤는가. 인간의 자리로서 어떻게 가장 높을 수 있는가. 덧없는 욕심 부리지 말고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가는 게 가장 아름답다. 주역이 그렇게 가르친다.


인간보다 우월했던 사자, 호랑이가 동물원에 갇힌 이유를 알면 무바라크며 히틀러며 후세인이며 빈 라덴 등이 ‘항룡유회’의 가르침을 무시하다 저렇게 됐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하이에나가 턱을 강하게 만들고, 코뿔소, 하마, 코끼리가 덩치 키우고, 인간이 두뇌 기를 때 사자, 호랑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는 백수의 왕’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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