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리키 도조 입양 1주년 기념글

나는 지금까지 열대여섯 마리의 개를 길렀다.

다 보내고 둘 남았는데, 하나는 열한 살이요, 하나는 두 살이다.

둘 중 어린 아이가 리키 도조인데, 2010년 5월 4일, 우리집에 처음 왔다.

당시 7개월 된 유기견으로 내게 올 때 이미 불임수술을 받아 처지가 무척이나 처량해보이던 아이다.

외로웠는지 늘 품을 파고 들었다. 엄마 품에서 자든가, 아니면 아빠 품에서라도 꼭 파고들어 잠을 청했다.

그런 리키를 위해 침대를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을 설치해주었다.

처음에는 짖는 게 뭔지도 모르는 아이처럼 온순하더니 몇 달만에 꽝꽝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집에 온 지 1년이 되고, 리키 나이 1년 6개월령이 지났다.

 

- 아침형 애견 리키 도조

 

리키는 늦게 자든 일찍 자든 아침에 깨어나는 시각은 일정하다. 대개 5시경이면 눈을 뜬다. 그러고는 혼자 침대에서 내려가 쉬도 하고, 물도 마시고,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다. 거실에서 자는 할머니 바니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시계를 보는지 어떤지 다섯 시 반 정도가 되면 도로 침대로 올라가 엄마를 깨우기 시작한다.

엄마는 더 자야 한다고 버틴다. 그래도 리키는 아빠를 깨우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엄마 머리맡에 앉아 가만히 숨을 몰아 쉰다. 그 소리에 엄마가 깨면 다행이지만 안깨면 머리카락을 빨아본다. 그런 다음에는 "일어나 봐, 좀 일어나 봐." 이렇게 낮게 속삭인다. 그래도 안되면 길다란 혀를 내밀어 엄마 귀에 밀어넣어 간질인다.

이쯤 되면 엄마는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 리키에게 아침 사료를 줘야만 한다. 아무리 늦어도 6시 이전에는 아침 식사를 해야만 한다.

아침을 얻어 먹은 리키는  엄마를 따라 침대로 올라가 조금 더 아침잠을 잔다. 변함없는 일과다.

 

- 우리집에 온 지 1주년이 되는 지난 5월 중순부터 리키가 독립했다. 애기처럼 엄마품에 깃들어야만 잠을 청하던 리키가 웬일인지 침대를 거부한다. 그러고는 거실에서 잠을 잔다. 잠을 안자면 거실에 그냥 앉아 있는다. 저녁 시간, 엄마 아빠가 텔레비전을 볼 때면 같이 보기도 하는데, 리키는 동물농장이나 애니멀플라넷, 넷지오 같은 방송을 아주 좋아한다.

엄마 아빠가 자러 가도 리키는 거실에 남아 우두커니 앉아 있는다. 그러다 혼자 잔다.

바니 할머니가 철망 안에서 잠을 자니 외롭지는 않겠지만, 뜻밖이다.

이런 증상은 4월말부터 시작되었다.

전에는 새벽까지 시체처럼 자던 아이가 그 즈음부터 엄마 아빠가 잠이 들면 살그머니 빠져나와 거실에 앉아 있곤 했다. 한밤중에 일어나 없어진 리키를 찾아보면 거실에 그냥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는 아예 거실에서 잔다. 일부러 침대로 데려가면 5분 정도 예의상 팔을 베고 있다가 거실로 나가버린다.

독립정신이 투철한 건 좋은데 너무 어린 나이에 주체 의식이 생긴 것같아 좀 꺼림칙하다.

아마 더워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 해석하는데 과연 겨울이 되어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올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리키가 침대에서 깔려죽을까봐 걱정하는 일은 없어졌다.

<이렇게 예쁜 리키 보시면서 유기견 입양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깨닫는 분들이 많이 계시길 기원합니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엔돌핀이 쭉쭉 솟아난답니다. 혹시 이 글 읽고 유기견 입양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리키의 고향으로 안내합니다.>

====================================

- 뒤늦게 밝혀진 리키 도조의 독립 이유

 

할머니 바니가 낮에 앉아 있던 담요를 리키가 몹시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담요를 치워버리니 담요 내놓으라고 소리지르고 떼를 쓴다.

확 빨아버리니 리키는 포기하고 도로 침대로 올라온다.

아, 이 모든 게 음양의 조화였던가.

우리 리키는 사실 호두까기 소년이라 안그럴 줄 알았는데 본능은 어디 안가는가 보다.

에이, 수컷놈들...

<아래는 채증 자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