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난다
법정에 가 재판을 방청하다보면 어지간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은 판사 노릇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양측 주장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원고, 피고, 증인할 것없이 경쟁적으로 거짓말을 해댄다. 위증을 하면 처벌받는다고 하지만 기억이 안난다, 모른다, 그런 것같다, 이런 식으로 거짓말하는 건 처벌할 수도 없다. 그러니 법정이 아닌 사회 구석구석에서 남발되는 거짓말은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렵다. 여야 정치인들의 말도 그렇고, 시민단체들의 주장도 너무 달라 귀가 어지럽다. 점잖던 일간지까지 나서서 패싸움하듯이 거짓말을 겨루는 일이 많다. 이처럼 넘치는 거짓말의 홍수 속에서 진실한 목소리를 가려내기란 너무나 어렵다. 그럴수록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의기양양해지고, 더 교묘해진다.
우리나라에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는 고약한 속담이 있다. 포퓰리즘의 역사가 꽤 깊다는 걸 웅변해주는 나쁜 속담이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언어를 발명하면서부터 가장 먼저 시작한 대화가 바로 ‘남 얘기’였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이 점차 ‘불필요하고 시시콜콜한 남 얘기’로 옮겨간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인류의 호기심 본능이 무기가 되면서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수단으로 발전한 듯하다. 여기서 우리 조상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는 속담까지 만들어 언어폭력, 포퓰리즘에 정당성까지 부여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조차 광우병 환자가 발생한 적이 없는데,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뼈 송송 구멍 탁’ 된다고 했으니 때지 않은 굴뚝에서도 얼마든지 연기가 날 수 있다는 반증이다. 재소자가 허위로 그린 ‘장자연 편지’라는 것도 그렇다. 대형 방송사까지 헐레벌떡 달려가 재소자의 말만 믿고 이를 침소봉대하여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천성산 터널을 뚫으면 도룡뇽이 사라진다는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전문성이라곤 전혀 없는 비구니 한 명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온 사회가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포퓰리즘을 포퓰리즘이라고 인식할 집단 지성이 없으면 사회든 국가든 허무하게 무너져내릴 수 있다. 하물며 방어력이 없는 한 개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몇몇이 작정하고 돌려세우면 해명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거짓말이 밝혀지는 건 결국 맞지만, 밝혀지기까지 입는 피해는 원상회복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란 속담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을 부추길 뿐 그것을 막아내는 지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놓고 대중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막을 길이 없다는 뜻의 ‘중구난방(衆口難防)’이란 사자성어까지 갖다붙인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포퓰리즘을 부추길 때 쓰는 말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그럴수록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난다’는 걸 명심하고, 중구지란(衆口之亂)이 더 위험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 광우병 시위 현장.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크게 피어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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