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복도리
우리가 둘째며느리로 맞이한 도리를 보고 있노라면 ‘흡족’ ‘만족’ ‘자족’ 이런 말이 저절로 머리 속에 떠오른다.
도리는 생긴 건 좀 못났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뭉툭한 게 못생긴 고구마 같은데다 항상 눈물을 흘려서 지저분해 보인다. 몸매는 살이 투실투실 쪄서 두리뭉실한데 다리는 가늘어서 몸과 배에만 살이 두둑한 아줌마 스타일이다.
도리는 그 넉넉한 생김새처럼 세상 사는 게 마냥 행복한가 보다. 개장에서 마당으로 내 놓아 주면 잔디밭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힝힝거리고 즐거운 소리를 낸다. 그렇게 혼자 몸을 뒤집었다 제켰다, 굴렸다 하며 잘도 논다.
먹이도 가리지 않고 뭐든 아주 달게 먹는다. 개들이 좋아하는 고기뼈다귀나 사료는 물론 배추 꽁댕이, 무 쪼가리, 심지어 날감자까지 맛좋다고 먹는다. 다른 개들은 먹지 못하는 새우껍질도 아드득 아드득 씹어서 잘도 먹는다.
도리는 무조건 밖에 있는 걸 집안으로 물고 들어오는 버릇이 있다. 밖에 나가기만 하면 어디서 구했는지 빈 우유팩이며, 요구르트 용기, 귤껍질, 뼈다귀 등을 물고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마당이 지저분해진다. 그렇지만 집엣 것을 밖으로 가져나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물고 들어오던 중에 어느 날은 천원짜리 지폐를 주워 오기도 했다. 도리가 번 돈이라 하여 그걸로 도리에게 맛있는 과자를 사주었다.
어쨌든 이렇게 뭐든지 가져와 집안 재산을 불리는 도리(그게 쓰레기든 뭐든), 늘 행복해하여 보는 사람도 행복감에 젖어들게 해 주는 도리를 우리는 복조리가 아닌 ‘복도리’라고 부르곤 한다. 도리는 복을 불러오는 전령인 것 같다.
이런 도리도 생사의 기로에 서는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1991년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밖에 있는 녀석들이 요란하게 짖어댔다. 손님이 오거나 누군가 방문할 때 짖는 소리와 영 달랐다. 그럴 때 짖는 소리에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기대하는 아이들마냥 들뜬 목소리인데 그날은 그렇지가 않았다. “큰일 났어요, 빨리 나와 보세요” 하는 것처럼 급박했다.
불길한 생각에 밖으로 나가니 도롱이 희동이가 대문 쪽을 향해 더 큰 소리로 짖어댔다. 대문간에는 도리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기겁을 해서 달려갔다. 상황을 보아하니 도리는 파리약을 먹은 듯했다. 워낙 맹독성의 약이라 개들의 키에 닿지 않게 높은 곳에 올려놓았는데 누가 건드렸는지 약그릇이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다른 개들은 먹지 않고 지나쳤는데, 워낙 식성이 좋은 도리인지라 그것까지 맛나게 먹은 듯했다.
도리는 의식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입에서 계속 거품을 내뿜으며 눈까지 허옇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리야, 정신차려. 도리야, 정신 잃으면 안돼.”
나는 도리가 정신을 잃으면 죽을 것 같아 도리의 머리를 계속 찰삭찰삭 때리며 도리의 이름을 불렀다. 그럴 때마다 도리는 스르르 감던 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가축병원엘 가야 하는데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고 없었다. 그래서 택시를 불렀다. 마침 어머니가 내려와 계셔서 함께 차에 올랐다.
차에 도리를 안고 타자 운전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개를 태우면 어떡해요?”
“개가 독약을 먹고 죽어가서 병원에 데려가려는 거예요. 집에 차가 없어서 피치 못해 태우는 거니 양해해 주세요.”
설명을 했는데도 운전사는 계속 “재수없게 개를 태우면 어쩌란 말이야.” “차안에 개털 날리겠네.” “에이, 제길...” 하고 툴툴거리면서 운전을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운전사의 그런 태도에 그냥 참고 넘어갈 내가 아니지만 워낙 상황이 급박해서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차에 타서도 도리의 꺼져가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도리야, 정신차려. 죽으면 안돼.” 하며 애절하게 도리의 이름을 불렀다.
집에서 병원이 있는 동네까지는 7분여 거리, 병원 앞에 다다를 즈음에는 도리는 이름을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정신을 완전히 놓은 듯했다.
수의사는 병원에 있었다. 시골이라서 동물농장같은 데 자주 왕진을 가는 터라 부재중이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었다.
도리는 다 죽어가는 데도 수의사는 별로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증상을 말해주자 의식을 잃은 도리의 눈을 한 번 뒤집어 보더니 느릿느릿 선반으로 가서 무슨 약병을 꺼내왔다.
나는 마음이 급해 얼른 치료해 달라고 독촉을 하고 싶었으나 전문가이니 알아서 하겠지 하며 속으로 자신을 달랬다.
이윽고 수의사는 해독제를 놓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주사바늘이 들어갈 때만 해도 감각조차 없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누워 있던 도리는 주사를 맞고 일 분도 안돼서 눈을 반짝 떴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나서 걸어다녔다. 그야말로 감쪽같이 나은 것이다. 언제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갔느냐는 듯 말짱했다.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도 택시를 타야 했다. 또 개 태운다고 구박을 받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했으나 귀가길의 운전수는 퍽 친절했다. 무슨 일로 개를 데리고 차를 타느냐고 궁금해 하며 묻기까지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도리가 약을 먹은 과정부터 치료한 얘기까지 일장 설파했다. 운전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얘기를 들었다. 나는 운전수의 친절이 고맙고 개를 태운 미안감에 규정요금의 두 배를 지불했다.
도리가 살아돌아오는 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저 개는 복도 많다”며 한마디씩 했다. 자기네들 같으면 개가 약먹고 죽어 가면 죽게 그냥 놔두지 생돈(그들에게는 생돈이다) 들여 치료하지 않는다는 말들을 덧붙이면서.
부주의로 도리를 비명에 가게 할 뻔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후로 우리는 시골에 사느라 필수적인 농약이며 파리약 같은 것들을 세심히 간수하게 되었다.

- 잘 생기진 못하고 착하기만 한 도리
'기록의 힘 > 애견일기1 - 도담 도란 도조 도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 거지 ‘도조’ (0) | 2008.12.12 |
---|---|
인스턴트 사랑은 싫어요 (0) | 2008.12.12 |
도담이 아들 희동이 (0) | 2008.12.12 |
사랑은 받고 목숨을 바쳤어요 (0) | 2008.12.12 |
도담이 하늘 가던 날 (0) | 2008.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