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받고 목숨을 바쳤어요
어느 죽음인들 슬프고 괴롭지 않으랴. 어느 죽음인들 억울하고 원망스럽지 않으랴.
다른 이의 눈에는 한낱 개에 지나지 않았을 우리 도담이의 죽음도 어떤 고매한 인간의 죽음 못지않게 우리 부부에게 충격과 비탄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온 기력을 잃고 축 쳐져서 지냈다. 그러나, 살아야 했다. 도담이는 가고 없지만 나머지 ‘아이들’ 도롱이 도란이 도리가 있으니 말이다.
도담이가 죽고 한 달 반이 지나갈 무렵,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도담이 49재 지내 줍시다.”
“어디서?”
“절에서 지내지.”
“절에서 개 49재도 지내 줄까? 말 꺼냈다가 욕만 먹으려구?”
“명초 스님이 있잖아.”
“맞아, 그분이라면 지내 주실 거야.”
난 그제야 명초 스님이 생각났다. 공주 작은 절에 사시는 그 스님이었다. 도담이와 도롱이 도란이 전생을 실감나게 얘기해 준...
우리가 전화를 드리자 스님은 흔쾌히 승락해 주었다. 다른 절 스님이라면 개한테 무슨 사십구재냐고 펄쩍 뛰겠지만, 명초 스님은 당연지사인 것처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주었다.
“다른 제수는 내가 준비할 테니, 떡 한 말만 맞추어 오고 돈이나 얼마간 준비해 와.”
스님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스님의 분부대로 떡 한 말을 해서 차에 싣고 도롱이 도란이 도리를 함께 데리고 공주 절로 갔다.
스님은 약속대로 49재를 지낼 준비를 완벽히 갖추어 놓고 있었다. 불단에 과일이며 떡, 과자 등이 푸짐히 올라 있었다.
“자, 일심으로 극락왕생을 빌어 줘.”
스님이 목탁과 채를 잡으면서 일렀다.
“스님, 극락왕생만 갖고는 안됩니다.”
남편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시 태어날 때 사람으로 나게 빌어 주십시오. 인도환생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들 아들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려울 텐데... 녀석이 업이 많아서 개로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몇백 생을 거듭 윤회해야 할 게야. 게다가 부자지연을 맺어 다시 온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고...”
“지극정성으로 빌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스님의 도력으로도 안됩니까?”
남편이 계속 매달렸다.
“어디 한 번 노력은 해 보자구.”
스님은 비장한 얼굴로 목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견공(犬公) 이도담(李道談) 영가(靈駕) 인도환생(人道還生)...”
예불문, 천수경 등을 마친 스님은 절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스님 뒤에 나란히 서서 스님을 따라 절을 했다.
또르륵, 딱. 또르륵 딱.
작은 절 안에 스님의 목탁 소리와 기도 소리만 울렸다. 너무나 고요하여 절을 하면서 가사자락 스치는 소리도 들려 왔다.
10분, 20분, 30분, 한 시간...
스님의 기도는 계속됐다. 우리도 계속 절을 따라 했다.
쉼없이 일어섰다 엎드렸다 하려니 다리가 아파왔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꾀가 생겨 났다. 도담이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의 아들로 오게 해 달라는 염원은 뒷전으로 퇴색해 가고 스님이 어서 기도를 마쳤으면 하는 바람만 들었다.
“인도환생은 어렵다는구만. 기도가 잘 안 먹혀.”
한참 동안 기도에 열중하던 스님이 우릴 돌아보며 말하더니 다시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스님은 그로부터 다시 한참 동안 기도를 하고 나서야 49재를 마쳤다.
기도를 마친 스님의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스님을 따라 절을 계속한 우리도 기진맥진했다.
“아무리 통사정해도 말을 안 듣길래 내가 하늘에 직접 올라가 따졌어. 그래도 도담이의 인도환생은 안 된다기에 마구 협박을 하고 을렀지. 그랬더니 겨우 허락이 떨어지더구만.”
스님이 얼굴의 땀을 승복 소매로 훔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도담이가 저희 아들로 다시 온다는 겁니까?”
“허허. 그럼. 내가 약속을 받아냈어.”
“하늘에 가셨을 때 도담이도 만나 보셨어요?”
스님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지만 나도 끼어들어 한 마디 물어 보았다.
“그럼.”
“뭐라고 해요? 왜 그 위험한 도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대요?”
“이렇게 전하라더군. ‘사랑은 받고 목숨은 바쳤노라’고.”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남편이 스님한테 바싹 다가앉았다.
“자네가 올해 교통사고로 죽을 수였다는군. 그걸 도담이가 대신 죽었다는 거야. 자네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 견공이 목숨을 바친 거지.”
스님의 말을 듣고 있는 남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고 있었다.
스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다. 윤회전생이라는 게 실재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그렇다 한들 개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업보 때문에 어려운 걸 스님이 기도하면서 하늘에 올라가 따지고 협박까지 하여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어찌 믿겠는가.
그러나 우린 믿고 싶었다. 도담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그것도 아이가 없는 우리한테 자식이 되어 돌아온다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싶었다.
“참, 도담이가 말하더군.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나 정도는 들어 줄 수 있다는군.”
스님의 말에 남편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저야 글 쓰는 사람이니 작품이 성공하는 게 제일 큰 소원이지요.”
남편은 그러면서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도담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도담이가 내 대신 죽었다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사랑은 받고 목숨을 바쳤다고...?”
남편은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차를 길옆에 세우고는 스님의 말을 되뇌었다.
“허황된 얘기지만 믿고 싶어. 아니, 믿어져.”
“도담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면 우리가 죽어서라도 만날 수 있겠지. 그럼 됐지 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우리는 오랜만에 웃었다. 눈물을 연신 흘리면서도 밝게 웃었다.
도담이에 대한 그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딜 가더라도 도담이에 대한 추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도담이를 잃고 상심하고 있다는 걸 아신 시골 어머니께서 전화를 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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