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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1 - 도담 도란 도조 도롱

도담이 하늘 가던 날

도담이 하늘 가던 날
 
개 안 길러 본 사람들은 이런 말 하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도담이는 정말 아들 같았다. 사람과 조금도 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꽤 오래 되어서도 난 의식도 행동도, 외모도 처녀 같았다.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보았다.
그런데 도담이를 집에 데려오면서부터 사람들이 나를 부인네로 보기 시작했다. 도담이한테 엄마 노릇을 하면서부터 내 얼굴이 완숙해졌는가 보다.
그런 도담이가 갔다. 일년 반의 짧은 생을 마치고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남편과 나한테 견디기 힘든 슬픔을 남겨 놓고...

그날이 1991년 3월 13일이었다.
용인 시골에서 집을 판 사람들과 함께 살 때였다. 내가 직장 그만둔 지 얼마 안돼서였다.
주인집의 쉰동이 아들 돌날이라 아침부터 손님이 찾아들었다.
남편이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가려다 말고 걱정을 했다.
“도담이 녀석이 말을 잘 안 들어. 멀리 가지 말라고 해도 제 멋대로 돌아다녀.”
남편의 말에 불길한 느낌이 확 끼쳐 왔다.
“그럼 끈에 묶어서 데리고 가지.”
묶어 본 적이 없는 도담이지만, 멀리 간다니까 선뜻 그 말이 나왔다.
“그래도, 어떻게...”
남편은 말끝을 흐리면서 도담이 도롱이 도란이 도리 이렇게 넷을 데리고 뒷산으로 산책을 갔다.
나는 주인집 돌 준비를 거드느라 따라나서지를 않았다.

 

그로부터 몇십 분이 지났을까. 우리 집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외딴집인데요 사고가 났다고, 아저씨가 오시래요.”
무슨 얘긴지 분명치는 않았지만,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직감했다.
나는 외딴집 쪽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그런데 멀리서 남편이 무언가 안고 허둥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 실뭉치 같은 털, 도담이었다.
“도담이가, 차에 치였어.”
남편이 사색이 되어서 말을 더듬거렸다.
“차 열쇠 갖고 나와. 그리고, 얘네들 집으로 데려다 놓고.”
남편은 자동차에 도담이를 실으면서 도롱이와 도란이, 도리를 챙겼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나는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하라는 대로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고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도담아, 정신 차려. 죽으면 안된다. 응!”
남편은 도담이를 안은 채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차 열쇠를 받아든 남편은 도담이를 내 팔에 안겼다. 나는 도담이를 안고 조수석에 앉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도담이는 겉으로 봐선 멀쩡했다. 몸이 축 쳐져 있고, 코에서 피가 나오는 것 외엔.
“괜찮을 거야. 별로 다친 것 같지 않아. 도란이처럼 잠시 기절한 거겠지.”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교통사고는 외상을 안 입은 게 더 무섭대.”
남편은 운전대를 잡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엔 침착하기만 하던 남편이 너무 몸을 떠니까 걱정이 되었다.
“어디서 사고가 난 건데?”
나는 남편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히 물었다.
“뒷산 너머 기상연구소로 가는 곧은 아스팔트길 있잖아. 거기서 치였어. 이 녀석이 그쪽으로 달려가길래 소리쳐 불렀는데, 한 번 힐끗 뒤돌아보더니 그냥 가는 거야. 산길을 내려가서 큰길로 갔는가 봐. 얼마 후에 끼익하고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소리가 나길래 뛰어가 보았더니...”
남편은 운전도 못하고 흐느꼈다.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그 큰길이 역시 우리 ‘아이들’한테 위험했던 것이다.
“그 큰길가 외딴집에 암캐가 있는데, 발정기인가 봐. 도담이 녀석이 어제부터 그 집엘 찾아가더라구.”
도담이는 내 품에 안겨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코에서 자꾸 피가 흘러내려 내 점퍼를 적셨다.
남편과 나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가축병원(이런 시골에서는 동물병원이 없고 대신 가축병원이 있다. 그 차이는 시골사람이면 안다.)으로 찾아갔다.
“죽은 거나 마찬가집니다. 코에서 출혈이 있다는 건, 뇌출혈인데... 가망 없습니다.”
수의사는 간단하게 진단했다.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수술하면 낫지 않을까요?”
남편이 수의사에게 매달렸다.
“그래도 안됩니다.”
수의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제발 좀 어떻게 해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수술비가 얼마가 들더라도 괜찮으니까요.”
그때 남편이나 내 심정은 도담이를 살려낼 수만 있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수술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수의사는 매몰차게 사망을 선고했다.
“이미 죽은 겁니다.”
우리는 거기서 절망할 수 없었다. 그 수의사가 원래 개한테 무심한 편이기 때문에 다른 데 가 보기로 했다. 우리 면에서는 가축병원이 그곳 한 군데뿐이어서 마땅히 갈 곳이 없어,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 고치는 내과에 갔다.
“애타는 마음을 알겠는데, 이미 99%는 사망한 상태예요.”
팔순이 넘은 의사가 미안한 기색을 지었다.
우리는 도담이를 안고 힘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도 도담이는 몸이 따뜻했다. 코에서 흐르던 피가 멈추어 그것을 닦고 나니 정말 그냥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전혀 죽은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미동도 않고 숨도 안 쉬는 걸 보면 죽은 건 분명한 듯했다.

주인집에서는 아이 돌날이라고 흥청거리는 판이라 도담이 죽은 것을 겉으로 내색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도담이 시신을 몰래 안고 우리 방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놓았다. 밖에 있던 도롱이와 도리는 영문도 모르는 채 우리를 반겼고 방안에 있던 도란이도 남편 도담이한테 생긴 변고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마 지나자 도담이의 몸이 식기 시작했다. 진짜 죽은 것이다.
“도담아.”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편이 우는 모습은 그때 처음 보았다.
“네가 가면 아빤 어떻게 사니... 이 녀석아.“
남편은 도담이의 시신을 붙잡고 소리 죽여 울었다. 나는 도란이를 안고 울었다.
“여보, 어떻게 해. 이 녀석 때문에 이 먼 데까지 이살 와서 살고 있는데, 이렇게 가 버리다니...”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도담이 시신을 만지며 울고, 미망인 도란이를 안고 울었다.

도담이를 데려오면서 겪은 기억들이 계속 머리속에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도담이 혼자 집을 지키다가 우리 구두 속에 들어가 자던 일, 녀석 혼자 있는 게 불쌍해서 도롱이 사 주었더니 그 동생 도롱이를 시샘하던 일, 한강에 빠져서 애간장 졸이게 했던 일, 녀석들 때문에 세 번이나 이사하던 일, 절과 산 한강 공원 등에 데리고 가서 놀던 일, 도란이 왔을 때 넋을 잃고 반했던 일, 도롱이와 싸워서 야단치던 일...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녀석이 저 세상으로 갔으니 장례를 치러 주어야 했다.
“이 녀석, 가는 길이나 제대로 보냅시다.”
남편은 도담이에게 베로 수의를 해 입히고 염도 잘 해주자고 했다. 그러나 장의사 어디서 개수의를 해주겠는가. 욕 먹을 짓이다. 그리고 장의사가 읍내에 있어서, 그날 남편의 기력으로는 운전해서 거기까지 갈 수도 없었다.
“잘 썩는 천으로 염해 주면 되지 뭘.”
남편은 내 의견에 따랐다.
우리는 커다란 면 수건으로 녀석을 싸고, 면실로 꼭꼭 묶어 주었다.
“극락왕생 기도해 줍시다.”
남편은 금강경을 꺼내왔다. 불교에서는 죽은 이한테 금강경을 읽어 주면 극락으로 간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죽은 도담이에게 금강경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 주었다.
“도담아, 이 경 듣고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는 윤회의 길에 들어서지 말고 깨달아서 부처되거라.”

그날은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주인집의 돌잔치에 슬픈 내색 않느라 함께 잔치 밥도 먹고 우리 방으로 돌아오면 다시 울고 그랬다.
우리는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도담이에게 경을 읽어 주었다.
나는 가까운 이가 죽는 경우는 한 번밖에 당해 보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유일하게 내가 직접 겪은 죽음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도담이가 죽은 게 더 슬펐다. 역시 아버지를 생각하는 치사랑보다 아들을 생각하는 내리사랑이 더 강한가 보다.

다음날, 소식을 들은 우리 어머니가 광명시에서 용인까지 달려왔다. 어머니는 손자 같은 녀석이 죽었다고 엉엉 울었다.
우리는 정신을 수습하고, 주인집 아저씨에게 도담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린 다음 장례를 의논했다.
“뒷산에 묻어야지 뭐.”
주인집 아저씨는 자기 집 개는 잡아먹으면서도 우리 ‘아이들’한테는 야박하게 굴지 않았다. 우리가 워낙 위하는 줄을 아니까 사람을 봐서 그런 듯했다.
“그려. 뒷산이 서북쪽이니까 방향이 맞어.”
주인집 할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땅 파 줄 테니 함께 가.”
주인집 아저씨가 삽을 들고 앞장섰다.

아저씨와 우리는 도담이가 신나게 뛰어놀던 뒷산에 구덩이를 팠다. 초봄인데도 흙이 좋아서인지 땅이 쉽게 파였다.
아저씨는 구덩이를 아주 깊게 팠다.
“여기 묻었다는 거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돼. 알더라도 꺼내기 힘들게 깊게 파야지.”
동네 사람들이 개 파묻은 거 알면 파내다가 보신탕 끓여먹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끔찍한 말이었다.
도담이 몸을 수건으로 쌌지만, 그 위에 그냥 흙을 덮기가 싫어 사과 상자를 구해서 도담이의 관으로 썼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무덤인 줄 모르게 편편하게 다졌다. 그런 다음 아저씨는 근처에서 작은 소나무를 뽑아와 그 위에 심었다.
“나중에 찾으려면 이 소나무를 보면 되지.”
도담이 무덤이라는 표지였다.
우리는 도담이의 피가 묻었던 점퍼며 도담이가 어릴 적부터 써온 침대, 도담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 등을 그 옆에서 태웠다. 죽은 이 것은 그렇게 태워 없애 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정을 떼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람의 장례식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장례식이지만, 좋은 흙에 깨끗이 묻어 주고 나니까 우리 마음에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도담이가 죽은 데 대한 슬픔은 오래 갔다. 나는 특히 도담이가 죽은 충격으로 너무도 기력이 빠졌다. 그때 원고를 쓰고 있었는데 뒷부분을 제대로 완성치 못해 작품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남편도 오랫동안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란이도 많이 변했다. 도담이가 있을 때는 장난도 잘 치고, 애교도 피우고 그러더니, 말수가 적어진 사람마냥 정적으로 돼 갔다. 미망인인 도란이는 거기서 아기 티를 벗고 어른이 돼 버렸다. 태어나서 6개월 만에...

우리는 그 후 지금까지 설날과 추석, 그리고 도담이 기일마다 제사를 지낸다. 명절 때는 우리가 시골 시댁에 내려가므로 상만 차려 놓았다가 동네 사람이나 친척한테 부탁해서 촛불 켜 놓고, 술 따라 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도담이 제삿날은 물론 우리가 직접 하고...
격식을 갖추어서 지방도 쓰고 도담이 사진도 제삿상에 올려 놓는다. 제사 음식은 도담이가 좋아하던 것 위주로 놓는다. 도담이가 그렇게 아껴 먹던 식빵과 오징어, 계란, 그리고 사람 제사에 쓰이는 약과, 옥춘, 팔모 등과 술이 오른다.
남편은 지금도 나보다 더 도담이를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난 도담이가 죽은 이후로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죽으면 도담이를 만날 수 있을 것 아냐. 도담이가 저 세상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겠지.”
죽어서 사랑하던 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으랴.
알 수 없는 죽음이 우릴 이렇게 갈라 놓고 있구나.

도담이는 그후 여러 군데서 되살아나기도 했다. 남편과 나의 글 속에서... 남편은 <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별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소설에서는 아예 도담이를 주인공 이름으로도 썼다. 여자 주인공 이름은 도란이고...
남편은 그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써넣었다.

- 주인공 도담은 1991년 3월 13일 내 곁을 떠난 아들 이름에서 딴 것이다.-

이 문구를 읽고 실제 우리 아들이 죽은 거로 생각한 사람들한테서 위로도 많이 받았다. 나중에 도담이가 개인 걸 알게 된 사람들이 황당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어  책 재판을 찍으면서는 이 내용을 삭제했다.
그리고 도담이는 지금 내 곁에도 살아 있다. 나우누리의 내 아이디 DODAM으로. 나는 나우콤에 접속하여 DODAM이란 아이디를 칠 때마다 우리 아들 도담이가 사무치게 그립다.
(천리안에서는 dodam이란 아이디를 갖지 못했다. 이미 누군가가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오늘도 이 글 쓰면서 많이 울었다.
울다 보니 오히려 글이 더 안 써진다.

도담이가 떠난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또다시 기력이 너무 빠져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할 얘기가 아직도 많은데...

  - 1990년 가을, 시골 폐광지대에서

  - 도담이가 제 침대에 들어앉아 뭔가 생각하고 있다. 도담이 갈 때 이 침대, 옷가지, 장난감 등도 불에 태워보냈다. 1991

  - 꽃향기를 맡는 도담이 1990

  - 밤새워 글 쓰는 주인 옆에서 밤을 지새는 도담이 1990

  - 라이벌 도롱이와 사랑을 다투던 시절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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