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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1 - 도담 도란 도조 도롱

인스턴트 사랑은 싫어요

인스턴트 사랑은 싫어요

이야기가 좀 거슬러올라간다.
도리가 처음으로 새끼를 났을 때 우리는 그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 순종인 도롱이와 도리 사이에서 태어난 녀석들은 정말 귀여웠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목까지 내려오는 긴 귀, 특히 그 귀를 덮고 있는 퍼머를 한 듯 곱슬거리는 털이 멋졌다. 그리고 대여섯 살 소녀처럼 앙증맞은 표정, 어딘가 서글픔을 담고 있는 눈과 입매가 인상적이었다.
애완견 센터에 내다파는 게 제일 간편한 방법이었으나 생명체를 판다는 자체가 영 꺼림칙했다. 그래서 주변의 아는 사람들한테 무상으로 주려고 했으나 “개는 공짜로 주는 게 아니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얼마간의 돈이라도 받기로 했다. 개를 공짜로 주어서 안되는 이유는, 돈을 들여 사면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정성껏 기르는데, 그렇지 않으면 아무래도 소홀히 다루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가운데는 작은 종자가 아닌 잉글리쉬 코카를 기를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잉글리쉬 코카는 성견이 되면 중개 크기는 되는 만큼 아파트에서는 키우기가 곤란하다. 그러니 녀석들을 데려가려면 우선 마당이 있는 집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다. 개를 탐내는 사람은 몇 있었으나 조건이 맞는 사람은 없었다. 이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차에 마침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가 세들어 있는 건물의 주인이 기르겠다고 나섰다. 그 집은 정원이 넓어 개를 기르기에 적격이었다. 게다가 우리도 녀석의 얼굴을 간간히 볼 수 있으니 그 아니 좋을손가. 그래서 한 마리를 그 집에 ‘입양’시켰다. 그 집에서는 강아지의 이름을 ‘다롱이’라고 지었다.

나머지 두 마리는 보낼 곳을 마련하지 못해 애쓰다가 결국 용인에 있는 애완견 센터에 팔았다. 물론, 가게 주인한테 녀석들이 좋은 임자 만나 잘 살게 해주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다롱이는 얼굴도 곱상하고 성격도 밝고 명랑해 새 주인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집 아주머니는 매일 남편 회사로 전화를 걸어 다롱이가 자라는 모습을 전해 주었다.
“우리 다롱이가 글쎄 대소변을 신통하게 가리지 뭐예요. 지가 화장실 문 열고 들어가서 안에서 누어요.”
“우리 다롱이가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잘 알아 보아요? 내 친구들이 오면 짖지 않다가도 전기 검침원이 오면 왕왕왕왕 짖어 대는 거 있죠?”
“우리 다롱이 덕분에 우리 집 양반 귀가 시간이 빨라졌어요. 녀석 재롱 본다고 매일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직행해요. 녀석을 끼고 자지 않으면 잠이 오질 않는다면서 매일 밤 팔베개를 해주고 자기도 해요.”
남편은 퇴근하면 그 아주머니가 알려주는 다롱이 근황을 내게 다시 전해주며 기분좋아했다. 그러면서 다롱이가 남편 사무실에 가끔 놀러오기도 해, 우유를 접시에 따라 주면 맛나게 먹고 간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은 아주머니가 남편한테 다롱이에게 우유 주지 말라고 하더란 말도 전해주었다. 다롱이가 자기 집 식구보다 남편을 더 따르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강아지 때문에 질투를 느끼나봐” 하는 남편의 말에 “다롱이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가 보군.” 하고 내가 대답하자 “어쨌든 그 정도로 예뻐해 주니 다행이지 뭐야.” 하면서 남편은 허허 웃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 나는 남편 회사에 나가 일을 도와 주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주인집 아주머니를 대하게 되었다. 사무실세를 주기 위해 그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 집 안마당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돌을 쌓아서 만든 인공 샘물터 옆에 촘촘히 심겨져 있는 철쭉들이 형형색색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아유, 예뻐라. 어쩌면 뜰을 이렇게 아름답게 가꾸셨어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뜰이 높은 담에 가려져 있으니 안타깝네요.”
그 집 정원은 높은 담에 쌓여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울 것 없어요. 전 이 사람 저 사람 다 내 뜰 들여다보면 기분 나빠요. 그래서 담을 높이 쌓은 거예요. 남 눈요기 시켜 주려고 내 뜰에 공들인 것은 아니니까요.”
그 아주머니는 싸늘하게 말했다. 곧이어 아주머니는 차 한 잔을 권하면서 내게 부동산 투자 요령에 대해 일장 설파했다.
“집을 사려면 뒷골목에 있는 것을 사세요. 큰길에서 아주 떨어져 있는 뒷골목이 아니라 큰길 바로 다음 골목이나 다음 다음 골목 정도에 있는 것으로요. 건물이 좀 허름하더라도 대지가 넓은 것으로 사시는 게 좋아요.”
그래야 나중에 그 터를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을 임대용 건물을 지어도 되고, 다세대 주택을 지어도 인기가 좋다는 것이다.
큰길가는 이미 상가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집 가격이 오를 대로 올라 있어서 큰 이문을 남길 수도 없을 뿐더러 도시계획 같은 것에 걸려 길 확장 공사 범위에 들어가게 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시가대로 보상도 못 받고 국가에 땅을 빼앗기다시피 하니까 말이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부동산 투자를 하거나 남한테 권해서 성공한 사례를 장황히 들려주었다.
“나는요, 매사 틀림없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자기는 정육점에서 물건을 사오면 집 저울로 다시 무게를 재본다, 김을 한 톳 사면 100장이 제대로 들어 있는가 반드시 세어 본다, 전깃줄을 몇 미터 사오더라도 집의 자로 재보고 확인한다는 등 예를 몇 건 들면서 “그러니 월세를 밀리는 일따위는 절대 없길 바란다”고 일침을 놓았다.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호감은커녕 오히려 반감이 들었다. 아주머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기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남한테는 그렇게 ‘틀림없음’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얼마나 남한테 경우에 어긋나지 않게 대하는지 의심이 가기 때문이었다. 말만 그럴싸했지, 나만 잘 살고 나만 챙기려는 사람의 표본 같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그 아주머니의 인상이 별로 좋지가 않았다. 욕심과 심술이 두둑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롱이를 그 집에 맡긴 게 영 꺼림칙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롱이를 데려간 지 두어 달이 지나자 매일 다롱이 소식을 ‘보고’하던 전화가 뜸해졌다. 일주일째 전화가 끊긴 어느 날 우리 부부는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그 아주머니 댁을 방문했다.
짐작대로였다. 다롱이가 보이질 않았다.
“다롱이요? 방에다 하도 똥을 많이 싸서...”
아주머니는 다롱이란 이름만 들어도 지겹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밖에서 키우려고 내 놓았더니 잔디를 자꾸 파잖아요. 저 아까운 잔디를...”
그래서 남에게 주어 버렸다는 것이다. 처음에 아주 어렸을 때는 똥오줌 양이 적어 치울 만했는대 조금 크니까 그 양이 많아지고 손이 많이 가서 번거롭더라는 것이다. 그 집 아저씨는 다롱이를 다른 집에 주는 걸 극구 말렸지만, 아주머니가 주장해서 다른 데 보내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망연해서 그 집에서 나왔다. 그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이기심을 읽었을 때 혹시 하고 엄습했던 불길한 예감이 역시 하고 들어맞은 것이다.
그후, 우린 같은 동네 어느 집에 묶여 있는 다롱이를 보았다. 그 집 대문 앞에서 다롱아 하고 부르니까 묶인 몸으로도 반가워서 꼬리를 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집 앞으로 자주 지나다니며 다롱이한테 인사를 하곤 했는데, 몇 달이 지나자 그 집에서조차 다롱이 모습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보냈는가 묻고 싶었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에 벨을 누르고 그 집안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져 그만두고 말았다. 아니, 다롱이가 병이라도 나서 죽었다든가 하는 나쁜 소식을 듣게 될까봐 그만두고 말았다.

그 아주머니와 같이 개를 기르겠다는 사람 중에는 개가 귀여울 때만 사랑해 주고 조금이라도 귀찮아지면 남에게 주어 버리거나 내다 버리는 사람이 있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버리는 인스턴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다.
개란 하나의 생명체다. 한 생명을 맡아 기를 때는 그만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더구나 개는 감정이 풍부한 동물이다. 다른 짐승보다도 훨씬 더 사랑을 갈구하는 동물이다. 먹이보다는 오히려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영물을 아무렇게나 데려다 기르다가 함부로 치워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하고 무자비하고 몰인정한 일이다.

어린아이들은 이런 일에 무척 민감하다고 한다. 개가 아프거나 귀찮다고 하여 남에게 주거나 버리면 아이들은 속으로 ‘나도 귀찮게 굴거나 아프면 우리 엄마, 아빠가 저렇게 버리겠구나’ 하고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부모가 개를 정성껏 보살펴 주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저렇게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겠구나’하는 신뢰감을 쌓는다고 한다.
실제로 얼마 전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여섯 살 짜리 우리 딸이 달려오더니 느닷없이 한마디했다.
“엄마는 착한 사람이야.”
“왜?”
내가 영문을 몰라서 묻자, 딸은
“개를 주인한테 돌려 주었으니까.”
하고선 다시 텔레비전을 보러 달려갔다. 거실에 가서 보니 텔레비전에서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 사람의 미담이 방송되고 있었다. 딸은 며칠 전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내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며칠 전,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토이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를 안고 우리 집에 왔다. 그 강아지가 길을 잃었는지 전날부터 자기 집에 와 있는데, 똥을 여기저기 싸고 귀찮은 데다가 자기 집에는 큰개들이 많아 물어 죽일 것 같으니 우리 집에서 주인을 찾아 주든가 키우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녀석을 우선 목욕부터 시키고 털이 마르는 대로 주인을 찾아주러 나섰다. 토이 요크셔는 애완견인데,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애가 탈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면사무소가 있는 동네부터 우선 찾아갔다. 번화한 거리에 강아지를 찾는 방이라도 써붙였을까 하는 생각에서 전봇대마다 눈여겨 살펴보았으나 광고문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교회, 이웃 마을의 마을 회관, 아파트 관리소 등을 찾아다니며 강아지 잃어버린 사람 없느냐고 묻고 다녔다. 그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누군가 강아지를 찾으면 우리 집으로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을 해놓았다. 아무래도 녀석이 우리 동네와 가까운 이웃마을에서 걸어온 것 같아 그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방문한 끝에 드디어 주인을 찾아 돌려 주게 된 것이다.

그 일이 우리 아이의 머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남편은 이 기억이 아이한테 어른이 되도록 오래 남게 될 것이라며, 아이한테 좋지 않은 기억이 남으면 어쩔 뻔했느냐며 아이 키우기에 대해 일면 섬뜩한 기분이 드는 표정이었다.
아이 교육뿐만이 아니다. 그 아주머니를 겪은 이후로 사람들이 개 키우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개를 비롯한 어떤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은 일이나 공부, 심지어 결혼생활 등도 역시 믿을 만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면에서도 그랬다.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성향이 여러 면에서도 드러나 신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랑스러울 때만 사랑하는 일이야 누군들 못하겠는가.
앞으로 개를 키우려는 분들한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개는 정성껏 키우면 10년이 넘게 사는 동물입니다. 그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하려는 각오 없이는 키우겠다고 섣불리 덤비지 마십시오.
개를 키우면 귀엽고 사랑스러울 때도 많지만, 귀찮고 번거로울 때 역시 많습니다. 이를 감수할 각오 없이는 키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어른이라면 아이가, 어린이라면 동생이 미운 짓을 하거나 예쁜 짓을 하거나  언제나 내 아이이고 동생이듯, 개 역시 귀엽거나 밉거나 내가 돌보아야 할 소중한 가족이라는 개념  없이는 키우지 마십시오.
개는 사랑을 먹고 사는 생명체입니다. 지극한 사랑으로 인간을 따르면서 동시에 끝없는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나누어줄 사랑이 없는 분은 키우지 마십시오. 착한 영혼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가슴 속에 따뜻한 사랑이 있는 분이나 진실한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분, 곱거나 밉거나 사랑스럽거나 귀찮거나 번거롭거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버리지 않고 아껴줄 수 있는 책임감 있는 분만이 개를 키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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