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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1 - 도담 도란 도조 도롱

도조는 쌍방울

도조는 쌍방울

오늘은 도란이와 도리가 처음으로 엄마가 된 얘기를 쓰려 한다. 도란이 도리 얘기를 쓴다면서 왜 제목에 도조를 등장시키고 이번 얘기의 주인공으로 도조를 삼게 되었는지는 그 사연을 듣고 나면 이해하시게 될 거다.

남편이 도조를 사올 때 얘기다. 애완견 센터 주인이 도조의 목뒷덜미를 잡고 번쩍 들어 녀석의 ‘거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이 녀석, 쌍방울입니다. 아주 실해요.”
쌍방울?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 분? 아니,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
흐흐. 잘 모르겠다는 분을 위해 설명을 달자면, 불알(순 우리말임. 한문으로는 고환. 우리말이 훨씬 실감나죠?) 두 개가 온전히 잘 달려 있다는 말이다.
그럼 그게 두 개가 없는 개도 있나요? 하고 묻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당연히 동물 수컷의 불알은 두 개며 수캐는 다 그 두 개가 온전히 달려 있을 거로 알고 있었다. 아니 전혀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조가 쌍방울이란 걸 애완견 센터 주인이 굳이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 이후 우리 집 수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한 개만 달랑 달리고 다른 한 쪽은 공기 빠진 풍선마냥 허당인 녀석도 있었다. 정말이다. 나중에 그 녀석에 대한 얘기도 쓸 것이다.

다른 녀석들과 비교해 보니, 도조는 가게 주인이 쌍방울이라며 자랑할 만했다. 다른 녀석들보다 유난히 동그랗고 탱탱했다.
그러나 새끼 잘 낳을 거라는 주인의 말이 우리한테는 별로 반가운 얘기가 아니었다. 우리 집엔 도조와 같은 요크셔테리어 종이 없기 때문이었다. 암컷은 말티스인 도란이와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인 도리가 있으니, 요크셔테리어인 도조와 새끼를 만들면 잡종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요크셔테리어 암컷을 또 데려올 수는 없었다. 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개는 태어난 지 1년이 채 되기 전에 엄마가 될 수 있는가 보다. 1990년 7월이나 8월생이었을 도란이는 다음 해인 1991년 6월이 되니까 첫 생리를 시작했다.
개도 생리를 시작하니, 생리중인 여자들처럼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기분이 언짢은 표정으로 시무룩하게 지냈고, 사소한 일로 발칵발칵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그 무렵 우리는 애견 사육법이란 책을 사다 읽기 시작했다. 도란이가 처음으로 엄마가 될 징후가 나타났으므로 어떻게 임신을 해서 새끼를 낳게 되는가 배우기 위해서였다.
도란이가 새끼를 낳게 되면, 우리 집에서는 처음 있는 출산인 셈이다. 우리 부부도 그때까지 아기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도란이의 생리가 끝나고 책에서 말한 아주 적절한 가임일이 되자, 우리는 도란이를 과천에 있는 애완견 전문 교배 센터에 데리고 갔다. 우리 집에는 도란이의 짝이 될 말티스 수컷이 없기 때문이었다.(죽은 도담이가 바로 도란이의 남편 말티스였는데.)
교배 센터에는 온갖 종류의 개가 있어서, 원하는 수컷과 교배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교배 가격은 개의 종마다 틀렸는데, 말티스의 경우 한 번 임신시키는 데 그때 돈으로 7만 원이었다. 수컷이 어느 정도 순종에 가까운가, 생김새가 얼마나 잘 생겼는가에 따라 그 가격도 달라진다고 했다.
도란이와 짝이 될 녀석은 도란이보다 몸집이 작았다. 얼굴이 잘 생긴 편이었고 도란이보다 털도 길었다.
발정기에 접어든 도란이가 나타나자, 녀석은 어지간히 서둘러 댔다. 수캐는 발정난 암캐가 십 리 밖에 있어도 알아차린다더니, 그 말이 맞는 듯했다. 도란이가 나타나자마자 녀석이 침을 질질 흘려 댔으니...

교배사가 도란이와 녀석의 교배를 도와 주었다. 남편은 첫경험으로 두려워하는 도란이를 쓰다듬으며 달래 주었다. 나는 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시간이 워낙 오래 걸려 가끔씩 안으로 고개를 디밀어 들여다보곤 했다.
도란이는 녀석과 짝이 되는 게 몹시 기분이 나쁜 듯했다. 얼굴에 그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수치스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원치 않는 남자한테 강간당하는 여자의 심정과 지금 도란이의 심정과 비슷한 거 같아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개들이 뭘 그런 걸 알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도란이가 워낙 새침떼기이고 깔끔한 성격이라는 걸 고려해 주시기 바란다. 그런 도란이가 처음 대하는 녀석과 짝을 맺으니 기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개가 발정기가 되면 무조건 수컷을 받아들이는 걸로, 아니 수컷을 받아들이기 위해 안달을 피우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발정난 암캐’라는 말도 생겼을 성싶다. 그러나 나는 도란이를 보고, 개가 발정기가 되었다고 하여 무조건 수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동물에게는 자손 번식 본능이 무엇보다 크다는데, 꼭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도란이는 짝 짓기를 별로 절실히 원하지 않았다. 신체에 그런 변화가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또한 수컷과 짝을 지을 때면 마지못해 응한다는 듯 몹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이상한, 사람을 닮은 묘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도란이를 전문 교배사한테까지 데려간 것은, 같은 말티스종과 짝을 맺어 도담이를 닮은 새끼를 낳아 주었으면 해서였다. 도담이에 대한 미련이 그때까지도 계속 가시지 않아서였던 것이다.
그래서 임신을 확실히 시키려고, 가임 기간 동안 세 번이나 과천에 찾아가 그 집에 사는 녀석과 교배를 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교배 후 보름쯤 지나자, 도란이한테는 임신한 징후가 뚜렷이 나타났다. 엄청 먹어대는 것이었다. 한 달쯤 지나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고, 한 달 반 가까이 되자 젖꼭지가 커지기 시작했다. 두 달 가까이 되었을 때는 젖꼭지를 짜면 말간 젖이 흘러나왔다.
교배 후 만 두 달이 되자, 도란이는 출산 기미를 보였다. 밑에서 뭔가 액체가 흐르기 시작하고, 가끔 통증을 호소하며 아주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출산 시각이 다가오자 통증을 호소하는 주기가 빨라졌다.

그때 남편은 회사에 출근해 있었고, 나는 도란이 옆을 지키고 앉아서 계속 돌보고 있었다.
“깨깨깩.”
어느 순간, 도란이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얼른 책상 밑에다 차려 놓은 도란이의 산실을 살펴보았다. 새끼가 투명한 막을 쓴 채 도란이 엉덩이 옆에 삐져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새끼가 새까맸다. 생쥐새끼 만큼 작은 녀석의 털 색깔이 까만 것이다.
흰색 털이 특징인 말티스 새끼의 털이 까말 수도 있는 것인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도란이는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엄마 노릇을 훌륭히 해냈다. 이빨로 새끼를 싸고 있는 투명막을 뜯어 내고, 탯줄을 끊더니 새끼를 핥아 주었다. 힘이 드는지 계속 헉헉거리면서도 부지런히 어미가 할 일을 했다. 다른 개들은 새끼 낳는 것 누가 들여다보면 싫어한다는데, 도란이는 오히려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어서 안심이 되는 듯, 가끔 고맙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도란이가 새끼의 투명막을 다 벗겨 내도록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막을 벗겨 내면 새끼의 털 색깔이 흰색으로 바뀔까 하는 기대로. 
그러나, 막을 다 벗겨 내도 새끼의 털 색깔은 여전히 검은 색이었다.
나는 남편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 도란이가 새끼를 낳았어.”
“그래? 산모는 무사해?”
남편은 새끼보다 도란이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응. 그런데, 새끼 털 색깔이 이상해. 검정색이야.”
“설마, 그럴 리가... 당신이 잘못 봤겠지.”
남편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냐. 정말이야.”
그때 도란이가 “깨깨깩” 하고 두번째 비명을 질렀다. 두번째 새끼가 태어난 것이다. 이번에도 까만색이었다.
“두번째 새끼가 방금 태어났는데, 또 까만색이야.”
“이거 어떻게 된 거지?”
“혹시-.”
“혹시-.”
우린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도조 새끼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도란이가 발정기가 되자, 도조는 도란이와 짝이 되지 못해서 안달을 했다. 우리는 잡종이 태어나는 걸 원치 않았으므로 도조를 도란이 곁에 근접도 못하게 했다. 그때 처음 도조한테 목줄을 매서 책상 다리에 묶어 놓았다.
도조는 몸이 자유롭지 못해 어쩔 수가 없자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도란이한테 사정사정했다. 그러나 도란이는 묶여 있는 도조한테 가까이 가지 않았다. 도조 앞을 무심히 오가며 애만 태울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도조는 “끄응 끙” 하고 죽어 가는 소리를 냈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그 처량한 모습이란 눈 뜨고 봐 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도란이의 가임 기간이 끝났다고 짐작되던 무렵, 우리가 안심하고 도조를 풀어 놓던 날, 도조 녀석은 기어이 도란이를 취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우린 별 걱정을 안했다. 책에 나온 걸로 보자면 그때는 이미 도란이는 임신을 할 시기가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깨개객.”
도란이가 다시 한 번 비명을 지르더니 새끼 한 마리를 더 낳았다. 세번째 역시 또 까만 녀석이었다.

저녁 때 집에 돌아온 남편은 도란이 새끼 세 마리가 모두 새까만 색인 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마구 웃어댔다. 그러고는 기특한 듯이 도조를 보고 말했다.
“짜식, 쌍방울이라더니 역시 위력이 대단하군. 어떻게 한 번에 세 마리나 만들어 냈냐?”
잡종을 낳긴 했지만 그래도 순산을 한 도란이가 고맙고 아빠가 된 도조가 대견스러웠다.

도조+도란이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 갔다. 자라면서 털 색깔이 몸은 검은색, 머리 부분은 흰색으로 바뀌어 갔다. 본래 요크셔테리어는 머리가 금색인데, 엄마인 도란이 털색깔을 물려 받았는지 머리가 흰색이었다.
얼굴은 요크셔테리어와 말티스가 본래 비슷해서 그런지, 엄마 아빠 양쪽 다를 닮은 거 같았다. 꼬리는 아빠를 닮아 요크셔테리어종처럼 끝을 잘라 주어야 했다.
우리는 녀석들이 생후 열흘쯤 지나 눈이 뜰 무렵 병원에 데리고 가 꼬리 수술을 해 주었다. 한 마리에 5천원씩이었다.

녀석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때까지도 우리에게 집을 판 분들의 집이 완성되지 않아서, 우린 그 집의 건넌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그 작은 방에서 우리 부부와 도조, 도란이 부부, 그리고 새끼 세 마리가 함께 살았던 것이다. 밖의 봉당에서는 도롱이, 도리, 희동이가 살고 있고...
한 달쯤 지나서 우린 도란이 새끼를 남에게 분양해 주기로 했다. 지금도 개가 많은 터에 더이상 숫자를 늘릴 수가 없었다. 잡종이라 내다팔 수가 없어 주변에 나누어 주어야 했는데, 데려다 키우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개를 아껴줄 사람을 고르려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어찌 해서 한 마리는 아는 영화 감독한테 보내고, 한 마리는 남편과 동기동창이자 나한테는 선배인(나와 남편은 같은 학교 같은 과 커플이다) 신문 기자 집으로 보냈다. 나머지 한 마리는 누구한테 보냈는지 얼른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이들을 보낼 때 우리는 그 아이들의 부모인 도조와 도란이의 성격과 특성, 그 아이가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내력을 적고, 강아지 기르는 방법까지 워드로 작성해 깨끗이 인쇄해서 주었다.

도란이가 새끼를 낳던 무렵, 이번엔 도리가 발정기에 들었다. 도리는 도란이와 또 달랐다.
도리는 얼굴도 순하게 생겼는데 발정기가 되어서 수캐를 대하는 태도도 그러했다. 제 짝인 도롱이 녀석이 원하는 대로 다 응해 주었다. 그것도 힝힝힝 하고 콧소리를 내며 애교까지 피우고, 허리를 배배 꼬면서 엉덩이를 도롱이에게 들이댔다. 숫놈이 덤벼들어도 몸을 사리던 도란이와는 천지 차이였다. 사람에 비교하자면, 도란이는 오만하고 도도한 양반집 마님 같고, 도리는 착하고 순하고 복스러운 시골 아낙네 같았다.

우리는 도롱이, 도리는 같은 종이니까 순종을 낳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우리 뜻대로 되질 않았다. 도조가 또 사단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는 도리가 잡종을 낳으리란 걱정을 안했다. 도조가 위험하긴 했지만 덩치가 도리의 반밖에 안되었으므로 별일이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희동이도 숫놈이지만 아직 어려서 일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도리를 쫓아다니며 냄새나 맡을 뿐이었다.

그런데, 도조를 얕잡아 본 우리가 불찰이었다. 쌍방울 도조가 기어코 제 몸의 두 배나 되는 도리를 범한 것이다. 범했다는 건 강제적인 느낌이 드니까 어울리지 않고, 하여간 도리의 적극적인 호응 아래 성사를 하고야 만 것이다.
덩치도 작은 녀석이 덩치 큰 암컷 뒤에 매달려서 질질 끌려 다니며 일을 치르는 모습이란... 참으로 가관이었다.
“숫놈들은 그저... 쯧쯧. 저러고 싶을까?”
내가 혀를 끌끌 차자 남편이 옆에 서 있다가 중얼거렸다.
“우리 싸나이들의 타오르는 생명력을 우매한 암컷들이 어찌 알리요.”
“흥! 가재는 게편이라더니...”

두 달 후, 도리가 출산기를 보였다. 그날은 휴일이어서 남편도 집에 있었고, 우리 어머니도 내려오셨다. 그래서 도리의 출산은 여러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다.
도리도 산기가 있을 때마다 통증이 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도란이처럼 아프다는 표정을 적나라하게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무던한 성격 그대로 눈을 껌벅대며 참는 것이었다. 그 눈이 너무도 서글퍼 보였다.
우리는 집안일을 하면서 가끔씩 봉당 한 쪽에 골판지로 벽을 만들고, 바닥에 천을 깔아 만들어 놓은 도리의 산실을 들여다보았다.
얼만큼 지났을까? 그새 새끼를 낳았는가 하고 다시 들여다보니까 도리가 큰눈을 껌벅이며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고통스럽다는 하소연을 담고 있었다. 나는 도리의 엉덩이를 들추어 보았다.

이게 웬일?
새끼가 나오다가 만 채 걸려 있었다. 난산이었다. 나는 반쯤 나온 새끼를 손으로 잡아 당겨 보았다. 그러나 꺼내지질 않았다. 너무 세게 잡아당기면 새끼가 죽거나 어미가 다칠까봐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다급해져서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엄마. 도리 좀 와서 봐. 새끼가 걸렸어.”
어머니가 달려와서 도리를 살폈다.
“이런. 산모가 너무 살이 쪘다 싶었더니, 새끼가 너무 커서 못 빠져 나오는구나. 이래서 문열이(한 뱃속에 들은 여러 새끼 가운데 맨 처음 태어나는 새끼)는 죽기가 쉽다니까.”
그러면서 어머니는 새끼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조심해. 그러다 새끼 죽을지도 몰라.”
“오래 놓아 두면 어미가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새끼는 포기해야지. 이렇게 오래 걸려 있으면 이미 죽었을 거다.”
잠시 후 어머니는 새끼를 끄집어 내었다. 어미를 닮아 털색깔이 갈색이었다. 어머니 말대로 이미 죽어 있었다.
“엄청 크네. 낳은 지 한 달은 돼 보인다.”
어머니 말대로 죽은 도리 새끼는 엄청 컸다. 도란이 새끼의 열 배는 돼 보였다.

도리는 새끼 네 마리를 더 낳았다. 두번째부터는 순산이었다. 그런데, 네 마리 가운데 세 마리는 털이 갈색이고 한 마리는 새카맸다. 세 마리는 도롱이 새끼, 한 마리는 도조 새끼였던 것이다.
우린 또 다시 너털 웃음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쌍방울 도조의 위력은 대단해.”
도리 새끼도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가 된 도리는 세도가 대단했다. 이미 새끼들을 품에서 떠나보낸 도란이가 흘낏 쳐다보기라도 할라치면 왕왕 대며 짖어 댔고, 멋도 모르는 희동이가 무심코 산실 앞을 지나가면 쏜살같이 뛰어나와 희동이 목을 콱 찍어누르며 공격했다. 그러면 혼쭐이 난 희동이는 깨갱거리며 멀찌감치 도망갔다.

솔직히 그때까지 새끼, 아니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도리가 부리는 세도가 눈꼴시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미가 되면 다 저렇게 세상 부러울 게 없이 든든해지고, 이 세상에 엄청난 업적을 쌓은 듯 당당해지는가 하고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아이 낳는 것 보고는 부러운 마음이 한 번도 안 들었는데, 엄마가 된 도리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고는 은근히 시샘이 나는 것이었다.

도란이와 도리는 새끼를 기르는 스타일도 달랐다. 도란이는 본능적으로 새끼를 돌보긴 하면서도 새끼를 귀찮아하는 편이었다. 때가 되면 의무적으로 젖을 먹이고, 젖 먹이는 시간 외에는 새끼들과 따로 떨어져 있었다. 새끼들과 있는 것보다 우리 무릎에 앉아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도리는 얄미울 정도로 새끼를 끼고 돌았다. 젖먹일 때는 물론,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했다. 똥오줌 누는 시간도 불안한지 반쯤 누고는 얼른 새끼한테 돌아가곤 했다. 우리가 새끼가 얼마나 컸나 궁금해서 들여다볼라 치면 혹시 새끼를 뺏아가나 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새끼를 다른 데 옮겨 놓아도 전혀 개의치 않는 도란이와 대조적이었다.

도리 새끼도 남에게 분양해 주었다. 도조를 닮은 녀석은 대전에 사는 시동생한테 주고, 도롱이를 닮은 녀석 가운데 한 마리는 남편의 사무실이 세 들어 있는 집 주인한테 데려다 주었다. 다른 한 마리는 어디 주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고, 나머지 한 마리는 늦도록 데려가는 사람이 없어서 용인에 있는 애완견 센터에 갖다 팔았다. 후후. 녀석을 팔고 3만 원이란 ‘거금’을 받았다. 2만 원이었던가...? 하여간 자식을 내다 파는 것 같아 가슴이 쓰렸지만, 자꾸 식구를 늘릴 수가 없어 팔 수밖에 없었다.

동물을 아끼는 좋은 주인 만나게 해 주라고 애완견 센터에 신신당부를 했지만, 마음이 영 아프기만 했다. 아직도 녀석이 전시용 우리 안에서 돌아나오는 우리를 말간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모습이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나중에 애완견 센터에 찾아가 녀석이 좋은 집에 제대로 팔려 갔느냐고 물으니까 자기 친동생이 녀석을 보고 예쁘다고 가져갔다며, 동생이 워낙 개를 아끼니까 잘 기를 거라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2만 원인가, 3만 원 받고 판 그 녀석이 우리가 지금까지 개를 여러 마리 기르면서 돈을 받고 팔아 본 단 한 녀석이다.

쌍방울 도조의 위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도란이가 두번째 발정기를 맞았을 때도 우린 똑같은 일을 똑같이 겪었다.
그때도 우리는 도담이 닮은 말티스를 얻겠다는 일념으로 과천 교배 센터에 다시 도란이를 데려 갔다. 지난 번에 새끼 얻는 데 실패했다고 하자 교배 가격을 싸게 해 주어 5만 원을 주고 했다. 6개월 전에 교배 때 다시는 도란이한테 ‘강간당하는’ 모욕감을 안 주겠다고 결심했으면서도 도담이 닮은 녀석을 얻고 싶은 욕심에 다시 같은 짓을 시켰다. 이번에도 도란이는 아주, 몹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돌아오자 도조가 다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도란이한테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도조한테 목줄을 해서 묶어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 번과 달리 도란이가 도조한테 다가가 ‘몸을 허락하는’ 바람에 산통이 깨지고 말았다. 단 한 번인데도 그만, 에구, 또 도란이는 말티스 새끼가 아니라 도조 새끼를 낳은 것이다.
두 달 후 도란이는 또 도조 새끼를, 털이 까만 새끼를 세 마리 낳았다. 아우. 우린 왜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는 것인지...

게다가 얼마 후 발정기에 들어선 도리도, 우리가 방심한 사이 도조가 밖으로 빠져나가 ‘붙어 버리는’ 바람에 두 달 후 또 도조 새끼를 낳았다. 이번에는 도롱이 새끼는 한 마리도 없이 모조리 도조 새끼였다. 으이구, 쌍방울 도조. 나쁜 녀석이 우리 집 개들의 피를 완전히 뒤섞어 놓은 것이다.
그 혼혈아들을 분양하느라 애 먹은 생각을 하면... 제발 데려다 길러 주세요 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통사정해야 했다. 두번째 출산 때도 도리의 첫번째 녀석은 나오다 걸려서 또 어머니 손을 빌려야 했고, 어머니는 죽은 새끼를 뒤란에 파묻어야 했다.

그로부터 다시 6개월 후 암컷들이 세번째 발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결단을 내렸다. 쌍방울 도조한테 불임 시술을 해주기로... 그 왕성한 자손 번식력을 그대로 놓아 두었다가는 우리가 괴로울 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정난 암컷을 곁에 두고도 어쩌지 못해 애를 태우는 녀석을 보기도 괴로웠다.
“에구 불쌍해라, 우리 도조.”
이러면서 남편이 특히 안타까워했다. 자기도 수컷이라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한대나 어떻대나... 흐.

도란이의 생리가 끝나갈 무렵, 그래서 발정기에 들 즈음, 나는 도조를 데리고 동물 병원에 갔다. 남편이 그날 바쁜 일이 있어서 내가 도조를 안고 병원에 갔는데, 남자 의사한테 도조 불임시술을 부탁하면서 어찌나 쑥쓰럽던지....
하여간 이 녀석이 너무 새끼를 많이 만들어 내서 곤란하니 새끼를 못 낳게 해 달라고 부탁한 다음 맡기고 왔다. 저녁 때 동물 병원에서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며, 도조가 마취에서 깨어났으니 찾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남편과 나는 함께 찾으러 갔다. 도조는 마취에서 덜 깨어나 멍한 상태였다.
“아이구.”
도조가 수술받은 부위를 살펴보던 남편이 큰일난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불알을 다 없애 버린 거예요?”
의사가 대답했다.
“예. 무슨 문제있습니까?”
“사람 정관 수술 하듯이 하는 줄 알았는데....”
“개 피임수술은 다 이렇게 합니다.”
“그럼 성 기능도 없어지는 겁니까?”
“글쎄요,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 그럴겁니다. 고환이 없으면 정자를 못만들어 내니까”
“그냥 피임 수술만 해 달라는 거지, 성 기능까지 없애 달란 건 아닌데....”
남편은 몹시 안타까워했다.
“사람 정관수술 하듯이 하면 번거롭고, 혹 수술이 잘못 되면 또 새끼가 태어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보통 개들은 피임수술을 이렇게 해요. 이게 제일 간단하고 확실하거든요.”
그때 수술비가 6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취에서 깨어나자 통증이 느껴지는지, 도조는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계속 수술한 부위를 핥아댔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도조는 또다시 일을 내고야 말았다.
방금 수술받은 그 몸으로 또 도란이를 취한 것이다. 그게 어찌 가능한 건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후유증은 엄청 컸다. 수술한 부위의 실밥이 터져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날, 병원에 다시 데려갈 무렵에는 어찌나 부었는지 불알을 제거한 부위가 야구공만큼 커졌다. 본래 크기는 아주 작은 호도알 만했는데...
우리는 도조가 죽을까봐 걱정이 돼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 녀석 마저 죽는 다면 어찌 사나 하고, 벼라별 방정맞은 생각이 다 들었다.
“죽지는 않겠지요?”
내 걱정스런 물음에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 만한 거 갖고 죽겠어요? 걱정 마십시오.”
도조는 실밥터진 부위를 다시 꿰매고, 매일 병원을 드나든 덕분에 열흘이 훨씬 지나서야 완쾌되었다. 불알이 있던 자리가 바싹 말라붙어 아무 것도 없었던 것 마냥 홀쪽하게 되었다.

그후, 우리는 도조의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또다시 골머리를 썩이지는 않아도 되었다.
의사의 추측과 달리 도조의 성욕은 여전했고 밝힘증도 전과 같았다. 그러나, 성사는 잘 안되는 편이어서 도란이의 발정기 10여 일 동안 한두 번만 성사될 뿐이었다.

   - 엄마 도란이와 아빠 도조 사이에 난 새카만 강아지들. 모두 요크셔테리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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