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방울 도스
앞에 ‘도조는 쌍방울’이란 글을 읽으신 분은 ‘외방울 도스’란 제목을 보고 벌써 “짜-식, 부실하구만.”하며 웃으실지도 모른다.
도담이가 죽고, 도조가 오고난 다음해인 1992년 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학교 선배인 시인 한 분이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의정부에 사는 자기 친구가 독일산 멋진 개를 기르는데, 집에 있는 진돗개와 하도 싸워서 함께 기를 수가 없어 남을 주려고 한다, 그러니 데려다가 기르겠느냐는 것이었다.
“개가 무슨 종인데요?”
그때 우리가 기르고 있던 개는 도롱이, 도란이, 도리, 희동이, 도조, 이렇게 다섯 마리였다. 지금 있는 녀석들도 건사하기 힘드니 이제 더 이상 식구를 늘리지 말자고 내가 신신당부했으나, 남편은 독일산 개라는 말에 혹해서 수화기에 바싹 귀를 기울였다.
“응,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구, 생긴 게 아주 멋져. 금빛 털에 길다란 귀, 날씬한 몸매, 아주 귀티가 나는 개더라구. 내가 아파트에만 안살아도 데려다 기르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나는 개야.”
기어이 남편은 선배의 유혹에 넘어가, 의정부까지 ‘독일산의 멋진 개’를 데리러 갔다.
“어떤 종일까? 독일산이라니 우리가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종일거야.”
호기심과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갔던 남편은 돌아올 때는 정반대로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아뿔싸, 용인에서 서울을 지나 의정부까지 가서 데려온 개는 독일산도, 새로운 종도 아닌, 바로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이었다. 우리 집에만 해도 도롱이, 도리 이렇게 두 마리나 있는...
“거기까지 갔는데, 안 데리고 올 수가 있어야지.”
남편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로 온 녀석은 인상이 묘했다. 도롱이는 어깨가 듬직하고 얼굴 생김새도 믿음직스러운 게 숫놈답고, 도리는 몸매가 두리뭉실하고 얼굴 생김새도 순진스러운 게 시골 아줌마 같았는데, 새로 온 녀석은 얼굴이 얄상하고 몸매도 야리야리한 게 눈을 사르르 감는 듯한 표정까지 어우러져 마치 기생 오래비 같았다. 도롱이와 도리는 어렸을 때 꼬리를 잘라 주어 깡동한데, 이 녀석은 꼬리마저 길어서 더욱 뺀질스러워 보였다.
녀석을 길러야 하나, 안 기르는 묘안은 없을까,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앞집 아주머니가 놀러 왔다가 자기네가 기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마워서 얼른 녀석을 앞집에 넘겨 주었다. 온 지 하루 만의 일이다.
그러나, 녀석은 보기와 달리 악착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 집에서 살기가 싫다는 듯 하루 종일 짖어댔다.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불만어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렇게 짖기를 닷새, 새 주인은 짖는 소리에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우리가 견디기 어려워 다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고 말았다. 녀석이 우리 집을 향해 어찌나 간절히 울어대는지 마음이 아파서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녀석은 우리 집에 오자마자 짖기를 멈추고 우리 개들과 잘 어울리며 지냈다. 개들도 신입은 늘 기존에 있던 녀석들을 어려워하며 한두 달쯤은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눈치도 안보고 살랑살랑거리면서 다른 개들과 잘 어울렸다.
녀석이 들어오면서 전엔 없던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은 다 허물어져가는 농가라서 담이 허술해 개들이 밖으로 드나들기 쉬웠다. 그러나 농사철에 개들이 밖에 나돌아다니면 마을 사람들이 싫어해서 이런 틈을 얼기설기 막아놓았다. 그러자 개들을 묶어놓지 않고 풀어서 길렀지만 다들 집안에서만 지냈다.
그런데, 녀석은 어떻게 발견했는지 새로운 틈을 발견해내서 밖으로 나가곤 했다. 다른 개들은 다 집에 있는데 녀석만 어느 구멍으론지 빠져나가 밖으로 돌아다녔다. 우리는 200평이 넘는 집의 담을 모두 살펴가며 봉쇄하려 했다. 그러나 한쪽을 막아놓으면 한 쪽을 뚫고 나가고 다른 쪽을 막아놓으면 또 다른 쪽을 뚫고 나갔다. 매일매일 녀석과 머리 싸움을 했지만 번번히 지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녀석의 이름을 ‘도스’라고 지었다. 머리가 좋으니까 컴퓨터 운영체계인 MS DOS의 도스를 따서 ‘머리 좋은 도스’라 지어준 것이었다.
초여름이 될 무렵 암놈인 도리가 발정기가 되자 도스는 도리하고도 찰싹 붙어서 의좋게 지냈다. 이때 우리는 녀석이 새끼를 잘 갖게 하려나 궁금해서 살펴보았더니 불알이 하나였다. 두쪽이 달려 있어야 정상인데, 다른 녀석들 만한 것 하나만 달랑 매달려 있었다. 다른 한쪽은 작거나 없어진 게 아니라 아예 생겼던 흔적조차 없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개들이라고 하여 다 쌍방울이 아니라 녀석처럼 외방울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선지 나중에 도리는 도스를 닮은 새끼는 낳지 않았다. 한 쪽만으로는 부실하여 아빠가 되기 어려운 듯했다.
이렇게 우리 집에서 지낸 지 두어 달, 담을 뚫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녀석과의 머리싸움에 지칠 무렵, 충북 옥천에 사는 화가 한 분이 집에 놀러 왔다가 자기도 개를 기르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도스를 그분에게 선물했다. 대청댐 상류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화실을 마련해 홀로 지내고 있는 그분에게 도스가 좋은 벗이 되어줄 것 같아서였다. 녀석은 그래서 다시 한 번 주인이 바뀌는 운명이 되었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 남편과 나는 도스의 새주인이 된 화가의 화실에 놀러갔다. 마당에 묶여 있던 도스는 우리를 보자 낑낑거리고 울면서 반가워했다. 그 화가의 집은 담이 없어서 도스를 묶어놓고 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책할 때면 데리고 나가 바람을 쐬어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도스를 살펴보던 남편은 기겁을 하는 표정이었다. 도스의 콧잔등에 진드기가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이 진드기는 짙은 회색에 동그란 몸통을 가진 것으로, 동물의 몸에 기생하며 피를 빨아먹고 사는 놈이다. 크기가 어른 엄지손톱만큼 컸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도스 몸에 달라붙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곤충이 거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스의 몸 곳곳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은 안되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너무 무심해. 어떻게 도스를 저렇게 방치해 둘 수 있어?”
남편은 도스가 마음에 걸려 며칠 걱정하더니 다음주에 이내 옥천으로 가 도스를 다시 데려오고 말았다.
그때는 마침 우리가 집을 새로 짓기 위해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을 때였다. 새 동네는 용인시내 쪽으로 조금 더 가까운 동네인 양지. 양지 스키장과 골프장이 있는 마을이었다. 단독 주택을 전세내서 이사했지만, 개 다섯 마리와 닭을 모두 데리고 가기엔 마당이 너무 좁았다. 그래서 우리는 소형견으로 방에서 키우고 있던 요크셔테리어 도조와 말티스 도란이만 데리고 가고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인 도롱이와 도리, 그리고 말티스와 바둑이 잡종인 희동이, 닭 세 마리는 옛날집에 남겨 두었다. 옛날 집은 원래 있던 건물을 허물고 터를 평평하게 다진 다음 벽돌담을 빙 둘러쳐 놓은 상태였다. 그 넓은 터 한 쪽에 닭장이 있고, 닭장 밖은 온통 개들의 집인 셈이다. 개들은 넓은 마당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았다. 먹이는 사료를 늘 넉넉히 주고, 이삼일에 한 번씩은 집에서 별도로 마련한 먹이를 끓여가 주고 오곤 했다. 남편은 부모없이 저희들끼리만 지내는 녀석들을 안쓰러워했지만, 녀석들은 무성하게 자란 잡초 사이를 뛰어다니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닭농사는 실패했다. 닭장을 제법 높게 지었는데도, 닭들이 날아올라 밖으로 나갔다가 개들한테 물려죽었던 것이다. 앞집 아주머니의 말을 듣자니, 닭이 꼬꼬댁거리며 도망다니고, 우리 개들은 새사냥하는 개들처럼 신이나서 쫓아다니다가 결국 물어죽였다는 것이다.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이 사냥개 종이라더니 야성의 기질이 남아 있는 듯했다. 특히 도리는 사냥에 능숙해 가끔 새를 잡기도 하고 쥐를 잡아다 놓기도 했다.
남편은 도스도 녀석들과 함께 옛집에다 두었다. 그런데 도스는 다시 속을 썩였다. 어찌된 조화속인지 모르겠으나, 녀석이 집밖으로 빠져나와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집어 넣으면 다시 다음날이면 집을 빠져나와 동네를 배회하는 것이다.
새로 친 담은 어른이 까치발을 해도 안이 안들여다보일 만큼 높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어디 한 군데 틈새가 있을 리도 없었다. 대문에 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 녀석이 집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일까?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녀석을 담 안으로 던져 넣고 앞집 옥상에 올라가 녀석이 어떻게 집밖으로 빠져나오는가 지켜보았다.
“역시 도스는 머리가 좋아.”
녀석이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졌다, 졌어”를 연발했다.
녀석은 그 높은 담을 타넘은 것이다. 우리 집 담은 높이가 일정하지 않아서 뒤쪽은 높고 앞집과 경계가 되는 앞쪽은 좀 낮다. 그렇지만 그 담도 개가 단 번에 넘을 만큼 낮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스에게는 그 담을 넘는 비결이 있었다. 이단으로 뛰어서 넘는 것이다. 우선, 전속력으로 달려 담의 중간 부분에 앞다리를 걸친 다음, 다시 재빨리 뒷다리를 그 자리에 댄 다음 앞다리를 높이 쳐들어 담의 위쪽에 걸친 후 뒷다리를 끌어올려 넘는 것이다. 다른 개들은 그런 도스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 따라 할 엄두도 내지 않았다.
결국 새로 쌓은 담도 머리 좋은 도스한테는 별무소용이었다. 우리는 동네 사람들의 개가 돌아다녀 농사를 망친다는 원망을 더 이상 듣기 싫어 도스를 데리고 임시로 살고 있는 새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또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도 담은 제대로 쳐져 있었으나, 녀석은 앞의 방법을 써서 맘대로 밖으로 나돌아다녔다. 잡아서 묶어매어도 봤으나 하도 불만스럽게 짖어대 별수없이 풀어주었다.
녀석은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듯 날만 밝으면 밖으로 나돌아다녔다. 처음엔 한두 시간 나가 놀더니, 나중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나가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나가 있기도 하고 아예 집에 안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 찾아 나서 보면 발정난 암캐가 있는 집에 가 있곤 하였다. 녀석이 안들어오면 우리 집 식구는 도스의 이름을 부르며 이 골목 저 골목 찾아다녔다. 그러면 녀석은 어느 골목에선가 슬그머니 나타나 눈을 사르르 감으며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새로 이사간 동네는 꽤 번화해서 집도 많고 차도 많이 다녔다. 그러나 도스가 워낙 머리 좋았으므로 우리는 녀석이 길을 잃는 일은 없으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지낸 지 두어 달 후, 녀석은 끝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며칠 모습이 안보여 불안해서 찾아나섰으나 아무 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워낙 사람을 잘 따르므로 누구네 집에 묶여 있기라도 한 게 아닌가 싶어서 그 많은 집을 일일이 기웃거려 보았으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봇대에 방을 써붙이고 이웃마을까지 가 보았으나 자취가 없었다.
도스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그해 늦가을까지 그 마을에 살면서 돌아오길 기다렸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새로 짓던 우리 집은 그해 늦가을 완공됐고, 우리는 옛마을로 다시 이사를 해 들개처럼 살던 도롱이, 도리, 희동이와 다시 합쳐 살게 됐다. 옛마을로 돌아와서도 혹시 머리 좋은 도스가 이 마을까지 찾아오는 건 아닐까 하고 기다려 봤지만, 도스는 오늘날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누군가 잡아먹기라도 한 건 아닐까(시골서 개를 잃어버리면 이런 걱정이 제일 앞선다), 교통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온갖 좋지 않은 상상이 들다가도 녀석이 워낙 잘생기고 머리 좋고 착하니, 누군가가 탐이 나서 데리고 가 기를 거야 하고 위안하곤 한다.
아직도 우리는 길에서 꼬리를 자르지 않은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을 보면 눈이 커진다. 혹시 도스가 아닌가 하고...
도스의 예를 보면서, 키우는 사람이 자주 바뀌면 개나 사람이나 정을 붙이지 못하고 떠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행 청소년마냥 자꾸 밖으로만 돌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개를 키우겠다는 마음을 쉽게 먹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개들의 수명이 적어도 10년, 그 10년 동안 보살펴 줄 자신이 없으면 쉽게 개를 키우겠다는 마음을 먹어선 안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록의 힘 > 애견일기1 - 도담 도란 도조 도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에서 만난 친구 도반 (0) | 2008.12.12 |
---|---|
눈물어린 모정 (0) | 2008.12.12 |
도조는 쌍방울 (0) | 2008.12.12 |
어린 거지 ‘도조’ (0) | 2008.12.12 |
인스턴트 사랑은 싫어요 (0) | 2008.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