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
2001년 6월생. 말티즈. 할머니. 디스크에 의한 하반신 마비. 소변 능력 없음.
바니는 주로 철망으로 둘러친 영역 안에서 지낸다.
이따금 거실로 나오지만 카펫 위에만 있어야 한다.
흙마당이나 잔디밭 같은 곳에서는 걸을 수 있다. 근육의 힘으로 걷는다.
집에서는 카펫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 가려면 맹렬한 속도로 달려 카펫 끝에서 몸을 날린다.
그러면 2미터 정도는 미끄러져간다. 물론 그러고도 앞발로 목적지까지 착지하지만 불편하다.
바니는 음식을 구걸하지 않는다.
주면 먹고 안주면 만다.
바니가 원하는 건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집 악동 리키(요크셔 테리어, 두 살, 사내놈)가 인생의 목표는 사료 한 알이라도 더 먹는데 있다고 생각할 때
바니는 "아니다, 사랑이 제일이다!" 외치는 아이다.
리키는 밖으로 나가 매일 산책을 하지만 바니는 그러지 못한다.
게다가 사납기까지 해서 나 아니고는 안고 다니지도 못한다.
그러니 내가 안아주기만 하루 종일 고대한다.
고기 줄까, 안아 줄까 하면 아마 안아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바니는 사랑이 고프다.
리키 자식은 간식 달라고 소리 지르고 행패 부리지만
바니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소변이 너무 마렵거나 대변이 마려워도 작게 신음을 낸다.
간식이 먹고 싶으면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전부다.
리키는 엄마 아빠 팔베게 베고 침대에서 자지만 바니는 홀로 거실에서 잔다.
그래도 불만이 없다. 오다가다 주인이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면 그 맛에 하룻밤은 거뜬히 잔다.
그럭저럭 열한 살이 됐다. 만 10년이 넘어갔다.
우리집을 방문한 사람들이나 바니를 아는 사람들이 안락사를 시키라고 말하는 걸 여러 차례 들었다.
난 절대로 안한다.
지금까지 난 두 아이를 안락사시켜 보았다.
안락사라는 게 시키는 사람도 힘들다.
최후에, 아이에게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마지막으로 쓰는 방법이지만 그래도 늦추고 늦춰 울면서 하는 게 안락사다.
바니는 큰 걸 요구하지 않는다.
아빠 바라보는 게 유일한 취미다. 바라만 볼 수 있어도 만족한다.
자동차에 싣고 일 보러 가면 다섯 시간이고 여덟 시간이고 기다릴 줄 안다.
낯선 곳에 두면 울고불고 야단이지만 가족 냄새가 나는 자동차에 두면 한없이 기다린다.
저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바니 사정상 먼길 갈 때는 반드시 데리고 다닌다.
지금까지 바니하고 안가본 곳이 없을만큼 먼길 갈 때는 반드시 데려간다.
그게 저에게는 복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저를 안고 자동차에 타기만 하면 좋아서 흥흥거린다.
소박한 꿈밖에 없는 바니에게 영양제를 비롯해 좋은 사료를 먹인다.
장애를 가진만큼 장수라도 선물로 주고 싶다.
다른 신체기관은 아무 이상이 없다.
소변 짜는 것때문에 내장에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인데 아직은 건강하다.
신장 기능이 지극히 정상이다.
바니 엄마 다래는 심장판막증을 앓으면서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높은 산에서도 다람쥐처럼 날아다녔다.
짧고 굵게 살지언정 목숨 따위 구걸하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치열한 삶을 살다 16세로 간 다래보다 바니는 길고 가늘게 오래 살게 하고 싶다.
반드시 20세를 넘길 참이다.
19세에 간 도조(요크셔 테리어)는 끝내 암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20세를 넘겨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 백발의 할머니, 싱싱한 아홉 살 손자. 주말이면 이 손자 보고싶은 마음에 괜히 대전에 전화거신다.
평소에는 휠체어를 타지 않고 놀이동산, 유원지 갈 때만 빌려 탄다.
바니를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 82세, 생물학적 연령이 서로 비슷할 수 있다.
아직은 바니가 더 젊어보인다.
어머니는 위장과 관절이 약간 불편한 것 말고는 대체로 건강하시다.
정신건강도 괜찮다. 주말마다 자식들이 번차례로 찾아가고, 주중에는 장에 다니고,
낯익은 동네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어머니는 시골에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몇 년 안에 형제 중 누군가가 모시러 내려가야만 한다.
내가 될지 누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자유시간 많은 내가 제1 후보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절대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니 보며 어머니 생각하기는 참 좋다.
바니는 20세 이상, 어머니는 90세 이상 사시는 게 1차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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