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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어머니, 비 안 온다더니 거짓말하셨네

어머니가 새벽에 전화를 걸어왔다.

"안오냐?"

"비 오는데 어딜 가? 주룩주룩 내리는구만."

"여긴 하나도 안오는데? 애들, 감 따러 간단다. 큰형도 왔다."

"명원이 동규도?"

"그럼."

"가볼까."

그래서 가는데 이놈의 비가 기어이 충청도까지 따라왔다.

어머니는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아침에는 하늘이 흐리기만 했지 비는 열한시부터 내렸다고 변명하신다.

감을 따는 중에도 비가 내려 큰형이 미끄러져 나뭇가지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리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흉년이라 몇 알 달리지도 않은 감나무와 씨름했지만 소득이 적다.

그러잖아도 걷기연습하러 간 바니는 잔디마당에 내려서지도 못하고,

리키만 아이들 따라다니다 왔다.

 

- 리키는 우중에도 산책을 다녔지만 바니는 차에서 낮잠 잤다.

 

- 움직이는 녀석 찍기가 어렵다. 핀트가 어긋나 작게 해야 제 모습이 보인다.

 

- 시골 가면 마킹하기 바빠지는 리키.

 

- 달리기 시합하는 우리 아이들. 두번째는 내가 이름을 지어준 동생 처남의 딸, 방년 4세, 큰놈들 틈에 끼어 지지 않고 논다. 1255코드.

 

- 우리 어머니, 주말이면 안달이 나는 이유가 바로 요것들 보고 싶어서다. 9세, 7세.

 

- 왜, 나 불렀어? 비가 와서 발이 젖잖아. 난 안뛸 거야.

 

- 영감처럼 느릿느릿 걸어 마을을 순시 중인 리키, 2세, 요크셔테리어.

 

- 얼마 전 부리나케 심고 온 마늘밭인데, 오른쪽 이랑을 보면 그새 올라온 싹이 보인다. 저건 어머니 실수로 여름마늘 잘못 놓은 거란다. 하는 수없이 적당히 자라면 뽑아먹고 새로 심어야 한다.

 

- 국씨댁 배추밭을 부러워했는데, 요즘 이상난동으로 우리 배추들이 기세등등 잘 자라고 있다. 별일이 다 있다.

어머니는 김장 전에 속이 찰까 걱정했는데 그새 거의 다 찼다.

 

- 부러워하던 국씨댁 배추밭인데, 날씨가 더워 슬슬 타기 시작한다. 정성 들여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같은 카메라로 거의 비슷한 시각에 찍었는데 색깔이 이렇게 다르다.

 

- 천변에 저절로 자라는 구기자가 있어 찍어 보았다. 고향 마을에는 어디고 구기자 기르던 흔적이 있다.

 

- 보이는 밭은 돌아가신 당숙이 평생 애지중지하던 곳이다. 멀리 보이는 감나무는 우리 숙부가 심은 반시나무로, 해마다 우리 형제가 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오가피나무인데, 감나무 옆에도 한 그루 더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오륙년 전, 숙부가 살아 계실 때 이 오가피나무 열매를 끊어다가 술을 담근 적이 있는데, 당숙이 몹시 화를 내셨다. 서로 사촌지간이지만 무단 채취를 놓고 다투신 것이다. 지금은 두 분 다 하늘로 가셔서 오가피열매가 지쳐  떨어져도 싸울 사람이 없다. 이 날은 막내동생이 땄다.

 

- 해마다 감따는 걸 찍어 왔는데 올해가 제일 그림이 나쁘다. 비가 오고, 흉년이 들어 더 그렇다. 우중에 스마트폰으로 찍어 화질이 나쁘다.

 

- 맨위 오른쪽 머리 하얀 사람이 우리 큰형이다. 62세. 난 나무가 미끄러워 안올라가고, 형도 내려오라고 졸랐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형은 기어이 나무에서 미끄러졌는데, 운동감각이 있는지 급히 나뭇가지를 잡아 추락사고는 면했다. 사먹고 말지 그 미련한 짓을 왜 하느냐고 말은 하지만, 해마다 우리 손으로 따는 감이 제맛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참고 / 같은 자리, 다른 해에는?> 

2008.11.12

 

2009.10.25

 

2010.10.30

 

 

- 이 은행나무를 가리켜 우리 막내가 '공무원나무'라고 말해 한참 웃었다. 이쪽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저쪽으로는 밭이 있으니 물 걱정 없고, 거름 걱정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은행나무는 열매가 잘아서 주인조차 따지 않고 방치한다. 지쳐 떨어지면 그냥  썩고 만다. 공무원 나무, 단풍 말고는 볼 게 없다. 그렇다고 벨 수도 없고, 뭐 그냥 존재감 없이 존재하는.... 딱 공무원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