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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산신제 지내는 내 고향 사람들

 

-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내가 다 아는 분들이고, 이 분들 또한 나를 다 안다.

내 나이도 어지간한테 나보다 어린 사람은 하나 뿐이다. 시골에서는 나 아직 어린애?

<이 기사를 청양신문으로 가서 보기>

 

내 고향은 충청도 청양, 그러고도 심심산골 운곡이란 곳이다.

어려서도 산신제 지내는 걸 보았다. 마을입구에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고 제를 지내는데,

나는 시루떡을 얻어 먹을 요량으로 한밤중에 형을 따라 이 산신제를 구경하곤 했다.

그때 한 조각 얻어먹은 시루떡 맛은 지금도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산신제는 마지막으로 산제당이라는 곳에서 지내는데, 여긴 산이 높아 아이들은 따라가지 못했다.

언제고 한번 따라가보겠다고 별렀지만 고향을 나온 뒤로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가끔 고향에서 나오는 청양신문에 들어가 보는데, 오늘은 이 산신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옛날에 아버지가 제관을 맡은 적이 있는데 부정 타면 안된다고 몸조심하던 생각이 난다.

 

지금 사는 용인에서는 십수년 전 송문리에 잠깐 살 때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여 추렴을 걷어간 적이 있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아직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래 사진은 2009년 7월 4일에 형제들과 천마 캐러 갔따가 산제당에 들러 찍은 것이다.

내 선조가 이 마을에 깃든 게 대략 300여년 됐으니 아마도 그 300년간 우리 가문 중 누군가는 한 해 한 번 이 길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 산제당 가는 길. 이 산은 우리 함평이씨 종산이다. 이 산 능선 너머 광산이 있는데, 거기서 금이 많이 생산되었다.

무학대사가 이 산 멀리 사자산 국사봉에 올래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세 번 흥왕할 터"라고 했다는데, 조선시대에 대규모 가람이 들어서 위용을 뽐낸 바 있고, 일제 때 금광으로 장시가 서고, 극장, 병원 등이 들어섰다니 두 번은 실천된 셈이다. 하나 남은 게 무엇이 될지 설왕설래다.

 

 

 

 

 

 

 

- 불 피우는 곳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내 막내동생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물이다.

 

- 기도발이 잘 든다는 절벽이 있고, 거기 오래된 팽나무가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