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변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 허신행 / 경제학박사, 전농림수산부장관, 문명사가, 한몸사회포럼 대표, 용인 기흥구 거주
1990년대 초, 경기도 가평 어느 산골마을이었다.
길목 좌우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낮고 조그마한 야산들이 잠자는 사람처럼 누워 있어서 논밭이 별로 없다. 길 양편에는 낡은 농가들이 올막졸막 십여 채 들어서 있고, 마구간에는 소 몇 마리가 새김질을 하며 졸고 있다. 골목 어간에는 개들이 풀어진 눈동자로 한가로이 누워 있다. 토종닭 몇 마리도 먹이 찾아 이곳저곳을 살피느라 지나는 사람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그 사이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가 만난 농민들이라고 해야 노인이나 부녀자들뿐이긴 하지만, 한가롭고 평범한 마을풍경 그대로이다.
그런 마을 한켠에 조그마하고 허름한 창고 하나가 서 있다. 면사무소의 오래된 창고라고 한다. 저장할 것도 별로 없어서 이 창고는 연중 내내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농촌개발에 뜻을 둔 청년 한 사람이 창고를 임대 내어 농산물을 가공하는 데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중고품 기계를 구입해 들이고, 이 고장 출신의 전직 면장을 대표이사로 앉힌 다음에, 이 고을 농민들과 호박생산 계약을 맺었다. 씨앗품종은 좋은 것으로 제공하고, 값은 시중시세보다 높게 지불하기로 했다. 공장에서 일할 근로자들은 그 마을의 부녀자들로 채우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생산해낸 것이 호박죽이다.
은박지에 포장된 호박죽은 그런 대로 잘 팔려나갔다. 호박죽이 몸에 좋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소득의 증대로 소비자들이 건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터라 호박죽에 대한 수요도 점차 늘어갔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영세 기업주는 호박죽 이외에도 다른 농산물의 가공생산을 더 늘려나갔다. 이들 역시 잘 팔려나갔다. 그러다가 식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식후에 식혜를 즐겼다. 달찍하면서 숭늉처럼 마시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소화에도 약효라 하여 선호되던 전통식품이었다. 그런데 신세대 주부들은 만드는 방법도 잘 모르거니와 귀찮게 생각하여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식혜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지고 말았는데, 이것을 복원해냈던 것이다. 이 농산물 가공업체는 ‘큐 푸드’란 상호를 내걸고 식혜생산에 뛰어들었다.
큐 푸드 식혜는 대히트 상품이 되었다. 인기가 대단했다. 특히, 시골 출신 소비자들에게는 옛 전통식품의 향수를 살리는 기호품으로서 식혜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식혜생산은 급증했고, 이 지역 주민들의 농가소득도 현저하게 증가했다. 원료생산이나 고용이 늘어남에 따라 농가경제는 더욱 윤택해졌다. 농번기에는 농장에서 농한기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낮에는 농장에서 밤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므로 농업과 농산물 가공업은 상호보완적이었다.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가공공장의 원료로 팔리고, 농민들은 공장에 취직하여 농외소득까지 높일 수 있으므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었다. 농촌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웬 날벼락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업들이 식혜생산에 뛰어든 것이다. 대기업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전국적인 판매망을 동원하여 중소기업의 식혜 정도는 개구리 날파리 잡아먹기보다 더 쉽게 집어삼킬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기업들의 횡포는 야생동물의 세계에서처럼 난폭하게 일어났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 앞에 큐 푸드는 무참히 쓰러지고 만 것이다. 큐 푸드의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희망에 부풀었던 농민들의 소득증대 노력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경제적인 약자들의 설움만 시골마을 위에 응어리지고 있었다.
식혜는 하나의 조그마한 예에 불과하다. 대추·사과·복숭아·매실·오렌지 등 다른 농산물의 가공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음료수·선물 세트·의류·가전제품·시계·기계·기구·장비 등은 물론 심지어 식당업에 이르기까지 대기업들이 손을 대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대기업의 사업확장은 문어발식 그대로이다. 걸리는 대로 다 잡아먹는 대형 문어와도 같다. 한때 외국의 황소개구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물고기를 다 잡아먹는 바람에 토종 물고기가 멸종위기에 처한 적이 있고, 생태계마저 변화시킨다고 하여 야단법석이었는데, 중소기업의 제품생산에 관한 한 대기업들은 황소개구리나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 대기업은 초식이나 육식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잡아먹고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던 공룡에 비유될 수도 있으리만큼 자라나는 중소기업들의 시장진출을 가로막은 셈이다.
30대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 내지는 국민 총생산액 차지 비율이 6할을 넘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경제는 이들 기업에 거의 절대적인 의존상태에 놓여 있다. 이들 대기업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형태로 경영을 하느냐에 따라서, 국가경제가 송두리째 좌우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만큼 이들의 경제행위는 중요한데, 과연 대기업들의 행태를 믿고 따라도 되는 것인가? 이들이 어떻게 처신하든 자유시장 제도 하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대로 놔둬도 괜찮은 것인가?
물론 경제개발에 기여한 대기업들의 공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들의 부단한 해외시장 개척에 대한 노력을 과소평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특히, 가전제품 개발이라든가 자동차·선박·비행기·중장비·화학 등의 선구적인 개척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선진 경영기법의 도입이라든가 복잡한 인사관리 등에서 보여준 대기업들의 피나는 노력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비록 일부 기업에 해당되기는 하나, 대기업들의 정도를 벗어난 행태는 자본주의 경제 그 자체의 유용성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 총수들이나 2세들의 여성편력이 복잡하다든지, 물불을 가리지 않은 부동산 투기와 유망한 중소기업 제품 낚아채기, 시장독점 기도, 비자금 조성과 정경유착, 불법적인 상속과 증여의 관행, 저조한 자기 자본 비중과 과중한 부채 비율, 빈번한 탈세와 부당한 내부거래, 문어발식 확장과 전문성 결여, 중복·과잉투자와 도덕적 해이, IMF 외환위기에 일조…… 등의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심한 경우, 재벌총수가 소떼를 몰고 북한을 갔다왔다 한다든지, 수천억 원씩을 뿌려가며 대통령에 출마하고, 어떤 재벌총수는 국민들에게 70조 원의 부채를 떠넘겨놓고 해외로 도피하는가 하면, 부실기업들은 150조 원의 공적 자금 투입을 낳게 만드는 등 국민 경제에 끼치는 해악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자본주의 경제라는 이름으로 방치해둔 결과가 이런 것이라면, 여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한 기업이 국민들에게 70조 원의 부채를 떠넘겼다면, 국민 1인당 갚아야 될 빚이 155만 원이나 되는 셈이다. 그런 악덕 기업인은 돈을 빼돌려 해외에서 호화별장에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있는 동안, 국내 가난한 사람들은 끼니 때우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면, 이런 양극의 현상은 경제 이전에 사회정의 차원의 문제에 속한다. 더욱이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사람들이 생산활동에 전념하기보다는 마약 중독자처럼 주식시장에 빠져서 단기매매나 주가조작을 일삼기 일쑤이다. 이것은 일종의 도박이요, 주가폭락 시에는 수백조 원의 돈이 물거품처럼 날아가버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허탈감에 빠지게 하거나 삶의 의욕마저 잃게 만든다.
자본주의 경제가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몸살을 앓고 있다면, 문제를 분석하고 연구하여 치유해낼 수 있는 지성인들이라도 많아야 할 텐데, 오히려 이들이 정신적으로 더 타락되어 있는 것 같다.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되는 교수들은 대기업들의 사외이사社外理事나 연구 용역과제 얻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일류 대학교의 총장을 두 군데나 지낸 어떤 명사는 우리나라 최대 재벌기업의 사외이사로서 한 달에 수백만 원씩의 수당과 함께 몇십억 원대의 주식특혜를 받았다 해서 장관직 임명 며칠만에 물러나는 수모를 당했다. 지성의 최고 명문인 서울대학교의 총장이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단꿀을 빨았다 하여 총장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까지 당하는 판국이니, 어느 누구에게 제도의 병폐 진단이나 수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IMF 외환 위기가 불어닥쳤을 때에도, 이를 사전에 감지하여 예방책을 내놓아야 할 전문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선비 같아야 할 지성인들의 정신까지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괴력이다. 이런 자본주의 경제는 결코 인간의 이상적인 체제나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성급하게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라는 데, 우리들의 고민이 쌓인다.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공산주의란 우선 개인주의 내지는 자본주의의 근간이라 볼 수 있는 사유재산제도 그 자체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시킴으로써, 빈부의 격차를 근원적으로 없애고자 하는 사상이다. 좁혀서 말하면, 부富를 낳는 자본과 토지 모두를 국유화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자본과 토지를 개인에게 맡겨서는 빈부의 격차를 줄이거나 없앨 수 없다는 사고이다.
공산주의(Communism)라는 이데올로기의 본래 어원은 공유재산을 의미하는 컴뮨Commune의 라틴어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사유재산제를 철폐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사회제도가 바로 공산주의이다. 사유재산 제도로부터 생겨나는 사회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을 없애고자 재산의 공동소유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런 기초 위에서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이상주의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공산주의의 실험결과는 과연 어떠했던가?
실천에 옮겨졌던 공산주의라면,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1840년대 이후 서유럽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창시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하여,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레닌이 발전시킨 사상 및 이론의 체계와 실천운동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즉 공산당이 수립한 소련·동구·중국·북한·인도차이나 반도 등의 정치체제를 모두 망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1905~1907년의 1차 혁명과 1917년 2월 혁명을 거쳐 1917년 10월에 일어난 러시아 대혁명으로 소련에는 볼셰비키 소비에트 공산정권이 들어서게 되었고, 1934~1936년에 대장정大長征을 단행한 중국 공산당은 1949년 10월 1일 중국 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후戰後 처리과정에서 소련의 단일 지배권에 흡수되었던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유고슬라비아·알바니아 등 7개국이 공산권으로 편입됨으로써 동유럽 공산권이 생겨났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소련군을 따라 평양에 입성한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 아래 1948년 9월 9일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인도차이나 반도나 남미·아프리카 등지에서 소련과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산발적이나마 공산주의 정권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이들 공산주의 체제 하의 삶이나 경제는 어떠했던가? 이미 결판이 세상에 드러났지만, 그래도 공산주의 혁명이나 정권수립 초기에는 평소 경제적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고통을 받았던 노동자와 농민 등 일반 서민들의 경우, 봉건 전제적인 억압이나 지주들의 횡포에 대한 한풀이도 겸해서 신나는 세상이 오는 것으로 믿고 열심히 일했던 것은 사실이다.
공산당 정권 하의 소련이나 중국은 물론 북한이나 동구권 등지에서도 약 25년 안팎의 한 세대에 걸쳐서 사회가 활기를 찾는 듯이 보였다. 소수에 집중되었던 토지나 주요 기간시설이 국유화되고, 누구나 기회균등하게 일하며 실업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가 무료로 제공되는 등 어찌 보면 이상주의 사회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소련과 북한의 수도 지하철이 초기에 대리석으로 호화스럽게 건설되었다. 각종 기념물과 정부청사도 잘 지어졌다. 군사력이 증강되었고, 첨단무기도 개발되었다. 스포츠도 발전되었다.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 들어서고, 기초식량도 생산되었다. 집단농장이 실험되고, 협동조합도 성장되는 것 같았다.
공산정권 수립 초기에는 무엇이든 융성하고 발전되는 듯 싶었다. 그런 활성기가 20여 년 남짓 지속되었던 것 같다. 시민 모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눠 갖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었다. 혁명의 열기가 사라지고, 모두들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 무엇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열기는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자기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열심히 일한다는 평범한 생명체의 본능이 무시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분배되고, 능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도 차별 없이 똑같이 배분된다면, 누가 과연 열심히 그리고 능력껏 일하겠는가? 차라리 일하는 척만 흉내를 내고, 몸건강이나 돌보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이익일 수 있다는 계산이 서게 되어 있다. 이들 국가에서도 이런 우려와 계산이 현실화되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들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갖지 못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도 돈이나 식량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재산이 증식되는 것도 아니었다. 열심히 노력하여 공산당원이 되고, 지배층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시민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인센티브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나마 대부분의 국민들이 협동농장이나 공장에서 또는 직장에서마저도 주어진 극히 일부분만의 일을 기계적으로 해야 할 뿐, 책임을 지고 일련의 과정 업무를 창의적으로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생산성이 증대될 리 없다.
소련에서는 자본가 계급으로 분류되었던 부르주아를 숙청한다는 방침 아래 신고를 받고 선별하다보니, 농촌지역에서는 평소에 근검절약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부농富農들이 대부분 밤중에 멀리 끌려나가 처형되는 끔직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을 많이 기르거나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던 대농大農들이 부르주아라 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자,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모으는 것은 바로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비극이었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잘살 수 있는 길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어찌 보면, 자본주의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원시사회에서 천연 자원주의가 이데올로기로 떠오르지 않았듯이, 농경사회에서 농지주의란 이데올로기적 사상이 일어나지 않았듯이, 산업사회에서도 자본이 중요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데올로기화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실제, 자본주의를 이끌어간 사람들은 자본주의란 말을 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사상을 전개한 사람들이 자본주의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화시킨 사람들은 자본주의자들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이었던 셈이다.
자본주의란 경제사회의 변천과정에서 자본이 자연스럽게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서 생긴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는 생산요소 가운데 토지나 노동보다 자본이 더 중요해지는 경제진화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공산주의야말로 출발부터 모순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자본이 점진적으로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자본을 부정하는 경제체제란 원시 수렵 시대의 공산사회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모두가 가난해지는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인민들에게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나 인센티브마저 주지 않고 차단하면서 교육·의료 등 사회복지를 위한 지출은 무한대로 늘려나감으로써, 공산주의 사회는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입구조는 작은 데 반해 지출구조가 크다면, 그런 개인이나 가정은 물론 국가도 오래 버티어내기 힘들다. 그리하여 공산주의 국가들은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경제적 파탄을 피하기 어렵게 되어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경제활동이 중앙에서 계획하는 대로 일어나게 되어 있었는데,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수급사정이 소수 엘리트 집단의 머리로 조절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치 시계추를 매달아놓고 시침·분침·초침의 시곗바늘들이 제대로 맞아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그에 대한 전 국민 개개인의 수요와 공급을 무슨 재주로 꿰맞출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에 의해서 수급이 조절되어도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전국의 모든 수급과 인력 관리 그리고 개발 등이 계획 조절된다고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시장의 메커니즘에 의해서 일어난다. 시장이라면 가격이 지배하는 곳이요, 모든 수요와 공급은 가격에 의해서 결정되고 조절된다. 그러므로 정부가 구태여 시장에 개입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가격기능에 의해 순간순간 수시로 작동되고 조절되는데,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가격기능이 없다. 이런 가격기능이 없다 보니까, 생산원가를 비롯한 비용개념이 있을 리 없다. 그 결과,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의 음식값이 거의 공짜에 가깝고, 채소나 우유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비용과 이윤의 개념이 없다보니, 수송 과정에서 채소나 우유가 부패되어 사라지기 일쑤라는 것이다. 비용과 가격 개념이 없는 사회에서 상품이 제대로 생산되어 유통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주인의식이라도 높아야 할 텐데, 사정은 그와 정반대였다. 공산주의 소련 사회에서 지배층을 빼놓고는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지배층 가운데에서도 정권을 잡은 최고위층은 어떨는지 몰라도, 일반관료나 지식인들까지도 대부분 자기들의 사적인 이익추구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멀리서 보기엔 웅장하고 아름다운 것 같던 빌딩이나 공공 사무실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을 때, 베니아판 현관문에 깨진 대리석 조각, 바깥으로 늘어져 처진 전선 꾸러미며, 덜거덕거리는 엘리베이터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손질되지 않은 벽이며 현관, 곧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엘리베이터와 널판처럼 뛰노는 나무판 바닥, 부엌이며 화장실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설계되고 마무리된 것이 없어 보였다. 총체적인 부실이었다. 혼과 정성이 없어 보였다. 왜 그럴까?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소유주가 없이 모든 건물은 정부가 지은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기 것처럼 알뜰하게 챙기지 않아서였다.
‘자기 것이라면 모래알도 쌀로 만든다’는 옛말이 있다. 사람은 자기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갈고 닦는다. 남의 것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내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것도 모든 것이 국가나 사회의 소유로 되어 있다. 임자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주인 없는 물건은 버려진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버려진 물건에는 애착이 가지 않는 법, 애착이 없으면 쉽게 손상되고 낡아지게 마련이다. 만들거나 지을 때에도 정성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모래 위에 짓는 집과 같은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의 시설물들이 모두 이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공산주의 사회에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재산을 개인들에게 돌려줄 수 없고, 빈부의 격차도 없애야 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악을 모두 막아야 하는 등 규제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보니, 결과적으로 인민의 자유를 박탈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선다. 노동자·농민 등의 프롤레타리아 천국을 만들겠다던 공산주의자들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의 기본권과 자유를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역설적인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 자유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말할 자유, 표현할 자유, 행동할 자유, 직업의 자유, 주거 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인간에게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성한 자유가 있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했다는데, 자유 없는 세상이 무슨 천국이며, 자유 없는 사회에 기대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모든 것이 통제되고, 모든 것이 감시되는 폐쇄사회에서 인간의 행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공산주의 사회는 오래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공산주의 국가는 스스로 붕괴되거나, 아니면 다른 체제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체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라면, 제3의 길도 아니라 했는데, 그러면 어떤 이데올로기인가? 분명해진 사실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완벽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반 쪽짜리의 불완전한 체제 내지는 사상이다. 그러면 과연 모순 없는 완전한 이데올로기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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