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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허신행을 읽다

[스크랩] 분쟁을 해결하는 열 가지 방법

분쟁을 해결하는 열 가지 방법

- 허신행(경제학박사, 전농림수산부장관, 한몸사회포럼 대표, 기흥구 거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란 모두 상생적으로 생기고 상멸적으로 사라진다. 어떤 분쟁도 상생의 두 당사자가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 법, 그러하기에 다른 분쟁도 앞에서 들었던 사례들처럼 접근해가면 풀리게 되어 있다.

사실 분쟁이나 문제란 것들은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본래 분쟁이나 문제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분쟁이란 것들은 언제나 작용과 반작용처럼 상생의 파트너를 가지고 거의 동시에 같은 크기와 질량으로 생성된다. 상생의 파트너가 없으면, 분쟁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떤 형태로 일어나건, 분쟁이 일어날 때에는 다음의 열 가지 수칙을 통해 해결하면 될 것이다.

 

첫째, 분쟁을 일으킨 양 당사자 내지 두 그룹을 찾아내는 일부터 착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분쟁 당사자들을 찾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분쟁 당사자들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고 지하로 숨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라를 잃은 민족으로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할 때,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분쟁이라면, 분쟁 당사자들을 찾아내기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더욱이 그 규모와 세력의 전모를 알아 내기도 쉽지 않거니와, 그들의 공통된 주의 주장이나 요구를 파악하기도 지난하다. 그래도 분쟁 당사자들을 모두 파악하지 않고서는 상생상멸의 원리로 해결하기는 험난한 과제가 된다.


 

분쟁 당사자들을 찾아낼 때에는 두 측의 규모와 구성원, 그들이 원하는 것, 쟁취를 위한 투쟁방법과 수단, 투쟁의욕의 강도, 분쟁내용에 대한 인지도 등을 파악해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라 했던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양 당사자들의 상황을 모두 알아야 한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양 당사자들이 가진 장점과 단점까지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면, 더 좋다. 분쟁을 푸는 데에는 의외로 작은 정보가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분쟁 양측 당사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도자들을 엄선해야 한다. 의약분업에서 보았듯이 지도자들이 합의한 내용을 구성원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비토를 놓는 경우, 모든 노력과 협상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분쟁을 풀기 위해서는 분쟁 양측의 구성원들을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지도자들을 엄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또한 이들의 리더십이 부족하면, 당사자 간의 협의나 협상에 탄력이 붙지 않고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셋째, 분쟁 양측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모임의 구성체를 만들어야 한다. ‘○○분쟁 조정위원회’라 해도 좋고, ‘○○분쟁 협상팀’이라 해도 좋다. 이름 자체보다 분쟁해결에 임하는 대표들에게 명분과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어떤 구성체면 좋다고 본다. 협상을 위한 공식기구도 없이 분쟁을 풀려고 하면, 양측의 구성원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명분도 없을 것이고, 또 문제해결을 위한 공감대 형성도 어려울 것이다.

넷째, 분쟁 당사자들을 중재할 수 있는 제3의 객관적인 조정자가 있어야 한다. 중간 조정자는 정부일 수도 있고, 기타 공익기관이나 연구계 또는 다른 전문 중재자도 좋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분쟁 당사자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분쟁 당사자들이 믿고 따를 수 없는 중재자는 조정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분쟁 조정자는 반드시 중립적이어야 하고, 어느 한 편에 치우치는 것은 ‘절대 금지’되어야 하며, 일체의 욕심을 비우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임해야 한다. 분쟁 조정자는 ‘빠른 시간 내에 잘 풀었다’고 하는 공명심을 가져도 안된다. 그것도 큰 욕심 가운데 하나요, 그런 공명심 때문에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그르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분쟁해결의 공로는 모두 분쟁 양측의 대표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조정자는 조정으로서 끝나야지 공로까지 가로채려 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조차 힘들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생존을 건 분쟁이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피의 보복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팔레스타인들의 자살 테러와 이스라엘 군대의 보복공격이 번갈아가면서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만 커지고 있지만, 양측 당사자들이 한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누구 하나 제대로 중재할 마음마저 내놓을 수 없다. 양측의 보복공격이 증폭되고 있는 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세계대전과 같은 큰 재앙으로 확산될 개연성마저 없지 않다.


그런데 간혹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중동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기를 좋아하지만, 조정자로서 지켜야 할 수칙을 어기고 있기 때문에, 문제해결에 접근조차 못하고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미국은 중재자로서 엄격한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국가들이 신뢰를 주지 않고 있다. 신뢰를 잃은 중재자는 참된 조정자가 될 수 없다. 그러하기에 분쟁 조정자는 어느 한 편에 치우쳐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수칙이다.


 

중재자의 중립성, 객관성, 투명성 그리고 치우침 없는 공정성이야말로 분쟁해결의 기본요건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4년여에 걸친 가락시장 상인들의 숱한 분쟁을 조정하면서 철칙으로 느낀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 바로 중재자의 수칙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정도正道요, 문제해결의 요체로 보았다. 중재자에 대한 신뢰는 치우침 없는 데에서 생기고, 중재자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한, 분쟁 당사자들은 떠나지 않고 문제해결에 매달리게 되어 있다.

 

여섯째, 분쟁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토론과 협상을 중단 없이 계속해야 한다. 협상기간이 1년이나 10년 걸려도 좋다.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다. 서두르면 밥이 설고, 밥이 설면 맛이 없어 못 먹듯이, 분쟁도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따라야 제대로 해결되는 것, 한두 사람의 뜻대로 쉽게 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다수 분쟁 당사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분쟁은 활화산처럼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했는데, 꺼지지 않은 분쟁을 서둘러 진압하려고 하는 조급증은 금물이다.


 

분쟁해결을 서두르다가 협상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분쟁의 불씨를 오히려 더욱 키웠다고 보는 대표적인 사례가 의약분업이다. 일본은 의약분업에 관한 협상을 10년 이상 했어도 아직 완전한 분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에 놓여 있다. “조그마한 진전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는 격언이 서양에 있는데, 바로 분쟁조정에 해당되는 말 같다. 의사와 약사 사이의 협상에 조그마한 진전이라도 있으면 됐지, 단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다가 의약분업에서처럼 많은 것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협상을 할 때마다 약간의 진전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곧 바람직한 현상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조급함과 공명심 때문에, 문제해결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 같다.

 

일곱째, 중재자는 분쟁 당사자들과 1대 1로 직접 협상하지 말아야 한다.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 앉아 분쟁을 조정하다보면, 그들과 개별적으로 직접 협상을 벌이기 쉽다. 또 공명심 때문에 그런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분쟁 당사자들과 1대 1 베이스로 직접 협상을 하여 양측의 입장과 견해의 차이를 좁혀서 합의에 도달하려고 하면, 양측만의 영역분할이 아니라 영역의 중복 내지는 제3의 영역이 생겨나게 됨으로써, 시스템 자체를 오도하거나 그르치게 할 수 있다. 의약분업이 하나의 좋은 선례에 해당된다.

중재자로서의 정부가 결과적으로는 약사 그룹 및 의사 그룹과 개별적인 직접 협상을 통해 의약분업을 시행코자 함으로써, 둘 다 만족시킬 수 없었거니와, 시스템 자체의 효율성마저 놓치게 되고, 건강보험의 적자재정 역시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었다. 정부가 중재자의 역할을 벗어나 분쟁 당사자들과 직접 협상을 벌임으로써, 이들은 시스템 자체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그룹의 집단 이기주의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힘있는 정부에 압력을 가해 무엇인가를 더 얻어내려고 하는 군중심리가 발동하게 된다.

 

의사 그룹이나 약사 그룹이 제각각 정부와 개별협상을 통해 무엇인가를 많이 얻어냈다고 하는 것은 의약업계의 황금분할을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시스템 작동을 원활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물론 다른 누구라도 중재자는 조정자로서의 역할만 해야지, 그 이상의 과욕을 부리거나 공명심에 날뛰게 되면, 분쟁조정 자체를 그르치고 말 것이다.

 

여덟째,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 이견의 폭이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릴 때에는, 즉시 합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대개의 분쟁은 동일한 사물을 놓고도 양 당사자들이 입장과 시각을 제각각 달리하는 데에서 일어난다. 또 문제를 진단하고 다루는 방법과 수단에 있어서도 양 당사자 간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문제의 실체가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인식의 오류도 이견을 증폭시킨다. 그러므로 양 당사자들 사이에 이견의 폭이 좁혀지지 않을 때에는 ‘사실발견’(fact finding)을 위한 합동조사에 들어가야 한다. 이때 조사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것도 객관성 보장을 위해 좋다.
필자는 가락시장에서 조정하기 가장 힘들다고 하는 청과물과 패류의 상장경매에 대해서 합동조사를 통해 이견의 폭을 좁혀나갈 수 있었다. 동일한 품목의 거래형태에 대해서 도매회사와 중도매인들의 견해가 전혀 상반돼 있었다. 동일한 상황에 대한 두 집단의 인식이 극과 극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두 집단의 주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서 토론과 협상이 진전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합동조사를 제안하게 되었고, 이해집단 대표들 및 조정자의 3자 공동조사를 통해 이견의 폭을 좁힐 수 있었던 것이다.

 

의약분업에 있어서도 의사와 약사들의 견해가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해서 합동조사를 철두철미하게 실시했더라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과 미숙으로 남는다. 제약업계에 의한 리베이트 실체는 어떤 것인지, 병원의 운영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전문의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약사들의 위축은 얼마나 심각한지,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시스템이 가장 편리하고 저렴한지…… 등에 대해서 공동조사를 벌여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서 서로 얼굴만 붉혀가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앞선다. 바람직한 것은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 이견이 생길 때마다, 합동조사를 실시하여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노력이다.

 

아홉째, 협상이 고착되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을 때에는 협상 결렬시의 대가를 제시해줘야 한다. 인간은 합리적이라 했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분쟁이 생겼다고 하는 것은 분쟁해결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거나 지킬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만일 분쟁이 해결점 없이 지속된다면 모든 것을 다 놓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분쟁 당사자들에게는 협상 결렬시 그들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될 대가를 제시함으로써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락시장의 경험을 통해 볼 때, 협상이 결렬되어 분쟁이 미해결로 남을 경우, 오히려 이익을 보는 당사자들도 물론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협상이 사실상 어렵다. 고추매장의 벽을 헐어내는 경우와 통로를 새롭게 개설하는 분쟁에 있어서는 협상이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오던 그대로를 지킴으로써 손해를 입지 않은 그룹의 힘이 막강한 경우에 해당된다.

물론 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상대방의 기득권 일부를 빼앗겠다고 나선 것이므로, 협상이 결렬됐다고 해서 그들의 입장에서는 잃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여튼 오랫동안의 분쟁은 양 당사자들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며, 대개의 경우 분쟁은 그 안에 해결점을 지니고 있다.

 

열째,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합의점에 거의 다 도달했는 데에도 불구하고, 근소한 차이로 접점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중간을 자르라.

대부분의 협상이 그렇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근소한 차이를 놔두고 명분과 자존심 대결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게 마련이다. 또 물리적으로도 마지막 단추를 끼우기가 힘든 법이다. 간척지를 막을 때에도 마지막 양 둑을 잇는 것이 힘들고, 활을 만들 때에도 마지막 단계로 줄을 끼우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일이란 마무리 작업이 중요하다. 분쟁 당사자들 간의 마무리 협상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양측 주장의 중간을 자르면, 협상은 타결될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인 셈이다.

 

모든 분쟁은 상생상멸에서 생기고 사라진다. 상대가 없는 분쟁은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문제일 뿐이다. 문제는 이치대로 풀면 되는 것이지만, 분쟁은 서로 상대를 가지고 있으므로 상생의 원리에 따라 조정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시한 열 가지의 수칙에 따라 단계별로 차근차근 접근해 들어가면, 분쟁은 눈 녹듯이 풀리게 될 것이다.

분쟁은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러하기에 분쟁은 인간의 노력으로 풀릴 수 있는 것들이다. 분쟁이나 갈등, 마찰이 생긴 상생상멸의 근본원리를 알고 풀어가는 절차까지 동원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쟁 없는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출처 : 용인타임스
글쓴이 : 용인타임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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