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설과 상생상멸
- 허신행(경제학박사, 전농수산부장관, 한몸사회포럼 대표, 기흥구 거주)
* 이 글을 읽으면 음양학에 관한 동양철학을 이해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또한 음양학에 관한 모든 주장과 변천을 거의 완벽하게 정리한 리포트이기도 합니다. 회원님들, 이 글 한 편으로 음양 사상에 대한 공부를 마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다른 데로 옮기거나 이용할 때는 반드시 <허신행 박사>의 글이라는 사실을 꼭 밝히십시오. 다만 대학 숙제로 내면 큰일납니다. 아울러 우리 용인에는 허신행 박사처럼 훌륭한 분이 많이 계십니다. 더 좋은 글을 찾아 꾸준히 모시겠습니다. - 용인타임스
수평선 너머 동해바다에서 아침햇살이 고개를 내밀면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적막했던 어둠이 걷히면서 높은 산에서부터 햇볕이 들기 시작한다. 햇살이 비추는 곳은 환히 밝고 따뜻해지는가 하면, 비추지 않는 반대편은 상대적으로 어둡고 찬 공기가 남아 있다. 햇볕이 들어 밝고 따뜻해지는 곳은 양달이요,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둡고 찬 곳은 응달이다. 지구가 자전함으로써 양지와 음지는 서로 꼬리를 물면서 서서히 바뀌고 변한다.
드넓은 평야지대가 비교적 많은 서양의 대평원에는 음지·양지가 별로 없다. 햇볕이 들면 평야를 고루 다 비추고, 해가 지면 전체가 동시에 어두워지기 때문에 양지도 음지도 별로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처럼 산과 언덕이 많은 지역은 온통 양지와 음지로 나뉘어 올막졸막 뒤덮이다시피 한다. 중국이나 일본도 한국처럼 산과 언덕이 많다보니 양지나 음지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음지보다는 양지를 더 선호한다. 양지는 일반적으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가능하면 양지 바른 남향을 더 선호한다. 남향집은 겨울에 햇볕이 많이 들어 따뜻하므로 연료가 적게 들고 활동하기에도 자유스러울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소독까지 겸해주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다. 남향집은 또 여름이 되면 통풍이 잘 되고 시원해서 생활하기에 쾌적하다. 이와는 반대로, 음지에 위치한 북향집은 대개 겨울에 춥고 습기가 많이 찰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덥고 통풍도 잘 안되어 답답하며 건강에도 좋지 않은 편이다.
사람들은 사는 집뿐만이 아니라 낮에 근무하는 사무실이나 다른 건축물도 가능한 한 음지의 북향보다는 양지 바른 남향에 앉히고자 노력한다. 남향의 양지 바른 곳에 건물을 위치시키면, 더욱 밝고 겨울에 따뜻하며 여름에는 시원할 뿐만 아니라, 활동하기에도 편리한 점 등 이런저런 장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건물값도 높게 받을 수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선호도로 인하여 땅값 자체에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양지 바른 곳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주택이나 다른 건물을 신축할 때뿐만이 아니라, 가축을 기르기 위해 축사畜舍를 지을 때나 농장을 구입할 때에도 예외 없이 작용된다. 가축이나 농작물도 성장과정에서는 인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도 양지 바른 곳, 따뜻한 곳에서 잘 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마련할 때, 농가뿐만이 아니라 축사는 물론 논과 밭 등에 이르기까지 이런 자연적인 요인들을 감안하여 값을 매기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리하여 산과 언덕이 많고 양달과 응달이 그에 따라 많이 생겨나는 동양사회에서는 명당明堂이라는 개념이 생겨나, 지형이나 방위의 길흉吉凶을 판단하여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집 등을 지을 때이면 좋은 장소를 찾아내는, 소위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 발달하게 되었다. 옛 중국과 한반도에서 이 풍수지리설이 성행하였으며, 일본에서는 확산의 변방에 위치했던 관계로 다소 무디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산과 언덕들이 많은 동양사회에서 햇볕이 드느냐 들지 않느냐로 갈라지기 시작한 이 응달과 양달이 바로 그 유명한 동양사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음양陰陽의 본뜻이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음양의 애초 개념은 심오한 철학적인 탐구로 생겨난 것이라기보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숱한 경험을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러하기에 음양의 용어나 이에 대한 생활철학이 생겨난 시대를 더듬어 올라가보면, 일반적인 학문마저 없던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관련 문헌들에 따르면, 음양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역易’부터인데, 그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라면 진晉을 셋으로 나눈 한韓·위魏·조趙의 3국이 제후諸侯로서 공인된 BC 403년부터 진秦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BC 221년까지를 말한다. 그러니까 음양설이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4백여 년 전, 일반적인 학문이 생기기 이전의 시대였다. 물론 이것은 기록상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형성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상식이나 지식이란 문헌상으로 나타난 것보다 더 오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BC 541년[昭公元] 《좌전左傳》에 음양 두 글자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추리를 가능케 하고도 남는다.
음양陰陽은 주역周易 철학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주역의 변천사를 보면, 대충 다섯 가지의 시기로 크게 나누어진다. (廖明春·康學偉·梁韋弦 저, 심경호 옮김. 《주역철학사》, 예문서원 참조)
제1기는 선진 시기로서 역학이 생겨나 발전의 기초를 확립하는 기간에 해당된다.
제2기는 양한兩漢 시기, 즉 한역韓易 시기라고도 한다. 이 한역을 상수학象數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의 천문역법天文易法과 융합하는 한편, 점성술 및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의 영향을 받아 괘기설卦氣說을 중심으로 하는 상수학 체계를 형성하였다,
제3기는 위魏·진晋·수隋·당唐 시기로서 현학玄學의 길로 발전, 한역의 상수학을 배격하고 의리를 중시하여 공자의 역 해석 학풍을 진작시키는 동시에, 노자 철학을 역易에 끌어들여서 현학역玄學易을 창건했던 기간이다.
제4기는 송宋·원元 시기로서 남송南宋과 북송北宋의 역학은 역학과 이학理學의 융합을 꾀하는 한편, 상수학을 철리화哲理化하여 고대 역학 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제5기는 명明·청淸 시기로서 송역宋易을 박학역樸學易으로 전환하여 역을 매우 융성시켰으나, 청대인들의 역학은 주로 문헌학 연구에 머물렀고, 그 이론의 수준도 낮았던 데다 나아갈 방향마저 점차 좁아지기 시작하여, 결국 고대 역학사는 여기에서 마감하게 되고 만다.
다른 한편,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은 현대 역학의 시기로서 1930∼1940년대는 전통 역학의 관점에 대한 비판기이고, 1950∼1960년대는 주역을 마르크스 주의에 따라 연구한 기간이었다. 1970년대는 주로 대만에서 과학역의 연구가 흥기興起한 단계이다. 1970년대 말 이후 지금까지는 주로 중국 본토에서 역학을 다양하게 연구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고대 역학은 서양 과학문명의 유입으로 퇴조하게 되었고, 현대 역학은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이처럼 역학은 선진시대에 발원되어 양한의 상수학, 진·당의 현학역, 송대의 리학역, 명·청의 박학역을 거쳐서 현대의 다양한 연구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음양설도 자연스럽게 변천에 변천을 거듭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양설이 발원기에는 단순한 응달과 양달의 의미만을 지닌 채, 동양인들의 생활 속에서 먼저 활용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음陰은 구름이 해를 가리어 어둡다는 의미이다. 이는 산의 북쪽에서 주로 생긴다. 이것이 확대되어 ‘어둡다’, ‘뒤쪽이다’, ‘이면異面’, ‘북쪽’이라는 뜻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양陽은 ‘높고 밝다’ 또는 ‘따뜻하다’, ‘앞쪽이다’, ‘표면’, ‘남쪽이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음양은 학문과 이론의 성립 이전에 벌써 생활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다가 음양이 서로 연속된 하나의 명사가 되고, 무형무상의 두 가지 기본적인 성질을 의미하게 된 것은 공자·노자·장자 등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자는 ‘역이 음양을 말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역 자체를 음양으로 보았던 것 같다.
계사전繫辭傳에는 ‘역’에 태극이 있어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으며,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으며, 팔괘가 길흉吉凶을 정하고, 길흉이 대업大業을 낳는다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음양설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도 기록되어 있다. 노자는 도道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으며,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고 말하면서, 다시 만물은 음을 업고 양을 끼고 충기沖氣로써 화한다고 했다.
계사전의 첫머리 부분에 기초하여 전개된 것으로 보이는 악기樂記에는, 땅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하늘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 음과 양이 서로 접하여 움직임으로써, 벼락과 천둥이 생기고 비바람이 휘몰아치며, 사계절의 순환운동이 일어나고, 해와 달이 다사롭게 비추어 온갖 생물이 화생하게 된다고 씌어져 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의 기운이 위아래로 돌면서 음양이 접하여 모든 운동과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음양설을 더듬어 올라갈 때, 사실 공자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음양설은 주역周易의 근간이요, 주역이 길흉 판단의 도구였던 복서책卜筮冊에서 의리의 각도로 전환된 것이 역전易傳인데, 그 역전의 대부분을 지은 사람이 다름 아닌 공자였기 때문이다.
역전 가운데 새롭게 창안된 것은 효위설爻位說이다. 효위설에는 당위설當位說, 상응설相應說, 득중설得中說, 추시설趨時說, 승승설承乘說, 괘변설卦變說 강유소장설剛柔消長說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음효陰爻와 양효陽爻의 위치 및 작용 등에 따라 설명되는 변화형태의 이론인 셈이다.
역전의 철학사상은 크게 본체론, 변증법, 정치관 등으로 나누어진다. 천지의 본체는 태극이라 하였다. 태극은 천지가 나뉘기 이전의 시원적 통일체로서 만유의 근원인 셈이다. 이 태극이 나뉘어 둘, 즉 음양이 되고, 이들이 일음일양一陰一陽의 대립·통일로 우주 속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이 객관적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일음일양의 모순대립이 강剛과 유柔로 나뉘어 서로 밀므로 변화, 즉 변역變易을 낳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음양의 대립과 상호작용이 우주변화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음양이 서로 감응하고[相感], 서로 부비고[相麾], 서로 뒤흔듦[相蕩]에 따라서 대립자가 굴신·왕래·진퇴·소식·영허를 낳아 사물의 모순운동이 전개되고, 이 운동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대립자의 상호 뒤바뀜[轉化]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처음과 끝은 대립의 양극으로서 음양의 정正과 반反이 여기에서 서로 뒤바뀌므로 길이 아니라 흉이며, 혹 길함을 얻더라도 흉으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길과 흉이 다 두렵고 종시終始를 경계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허물 없음[无咎]이 중요하고, 이는 역전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의 이치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다음으로는 양한 시대의 상수역학에서 음양설이 어떤 내용으로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상수역학은 당시 한역의 주류로서 상象과 수數로 만유의 변화와 예측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상象이란 천지만물의 형태나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고, 수數는 주로 점서에서 괘를 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음양 기우奇偶의 수를 가지고 음양 2기를 해석하고, 괘상卦象에 나타난 기우 수의 변화를 가지고 음양의 소장消長과정을 해석하기도 하였다.
경방京房이란 사람은 괘효상卦爻象이 천지만물의 상象과 일치하므로 서筮를 64괘로 나누고 384효를 배당하여 음양의 1,520책策을 차서 매겨 천지만물의 실상을 모두 규정할 수 있다고까지 보았던 것 같다. 또한 1괘에 6효가 있으므로 상하 음양의 수와 내외의 상을 그 다음으로 하면, 길흉吉凶의 기氣를 드러내고, 천지인天地人 변화의 법칙도 아울러 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경방은 또 역전의 음양설을 발전시켜 음양 2기설陰陽二氣說을 제시하였다. 음이 양에 들어가고, 양이 음에 들어가, 이들 2기가 서로 작용하여 건乾·곤坤·진震·손巽·감坎·리離·간艮·태兌 팔괘八卦를 뒤흔듦으로써 변역이 일어나고, 천지만물이 생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들 음양 2기는 상호 대립하면서 일정한 조건 하에서는 서로 뒤바뀔 수도 있고, 괘효의 변역을 낳으며, 인간사의 길흉을 결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위·진·수·당 시대의 역학은 대략 네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첫째는 한역을 직접 계승하여 상수를 가지고 역을 해석하는 방향이었다. 둘째는 노장현학에 따라 역을 해석하는 경향이었다. 셋째는 역학을 불교와 결합시키는 경향이었다. 넷째는 역학을 도교와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음양설에 대한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계사전의 ‘일음일양一陰一陽을 도道라 한다’에 대한 약간의 확대해석 정도, 즉 도道는 무無로서 통하지 않음이 없고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것이라 하였다.
고요히 체體가 없기에 상象으로 그려 보일 수가 없고, 유有의 쓰임이 지극하면 무無의 공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신神이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음에 이르렀고, 역易이 일정한 형체가 없음에 이르면, 도道를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변화를 궁구하여 신묘함을 다하고, 신묘함에 말미암아 도道를 밝히면, 음과 양은 비록 다르지만 무無는 하나로서 음과 양을 기다린다. 음에 있어서는 무음無陰으로 음이 그 무음에 의하여 생기고, 양에 있어서는 무양無陽으로 양이 그 무양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 한다.
한편, 변화가 음양의 효爻라든가, 술수術數의 근본이 음양 감응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라든지, 음양의 이치는 정밀함으로써 오래 지켜질 수 있다는 견해들이 피력되기도 하였다. 수·당 시대에 들어서는 역易을 변화의 총칭이자 개환改換의 특수칭으로 보면서 음양 2기氣에 따라 변화와 운행이 일어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음양 2기를 도道로 간주하면서도 이 음양의 기는 형체를 갖지 않은 것으로 여겨 무無라고 한 점이다.
다음에는 송·원 시대의 역학에서 음양설이 또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북송이나 남송의 의리파 역학에서는 음양 2기의 변화법칙을 역리해설의 핵심으로 삼았고, 북송의 상수파 역학에서는 태극도, 즉 천지 자연지도를 제작하여 음양 2기의 소장消長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는 음양동정陰陽動靜, 부단한 운동, 피차소장彼此消長 등을 재미있게 반영시킴으로써 변증법 사상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은 태극도 안의 음양으로서 우리나라 태극기 안에 있는 그림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들 음양 2기가 서로 싸안고, 음양 동정動靜이 서로 뿌리로 변해 ‘이것이 성하면 저것이 쇠해지고, 저것이 성하면 이것이 쇠해지는’ 순환운동을 지속하게 된다. 순환운동에도 양이 극하면 음으로 되돌아가고 음이 극하면 양으로 되돌아간다는 설, 남방에서 양이 극성하면 음이 생겨나고 북방에서 음이 극성하면 양이 생겨난다는 설, 음양이 주류周流하여 서로 감싸 안는다는 설, 음이 극성하면 양을 낳고 음이 그치면 양이 일어난다는 설 등이 있다.
주돈이周敦蓬(1017∼1073)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좀더 구체적이다. 그는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 나고,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으며, 동이 극하면 정靜이 되고, 정하면 음陰을 낳는다 하였다. 정이 극하면 동으로 돌아가고,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하여 서로 뿌리가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태극이 음으로 갈리고 양으로 갈리어 양의兩儀가 선다 했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의 오행五行을 낳음으로써 5기가 순하게 퍼지고, 4시四時가 행해진다 하였다. 건도乾道는 남자를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자를 이루어, 이들 2기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하고 변화가 무궁해진다 하였다. 5행이 서로 다른 성性을 하나씩 가지고 감응운동하여 선악善惡으로 나누어지고, 만사가 출현한다 하였다.
소옹邵雍(1011∼1077)의 선천역학先天易學에서 팔괘 및 64괘의 형성과정을 보면, 음양의 교차에 따라 괘가 배씩(일명: 加一倍法, 一分爲二法, 四分法이라고도 함) 무한하게 늘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태극이 나뉘어 음양이 생기고, 양이 아래로 음과 교차하고, 음이 위로 양과 교차하여 하늘의 4상象이 생겨난다. 동시에 강剛이 유柔와 교차하고, 유가 강과 교차하여 땅의 4상象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하여 8괘가 형성되고, 이들 8괘가 서로 착종錯綜하여 만물이 생겨난 것으로 믿었다.
소옹의 아들 소백온邵伯溫은 하늘에서 생긴 4상, 즉 태양太陽·소양小陽·태음太陰·소음少陰은 일日·월月·성星·진辰을 이루고, 땅에서 생긴 4상, 즉 태강太剛·소강少剛·태유太柔·소유少柔는 수水·화火·토土·석石을 이룬다 하였다. 이들 8괘가 형성된 뒤에 천지의 형체가 갖추어진 것으로 여겼다.
이들 부자父子 역시 도식과 숫자를 통해 사회 및 자연계의 사물들을 전면적으로 종합하고 분류하여 만물의 형성과정과 상호관계를 구명함으로써 사회의 흥망성쇠와 변화의 흐름을 설명하고자 하였겠지만, 오늘날 과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얼마나 작위적이고 관념적이었던가. 그렇지만 음양의 변화로부터 오늘날에도 유효한 많은 지혜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범중엄范仲淹(989∼1052)은 ‘하늘의 도를 세워 음이다 양이다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다 강剛이다 하며, 사람의 도를 세워 인仁이다 의義다’라는 논법을 앞세워 자연계는 물론 인류사회 변화의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면, 물질이 극하면 반드시 원점으로 돌아간다[物極必反]라든가, 일이 극하면 곧 변화가 일어난다거나[事極則變], 손해를 입은 뒤엔 이익이 생긴다든지[損後得利], 본질은 달라도 의리상 항시 합하여 서로 돕는다[質本相遠, 義常兼濟]고 하는 등의 이치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당근과 채찍’ 또는 ‘관대함과 가혹함’은 질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정치현실에서는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 일정한 목적을 달성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구李滑(1009∼1059)는 “만물은 음양 2기의 회합으로 그 상象이 생겨나고, 상이 생겨난 후에 그 형形이 생겨난다” 하였고, “하늘은 양을 강하하고 땅은 음을 나오게 하여 오행(五行: 水火木金土)을 생성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기氣가 있은 뒤에 상象이 있고, 상이 있은 뒤에 형形이 있다”는 관점에서 상象과 수數가 모두 기氣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하여, 음양 2기氣를 가지고 상과 수를 해석하였는데, 이들 상·수·기 셋 가운데서 기氣를 본원으로 보았던 것 같다. 이구 역시 음양 2기氣를 핵심으로 하여 주역의 원리를 해석하였던 것이다.
정이程蓬(1033∼1107)는 이본론理本論을 기초로 하여 체용일원體用一源을 주장하였다. 이理는 무형이므로 상象을 빌려야 의義를 드러낼 수 있고, 상象에 의해서 이理를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음양 대립의 상象은 바로 음양대립에 따른 이理의 현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도道와 이理는 모두 음양 및 음양 변역이 따르는 원칙으로서 도道는 동적 과정이나 법칙 및 방식이고, 이理는 정적인 내재형식 구조로 보았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정이가 주역의 변증법 사상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음양이 상호 모순 대립하거나 의존하는 관계’임을 인정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말하기를 “이理에는 반드시 상대하는 짝[對待]이 있음이 생생生生의 근본이다.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으며, 질質이 있으면 문文이 있다” 하였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관찰이다.
이理, 즉 근본에는 반드시 상대하는 짝이 있게 마련이란 이 대목은 필자의 기본적인 생각과 일치하고 있다. 특히 마찰이나 갈등 등 서로 부딪치는 것들은 물론 밀거나 뒤흔드는 것들까지도 모두가 모순되는 쌍방이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장재張載(1020∼1077)는 기氣를 우주 본체로 보았다. 기氣가 모이면 이명離明함이 베풀어져 형체가 생겨나고, 기가 모이지 않으면 이명함이 베풀어지지 않음으로써 형체가 생겨나지 않는다 하였다. 그리고 장재는 무형과 유형을 형이상과 형이하, 즉 도道와 기氣로 뚜렷이 나누어 보았다. 그러니까 장재는 ‘기氣가 있은 뒤에 상象이 있고, 상이 있은 뒤에 형形이 있다’는 이구의 관점을 더욱 발전시켰는데, 태허太虛인 기氣가 음양 2기로 나뉘어 감응함으로써 만물을 낳고 또 변화시킨다고 보았던 것 같다.
여기에서 감응이란 대립과 쌍방이 운동변화 속에서 상호 흡인 내지 배척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천지만물 사이에 이러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주 자체가 태허와 만물 사이의 대립과 통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물체도 대립하는 쌍방의 상호작용의 산물 아닌 것이 없으므로 이를 일물양체론一物兩體論으로 설명하였다. 즉, 음양 2기가 운행하여 유전하고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낳고 낳아 일체 사물이 중단 없이 변역하며 생장하고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재는 태극의 기氣에 포함된 음양 2기의 대립, 통일과 상호작용을 물질세계의 운동변화의 동인動因으로 귀결시켰던 것이다.
주희朱熹(1130∼1200) 역시 태극太極: 理이 기氣의 동정動靜 변화를 빌려서 만물을 낳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4상四象을 낳으며, 4상이 8괘八卦를 낳는 무한한 연쇄작용을 통해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의 연계와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주희는 정이의 체용일원體用一源과 현미무간顯微無間의 설을 더욱 발전시켜 이理가 사事의 본원이라 하였다. 그래서 주희 역시 이理가 곧 천지만물의 본원이란 견해를 더욱 공고히 했던 것이다.
양만리楊萬里(1127∼1206)는 오히려 ‘역易의 도道는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는 전제 아래 음양이 채 형상을 띠지 않은 처음을 가리켜 원元이라 했고, 하나에서 둘로 나뉜 것을 기氣라 하였으며, 운동하여 멈춤이 없는 것을 도道라 하였다. 그러하기에 역도易道란 곧 음양 2기의 운동법칙이고, 음양 2기는 뒤얽혀 혼재되어 있는 원기元氣로부터 파생된다는 것이다.
양만리는 또 하늘은 화합하지 않으면 제 위치에 서지 않고, 물질은 화합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天非和不立 物非和不生] 하였다. 여기서 화합이란 두 대립자가 합일로 새로운 물질을 생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립자가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통일에 이르는 상태를 말한다. 그는 말하기를 “큰 것은 이기고 작은 것은 쇠하며, 강건한 것은 동하고 유순한 것은 물러나며, 강한 자는 자라나고 약한 자는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理”라고 하였다. 즉, 음양·대소·강약이라는 대립자의 전화를 사물변역의 법칙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음양 등의 성장과 소멸을 순환적이라고 여겼다.
다음에는 명·청시대의 역학에서 음양설은 또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보기로 하자.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음과 양의 관계를 공생공유로 보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음과 양은 어느 것이 앞서거나 뒷서거나 낳거나 이루거나 하는 앞뒤 선후의 순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요, 오직 태극 안에서 향배向背·동이同異·영굴潘瓜·소장消長 또는 상호 작용[絪縕]·마찰과 동탕[麾蕩]·상호 조제[分濟] 등의 운동 내지 작용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건곤병건설乾坤幷建說이라고도 부르는데, 불교철학에서 말하는 체용일치體用一致와 동일시했던 것 같다.
건곤병건설에 따르면, 건곤 및 음양은 시간적으로 하나가 앞서고 하나가 뒤지거나 하지 않으며, 주역의 64괘와 384효 모두에 음양 및 건곤이 있고, 태극과 역 또한 동시적이라는 것이다. 태극은 늘 하나이면서 만 가지로 변하고, 만 가지로 변하면서도 늘 그 본래의 하나를 바꾸거나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태극은 건과 곤의 합찬合撰이요, 음양이 혼합된 태화인온太和絪縕의 기氣로서, 천지의 공간을 가득 채운 물질성의 실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태극은 불교에서 말하는 체體인 셈이다. 공간을 빈 곳이 아닌 것으로 본 것은 놀라운 진전이다.
청대 중엽 정정조程廷祚(1691∼1767)는 동動과 정靜의 변증법적 관계를 아주 생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음양에는 각각 동과 정이 있다고 했다. 동이 아니면 양을 낳을 수 없고, 정이 아니면 음을 낳을 수 없다고 했다. 양이 한번 동하지 않으면 정음靜陰이 없으며, 정이 한결같다면 동은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음양에 각각 동과 정이 있다고 하는 명제를 제시한 것은 중국의 소박 변증법 사상사에 준 의의가 자못 컸다.
정정조는 또 ‘낳고 낳음’의 원인도 탐구해 들어갔다. 그는 흥미롭게도 만물이 모두 둘을 체體로 하여 대대對待, 즉 쌍이나 상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만물에는 어떤 것이든 대립자가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자연계에는 음양·천지·일월·한서寒暑·강유·동정·강약·생사·존망·대소·다소·유무·전후·진퇴 등이 있다고 했다.
인간사회에는 군신·부자父子·남녀·부부·귀천貴賤·빈부·수요壽夭·화복·선악·이해利害·길흉吉凶 등이 있다고 했다.
사상에는 지우智愚·변눌辯訥·교졸巧拙·언의言意·애오愛惡·정성情性 등이 있다고 했다. 이처럼 사물이 존재하기만 하면, 바로 대립자가 존재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정정조는 천지만물이 모두 상반相反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했다. 쌍으로 된 두 체體는 서로 간여하고 서로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반드시 서로 감응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지가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낳고, 부부가 서로 감응하여 자녀를 낳으며, 참과 거짓이 서로 감응하여 이해利害를 낳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세상 만유가 다 이와 같다는 것이다.
정정조는 또 이들 쌍으로 된 두 체體는 서로 뒤바뀔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음과 양, 욕을 당함과 굴복시킴, 비루함과 꼿꼿함, 태평함과 험난함, 큼과 작음, 이리로 옴과 저리로 감, 선과 악 등이 시간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 뒤바뀔 수 있다고 하였다.
모기령毛奇齡(1623∼1716)은 역易에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고 정리하였다.
첫째는 변역變易으로서 양이 음으로 변하고 음이 양으로 변하는 것이다.
둘째는 교역交易으로서 음이 양과 상호 교호하고 양이 음과 교호하는 것이다.
셋째는 반역反易으로서 순역順逆을 살피고 향배를 심리하여 반대로 보는 것이다.
넷째는 대역對易으로서 음양을 나란히 두고 강유剛柔를 엮어서 짝을 살피는 것이다.
다섯째는 이역移易으로서 나뉨과 모임을 심리하고 오고 감을 계산하고 추이하여 상괘 및 하괘로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 역학에서 음양설은 또 어떻게 취급되고 있을까? 현대 역학이나 그 안에 내재된 음양설 역시 서구의 과학문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눈에 띄게 나타난 현상 몇 가지를 들면, 주역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적 요소를 발굴해내고자 하는 노력을 빼놓을 수 없으며, 아울러 전산학의 2진법 수학과 복희 64괘도와의 관계, 생물학의 유전 코드와 64괘 구조와의 부합성 여부, 양자역학에서 보는 물리적 양가量價의 각종 양자성量子性 전환 물질과 광복사光輻射의 파동 및 입자 이상성二象性, 불확정성의 원리 등이 제출한 물질과 초물질 및 그들의 상호관계의 철학개념과 ‘역’의 음양설과의 상통성 유무 또는 ‘역’의 음양이 물리의 플러스 마이너스 에너지와의 일치성 여부, 달의 상대성 운동인 64괘점이 곧 양자화量子化 법칙이므로 음양설이 뉴턴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일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에 관해 숱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음양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나 해석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음양은 태극太極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태극은 기氣가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엉켜 있는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태극에서 정靜하는 기氣와 동動하는 기氣가 발하게 되는데, 이들을 가리켜 음양陰陽이라 일컬었다.
이 동정動靜의 두 기운, 즉 음양의 작용에 의해 오행五行이 생겨나고, 이 오행에 의해서 만물이 생성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은 음과 양의 성격으로 재분류될 수 있다고 인식함으로써 음양이 동양사상의 근간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땅은 음이고 하늘은 양에 해당된다. 땅과 하늘이 서로 연결되고 조화를 이루어 만물을 생성시키며, 성장케 할 뿐만 아니라, 끝없이 순환시켜 무궁하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음양의 조화라 보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물·불·나무·쇠·흙 등 오행이야말로 우주만물의 기본을 이루는 요소로 간주했던 것이다.
공간은 음이요, 시간은 양이라 하였다. 공간은 정靜적이자 물질의 존재와 여러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적인 성질을 내포하고 있어서 음에 해당되고, 시간은 만물의 유전을 나타내는 동動적인 관념으로서 양에 해당된다. 만유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유전하는데, 이것 역시 음양의 조화로 보았다.
달과 태양, 여자와 남자, 식물과 동물, 물과 불, 밤과 낮 등은 모두가 음양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 속성에 비추어보면, 음은 대체로 차가우며 어둡고 무거운 데 반하여, 양은 뜨거우며 밝고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표면은 뜨거워지나 땅 속이 차가워지는 여름은 음이요, 반대로 지표면은 차갑지만 땅 속은 더워지는 겨울은 양으로 분류된다.
그런가 하면, 음은 끌어당기고 잡아 갈무리하는 속성을 갖는 데 반하여, 양은 밀어내고 흐르며 밖으로 퍼져나가는 성질을 갖는다. 이런 속성으로 볼 때, 같은 식물이라 하더라도 배추는 음이요, 무는 양에 해당된다. 배추는 잡아당기는 기운이 강하여 쭈글쭈글하게 생기고, 무는 퍼져나가는 기운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팽팽하게 생겼다.
동물 가운데에서도 돼지는 양과 같고 닭은 음일 것 같이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돼지는 음이요, 닭은 양이다. 닭은 매우 활동적이어서 사방으로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그 고기도 뜨거운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열기 있는 식품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돼지는 자기중심적이고 먹이를 챙기는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질 역시 뜻밖에도 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색도 음양으로 나누어진다. 예를 들면, 청색과 흑색은 음이고, 흰 색·황색·적색은 양에 해당된다. 음인 청색은 동쪽·봄·간장肝腸·신 맛·기쁨·인仁을 상징한다. 양인 흰 색은 서쪽·가을·폐장肺臟·코·매운 맛·분노·의義를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음인 흑색은 북쪽·겨울·신장腎臟·짠 맛·슬픔·지智를 상징하고, 양인 적색은 남쪽·여름·심장心臟·쓴 맛·즐거움·예禮를 상징한다. 양인 황색은 중앙·비장脾臟·단 맛·욕심·신信 등을 상징한다. 이들 다섯 가지 색은 오행(火=赤, 水=黑, 木=靑, 金=白, 土=黃)을 색의 형태로 나타낸 것으로서 이를 오방색五方色이라 한다. 이들 각각의 색이 지닌 의미와 상징에 따라 오방신장五方神將,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 관복官服, 오방낭자五方娘子, 오색五色실, 색동옷, 오곡五穀, 단청丹靑, 화문석花紋席 등 우리의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식생활의 중요한 도구인 밥상이나 그릇과 수저 등은 물론 상 위에 차리는 음식물에도 음양 오행의 사상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둥근 밥상은 양을 상징하고, 상다리가 네 개인 것은 사방四方과 땅인 음을 상징한다. 둥근 모양의 그릇들은 양으로써, 그릇에 담긴 양을 통해 하늘의 양기를 몸에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 같다. 또한 둥근 모양의 숟가락은 양이고 두 개의 젓가락은 음으로써, 이들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음과 양의 조화를 노렸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밥상은 나무[木]이고, 수저와 그릇은 금·은·놋쇠 유기 등과 같은 쇠[金]이며, 흙으로 만든 도자기 그릇[土], 간장·국·찌개·동치미 등은 수기水氣, 생선이나 육류 등은 불에 구워먹는 화기火氣로서 음양뿐만이 아니라 오행五行까지 섬세하게 배려한 음식 문화를 엿보게 된다.
한의학의 사상체계 역시 음양설을 비켜가지 않는다. 해부 생리를 근간으로 한 미분微分 기술, 즉 생의학적인 모델(biomedical model)인 서양 의학과는 달리 한의학 역시 해부 생리를 근간으로 하지만, 여기에 전적으로 국한되지 않고 심리는 물론 환경 내지 사회적 요인까지 두루 포함시킨 기능적 적분積分 기술, 즉 생심리사회학적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생성원리를 음양론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인체가 생긴 공간, 즉 음양과 인체가 작용하는 시간, 즉 오행(五行: 火水木金土)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공간의 개념은 인체의 구조를 음양으로 이해하여, 전후·표리表裏·상중하上中下 등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시간의 개념은 평탄平旦·일중日中·일포日哺·야반夜半·춘하추동春夏秋冬 등으로서 가령 병세病勢가 오전에 심한가, 오후에 심한가, 밤중에 심한가 등에 따라 기허氣虛·혈허血虛·양허陽虛·음허陰虛 등으로 변증辨證을 해나간다.
그런데 시공時空을 나타내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은 하나의 기氣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한의학에서는 이 기氣가 매우 중요해진다. 기의 활동이 멈추면, 사람은 죽게 된다. 그러므로 기의 순환, 즉 기환氣還이 중요해지는 것인데, 이를 음양오행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의학의 기본적인 특징은 정체관整體觀과 항동관恒動觀으로 구분된다. 이 둘을 합해서 정체항동관整體恒動觀이라고도 한다. 정체관이란 공간의 축을 의미하며, 항동관이란 시간의 축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인체의 접근은 이 두 축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체관이란 인체를 통합적인 유기체로 이해하면서 인체의 통일성·완전성·관계성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항동관이란 인체를 하나의 구조물로 이해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건강상태나 각종 질병들을 관찰하고 연관지어 분석하는 것이다.
음양설은 최소한 동양인들에게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하여 철학과 과학은 물론 의학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기본적이고도 광범위하게 파급되어 있다. 그것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냐 하는 문제를 안고는 있지만, 음양설은 분명 현대과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야요,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필자가 중요시 여기는 동시에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대목은 음양설을 상생상멸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무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청대 중엽의 정정조程廷祚라는 학자가 꿰뚫어 보고 지적했듯이, 만물에는 어떤 것이든 쌍으로 된 상생의 대립자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음양을 대표적인 것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렇듯 음양은 그것이 응달과 양달이 되었건, 또는 태극에서 나온 양의兩儀가 되었건 간에, 이들 쌍이 동시적으로 생기고 동시적으로 운동하며, 동시적으로 소멸 내지 다른 형태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음양설이 시간을 거듭하며 2천 년 이상 발전해왔지만, 상생상멸의 근본 이치에서는 한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음양설을 상생상멸의 범주에 포함시켜 함께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다만 음양설을 응용하여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음양오행설로 풀어 나가고 있는데, 여기에서 한단계 내려가 유추된 음성과 양성까지도 모두가 상생상멸의 짝 속에 포함시킬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그러나 음양 그 자체는 분명 상생상멸의 짝임에는 틀림이 없다.
음양의 속성을 정리해보면, 첫째 음양은 우주의 근본인 태극 또는 무無에서 상생의 짝으로 생겨났다는 것이고, 둘째 음양은 서로 대립하고 제약하며 또 서로 의존하고 필요로 하며 만물을 소생시킨다는 점, 셋째 음양은 서로 운행 유전하고 상호작용하여 일체의 사물을 끊임없이 운동 변화토록 하며 생장과 소멸을 거듭하게 한다는 것, 넷째 음양은 서로 바뀌면서 순환운동을 한다는 점, 다섯째 음양은 쌍으로서 생성과 소멸을 동시에 할 뿐만 아니라 상호 형평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파란태양 > 허신행을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죽으면 둘 다 죽고 살면 둘 다 산다 - 상생상멸 (0) | 2011.12.12 |
---|---|
[스크랩] 네가 망하면 나도 망한다 - 변증법은 틀렸다 (0) | 2011.12.12 |
[스크랩] 마주 싸워 둘이 죽거나 서로 도와 함께 살거나 (0) | 2011.12.12 |
[스크랩] 왜 눈은 두 개일까? 세 개면 안되나? (0) | 2011.12.12 |
[스크랩] 우린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다 보고 있어! (0) | 2011.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