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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허신행을 읽다

[스크랩] 죽으면 둘 다 죽고 살면 둘 다 산다 - 상생상멸

- 전기와 상생상멸

허신행(경제학박사, 전농림수산부장관, 한몸사회포럼 대표 , 기흥구 거주)

전기가 음양설이나 변증법 등과 일맥상통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천5백여 년 전부터 동양사회에서 발전되어온 음양설의 종착지가 플러스 마이너스의 전기로 귀착되고 있다면, 이것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정·반·합의 변증법 역시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기의 대립 및 통일로 풀이될 수도 있다고 하면, 이것은 단순히 흥미차원을 넘어 상호 보완성까지 모색해볼 수 있는 일대 진전일 수 있다. 더불어 전기의 플러스 마이너스 관계가 필자의 주 관심사인 상생상멸론을 한층 더 강화시킬 수 있다면, 이것은 더없는 소득일 수 있다.

그러면 전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전기는 전등에서 빛이 되고, 전기스토브나 다리미에서는 열이 되는가 하면, 또 전자석으로 바뀌는 경우에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전기는 이제 실내 안팎을 밝히고, 모든 가전제품들을 가동케 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기차·선박·비행기 등 운송수단을 움직이게 돕고, 인터넷 세상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앞으로 전기는 새로운 문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요소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실은 이런 전기란 것이 자연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4백여 년 전이지만, 마찰전기의 힘을 인지하게 된 것은 기원전 6백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장식품으로 사용하던 호박琥珀을 헝겊으로 문질렀을 때, 먼지나 실오라기 따위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전기라는 영어electricity의 어원 자체가 그리스어의 elektron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는 호박을 의미한다. 당시 자연 철학자이던 탈레스Thales(BC 624?∼BC 546?)는 이 신비의 호박을 비롯하여 마그네스라는 광석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마그네스란 쇠를 끌어당기는 돌, 즉 천연의 자석인 자철광磁鐵鑛을 말한다.

탈레스 이후 2천여 년이 지난 16세기 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의侍醫로서 의사이자 물리학자였던 길버트William Gilbert(1540∼1603)는 자철광이나 호박에 대하여 여러 가지 실험을 한 끝에 자기磁氣나 마찰전기에 대해서 알아냈다. 전기라는 학문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길버트는 호박 이외에도 유리·수정·유황 등을 마찰시켜 끌어당기는 힘을 발견하고, 여기에서 호박화되는 원인을 가리켜 전기(electricity)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전기에 대한 연구와 응용품의 개발이 계속되었지만, 전기 그 자체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해냈지만,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기의 정체에 대해서는 에디슨 자신도 잘 몰랐다고 한다.

그로부터 18년 후인 1897년 영국의 실험물리학자 톰슨Sir Joseph John Thomson(1856∼1940)이 드디어 전기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는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전기라는 것이 아주 작은 미세한 입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이 작은 입자들이 모여 빛을 만들고 열도 나게 하며 물질을 끌어당길 수 있는 힘까지 생성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전자(electron)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다.
모든 물질은 원자들이 결합되어 형성된다. 그런데 그 원자의 중심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둘레를 마이너스 전기를 가진 전자가 돌고 있다. 원자핵 속에는 플러스 전기를 가진 양자(proton)와 전기를 갖지 않은 중성자(neutron)가 들어 있다. 그런데 보통의 물질이라면, 양자의 수와 전자의 수가 같기 때문에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전기량은 균형이 잡혀 물질 전체로서는 전기적으로 중성이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원자핵과 전자는 그렇게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외부로부터 어떤 힘이나 충격(열이나 빛 또는 마찰 등)을 받게 되면, 전자는 궤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떠돌아다니게 된다. 이런 떠돌이 전자를 ‘자유전자’라고 부르는데, 이들 자유전자가 이동함으로써 전기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


물질은 대체로 전기가 잘 통과하는 물질과 잘 통과하지 않는 물질로 나누어질 수 있다. 구리나 쇠·금·은·알루미늄 등과 같은 금속은 전기가 잘 통과하는 물질이다. 금속 이외에도 탄소 같은 물질은 전기를 잘 통과시킨다. 이처럼 전기를 잘 통과시키는 물질을 가리켜 도체導體라고 부른다. 이와는 반대로, 유리나 사기·고무·플라스틱 등과 같은 물체는 전기를 잘 통과시키지 않는데, 이런 물질을 가리켜 부도체不導體 또는 절연체絶緣體라고 부른다. 순수한 물은 부도체이지만, 여기에 염분이나 산 및 알칼리 등이 용해되어 있으면 도체가 된다. 기체 역시 부도체이지만, 아주 큰 전압을 걸면 절연파괴라는 현상이 일어나 전류가 급하게 흐르게 된다. 벼락이 치는 것은 절연파괴에 의한 기체방전의 한 현상이다.


고무와 같은 부도체에서는 원자핵과 전자의 결합이 굳어 있어서 전자는 원자핵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므로 쉽게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부부 간의 금실琴瑟이 돈독하여 틈이 생기지 않으면, 여자건 남자건 딴 마음을 먹을 수 없고, 이혼과 같은 파경이나 분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도 결합이 굳을수록 서로 잘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이치의 근본이 원자로부터 비롯됐던 것 같다.


그러면 전기는 어떤 특성을 갖는 것인가? 전기의 특성을 안다고 하는 것은 물질이나 정신세계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흥미로운 것은, 첫째 마이너스 전기와 플러스 전기는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갖는 반면에, 같은 종류의 전기끼리는 서로 반발하여 밀어내는 성질을 갖는다는 점이다. 인간사회에서도 남녀 이성 간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는가 하면, 남남 또는 여여 동성 간에는 서로 밀어내는 성질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성질은 인간사회에서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동물의 사회는 물론 어쩌면 식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성질은 결국 전기처럼 가장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연유된 특성이라 믿어진다.


전기의 이런 특성은 일반사회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노·사의 견제보다도 노·노의 갈등이 더 심하다든가, 정치권의 여·야관계보다 야·야 사이가 더 험악해지는 경우도 많은가 하면, 비즈니스 업계에서도 동종업종끼리는 대개 서로 경쟁하여 치열하게 싸우는 데 반해서, 이종異種 업종끼리는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하거나 최소한 무간섭으로 서로 공생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수놈들끼리는 암놈 차지를 위해 서로 다투고 싸우는가 하면, 암놈들끼리도 먹이와 수놈 차지를 위해 서로 경쟁하며 싸우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것끼리는 전기처럼 서로 밀어내는 데 반해서 다른 것끼리는 서로 끌어당기는 것은 하나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전기의 두 번째 특성으로 전기저항을 들 수 있다. 전기의 흐름은 물의 흐름과 매우 비슷하다. 물의 흐름은 수도관의 길이와 그 안쪽의 평탄성 내지 굴곡의 심한 정도 등에 따라 저항을 받게 되어 있다. 수도관이 길고 그 관의 안쪽이 평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굴곡이 심하면, 물의 흐름은 많은 저항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전기도 도선導線의 굵기와 길이 그리고 재질 등에 따라서 흐르는 전기의 양이 변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전기의 흐름을 어렵게 하는 정도를 가리켜 전기저항 또는 단순하게 저항(단위는 옴, 기호는 Ω)이라고 말한다.


어떤 도체導體로 흐르는 전류의 크기는 도체의 두 끝에 가해진 전압電壓에 비례하고, 그 도체의 저항에 반비례한다. 이것이 바로 옴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1827년 독일의 옴Georg Simon Ohm(1789∼1854)이란 사람이 실험을 통해 발견해낸 것이다. 이들 전류·전압·저항의 상호관계를 엮어 밝혀낸 옴의 법칙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류는 전압을 저항으로 나누어준 값이요, 전압은 또 전류에 저항을 곱해준 값이 된다.


이런 옴의 법칙으로부터 유추해볼 수 있는 평범한 사회적 이치는 무엇일까?
우리가 국가적으로 추진코자 하는 목적을 전류의 크기로 가정해보자. 이 목적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의 규모와 강도를 안다면, 필요한 추진력, 즉 전압의 크기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적으로 추진코자 하는 목적이 의약분업의 안정적인 정착이라든지, 교육개혁이나 농촌경제의 현대화, 경제성장, 남북의 통일 및 햇볕정책 등이라면, 그에 대한 저항세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 경우, 필요한 추진력의 크기를 예측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부분적으로 파고 들어가보면, 아주 구체적인 세부 추진계획의 도출이 가능해지리라 믿는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시책의 수립도 이루어질 것이다.


전기의 세 번째 특성은 연결방법에 있다. 전기의 연결에는 크게 나누어 직렬直列 연결과 병렬竝列 연결의 두 가지가 있어서 흥미롭다.
전지의 경우, 직렬연결은 (+)극을 다른 전지의 (-)극과 연결하는 방법이다. 실제로는 전지를 일렬로 나란히 묶으면, 직렬연결이 된다. 이때 전체의 기전력은 낱개를 모두 합한 것과 같아진다. 예를 들어, 1.5V짜리 건전지 3개를 직렬로 연결하면, 1개의 기전력 1.5V의 3배인 4.5V가 되는 셈이다.
다른 한편, 병렬연결은 각 전지의 (+)극은 (+)극끼리 그리고 (-)극은 (-)극끼리 같은 극을 공통으로 연결하는 방법이다. 이때의 기전력은 1개의 기전력과 같지만, 전지의 수명은 전지의 개수 만큼 늘어나게 된다.


직렬연결과 병렬연결의 장점을 살리면 혼합연결이 된다. 이것은 몇 개의 전지를 직렬로 연결한 다음, 다시 병렬로 연결하는 방법이다. 이때 전체의 기전력은 직렬연결한 전지의 기전력과 같고, 전지의 수명은 병렬연결의 수에 비례한다. 예를 들어, 1.5V짜리 건전지 4개를 두 개씩 병렬로 연결한 것을 직렬로 연결할 때 전압은 3V, 사용할 때 전압 역시 3V, 사용시간은 2개 분과 같아진다.
전지의 이런 연결방법은 일반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피라미드의 판매조직은 직렬연결에 가까운 것이고, 각종 친목단체들은 병렬연결과 같은 것이다. 공무원 조직은 직렬연결과 같고, 농어민들의 생산자 판매조직은 병렬연결과 유사하다. 정치권의 정당조직이나 사기업의 조직체계들은 직렬·병렬의 연결방법을 혼합시켜놓은 것과 같다고 보면 틀린 관찰일까?


중요한 것은, 조직의 필요성과 방법이 전기로부터 연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연결방법을 어떻게 더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이고, 그런 원리가 원자단위의 기초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한 가정에서도 가족관계가 직렬연결 방식이냐, 또는 병렬연결 방식이냐, 아니면 이 둘의 혼합이냐 하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볼 사안이라고 본다. 어떤 가족관계 내지 조직이 더 효율적일까, 또는 더 행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이 처해 있는 상황 내지 주변환경도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라면, 직렬연결 방식의 가족체계가 더욱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고, 힘을 집중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태평성대의 평화로운 상황이라면, 병렬연결 방식의 가족관계가 더 많은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한 가족이 되었건 기업이나 국가가 되었건 사람들의 연결방법에 따라 힘의 집중과 분산이 달라지고, 그 목적달성 여부도 결정되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전기의 네 번째 특성은 주울 열에 있다. 주울 열이란 전류가 흐를 때, 도체에서 발생하는 열을 가리키는 것이다. 포장이 잘 된 고속도로를 차로 달리면 흔들림이 적고 피로도 덜 하겠지만, 울퉁불퉁한 비포장 시골길을 차로 달리면 얼마나 흔들리고 피곤하겠는가. 전기의 경우도 이와 비슷해서 전기가 흐르기 쉬운 동선 속을 흐를 때에는 열이 별로 나지 않지만, 전기저항이 심한 니크롬선 등의 속을 흐르다보면 열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열이란 것도 실은 물체의 원자나 분자의 불규칙적인 운동에 불과한 것이지만, 전류가 흐를 때 도체에서 발생하는 열을 가리켜 주울 열이라고 한다. 전기다리미나 백열전구 등은 바로 이 주울 열을 이용한 것이다.


1840년 주울James Joule(1818∼1889)이라는 영국의 과학자가 발열량에 대한 상세한 실험 끝에 발견한 법칙, 즉 ‘도체에 흐르는 전류의 열량은 전류의 제곱과 도체저항의 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주울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전류의 흐름이 많을수록 그리고 도체저항이 강할수록 열량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은 높은 곳에 있을 때 위치 에너지를 갖지만, 모래를 채운 드럼통으로 흘러내릴 때 모래와 마찰하는 동안 열 에너지로 변하듯이, 도체 속을 이동하는 전자도 마찬가지로 금속원자와 충돌하여 열진동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일반사회에도 주울 열과 같은 현상은 일반적이라고 본다. 부부 간이나 부자 간, 또는 친구들 사이에서나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주울 열 현상은 항상 일어나게 마련이다. 서로간에 껄끄러운 마음이 오고 갈 때, 화가 치밀고 고성이 터지는가 하면, 주먹다짐이 일어나고 싸움이 벌어진다. 따지고 보면 인간사회에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는 것은 모두가 심관心管의 크기와 구부러짐 또는 울퉁불퉁의 정도 등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마음의 통로가 원활하면, 갈등과 마찰이 일어날 수 없다. 마음의 통로가 막히거나 협량하여 껄끄럽고 울퉁불퉁하면,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열을 받거나 불화를 자초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주울의 법칙처럼 주는 마음의 제곱과 심관心管저항의 곱에 비례하여 마음이 불편해지지나 않을까 하여 궁금해진다.


전기의 다섯 번째 특성은 자석에 있다. 자석은 전기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석은 분자크기 정도의 미소한 자석들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다. 미소한 자석을 ‘분자자석’이라고 말하는데, 보통의 쇠는 이들 분자자석이 제멋대로의 방향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자석의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통의 쇠라 하더라도 자계를 가하면, 분자자석들이 자계의 방향으로 정렬하여 자석이 된다.
자석은 서로 극이 다를 경우에 달라붙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쇠나 니켈, 코발트 등의 물질을 끌어당긴다. 자석의 힘은 대단해서 떨어져 있어도 작용한다. 이처럼 떨어져 있는 물체에까지 미치는 자석의 영역을 가리켜 자계磁界 또는 자장磁場이라고 말한다. 지구도 크게 보면 하나의 큰 자석이다. 그러하기에 지구 주위에는 거대한 자계가 형성되어 있게 마련이다.


자침이 북을 향하는 것도 바로 자계 때문이다. 자침이 북을 가리키는 끝을 N극, 즉 양극이라 하고, 남을 가리키는 끝을 S극, 즉 음극이라고도 한다. N극끼리나 S극끼리는 서로 밀어내고, 반대로 N극과 S극은 만나면 서로 끌어당긴다. 이런 현상은 전기의 플러스 마이너스 관계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계와 전기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직선인 도선에 전류를 흘리면, 도선 둘레에는 동심원 모양의 원형 자계가 생긴다. 오른 나사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전류를 흘리면, 자계의 형성 방향 역시 나사를 돌리는 방향과 일치한다. 도선 둘레의 어느 점에 있어서 자계의 세기는 흐르는 전류에 비례하고, 전류에서 그 점까지의 거리에는 반비례한다. 결국 자계가 있는 곳에는 전류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도선을 원통모양으로 촘촘히 감은 것이 코일인데 여기에 전류를 흘리면, 자계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인간사회도 예외일 수 없다. 기氣 세고 리더십 강한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쇳가루가 자석을 향하듯이 몰려든다. 권력이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의 주변에도 물론 사람들이 몰려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인품이고, 실력과 덕망을 갖춘 사람의 주변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쇳가루처럼 몰려들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수나 석가모니 같은 성현들이었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구름떼처럼 몰려들게 하고 있다.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 힘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자비심에서 샘솟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사랑의 힘, 그것은 바로 자석과도 같은 것이다.


사랑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힘은 더 세지고 감동의 영역은 넓어지게 마련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의 사랑은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보다 더 진했고 깊었으며,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가치이기도 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하기에 그 힘은 2천 년이란 긴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며,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엄연한 힘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찮은 자석이 물체에 미치는 영역을 가리켜 자계라고 부르고 있는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생긴 이 위대한 힘의 영역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의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간, 그것이 자석의 힘이건 사랑의 힘이건, 또는 깨달음에서 샘솟는 도력道力의 힘이건 간에, 자장磁場과 같은 힘의 공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기의 여섯 번째 특성으로서 직류와 교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전기인데도 흐르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건전지에 저항을 연결해서 회로를 만들면, 이 회로를 흐르는 전류는 그 크기가 항상 일정할 뿐만 아니라, 흐르는 방향도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류나 전압을 가리켜 직류라고 부른다. 이에 비하여, 우리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그 전류나 전압이 주기적으로 변하는데, 이를 가리켜 교류라고 부른다.


교류 전기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반복되는 등 주기적인 변화를 거듭하는데, 그림으로 펼쳐보면 삼각함수에서 배운 사인 웨이브의 오르내림으로 나타난다. 1초간에 반복하는 진동횟수를 주파수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사이클Cycle이란 단위로 썼으나, 지금은 헤르츠(Hz)로 통일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교류 주파수는 60헤르츠, 이 교류로 전등을 켜면, 1초 사이에 120회를 점멸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형광등 밑에서 손을 빨리 흔들면, 깜박거려 보이는 것이다.


전기의 교류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반복하며 교체된다는 사실이다. 전기의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동양사상의 음과 양으로 볼 때, 음양은 서로 교체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물론 직류에서는 음양의 교체는 없다. 그러하기에 음양이 언제나 교체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는 쉽게 교체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음양의 변화를 표현한 태극 마크의 곡선은 삼각함수에서 본 사인 웨이브와 비슷하게 여겨진다. 사람들의 지혜와 생각이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할 수 있을까 신비스럽기도 하다.


이외에도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전기는 활용도 측면에서 매우 다양하다. 전기적 에너지를 역학적 에너지로 바꿔놓은 전동기電動機, 즉 모터라든가, 자계 속을 움직이는 도선에 유도전류가 발생하는 현상을 응용하여 만든 발전기發電機며, 기체나 증기 속의 방전에 의한 빛을 광원으로 이용하여 만든 형광등과 네온사인, 고도의 열을 내는 전파로 식품을 데우게 하는 전자 레인지, 전파를 활용하여 음성을 전류로 바꾸고 전류를 다시 음성으로 바꾸어 만든 전화기와 라디오·스테레오·레코드·테이프 레코드·VTR 등의 가전제품, 전파를 영상으로 바꾸어 만든 TV, 복사기·휴대폰·거짓말 탐지기·인터넷…… 끝없이 이어진다.


전기 없는 곳이 있을까. 천둥과 번개도 전기의 한 현상이요, 동·식물 할 것 없이 생명체의 세포문을 열고 닫는 것도 전기의 작용이라니, 원자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전기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마이너스와 플러스의 전기란 원자 내부 구성의 기본이자,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음양과 같은 만유생성의 기초라고 여겨진다. 어쩌면 플러스 마이너스의 전기와 음양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판 음양설에서는 이 둘을 같은 기본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는 신비스럽게도 언제나 짝, 즉 상생으로 존재 내지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들 둘은 독자적으로 존재하거나 생기지도 않거니와, 사라질 때도 마찬가지로 독자적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전기는 생길 때도 함께 짝으로 생기고, 사라질 때도 함께 짝으로 사라진다. 다시 말해서,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전기는 상생상멸相生相滅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전기는 상생 상멸의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기에서 상생상멸의 성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같은 전기끼리는 서로 밀어내는가 하면, 다른 전기끼리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사실과, 전기에는 저항이 있고, 직렬연결과 병렬연결 같은 연결방법에 대해서도 알았으며, 주울 열과 자석의 존재는 물론, 직류와 교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특히, 전기의 교류에 있어서는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가 순간 서로 교체된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이들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의 광범위한 응용범위는 끝없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음양설이나 변증법에서는 상생상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막연하기만 했고, 때론 매우 추상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기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의 상생상멸은 매우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그 성질들이 극명하게 드러남으로써, 다른 상생상멸의 작용에 대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생긴 셈이어서 다행스럽다. 또 만유의 생성과 소멸에 전기의 작용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사실, 음양설에서는 음양 2기가 만유 생성에 기본이라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피부로 느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전기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는 상생상멸론을 한차원 더 보완해주고 있는 셈이다.

출처 : 용인타임스
글쓴이 : 개마고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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