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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도 버전이 있다 - 잡스Ⅰ, 잡스Ⅱ, 잡스Ⅲ, 잡스Ⅳ

 

사람에게도 버전이 있다  - 잡스Ⅰ, 잡스Ⅱ, 잡스Ⅲ, 잡스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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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가난한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이 소년이 대학을 중퇴하고, 기업을 일으켰다가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재기하고, 췌장암과 간암으로 고통받아 인류에게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I.T선물을 안겨주고 떠나갔다. 스티브 잡스다.

우리나라의 스티브 잡스는 어디 있을까. 위기 가정 속에 있을 수도 있고, 고아원에 있을 수도 있고, 배가 고파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한돌봄이 찾아내야만 할 사람들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역경을 이겨내고 이 세상을 혁신시킨 선지자가 된 이야기를 스탠포드 졸업생들에게 담담하게 솔직하게 설명한다. 무한돌봄 얘기가 다른 게 아니라 이것이 무한돌봄 사례다.

꿈과 희망, 도전,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가 추구한 것이요, 무한돌봄이 추구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세 대목으로 나누어 그때마다 어떻게 시련을 극복하고 곤경을 헤쳐나왔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2005년 6월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장 무대에 선 스티브 잡스는 놀랍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복지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공식적으로 대학 1학년 1학기 중퇴자이다. 따라서 그가 명문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축사를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는 이 일생일대의 자리에서 잡스Ⅰ, 잡스Ⅱ, 잡스Ⅲ, 잡스Ⅳ에 대해 말한다. 모두가 다 그의 작품이다. 그걸 보지 못한다면 이 글은 읽을 필요가 없다. 그는 비록 56세로 이 세상을 마쳤지만 그의 인생은 네 가지 버전의 서로 다른, 혹은 업그레이드된 스티브 잡스를 보여준다.

 

잡스Ⅰ -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고졸 부모에게 입양된 잡스

잡스Ⅱ - 대학교 입학 6개월만에 자퇴한 채 미래를 두려워하는 스티브 잡스

잡스Ⅲ - 자신이 창업한 애플사에서 그가 고용한 사람에 의해 쫓겨나 당황하는 스티브 잡스

잡스Ⅳ - 애플사로 돌아와 화려한 재기를 하지만 췌장암에 걸려 투병하는 스티브 잡스

 

 

잡스Ⅰ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시설에 위탁되었다. 이 시기를 <잡스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原石)이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맡겨진 것이다.

이것이 <잡스Ⅰ>에게 닥쳐온 최초의 위기다. 이때 미국의 복지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했는가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유아 복지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미국은 입양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하고, 최적의 가정을 찾도록 도와준다. 여기에서 스티브 잡스의 생모와 기관이 입양 가정을 잘못 선택했더라면 애플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스마트폰 시대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잡스Ⅱ

 

입양된 지 17년 후 정말 그는 양부모의 약속대로 대학에 갔다.

그는 스탠포드와 맞먹는 수준의 학비를 대느라 막일을 하는 양부모가 평생 저축한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걸 괴로워했다.

한 학기가 지나자 그는 학교를 계속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양부모가 평생 모은 돈을 학비로 다 쓴다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그는 대학을 그만 두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면 인생도 달라질 게 없다.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창의적인 복지를 고안한 것이다. 자기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을 그만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배짱 좋게 이 대학을 계속 다니며 청강을 한 것이다. 학위는 비록 못따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자신이 원하는 강의를 골라 들은 것이다.

정식 학생이 아니다 보니 기숙사는 갈 수 없기 때문에 친구 방을 찾아다니며 옆에서 끼어 잠자리를 해결하고, 빈 콜라병을 주워 하나에 5센트씩 돌려받은 돈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크리시나(인도 명상)사원에서 주는 공짜 음식을 먹기 위해 10킬로씩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가 다니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서체 분야에선 최고의 강좌를 보유하고 있었다. 캠퍼스의 모든 포스터와 게시물은 손으로 직접 그린 아름다운 글씨체로 돼있었다. 자퇴 후엔 필수이수 과목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그는 글씨체 강좌를 청강했다. 그는 이 강의에서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활자들의 조합과 간격의 변화 등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다.

인간이 겪는 것은 영광이든 고난이든 저마다 다른 쓰임새가 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실패의 경험없이 성공만으로 가득 찬 인생은 없다. 한때의 좌절, 절망, 실패, 고난은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다.

과연 그로부터 10년 후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처음 설계할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맥 설계에 쏟아 부었다.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그 서체과목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결코 다양한 서체라든가 간격이 잘 조화된 폰트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잡스Ⅲ

   

스티브 잡스는 스무 살 때 아버지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단 10년 만에 이 애플을 20억 달러 가치에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키웠다.

이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 하늘은 결코 불평등하지 않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 컴퓨터는 사실 그 이전에 나온 알테어 컴퓨터 키트를 단순 조립한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미국에만 수백만 명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잡스처럼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잡스만 그렇게 했다. 도와주는 손이 아니어도 사람에게는 잡아당기는, 끌어당기는 손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자신을 도운 것이다.

하지만 잡스Ⅲ는 희망과 성공이 아니라 곧바로 시련으로 다가온다.

그가 서른이 되었을 때 그는 매킨토시를 발표했지만 회사로부터 해고당하고 만다. 그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의 인생 포커스가 집중되었던 모든 것은 사라져버렸고 그는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사실 그의 인생의 두 가지 고난, 즉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이 되고, 가정 형편 때문에 다니던 대학을 단 6개월만에 그만둔 것은 이 사건에 비하면 그리 큰 상실감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다는 충격은 엄청난 것이다.

첫 몇 달 동안 그는 무엇을 할지 정말 몰랐다.

그가 불과 20대에 창의적으로 일으킨 회사 애플은 20억 달러 가치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자기가 설립한 회사에서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잡스가 쫓겨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행마저도 행운으로 돌려버리는 비상한 창의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애플사에서 해고당한 사건은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행운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해고되지 않았다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겪은 세번째 절망이다. 그는 너무도 큰 좌절을 당했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람은, 도전적인 사람은 시련에도 절망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잡스는 잡스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시간을 충분히 얻은 것뿐이다. 그는 이후 10여년간 자신을 더 단련시키고 훈련시킨다.

진정한 잡스Ⅲ가 될 계기를 얻은 것이다.

이후 5년간 그는 NeXT 와 Pixar라는 회사를 새로 시작했고 결혼할 여성을 만나기도 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일이 묘하게 풀리면서 애플은 하필 스티브 잡스가 다시 만든 회사 넥스트를 사들였다. 그러면서 그는 애플로 복귀하고 넥스트에서 그가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부흥, 즉 르네상스를 가져온 핵심기술이 되었다.

 

 

잡스Ⅳ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자신도 부활하고 애플도 부활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야 할 길이 더 남아 있었다. 따라서 시련도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맥북, 아이팟, 아이팟터치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2004년 그는 췌장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치료 불가능한 것이고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며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다.

이 또한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크나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수술을 시도하여 성공했다. 만일 이후 그가 긴 휴식을 가졌더라면 스티브 잡스는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잡스Ⅳ가 되고 싶었다. 그는 늘 새로운 세상과 기술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걸 알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무서운 열정으로 아이폰, 아이패드를 잇따라 히트시키며 전세계를 스마트폰 시대로 이끌었다. 그러는 사이에 암이 간으로 퍼져 간 이식 수술을 받지만 그러고도 그는 회사로 출근했다. 이때만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휴식을 취했더라면 56세의 젊은 나이에 황급히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숨과 스마트폰 혁명을 맞바꾼 것이다. 단 한 순간도 무의미하게 살려 하지 않은 진정한 구도자같은 삶이었다. 그가 이룩한 I.T.혁명에 비하면 그의 인생 56년은 너무 짧지만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창의성은 무한하게 빛날 것이다.

 

소년 시절의 <잡스Ⅰ>은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에 내던져진 일엽편주(一葉片舟)였다.

20대의 <잡스Ⅱ>은 너무나 빨리 성공해 우쭐거리고 오만했다. 남과 싸우고, 남을 무시하고, 남과 경쟁했다. 성공을 즐기기도 전에 그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후 40대의 <잡스Ⅲ>가 애플사로 복귀, 이후 맥북, 아이팟, 아이팟터치 등 히트작을 내놓기 시작한다. 손만 대면 뭐든지 신기한 발명품이 될 것만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50대의 <잡스Ⅲ>는 죽음을 직면한, 죽음에 맞서 자신을 초월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얻었다. 아이폰이 나왔다. 아이패드가 나오고, 그는 <잡스Ⅳ>가 되었다. 그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줄기차게 업그레이드시켰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 복지를 펴는 사람 모두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잡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복지를 논의할 수 있을까. 무엇이 복지인가. 편안함인가, 창의성인가? 우린 우리 자신의 복지에 대해 스스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단지 편하기만 한 것은 진정한 복지가 아니다. 새로운 눈으로 달라진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적인 복지가 나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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