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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삼국지 - 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태사룡 삼국지

원제국 치하 한족들의 항몽 역사 소설

 

태사룡 삼국지

 

제1부 대동이(大東夷)의 꿈

   

* <삼국지연의>는 원(元) 제국 치하의 한족 지식인들이 독립투쟁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어낸 중국인들의 항몽 역사 소설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을 지침 삼아 주원장․팽형옥․서수휘 등 한족독립군이 떼지어 일어나 마침내 몽골군을 몰아내고 명(明)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역사 진실을 바탕으로 창작된 소설은, 세계적으로 3천여 종이 넘는 이본(異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운의 <태사룡 삼국지>만이 유일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삼국지 소설류는 이문열 평역이든 황석영 평역이든 박종화 평역이든 그 원작자는 모두 중국인 나본(羅本; 貫中은 字)이지만 <태사룡 삼국지>는 소설가 이재운이 창작했습니다.

그 1부 1장을 보면 <태사룡 삼국지>가 추구하는 면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원제국 치하 한족들의 항몽 역사 소설

 

 

태사룡 삼국지

 

제1부 대동이(大東夷)의 꿈

 

 

태사룡의 삼국지 안내

 

1. 몽골군을 몰아내고 한족의 나라를 높이 세우자

2. 하후씨, 본분을 잊지 말라

3. 하늘은 죽었다

4.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5. 유비 삼형제가 만난 사연

6. 동탁, 함정에 빠지다

7. 장각의 죽음

8. 때가 오고 있다

9. 떠도는 유비 삼형제

10. 이이제이(以夷制夷)

11. 암투

12. 동탁, 일어나다

 

1. 몽골군을 몰아내고 한족의 나라를 높이 세우자

*(그림) 커다란 나무그늘에 모여 삼국지 얘기를 듣는 풍경

 

옛 촉(蜀)의 수도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때는 남송(南宋)이 멸망한 이후 들어선 몽골 치하, 1339년(己卯年). 나라 이름은 원(元)제국이던 시절.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언덕을 끼고 형성된 허름한 뒷골목의 한 목조집. 사람들은 녹음이 우거진 아름드리 버드나무 밑으로 몰려와서 제각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누군 부채를 부치고, 부인 몇은 양산을 받쳐들고, 아이들은 채양이 긴 갈대모자를 쓰고 뙤약볕에 앉았다.

열풍(熱風)이 일던 오시(午時;오전 11:30- 오후 01:30)가 지나면서 소문을 듣고 하나둘 몰려든 사람들이다. 원래 대낮에는 한족끼리 몰려 있기가 어려운 법인데, 이날은 몽골 카한(可汗 ; 황제)의 고려인 왕비 기완췌후두(奇完者忽都)가 황태자 아유시리다라를 낳았다 하여 몽골군들이 며칠 쉬는 휴가 중의 마지막 날이다. 덕분에 한족들은 이 시기만이라도 마음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나다니기도 어렵다. 남송이 멸망한 이래 한족들은 무조건 몽골군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하고, 눈에 띄더라도 바짝 엎드려 복종하고, 설사 그들이 다가와 남자의 가슴에 칼을 박거나 여자의 엉덩이에 양근을 박더라도 절대 저항하지 말고 조용히 죽거나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이 죄악이요, 존재 자체로 불길하고 저주받은 땅 성도, 이곳에 사는 한족은 인간 중에서는 말종(末種)이요, 마소(馬牛)에 비해도 결코 낫지 않은 바로 밑의 등급이다. 이 비참한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한족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요, 고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한족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 즉 무능한 족속이요, 더러운 민족이요, 누구나 뜯어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 버림받은 야만인이라는 몽골인들의 야유에서 벗어나도 되는 날이다.

그래서 강사(講史)라고 불리는 이야기꾼 태사룡(太史龍)은 이날 그의 집 바깥마당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삼국지 전편을 쉬지 않고 들려주기로 했다. 몽골군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가닥 희망이라면 이렇게 모여 앉아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안 그러면 원나라 관리들이 은(銀)을 채굴해라, 쌀과 밀을 실어보내라, 과일을 실어보내라, 비단을 짜 보내라고 성화를 해대서 견딜 수가 없다.

 

1279년(己卯年), 남송(南宋)이 망했을 때 이곳 촉(蜀) 지방의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했다. 60년 전의 일이다.

“가사도(賈似道)가 이끄는 황군(皇軍)이 몽골 기마군에 괴멸되었다는군.”

“공종(恭宗) 폐하가 목을 매어 자살하셨대.”

“위왕(衛王)이 바다에 몸을 던지셨다네.”

몽골군이 진주한 이래 해괴망측한 소문이 잇따랐다. 나라가 큰 만큼 소문이 퍼지는 데만 엄청나게 시간이 걸렸다. 어떤 소식은 몇년만에 들려오기도 했다. 어쨌거나 남송이 망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었다.

남송이란 나라가 거란족과 여진족에 쫒겨 북에서 내려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몽골족에게 아주 망해버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슨 놈의 나라가 2백년도 못가느냐고 투덜거렸지만 어쨌든 현실이었다.

송나라 왕실이 남아 있다고 해서 백성들 삶이 나아질 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저 초원에서 말이나 타던 야만스런 거란족, 여진족, 몽골놈들보다야 낫지 않은가. 이 무식한 북방 기마민족들은 한문도 모르고, 시화(詩畵)도 모르는 데다가 할 줄 아는 건 싸움질에 도적질 밖에 없었다. 놈들은 닥치는대로 훔쳐갔다. 그놈들 눈에 띄면 누구도 달아날 수가 없었다. 좀 쓸만하다 싶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들 것이 되었다. 아이를 갓 낳은 새댁이라도 데려가버렸고, 새끼를 낳을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암소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고 잡아먹었다. 형주에선가는 결혼식장에 들이닥쳐 신부를 잡아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도무지 인륜도 모르고 도덕도 모르는 놈들인 것이다.

 

촉 땅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남송이 망한 지 몇 년 뒤에 들려온 소식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장강 이남 백성은 이제 거지나 창녀보다 못하대.”

“몽골놈들은 사람 죽이는 걸 파리 죽이는 것보다 더 쉽게 생각한대.”

“몽골놈들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른대.”

소문은 참으로 끔찍했다.

주자학을 일으킨 주자가 났었고, 소동파 같은 대시인이 활동했던 문치(文治)의 나라 남송이 망한 것은 수나라가 망하여 당나라가 들어서고, 당나라가 망하여 송나라가 들어선 것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남송의 터를 비집고 들어온 이 야만 족속들은 삼강오륜을 아는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아니 이목구비가 비슷하고 얼굴에 털이 나지 않아서 인간이지 그런 것만 빼면 늑대나 이리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한 ‘짐승같은’ 놈들이었다. 그들은 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 책을 보여주어도 거들떠보기는커녕 밑을 닦는 휴지나 불쏘시개로 써버렸고, 소동파의 아름다운 시조차 시끄럽다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 야만족들은 남송의 유민, 즉 한족을 세상에서 가장 천한 민족이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없도록 틀어막았다. 한족 여자들은 마소보다 못한 종족이므로 몽골군과 정식으로 결혼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한두 번 품고 버리는 일회용품이나 다름없었다. 설사 몽골군이 한족 몇 명쯤 사사로이 죽이더라도 그것은 결코 죄가 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게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민족, 이놈들이 바로 몽골족이고, 한족들은 바로 그 무지막지하게 생겨먹은 족속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몽골군이 길을 가다 아무 한족이나 때려죽이면 이 사건은 살인사건이 아니라 재산 손괴사건으로 처리되었다. 즉 그 지역 사령관의 재산을 축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살인자는 그 지역 사령관에게 배상을 하는데, 사람 하나 죽일 때마다 말 한 마리를 벌금으로 내면 그만이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청산된다. 놈들은 살인자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죽은 한족에게 돌아갈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유가족에게 돌아갈 것도 없었다.

그러니 말 한 마리면 한족쯤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었다. 처녀를 잡아가든 총각을 잡아가든 관할 지역의 원나라 관리에게 말 한 마리를 내면 언제든지 데려갈 수 있었다. 모든 한족의 주인은 그 지역 몽골족 사령관이었다.

한족들은 이같은 소문을 믿지 않았다. 더구나 궁벽한 시골인 성도 사람들이야말로 이 모든 것이 그저 소문에 불과하려니 여기며 결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을 확인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도에 진주한 몽골군은 소문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그들은 한족을 노비처럼 부리고 짐승처럼 여겼다. 여자들을 보는 대로 겁탈했다. 치마를 내리는 데 조금이라도 늦거나 주춤거리면 그들은 칼을 쳐들었다. 가축은 걸핏하면 끌어갔다. 몽골군만이 아니었다. 위구르나 사마르칸트에서 들어온 서역인들조차 제멋대로 굴었다. 그들은 알량한 돈을 빌려주고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챙겼다. 돈을 갚지 못하면 한족들의 아내와 딸,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데려갔다.

또한 강남 지방까지 유람 오는 고려인들도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려인 왕족들인 그들은 떼지어 다니면서 민폐를 끼치고, 풍치 좋은 곳이면 며칠씩 들어앉아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다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지역의 관리들이나 백성들은 등골이 휠 정도로 공물을 바치거나 길을 쓰는 등 갖은 노역에 동원되었다.

몽골놈들이야 애당초 숫자가 많지 않으니 그런대로 피해가며 산다지만 그놈들에게 붙어먹고 사는 위구르족, 거란족, 여진족, 그리고 고려인이 더 무서웠다. 이놈들은 몽골군이 부여한 권한으로 제 멋대로 후려먹었고, 권한 밖의 일도 서슴지 않았다.

 

정말이지 살아가기 힘든 나날이었다. 젊은이들이 모여 저항하려 했지만, 몽골군은 너무나 강했다. 몽골군을 직접 죽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어쩌다 횡포를 일삼는 위구르인 한 놈을 잡아죽이는 날이면 곧바로 몽골 기마군이 나타나곤 했다. 그들이 뿌연 흙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왔다가 한 차례 지나가면 그로써 모든 게 끝이 났다. 사건 현장의 십리 안에 있는 남성들은 마차바퀴보다 키가 크기만 하면 즉석에서 처형되었고, 여자들은 어린아이나 노인을 제외하고는 짐승처럼 엮여 어디론가 끌려갔다. 끌려가는 여자들은 저 장성 너머 유목민의 거친 땅으로 끌려가 양을 치거나 소를 치는 노예로 일한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소문을 확인할 만한 한족조차 없었다.

몽골군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풀도 자라지 않았다. 더 나쁜 것은 놈들은 꼭 길을 놔두고 곡식이 한창 자라는 밭으로 말을 타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한족들의 목숨이 걸린 그 소중한 밭을 몽골군들은 무슨 초원이라도 되는 양 풍우같이 질주하곤 했다. 말굽을 보호한다는 핑계였지만 대부분 초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실컷 말을 달려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몽골군은 군사 한 명당 말을 서너 마리 이상 끌고다니고, 보급부대란 이름으로 양떼와 소떼까지 몰고다녔기 때문에 보리밭이고 밀밭이고 옥수수밭이고 남아나질 않았다.

 

그런 중에 남송 지역을 중심으로 이상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촉땅의 유민들은 밤이 되면 몽골군의 눈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들어 이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이곳 촉땅에는 유비(劉備)라는 영웅이 살았다. 한나라 중산정왕의 후예인 이 분은 북방 흉노족과 동이족, 강족이 창궐하던 때에 자랑스러운 한족의 나라 촉한을 건국하셨다. 북쪽에서는 동이족인 조조(曹操)가 황제를 위협하면서 기마군을 이끌고 우리 한족을 괴롭히고 있을 때, 하늘도 속이는 천하의 군사(軍師) 제갈량(諸葛亮)이 나타나 우리의 영웅 유비를 도와 적을 무찔렀다.…

 

몽골 치하에서 신음하던 촉땅의 한족들은 조조에 맞서 한나라 부흥이라는 기치를 쳐들었던 유비라는 한 인물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이렇게 하여 삼국지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시간으로 끝나던 이야기가 마을을 지나고 강을 건너다니면서 조금씩 불어났다. 없던 이야기도 들어가고, 유비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빠지고 조조를 비웃고 손권을 골려먹는 줄거리가 자꾸만 삽입되어 한족들의 한을 풀어주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다 끝내지 못할 만큼 이야기는 길어져만 갔다.

처음에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 삼국지를 들었지만 나중에는 대여섯 살 어린아이들까지 모여들었다. 장소도 시골 사랑방이며 헛간 같은 데 숨어 말하던 이들이 차츰 저자거리로 나서서 길가는 객을 상대로도 이야기했다. 어쩐 일인지 몽골군들은 삼국지나 수호지가 민간에 퍼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공물(貢物)뿐, 한족들이 무엇을 말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삼국지가 흉노족, 강족, 동이족, 선비족, 오환족 같은 북방민족을 싸잡아 깎아내리면서 한족을 드높이는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웃어넘겼다. 특히 수호지 같은 무협 활극에 대해서는 더욱 깔깔거리며 비웃었다. 그런 너희들이 어째서 우리한테 졌느냐, 그렇게 깔볼 뿐이었다.

 

오늘 이름난 이야기꾼 태사룡이 삼국지를 시작한다는 소문이 나자 촉땅에 사는 어린이, 지나가던 승려, 장사꾼, 어부 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어 어느새 마당 가득 들어찼다. 나무그늘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햇살을 피해 추녀로 들어가거나 태사룡의 뒤쪽으로 가 앉기도 했다. 두어 명은 일산까지 받치고 뙤약볕에 앉았다.

“아이구, 이제 좀 숨을 쉴 만하군. 촉땅은 너무 더워서 살기가 어려워. 난 원래 황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남쪽 더위는 견디기 정말 어렵다니까. 안그런가?”

태사룡은 호상(胡床)을 당겨 앉으며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에게 객쩍은 이야기를 먼저 던졌다. 그 사이 한 동자(童子)가 큰 바가지 하나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다녔다. 그때마다 후르륵 하고 곡식을 붓는 소리도 나고, 딸랑 하고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도 났다. 이야기값으로 저마다 성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다들 가난하게 사는 만큼 큰돈이 나오지는 않았다.

“어이구, 다들 피죽만 얻어먹은 몰골이군. 오늘은 다행히 황태자가 났다고 몽골군들이 감시를 하지 않으니 마음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같군. 빌어먹을, 밤마다 틈을 내어 이야길하다 보면 어떤 때는 열흘이 지나도록 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니깐. 오늘은 서둘러서 해시(亥時;오후 9:30-11:30)까지는 끝내야지.”

태사룡은 동자가 이야기값을 거두는 동안 거기 모인 사람들 면면을 살폈다. 남루한 옷을 걸친 걸승이 두 명 보이고, 칼을 찬 무사 두 명도 보였다. 원래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몇몇 혈기 있는 젊은이들은 몽골군 몰래 칼을 벼려 들고다녔다. 그렇다고 그 칼로 몽골군에 대항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멋으로 차고 있을 뿐 날이 서지도 않은 것이었다. 앞줄에는 꾀죄죄하게 생긴 아이들이 손에 잘 익은 복숭아를 한 개씩 들고와서 나란히 앉았다. 복숭아는 이야깃값으로 대신 낼 것이다.

“자넨 어디서 왔는가?”

태사룡이 걸승 한 사람을 지목해서 물었다.

그는 앉은 채로 합장을 하고 대답했다.

“이름은 주원장(朱元璋)이고, 장강 중류인 합비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거기는 조조, 유비, 손권의 격전지였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몽골군이 많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워낙 먹고살기 힘들어 절에 들어갔지요.”

태사룡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른 걸승을 가리켰다.

“저요?”

“그래. 넌 어린 나이에 벌써 중이 되었구나?”

“이름은 팽형옥(彭瑩玉)이라고 하는데요, 저 역시 먹고살기 힘들어 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서수휘(徐壽輝)하고 솜 장사나 해볼까 합니다.”

“그래? 중이면 동냥으로 빌어먹지 왜 장사를 하려는가?”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에 누가 적선을 하나요?”

“그래그래, 어떻게라도 먹고살아야지. 그래, 서수휘 넌 성도에서 무슨 솜 장사를 한다고 그러나? 날씨가 추운 북방에나 가야 솜옷을 사입지? 그런 건 몽골놈들이나 고려놈들한테 팔라구.”

그러자 서수휘라는 소년이 일어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목화는 강남에서 잘 되기 때문에 여기서 면포를 사다가 북방으로 올라가 팝니다. 이문이 크게 남습니다.”

“기특하구나. 너희들 나이는 몇이냐?”

“팽형옥이하고 저는 모두 열다섯 살입니다.”

태사룡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에는 나이가 제법 든 사람을 지목했다.

“댁은 어디서 오셨소?”

태사룡의 눈길을 받은 사람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강호를 오가는 협객 곽자흥(郭子興)입니다.”

“쯧쯧. 호걸 협객이 실은 장강의 수적(水賊)을 가리키는 말이라. 불쌍한 한족을 털어먹지 말고 지나가는 몽골족이나 고려놈들을 상대로 도적질을 한다면 좋으련만, 감히 그러지는 못할 테지?”

곽자흥은 뒷머리를 긁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맨앞줄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곽자흥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넌 왜 일어났느냐?”

“저는 커서 진짜 협객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몽골놈들을 다 때려잡을 겁니다. 또 몽골놈들한테 붙어사는 고려인, 위구르인, 강족 티베트놈들까지 다 치고싶습니다.”

“어린 애가 제법이구나. 너 몇 살이냐?”

“아홉 살입니다.”

“그래. 삼국지를 잘 들었다가 나중에 한족의 나라를 꼭 일으켜 다오.”

이때 동자가 이야기값을 다 걷었는지 묵직해진 바가지를 들고, 또 돈대신 받은 곡식을 담은 자루를 끌며 안으로 들어갔다.

태사룡은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더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햇빛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장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진우량(陳友諒)입니다. 올해 스물넷이옵니다. 원래 삼국지를 좋아하는데 태사룡 선생님 삼국지가 특이하다고들 하길래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태사룡은 함박 웃음으로 화답하고는 부채를 척 폈다.

“그래. 나는 일흔 살이나 먹은 유자(儒者)라. 안 읽은 책이 없건만 나는 이 나라 몽골 밑에서는 무위도식하는 놈팽이지. 거렁뱅이 취급이나 받을까, 할 일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삼국지나 이야기하며 겨우 먹고살지만, 그래도 꿈은 있어. 너희들 어린아이, 거지, 창녀, 어부, 농사꾼, 장사꾼, 수적, 걸승. 다 좋아. 몽골군 밑에서 출세한 놈이 역적이지 너희들이야 올바른 한족이지, 암. 너희들한테 우리 한족의 미래가 달려 있어. 그러니 삼국지를 들으면서 분심(忿心)을 기르고 한편으로 희망을 가져야 해. 언젠가는 몽골군을 몰아내고 중원에 한족의 나라를 높이 세운다, 대한(大漢)의 깃발을 콱 꽂는다, 이 생각을 잊지 말란 말이야. 안 그러면 삼국지는 들으나마나야.”

태사룡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숨소리까지 죽이며 귀를 모았다. 그러는 동안 갖가지 모양의 뭉게구름이 서쪽 하늘에서 일어났다꺼졌다 했다. 촉땅에 밀어닥쳤던 전란의 소용돌이처럼, 유비와 제갈량의 말 한마디에 헉헉거리며 달렸던 촉군의 함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