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 전 10권 중 1권에 나오는 십상시 관련 부분이다.
삼국지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 나온 번역본, 윤문본, 창작본 모두 모화 사대사상에 빠져 있는 것들이다.
조조에 관한 폄하, 유비에 관한 근거없는 미화 등으로 역사의 본질을 훼손한 것이다.
내 삼국지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 진실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 젊은 패기로 써낸 글이다.
나 역시 <천년영웅 칭기즈칸>을 쓰지 않았더라면 북방민족의 에너지와 문명, 문화를 알지 못했을 것이며, 그렇다면 <태사룡의... 삼국지>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현문미디어 판본이며, 전자책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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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後漢) 말, 황제는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정권은 환관들의 손에서 좌지우지되었다. 환관들은 어떻게 하든지 황제에게 미인을 갖다바쳐 늘 바쁘게 만들어 놓아야 그 틈에 새어나오는 권력을 받아먹는다. 천하를 다 훑어서라도 미인을 구하고, 아까워하지 말고 갖다바쳐 황제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묶어두어야 한다.
황제가 이처럼 환관들의 꼭두각시처럼 놀아나자 보다 못한 대장군 두무와 태부 진번이 환관을 일소하려 했지만, 사전에 누설되어 도리어 그들이 제거되고 말았다. 대장군 무리를 제거하고 군사력까지 장악한 환관들은 더욱더 활개를 쳤다. 특히 건석을 필두로 장양・조충・봉서・단규・조절・후람・정광・하운・곽승 등 열 사람을 '십상시(十常侍)'라고 했다. 이 십상시가 장차 수많은 백성을 전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 삼국시대의 진앙이다.
하긴 한나라는 이미 후한에 들어서면서 내내 망조가 들어 있었다. 이런 나라는 가급적 빨리 망해주어야 백성들이 편하다. 하지만 소인배들은 망해가는 사직마저 붙들어 놓고 일단 저희들의 사리사욕을 챙긴다.
백성들이 편하려면 낡은 왕조는 얼른 망하고 건강하고 힘찬 새 왕조가 일어서야 하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나라가 망하고 상나라가 서고,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서는 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종주국이 지리멸렬했기 때문에 전투랄 것도 없이 우르르 몰려가 접수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이고, 주나라 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주나라가 망하고 싶어도 제후들 실력이 고만고만하다 보니 누가 나서서 냉큼 먹어치우질 못했다. 주나라는 사실상 서주에서 동주로 넘어오면서 무기력해졌고, 일개 제후국만도 못하게 쪼그라들었지만, 이후로도 춘추시대니 전국시대니 해서 수백 년 간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는 걸 진시황이 겨우겨우 수습하여 통일시켰던 것이다.
진나라가 망할 때 역시 누가 삽시간에 장악했더라면 백성들이 편했을 텐데 여기저기서 내가 주인이오 하고 일어선 자들이 많아 끝내 항우와 유방이 맞붙었고, 거기서 유방이 이겼다. 그런데 이 한나라도 얼마 못가 흉노한테 굽실거리다가 전한이 망해 신나라를 거쳐 후한으로 넘어가고 요즘에는 환관들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지각 있는 백성들은 다 알았다. 이쯤해서 제발이지 나라가 망해버리고 새 인물이 등장해 새 왕조를 열어주기를.
그도 그럴 것이 나라가 망할 때는 정의로운 군자들이 집권하는 게 아니라 눈치 빠르고 비겁하고 시기 질투로 무장한 소인배들이 권력을 잡는다. 이 무렵 한나라가 딱 그랬다. 거의 모든 관직은 이 환관 열 놈이 뇌물을 받고 팔아먹었다. 그러면 뇌물로 관직을 산 놈은 그 벼슬보다 낮은 관직을 팔아먹고, 이렇게 하청에서 하청으로 내려가다 보면 막다른 곳에 힘없는 백성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마지막 기회밖에 잡지 못한 지방관리들은 위에 층층으로 바치고 바친 뇌물의 열 배, 백 배, 천 배를 백성들한테서 뜯어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더이상 뜯어먹을 하청업자를 갖지 못한 백성들이었다. 이 백성들의 원성은 날이갈수록 하늘을 찔렀다. 백성들이라고 해서 다 굶어죽을 수는 없다. 몇이야 굶어죽을 수도 있지만 다 죽을 수는 없다. 그러면 이들은 마침내 떼를 지어 일어나 이 부패 구조의 맨 상층에 있는 황제를 뜯어먹으려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만이 황제를 끌어내릴 수 있고, 따라서 왕조가 바뀐다. 백성이 하늘인 이유가 여기 있다. 백성은 하늘이지만, 황제는 천자 즉 하늘의 아들일 뿐이다.
어떤 왕조든 말기에 이를수록 민란이 늘어나는데, 한나라도 이즈음 백성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면 국가의 수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한나라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은 탐관오리뿐만이 아니었다. 황제가 음탕무도해지자 자연재해까지 줄을 이었다. 백성들은 양기를 잃은 환관들이 지나치게 설치기 때문에 날씨가 불순(不順)하다고 수근거렸다. 말하자면 환관은 양기가 아닌 음기를 가진 자들이요, 이들의 세력이 지나쳐 음기가 돈다는 것이다. 소문을 들은 환관들은 즉시 대책을 세워야 했다. 소인들은 행동이 빠르다. 성인 군자의 단점이라면 행동이 느려터진 것인데, 소인들은 속도로 승부한다.
환관들은 지체없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백성들이 들고일어나면 누구도 버틸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잘 안다.
이 날 각사에 모인 환관 대표이자 권력을 틀어쥔 십상시들은 잇따르는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일거에 찍어누를 희생을 찾고 있었다. 오랜 가뭄이 풀리질 않자 십상시들은 누군가에게 태축(太祝 : 제사관)을 맡기고 기우제를 지낼 생각이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좋고, 오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태축에게 죄를 물어 백성들의 분기를 풀어줄 속셈이었다.
다른 이들의 분분한 주장을 조용히 듣고 있던 조절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유씨(劉氏) 종친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황제의 집안에서?”
조절의 제안을 듣고 환관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렇다고 힘 있는 종친을 아무나 고르자는 건 아닙니다. 폐하와 관계가 소원한 자라면 유씨 종친이라도 무관하지 않을까요? 이 나라에 거렁뱅이 같은 유씨가 어디 한둘입니까? 사돈에 팔촌에 어깨 넘어 그냥 아무 유씨나 찾는 겁니다. 유씨라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러자 곽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절에게 물었다.
“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오. 누구냐가 문제지만. 그래, 생각해둔 인물이라도 있소?”
“아무렴요. 직급이 너무 없어도 안 되고, 너무 높아도 안 되고. 마침 사공(司空)으로 있는 유홍(劉弘)이란 자가 있는데, 아주 적격입니다. 이 사람 조상 중 유정(劉貞)이라는 자가 주금(酎金)을 적게 바쳤다는 이유로 작위를 박탈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 작위를 박탈당하면 다시는 고위직에 임명되기 어려운 법인데, 유홍은 유학을 좀 공부했다고 해서 사공직에 올라섰잖습니까? 부덕한 자의 후손이 공로 없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충분히 면직시킬 수 있는 명분도 있고, 또 이런 자에게 태축을 맡긴다고 갑자기 비가 올 리도 없지 않습니까?”
조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장양이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히나 유씨 종친놈들이 우리 환관을 못마땅해하는 눈치던데, 아주 잘 됐소. 기우제는 지내봤자 비가 내리지 않을 건 뻔하고, 기우제를 잘못 지낸 문책을 하면서 차제에 조정에서 거들먹거리는 유씨 종친들을 죄다 지방으로 쫓아냅시다. 저 남쪽으로 가면 사람을 잡아먹는 종족들이 산다는데.”
“황제가 가만히 계실까요?”
“농담하시오? 황제가 지금 가뭄이 드는지 장마가 지는지 알기나 하는 줄 아시오? 유씨 몇 놈 없어진들 황제는 아무 것도 몰라요. 혹 품던 계집이 한두 년 없어졌다면 모를까.”
“하긴 그렇지요. 그러면 기우제는 언제 지낼까요?”
“빠를수록 좋소이다. 민심이 흉흉하니 어서 태축을 정해 죄를 물어야지요. 따로 택일할 것없이 이 달 보름에 지내기로 합시다. 그믐이나 초하루에 지내면 음기가 지나쳐 혹 비가 올지도 모르잖소? 그러니 그런 날은 피해야지요.”
“그렇고말고요.”
십상시들은 기분 좋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라를 말아먹기로 작정한 만큼 뒷일은 모르겠고, 당장 편한 걸 찾기로 한 것이다. 이 환관들이 장차 어떻게 돼 가는지, 대체 그들이 무슨 짓을 어떻게 해나가는지 소인들의 일처리 과정을 잘 지켜보자.
이따위 소인놈들은 나라가 망할 무렵이면 귀신처럼 나타나 망할 나라를 반드시 망하게 해준다.
......(중략)
아 참, 잊을 뻔했다. 초선을 안아든 이 황제가 바로 앞에서 십상시들에 둘러싸여 황음무도하게 지낸다고 한 그 황제, 바로 영제(靈帝)다. 아는 분은 잘 알겠지만 영제라는 시호는 다 이유가 있어서 받은 것이다. 시법(諡法)에 영(靈)이란 이름을 쓰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 게으른 자를 영이라 한다.
- 죽어서야 비로소 뜻을 달성하는 것을 영이라 한다.
- 죽어서야 신의 능력을 볼 수 있는 것을 영이라 한다.
- 어지럽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영이라 한다.
- 음란한 제사로 귀신을 더럽히는 것을 영이라 한다.
- 귀신을 잘 아는 것을 영이라 한다.
- 죽어서야 귀신의 능력을 볼 수 있는 것을 영이라 한다.
- 난을 다스리되 손해가 없도록 하는 것을 영이라 한다.
- 상명을 받들지 않는 것을 영이라 한다.
- 덕이 있되 총명한 것을 영이라 한다.
나라를 완전히 망하게 하진 않았지만 한 일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장차 망할 씨앗은 뿌린 것이다.
<동아일보 / 나관중의 민족주의 시각에 편승한 사대주의와 모화사상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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