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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소설 토정비결

내 작품 <소설 토정비결>을 말한다

- 작가가 쓰는 작품 이야기

『소설 토정비결』

 

이재운

<신동아 2009년 5월호>

 

『소설 토정비결』을 쓴 지 어느 덧 18년이 지났다. 하도 긴장한 소설이라 원고 말미에 ‘끝’이라고 적으며 시원해 하던 게 엊그제인양 기억이 생생한데, 그러고도 오랜 세월 거듭 되새김질을 하다보니 글도 세월에 휘어지는지 그새 다듬고 고쳐 1부에서 2부까지 늘어났다.

 

처음 이 소설을 기획할 때는 토정 이지함이 누군지, 그가 쓴 토정비결이 무슨 책인지 잘 알지도 못했다. 무식이 용기라고 닥치는대로 책을 읽다보니 어렴풋하게 그려지는 게 있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열심히 쓰고, 겁 없이 세상에 내놓았다. 서른두 살에 시작하여 서른네 살인 1991년에 1부를 펴내고, 훨씬 더 지난 2000년에 ‘당취’란 제목으로 경향신문 연재를 끝내고 2부까지 펴냈으니 이 작품이 완성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원래 1부인『소설 토정비결』은 3권, 2부인『당취』는 5권으로 출간되었는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 2부를 대폭 줄이고, 권수가 많아지는 부담을 줄이려고 각부 2권으로 나누었다. 권당 2000매가 훨씬 넘는 분량이다보니 독서에 부담이 될런지도 모르지만, 8권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4권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편하리라고 믿는다.

 

소설이 그저 재미있고 약간의 감동을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길고 긴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심스럽고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미라 두고두고 되씹고 또 생각해보고, 뒤적거리다보니 오늘에는 엉뚱한 결과물까지 덤으로 얻었다. 칭기즈칸이나 여불위, 삼국지 같은 대하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도 결코 놓지 않은 의심이 있었으니, 『소설 토정비결』을 쓰면서 품었던 ‘운명’이라는 게 혹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의심을 풀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비교 분석한 결과 약 5년만에 그런 것은 없다는 종지부를 찍고, 이 의심의 끝에서 성격이 형성되는 원리를 발견, 바이오코드라는 성격분석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고나니 그간 내가 다뤄온 소설 속 인물들이 제대로 그려져 있는지 궁금했다. 옛 문헌과 자료 등을 종으로 횡으로 살펴 인물 성격을 들여다보니 잘못된 것이 하나둘 드러났다. 물론 내 소설에서만 잘못 그려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실존 인물 묘사를 자의적으로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그림을 그리면서 주인공을 화가 자신의 얼굴과 비슷하게 그려내는 일이 많은 것처럼, 작가들도 주인공의 성격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많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왜 태평양전쟁으로 한창 공출이 심할 때 누군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을 보고, 같은 시기에 누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 했을까. 이와같은 의심이 이른 마지막은 그들의 성격이 다르며, 이 성격이란 방어기제의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이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성격이 행동 유형 즉 운명을 이끈다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띄었다.

 

이후 인물 성격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나는 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격 묘사부터 바로잡기 시작했다. 『소설 토정비결』도 그런 관점에서 더 다듬고, 다른 작품도 인물 성격이 올바른지 꾸준히 검토하고 있다.

20여년 전에 가까운 그 시절, 젊음만 믿고 큰 고민없이 다가간 작품이지만 『소설 토정비결』이 도리어 내게 큰 화두를 안겨 준 셈이다. 인생의 어느 하루, 어느 한 시각인들 귀하지 않으랴만 이 작품에 몰두한 1990~1991년은 내겐 매우 특별한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