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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소설 토정비결

소설 토정비결 사전

초판본 <소설 토정비결>을 낸 직후 부록 두 권을 붙였다.

하나가 <소설 토정비결 사전>이고 다른 하나가 <진본 토정비결>이다.

조선시대 중기를 다루는 역사소설이다보니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와 이를 어렵게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 별도의 사전을 만든 것이다.

이 사전을 만드는 김에, 진짜 토정비결이 뭔가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진본 토정비결을 번역해 붙였다.

 

여기에는 <소설 토정비결 사전>을 올린다.

기록된 쪽수는 초간본 기준으로, 현재에는 의미가 없다.

상중하 역시 초간본 기준이다. 지금의 4권 기준으로 볼 때  상중하가 1권, 2권으로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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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1. 사즉생 생즉사(死卽生生卽死)

 

p.11

 

*서기:徐起. 1523(중종 18)-1591(선조 24). 호는 고청초로(孤靑樵老), 구당(龜堂). 서경덕, 이중호, 이지함을 사사(師事)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제자백가는 물론 기술의 이론까지 통달하였으며, 선학(禪學)을 좋아하였다. 특히 이지함을 만나면서 유학(儒學)이 정도(正道)임을 깨닫게 되었다. 홍천과 지리산, 계룡산 근처로 거처를 옮겨다니면서 오로지 학문과 강학에만 전념하였다. 저서로 <고청유고(孤靑遺稿)>가 있다.

소설에서는 그의 일대기 중 얼마간 승려 생활을 했었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승려로 설정하였다. 실제로 서기와 토정의 사이는 소설에 나오는 만큼 가까웠으나, 그의 사상과 철학은 작가적 시각에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지금도 공주의 공암에는 그의 학문을 기린 충현 서원이 있고, 토정과 함께 수도했다는 토굴이 남아 있다.

 

p.12

 

*토정 이지함:李之函. 1517(중종 12)-1578(선조 11). 기인(奇人).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 호는 수산(水山) 또는 토정(土亭). 색(穡)의 후손이며, 현령 치(穉)의 아들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지번(之蕃) 밑에서 글을 배우다 뒤에 서경덕의 문하에 들어가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었다. 후일 수리(數理), 의학, 복서(卜筮), 천문, 지리, 음양, 술서(術書) 등에 달통하게 된 것도 서경덕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1573년(선조 6) 주민의 추천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청하(靑河:지금의 포천) 현감이 되었고, 재직 중 임진강의 범람을 예견해 많은 생명을 구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듬해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으나 1578년 아산 현감으로 다시 등용되었고 부임한 즉시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걸인들을 구제하였으며, 노약자와 기인(飢人)을 구호하였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냈는데 그 때문에 토정 이라는 호가 붙게 되었다. 토정이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퍼지자 찾아오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고 1년 신수를 보아달라는 요구가 심해짐에 따라 책을 지었는데 그것이 <토정비결>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국의 산천을 두루 다니며 명당과 길지를 점지하였으며 <농아집(聾啞集)>을 저술하여 난을 구제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당대 성리학의 대가 조식(曺植)이 마포로 찾아와 그를 도연명에 비유하였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저서에 <월령도(月影圖)>와 <현무발서(玄武發書)>가 있는데, 지금도 해독하는 이가 거의 없다.

 

*현감(縣監):조선 시대 최하위의 지방 행정 구획 단위였던 현(縣)에 파견된 종6품직의 지방관.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강화 작업의 일환으로 설치하였다. 지방 수령 중 가장 낮은 직급이나 전국적으로 140원(員)이 파견되어 지방에 파견된 수령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임기 제한 1,800일이며 절제도위(節制都尉)의 군직을 겸임하였는데 점차 감치(減置)되어 120여 원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천문(天文):1)천체(天體)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

2)천문학

 

*구곡성(九斛星):토정 이지함의 별자리로 설정하였으나 실제 관련은 없다. 그러나 동양 점성술에 따르면 어느 한 개인의 일생을 지배하는 별이 있다고 한다.

 

p.13

 

*탈속:1)속태(俗態)를 벗고 세속(世俗)을 초월함. 탈진(脫塵).

2)범용(凡庸)에서 넘어섬. 초세(超世).

 

*도반(道伴):수도를 함께 하는 친구.

 

*사즉생 생즉사(死卽生生卽死):죽음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죽음이라는 뜻으로 반야(般若) 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의 논법과 같다. 따라서 토정의 죽음은, 서기에게는 새로운 탄생이 된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p.14

 

*상평청(常平廳):조선 시대 흉년시 기민 구제(飢民救濟)를 위해 비축 곡물 및 자금을 관리하던 관서. 평소에는 상평청이라 하였으나 기근이 들어 구황이 시작되면 진휼청(賑恤廳)이라 불렀다. 조선 중기부터 본격적으로 중앙에 상평청을 두고 각 지방의 구제 곡물을 관장하게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유명무실하게 되어 1626년(인조 4) 대동법을 시행하던 경기청(京畿廳)과 함께 선혜청(宣惠廳)에 부속되었다. 조선 후기 상평청의 자금은 기근 구제라는 고유 사업에 쓰이기보다는 주로 경기 5참(五站:송도, 장단, 파주, 고양, 홍제원)의 사신 접대를 위한 비용으로 전용되는 일이 많았다.

 

*동헌(東軒):고을 원이나 감사, 병사, 수사 등이 공사를 처리하던 대청이나 집.

 

p.15

 

*성상(星霜):1)세월

2)햇수

 

*행주좌와(行住坐臥):1)다니는 것, 머무는 것, 앉는 것, 눕는 것. 곧

우리들이 날마다 하는 동작. 4위의(威儀)라 한다.

2)달라져서 평상(平常)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p.16

 

*해사:소설 <토정비결>의 가공 지명.

 

p.18

 

*갑자(甲子):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첫 자리. 소설에서는 60갑자, 즉 60년이라는 세월을 뜻하고 있다.

 

p.20

 

*가부좌(跏趺坐):앉는 법의 한 가지. 전(全)가부좌, 본(本)가부좌라고도 한다. 먼저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놓고,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는 것.

 

*걸인청(乞人廳):토정 이지함이 아산 현감 시절 빈민 구휼 사업으로 설치했던 곳.

 

 

2. 면천(免賤)

 

p.23

 

*입춘(立春):태양의 황경이 315도에 와 있을 때인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 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벌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춘축(春祝),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한편 대궐에서는 내전 기둥과 난간에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 썼다.

입춘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쳐보기도 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 해 풍작이 된다고도 한다.

 

p.24

 

*심충겸: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통감(通鑑)>:<자치통감(資治--)>. 중국 주나라 위열왕부터 후주 세종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엮은 책. 1084년 송나라 사마광이 저술하였다.

 

*<소학(小學)>:8세 내외의 아동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만들어진 수신서(修身書). 송나라의 주자가 엮은 것이라고 씌어 있으나 실은 그의 제자 유자징(劉子澄)이 주자의 지시에 따라 편찬한 것이다. 1187년(남송 순희 14)에 완성되었으며, 내편(內篇) 4권, 외편(外篇) 2권의 전 6권으로 되어 있다. 일상 생활의 예의 범절,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 효자의 사적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소학>은 유교 사회의 도덕 규범 중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을 초록한 것으로 유학 교육의 입문서였다. 주자는 <소학>은 집을 지을 때 터를 닦고 재목을 준비하는 것이며, <대학>은 그 터에 재목으로 집을 짓는 것이라고 비유하여 <소학>이 인간 교육의 바탕이 됨을 강조하였다.

 

P.25

 

*<금강경(金剛經)>:<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1권으로 구마라습이 번역하였다. 이 경전은 현장(玄獎)이 번역한 <대반야경> 600권 중의 제9회(會) 제577권인 능단금강분(能斷金剛分)의 별역(別譯)으로 <금강반야경>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반야 계통의 경전들 중에서는 <반야심경> 다음으로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는데, 특히 선종에서는 5조 홍인(弘忍) 이래로 중요시되어 왔다. 이 경전은 대승 불교의 최초기에 성립된 것으로 대승 사상이 고정화되기 이전이 것으로 생각된다. 즉 공(空) 사상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실제 문구 속에서는 공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는 점이 반야부 경전으로서는 특이한데, 이는 아마도 당시에는 공이라는 술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또 소승에 대한 대승이라는 의식도 명료하지 않다. 즉 대승과 소승이라는 두 관념의 대립이 성립되기 이전의 경전임이 분명하다. <금강경>은 보통 32분으로 단락지어 제목을 붙이며, 그 사상의 골자는 철저한 공 사상에 입각한 윤리적 실천이다. 예를 들면 구도자는 사물에 집착 없이 보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구도자, 훌륭한 사람들은 발자취를 남기려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구도자가 만약 나는 사람들을 인도했다고 하는 생각을 일으켰다면, 그는 진실한 구도자가 아니다 고 하는 것 등이 그렇다. 이러한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자아와 다른 사람의 자아라는 대립 감정을 없애야 한다. 이것을 대립의 발무(撥無) 또는 공이라 하는데, 그러나 여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또 다른 대립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공은 공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금강경>은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즉 여래가 현실로 깨달아 보이신 법에는 진실도 없고 허망도 없다 고 한 것이다. 즉 집착 없는 경지에 도달하면, 그 행위가 자연히 선에 합치되어 어떠한 대립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취지의 표현이다.

 

p.29

 

*<사기(史記)>:한나라 때의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중국의 고대 역사책. 중국 정사와 기전체의 시초.

 

*<근사록(近思錄)>:1370년(공민왕 19) 이인민(李仁敏)이 중국의 <근사록>을 복간한 책. <근사록>은 원래 송나라 유학자인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이 주돈이(周敦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정몽(正蒙)> 등 일상 생활에 긴요한 장구만을 골라 편찬한 일종의 성리학 해설서로서, 송학(宋學)에 있어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말 원나라의 성리학이 수입되자 <근사록>도 함께 들어와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춘추(春秋)>:오경(五經) 가운데 하나. 최초의 편년체 역사서로 춘추 시대 노나라 은공(隱公)으로부터 애공(哀公)에 이르기까지 12공(公) 242년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본래는 단행본이었지만 지금은 주석서인 춘추삼전(春秋三傳:公羊傳, 穀梁傳, 左氏傳)의 부속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춘추 라는 말은 시간의 추이를 상징한 춘하추동의 약어로 1년간 이라는 뜻인데, 본래는 주 왕조 치하 각 제후국의 독자적인 편년사를 가리키는 통칭이었다. <춘추>의 경문 속에서는 사건이나 인물이 공자의 예와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 이념 아래 비판 또는 평가되고 있다. <공양전>, <곡량전>, <좌씨전> 가운데, <좌씨전>은 기록된 사실과 그에 관련된 사실(史實)을 통하여 역사적, 실증적으로 춘추 대의를 구명하고 있으며, <공양전>, <곡량전>은 경문을 그 자체로 직접 해석하여 기록된 사실의 내재적 의미를 구명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이래 <좌씨전>을 유교의 주요 경전으로 삼고 애독하였다.

 

*<예기(禮記)>:오경(經)의 하나. 예경(禮經)이라 하지 않고 <예기>라고 하는 것은 예(禮)에 대한 기록 또는 주석(註釋)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예기>의 성립에 대하여는 그 설이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공자는 3대(夏, 殷, 周) 이래의 문물 제도와 의례, 예절 등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무로 삼았고,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예를 익히고 실천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공자 사후, 각국으로 흩어져 공자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에 의하여 예에 대한 기록이 쌓여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생전의 스승에게서 들은 이야기며 학설, 스승과 나눈 대화 등을 문자화하였고, 다시 다음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제자의 제자 또는 그 문류 후학들에 의하여 기록된 예설(禮說)들이 늘어나 한나라에 이르러서는 200여 편이나 되었다. 이즈음 전문적으로 예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나타났는데, 대덕(戴德), 대성(戴聖) 같은 이들이 예설들을 수집, 편찬하였다. <예기>는 여러 사람이 잡다하게 기록한 것을 모은 책이기 때문에 내용이 체계가 없고 번잡한 느낌이 들며 편차(編次) 배열에도 일정한 원칙이 없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예학의 흥성과 함께 뛰어난 학자들에 의해 수많은 주석서가 쓰여졌다.

 

 

3. 앞날을 읽는 사람

 

p.37

 

*춘추관(春秋館):고려, 조선 시대의 시정(時政)의 기록을 관장하던 관청. <경국대전>의 춘추관 직제는 영사(영의정이 겸임) 1인, 감사(좌우의정이 겸임) 2인, 지사(정2품) 2인, 동지사(종2품) 2인, 수찬관(정3품), 편수관(정3품-종4품), 기주관(정5품, 종5품), 기사관(정6품-정9품)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문관으로 임용하되 다른 관부의 관원이 겸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춘추관직을 겸한 관원을 넓은 의미의 사관이라고 하였다. 사관의 수는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예문관의 참하직인 봉교 2인, 대교 2인, 검열 4인, 도합 8인이 전임사관으로 날마다 일어나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들이 좁은 의미의 사관으로서 이들을 가리켜 사관 이라고 하였다. 사관은 대개 새로 문과에 급제한 유망한 청년들이 임명되는데 직위는 낮았지만 항상 왕의 곁을 떠나지 않고 국가의 중대 회의에 모두 참석하였기 때문에 그 직임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사관의 임무 중 중요한 것은 사초(史草)의 작성이었다. 이들은 매일매일의 시사(時事)를 직필하여 사초를 작성하고 이를 종합하여 시정기(時政記)를 편수하였으며, 인물의 현부득실(賢否得失)과 비밀을 직필하여 개인적으로 보관하였다. 이같은 사초는 국왕도 볼 수 없었으며, 실록 편찬의 중요 자료가 되었다. 그러나 왕권이 미약할 때는 실록마저도 권신들에 의해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안명세:安明世. 1518(중종 13)-1548(명종 3). (본래 이름은 安名世)

정순붕(鄭順朋) 등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많은 현신(賢臣)들이 숙청되자, 자세한 전말을 춘추 필법에 따라 직필한 특정기를 작성하였다. 1548년(명종 3) 이기 등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이른바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찬집할 때 을사년 당시 그와 함께 사관으로 있었던 한지원(韓智源)이 시정기의 내용을 이기, 정순붕에게 밀고함으로써 체포되어 국문을 당하였다. 문제가 된 시정기에는 인종의 장례식 전에 윤임 등을 죽인 것은 국가적인 불행이라는 지적과, 이기 등이 무고한 많은 선비들을 처형한 사실, 그리고 이를 찬반하던 선비들의 명단 등이 들어 있었다. 안명세는 국문을 당하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이기, 정순붕의 죄악을 폭로하였고, 사형에 임해서도 의연한 모습을 남겼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하면서 신원(伸寃)되어 직첩(職牒)을 다시 돌려받았다.

 

p.38

 

*사대부(士大夫):고려, 조선 시대 문관 관료의 총칭. 사대부는 중국 고대 주나라 시대에 천자나 제후에게 벼슬한 대부(大夫)와 사(士)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그러나 사대부는 문관 관료뿐 아니라 문무 양반 관료 전체를 포괄하는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성리학은 실천 윤리인 고대 유교에 불교, 도교의 형이상학을 가미한 새로운 유학으로서 사대부층의 지배 이념이요, 사회 윤리, 가족 윤리였다. 사대부들은 이러한 성리학의 교양과 경전 해석을 체득한 독서층이었다. 이러한 중국 사대부층의 성리학은 원나라가 고려를 통제하던 13세기에 고려에 흘러들어왔다. 그리하여 고려 말에 이르러 신흥 사대부층을 중심으로 지배 사상을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바꾸고 농업 기술을 발달, 관리의 양성, 선발 제도를 개방하면서 조선 왕조가 건국되었다.

사대부들은 성리학적인 이념 위에 국가의 제도, 의례를 바꾸고 국왕을 견제하면서 이들의 계층적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여론 정치를 수행하였다. 이들은 정치의 중심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돌려 향촌 지배 질서 확립에 힘썼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체제 유지에는 성공하였으나 근대화가 늦어지고 문약에 흘러 국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조선 건국 초의 법전인 <경제육전>의 원전과 속전, 그리고 그 뒤의 법령을 종합하여 만든 조선 시대 통치의 기본이 되는 통일 법전이다. 세조는 당시까지의 모든 법을 전체적으로 조화시켜 육전 상정소를 설치하고 통일 법전의 편찬에 착수하였다. 세조의 뒤를 이어 성종 대 1471년 1월 1일부터 법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신묘대전>이다. 그 후 1481년 9월에 법전을 재검토하여 1485년부터 시행하였는데 이것이 <을사대전>이다. 이것을 시행할 때에 앞으로 다시는 개수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으로 규정지었다. 그리하여 영세불변의 조종성헌(祖宗成憲)으로서 그 시대를 규율하게 되었다. 오늘날 온전히 전해오는 <경국대전>은 <을사대전>이며, 그 전의 것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을사대전>은 우리 나라에 전해오는 법전 중 가장 오래된, 유일한 것이다. 그 편제와 내용은 <경제육전>과 같이 6분 방식에 따라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의 순서로 되어 있고, 각 전마다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하여 규정하고, 조문도 <경제육전>과는 달리 일반화되어 있어 명실상부한 법전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과거(科擧):조선 시대 과거에는 소과, 문과, 무과, 잡과의 네 종류가 있었으며, 또한 정기시와 부정기시의 구분이 있었다. 정기시로는 3년에 한번 열린 식년시가 있으며, 부정기시로는 증광시, 별시, 알성시, 정시, 춘당대시 등이 있었다. 이 중 식년시와 증광시 때에는 소과, 문과, 무과, 잡과가 모두 열렸으나 별시, 알성시, 정시, 춘당대시 때에는 문과와 무과만이 열렸다.(여기서는 소과와 식년 문과만을 설명하려 한다.)

소과에는 생원시와 진사시가 있는데 초시, 복시 두 단계의 시험에 의해 각기 1백인을 뽑아 생원, 진사의 칭호와 함께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고시 과목은 생원시의 경우 사서의(四書疑) 1편과 오경의(五經義) 1편으로 정해졌으나, 정조 때 사경의만 시험 보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진사시의 경우는 부(賦) 1편, 고시(古詩), 명(銘), 잠 중 1편으로 정해졌지만, 실제로 명, 잠이 출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생원, 진사는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다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정상적인 길이었다. 생원, 진사의 자격만으로 관직을 얻기는 어려웠지만, 그것으로도 면역의 특권이 주어져 사회적으로는 대우를 받았다.

문과에는 원칙적으로 생원, 진사가 응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선 시대에 일반 유생인 유학(幼學)에게도 문과의 수험 자격이 주어졌다. 조선 시대의 문과는 식년 문과와 기타의 문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식년문과에는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 시험이 있었는데, 이중 초시, 복시는 초장, 중장, 종장으로 나누어 고시하였다. 이를 동당삼장(東堂三場)이라 하는데, 1일의 간격을 두고 시취하는 것이 관례였다. 고시 과목은 초장에서 사서의, 오경의, 논(論) 중 2편과 표(表), 전(箋) 중 1편, 종장에서 책(策) 1편을 각각 고시하였다. 초시에는 관시(館試), 한성시, 향시가 있었다. 관시는 성균관 유생에게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여기에서 50명을 뽑았다. 한성시는 서울에서 실시한 것으로 서울의 일반 유생과 당하관 이하의 관원이 주로 응시하였는데 여기에서 40명을 선발하였다. 문과 향시는 8도의 유생을 대상으로 각 도에서 150명을 뽑았다. 문과 초시 합격자 240인을 식년 봄에 서울에 모아 다시 고시하여 33인을 뽑는 것을 복시 또는 회시라 한다. 복시 또한 초시와 같이 초장, 중장, 종장 3단계 시험이 있었다. 초장은 강경 시험으로 문과 초시의 제술 시험과는 다르지만, 중장, 종장은 같았다. 강경시는 수험생에게 사서삼경의 각 1대문, 즉 7대문을 배송강경(背誦講經)의 방법으로 고시하였다. 여기서 합격되어야만 중장, 종장의 수험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후에 사림파가 많이 진출, 강경론이 우세해지면서 강경만으로 인재를 뽑기도 하였다.

전시는 복시 합격자 33인과 직부전시인(直赴殿試人)을 시어소의 전정에서 고시하여 등급을 정하는 시험이었다. 대책, 표, 전, 잠, 송 등 10과목 중 1편을 고시하도록 되어 있으나 주로 책이 많이 출제되었다.

 

p.39

 

*도선:道詵. 827(흥덕왕 2)-898(효공왕 2). 신라 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에 곡성 동리산의 혜철을 찾아가서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에는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명산을 두루 다니며 수도를 하였으며, 전남 옥룡산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언제나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의 명망을 들은 헌강왕은 궁궐로 초빙하여 법문을 들었다. 72세의 나이로 죽자 효공왕은 요공(了空) 선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제자들이 옥룡사에 징성혜등탑을 세웠다. 일설에 의하면 도선은 당나라로 유학가서 밀교 승려 일행으로부터 풍수설을 배워왔다고 한다. 도선은 승려로서보다는 음양풍수설의 대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도선이 역사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고려 태조에 의해서였다. 875년(헌강왕 1)에 도선은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에서 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 왕들은 그를 극진히 존경하였다.

저서로 <도선비기> <송악명당기> <도선답산가> <삼각산명당기>등이 있다.

 

*오행(五行):만물을 조성하는 오종(五種)의 원기(元氣)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태고천(太古天)에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라 불리는 다섯 개의 혹성이 있었다. 각각 1년 사계를 통하여 여러 운동을 보고 그 운행이 천의(天意)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이 사고를 기본으로 하여 각각 소장 허실(消長虛實)을 명료히 하므로 지상계에 있어 천변지이(天變地異), 기타 만상이 원인과 결과를 추구하려고 확립한 것이 오행설이다.

이와 같이 타의 천체 운행이 지구에 대하여 강약의 차는 있어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만월의 만(滿)과 결(缺) 조(潮)의 간만에 나타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이(理)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가 영향을 받는 것이라면 일개의 소천지인 인간에도 결코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금일 서양의 점성술에 있어서도 그 과정의 차는 있어도 원점으로 하는 것은 같은 이치이다. 이 목화토금수의 오행은 각각 상생(相生) 상극(相剋)의 관계에 의하여 다른 사성과 관련을 가지고 어느 하나도 고립하여 작용을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오행 상생 상극의 이법이다.

또 동양 철학의 견지에서 존재하는 것은 모두 기에 의하여 구성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음양 이기(陰陽二氣)에 가하면 양인 목화, 음인 금수가 각각 토를 핵심으로 하여 나타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주 명리학은 태양의 회전과 지구의 자전과의 관계에 의하여 나타난 연월일시에 비장(秘藏)된 천(天)의 기와 질(質)을 간지 오행 및 음양 이법을 기본으로 하여 인간의 운명을 추구하려는 학술로 동양 독자의 것이다. 간지에 있어서는 천간 오행은 기로 하고 지지 오행을 질로 하여 사주 팔자의 음양 오행의 생극합의 원리에 비추어 추명한다. 음양은 한서(寒暑)를 주사(主司)하고 오행은 사계의 기를 지배하는 것으로 목은 산에 있는 목이 아니고 기(氣)적으로 사람으로 이것을 지배되지 않는 것이 없고 널리 천지에 충만한 최중요의 존재이다.

(뒤에 음양 오행 참조)

 

십간오행분포도

음양 오행 목

음양 오행

辰, 戌

丑, 未

 

오행상생표

 

오행상극표

 

*금덕(金德):금(金)이 가지고 있는 오행 상의 기운을 이르는 말.

 

*수덕(水德):수(水)가 가지고 있는 오행 상의 기운을 이르는 말. 나라나 왕조를 오행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건국 연대, 지리적 위치, 왕조의 성씨 등으로 근거를 삼는다.

 

*금생수(金生水):오행의 상관 관계의 하나로 금이 수를 생하는 것. 오행의 금은 경금(庚金) 신음(辛金)의 차이는 있어도 지하 광천의 원(源)으로 수(水)를 생하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금은 수를 보고 수를 생부(生扶)한다. 이 경우 생하는 금이 약세가 되고 역으로 생하게 되는 수는 강세가 된다. 금은 이와 같이 수기를 생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어떤 경우는 명식중(命式中)에 수를 보지 않아도 암(暗)으로 잘 수를 생하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고래로 금은 수원(水源)이라 하며, 일간이 수의 오행이 되는 것에 있어서 금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수생목(水生木):오행 상생설의 하나. 오행설에 의하면 수는 지하 세류의 수가 되어 토를 자(滋)하고 목의 수분 섭취를 도와 수목 성장을 촉진한다. 이런 이치에 의하여 수는 목을 보면 본질적으로 목을 키우는 성질을 갖는다. 이 관계는 수는 목을 보지 않으면 이 상태가 되지 않지만, 그러나 암(暗)으로 생하는 상황에 있다. 즉 수는 목을 보고 목을 생하고 이 상호 관계에 의하여 수가 약해지고 목은 생을 받아 강해진다.

 

*<주역(周易)>: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알려져 있다. 공자가 극히 진중하게 여겨 받들고 주희가 역경이라 이름하여 숭상한 이래로 <주역>은 오경의 으뜸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주역>은 상경(上經), 하경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익은 단전(彖傳) 상하,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 등 10편을 말한다. 역에는 이간(易簡), 변역(變易), 불역(不易)의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첫째 이간이란 하늘과 땅이 서로 영향하고 만물을 생성하는 이법은 실로 단순하며 그래서 알기 쉽고 따르기 쉽다는 뜻이다. 변역이란 천직간의 현상, 인간 사회의 모든 사행(事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이고, 불역이란 그래도 결코 변하지 않는 줄기가 있으니 예컨대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해와 달이 갈마들어 밝히고 부모는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그를 받들어 모시는 것과 같다. <설문(說文)>에는 역이라는 글자를 도마뱀이라 풀이하고 있는데, 역(易)자는 그 상형으로 일(日)은 머리 부분이고 아래쪽 물(勿)은 발과 꼬리를 나타낸다. 또 역은 일월(日月)과 음양을 말하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역의 작자에 대해서는 <주역> 계사전에 몇 군데 암시가 있다.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고 신농씨가 64괘로 나누었으며 문왕이 괘에 사(辭)를 붙여 <주역>이 이루어진 뒤에 그 아들 주공이 효사(爻辭)를 지어 완성되었고 이에 공자가 십익을 붙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대개의 통설이다.

역을 점서(占筮)와 연결시키고 역의 원시적 의의를 점서에 두는 것은 모든 학자의 공통된 견해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대사(大事)에 부딪히면 그 해결을 복서(卜筮)로 신의(神意)를 묻는 방법을 썼다. 이렇게 처음에는 점서를 위하여 만들어진 역이 시대를 거치면서 성인 학자에 의하여 고도의 철학적 사색과 심오한 사상적 의미가 부여되어 인간학의 대경 대법(大經大法)으로 정착된 것이다.

 

p.40

 

*사구(司寇):1)고대 중국 주나라 때 형벌과 경찰의 일을 맡아보던 관직.

2)조선조의 형조판서의 별칭.

 

P.51

 

*선종(禪宗):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한다. 달마 대사가 중국에 전한 종지(宗旨). 선종이란 말은 부처님의 설교(說敎)를 소의(所依)로 삼는 종파를 교종(敎宗)이라 하는데 대하여 좌선을 닦는 종지라는 뜻이다. 당나라 말기에서부터 선종, 교종의 세력이 대립하게 되었고, 교(敎) 밖에 선(禪)이 있다는 아집으로 교회 별전의 참뜻을 잃게 되어, 도리어 선종이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

선종은 석존에게서 정법의 유촉을 받은 가섭으로부터 보리 달마까지의 28조가 있고, 보리 달마가 520년 중국에 와서 혜가에게 법을 전하였는데, 혜능을 제6조로 하는 남종(南宗)과, 신수를 제6조로 하는 북종(北宗)으로 갈리었다. 북종은 오래지 않아 후손이 끊어지고 혜능의 1류(流)만이 번성하여 5가(家) 7종(宗)을 내었다. 원나라, 명나라에 이르러서는 다른 종파가 다 쇠퇴하였으나, 선종만은 오히려 번성하였다.

우리 나라에 선종이 들어온 것은 784년(신라 선덕여왕 5년) 당나라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받아 온 도의(道義)에 의해서이다. 도의를 초조(初祖)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을 비롯하여 9산문이 성립되어 번성했으나, 고려 때는 쇠퇴하였다. 고려 명종 때 불일 보조(佛日普照) 국사가 조계산에 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하여 선종을 일으켰으나 그 뒤부터 승행이 타락되면서 차차 쇠퇴하였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태고 보우(太古普愚)는 중국 호주 하무산(霞霧山)의 석옥 청공의 법을 받아 왔는데, 그 법계만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조사(祖師):1종, 1파의 선덕(先德)으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 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혜능:慧能. 638-713. 중국 스님. 선종의 제6조. 남해 신흥 사람.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땔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다 어느 날 장터에서 <금강경>을 읽는 것을 듣고 발심하였다. 그 후 제5조 홍인에게 찾아가 선의 깊은 뜻을 전해 받았다. 676년 남방에서 교화를 펴다 조계산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하였다. 무 태후가 효화 왕제의 글을 보내어 초청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가지 않고, 당 선천 2년 8월에 죽다.

 

P.52

 

*발심(發心):1)발보리심(發菩提心)의 약칭. 위 없는 보리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2)뒤에는 변하여 속(俗)에서 수승한 마음을 내는 것도

발심이라 한다.

 

*상(相):외계에 나타나 마음의 상상(想像)이 되는 사물의 모양. 곧 모양,

꼴, 겉매 등이라 함.

 

4.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p.55

 

*절기(節氣):태양년을 태양의 황경(黃經)에 따라 24등분하여 계절을 세분한 것. 황경이란 태양이 춘분에 지나는 점을 기점으로 하여 황도에 따라 움직인 각도를 말하며, 황경이 0도일 때를 춘분, 15도일 때를 청명이라고 한다. 이렇게 15도 간격으로 24개 절기가 나누어진다. 24절기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이다.

 

p.56

 

*궁합(宮合):혼인할 때 음양 오행설에 입각하여 신랑될 사람과 신부될 사람의 사주를 보아 배우자로서 두 사람의 적격 여부를 점치는 방법. 궁합에는 12지에 따른 겉궁합과 오행에 따른 속궁합이 있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혼인 성립에 필요한 절차의 하나로 남녀의 생년월일시에 의한 궁합과 택일의 관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궁합을 보아 사주와 오행에 살(煞)이 있으면 불길하다고 하여 결혼을 하지 않았다. 궁합은 혼인 의식의 한 절차인 납채(納采)의 과정에서 보게 된다. 즉 신랑측으로부터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기재한 혼장인 사주단자를 받은 신부측에서 일관(日官), 점사(占師)로 하여금 길흉기부를 점치게 하는데, 이때 궁합을 함께 본다. 신부측에서 점괘가 좋으면 연길(涓吉)이라고 쓴 봉서인, 이른바 택일단자를 신랑측에 보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혼인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p.61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말로 현상 세계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규정할 수 없다는 뜻.

 

p.67

 

*방장(方丈):1)사방으로 1장(丈)되는 방. 또 사원의 주지가 거처하는 방.

옛날에 유마힐 거사가 사방 10척 되는 방에 3만 2천

사자좌를 벌려 놓았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2)1)의 의미가 달라져서 방장에 있는 사람. 곧 주지를 일컫게

되었다.

 

*청안(靑眼):기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눈초리. 또는 구도 의지가 강한 수행자의 눈빛.

 

*납자(衲子):또는 납승(衲僧). 납의(衲衣)를 입은 중이란 뜻. 선종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죽비(竹비):선가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되는 도구. 죽비자라고도 한다. 약 40-50cm 길이의 대나무를 길이 3분의 2쯤은 가운데를 타서 두쪽으로 갈라지게 하고, 3분의 1은 그대로 두어 자루로 만든 형태가 보통이다. 좌선할 때 입선(入禪)과 방선(放禪)의 신호로 사용되며, 공양할 때도 죽비의 소리에 따라 모든 대중들이 행동을 통일하게 되어 있다. 한편 선가에서 수행자의 졸음이나 자세 등을 지도하는 약 2m 정도의 큰 죽비도 있는데 이를 장군죽비라고 한다. 경책사(警策師)가 이것으로 어깨 부분을 쳐 소리를 내어 경책하는 데 사용한다.

 

*명초(明草):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용화사 역시 허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암자 용화사와 그 절에 기거하는 명초 스님에서 따온 것이다.

 

*선풍(禪風):선가(禪家)의 풍속.

 

*법란(法亂):역사상 불교 교단이 받은 박해. 중국에서 특히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란 이라 하여, 북위(北魏)의 무제, 북주(北周)의 무제, 당의 무종(武宗)과, 후주(後周)의 세종 때의 법란을 대표적으로 친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태종 때와 연산군 때 법란이 있었다.

 

*수좌(首座):선종의 승당에서 대중의 우두머리가 되는 이. 제일좌(第一座), 좌원(座元), 선두(禪頭), 수중(首衆)이라고도 함. 우리 나라에서는 선원에서 참선하는 스님을 수좌라 한다.

 

*참선(參禪):선법을 참구함. 스스로 좌선하거나 또는 자기가 존경하는 선지식에게 가서 선을 참학(參學)하는 것.

 

p.68

 

*비구계:비구가 지켜야 하는 250계.

 

p.69

 

*득도(得度):1)도(度)는 범어 바라밀을 번역한 말. 생사의 고해를 건너

이상향인 열반에 이르는 것. 바라밀을 얻는 것을 득도라

한다.

2)1)의 의미가 변하여 중이 되는 것을 말한다. 출가하여 중이

되고 계행(戒行)을 닦는 것은 생사해를 건너는 시초이고,

미래에 반드시 이상(理想)의 저쪽 언덕에 도달할 것이므로

득도라 한다.

 

*주장자(朱杖子):주릿대 등으로 쓰는 붉은 칠을 한 몽둥이. 주로 참선을 할 때 졸음을 쫓기 위해 사용한다.

 

*초발심(初發心):보리를 구하는 마음을 처음 일으킴. 천태종에서는 10주위(住位)의 초위(初位), 화엄종에서는 10신위(信位)의 최후위(最後位)를 말한다.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불교 예불문(禮佛文)에 나오는 말로 계정혜(戒定慧)의 세 가지 뜻으로 향을 올린다는 뜻임.

 

*천수경(千手經):<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 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陀羅尼經)>의 준 이름. 1권. 당(唐)의 가범달마가 번역. 이것이 지금 읽히고 있는 대비주(大悲呪)이다. 이밖에 <천안천비관세음보살다라니신주경(千眼千臂觀世音菩薩陀羅尼神呪經)> 2권, 당의 지통이 번역한 것이 있으며, 또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모다라니신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모陀羅尼身經)> 당의 보리유지가 번역한 것이 있다.

 

*반야심경(般若心經):<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1권으로 당의 현장이 번역했다. 원전의 범본(梵本)은 대본(大本)과 소본(小本)의 2종이 전해지고 있다. 소본이 이에 해당된다. 반야부의 여러 경전들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중심 사상을 간략하게 압축하여 제시한 극히 짧은 경으로서, 주요 내용은 반야, 5온(蘊), 제법(諸法), 6근(根), 6진(塵), 계(界), 12인연, 4체(諦), 무소득, 열반, 반야바라밀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주(呪)이다. 609년에 중국에 전해져 일본의 법륭사에 보존되어 있다.

 

p.70

 

*능엄경(능嚴經):원명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

萬行首능嚴經)>이다. 인도의 나란타사에서 비장(秘藏)하여 인도 이외의 나라에는 전하지 말라는 왕명에 의해 당나라 이전에는 중국 및 우리 나라에 전래되지 않았다고도 하며, 중국에서 후대에 찬술한 위경(爲經)이라는 설이 있다. 소화엄경이라 불리면서 널리 독송되었던 이 경은 전 10권이며, 각 권에 수록된 내용들이 모두 한국 불교의 신행(信行)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하안거(夏安居):또는 우안거(雨安居), 좌하(坐夏), 하행(夏行), 하롱(夏籠)이라고도 한다. 비구들이 여름 장마철 90일 동안 한곳에 있으면서 수행하는 기간.

 

*동안거(冬安居):겨울 동안에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 도업을 수행하는 것. 한국, 중국, 일본의 선사에서 여름 안거 이외에 10월 16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 외출을 금하고 좌선하며 수행한다. 그러나 인도 등지에서는 여름 안거뿐이다. 동양 3국에서 겨울 안거를 하는 것은 그 시기가 좌선하기에 알맞는 까닭도 있겠지만, <범망경>의 고입난처계(故入難處戒) 중에서 불제자는 항상 두타행을 하며 겨울과 여름에 좌선할 것이니라 한 데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p.71

 

*불법(佛法):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법

 

*도첩(度牒):또는 도연(度緣), 사부첩(祀部牒)이라고 한다. 승려가 출가할 때 조정에서 발급하는 허가증. 이것은 본래 중국에서 세금을 면하기 위하여 출가하는 이가 많아 그 폐단을 막기 위하여 실시한 제도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조선 시대에 이 제도가 행해졌다. 지금도 승려증이 있기는 하지만 신분 증명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p.72

 

*법호(法號):법휘(法諱), 법명(法名), 계명(戒名)이라고도 한다. 불문에 들어온 사람에게 주는 이름. 후세에는 죽은 사람의 시호도 법호라고 하였다.

 

*정심(正心):조선 스님. 구곡 각운(龜谷覺雲)의 법을 잇고 또 명나라에 가서 총통 화상의 법인을 전해왔다. 조선 태종이 불법을 사태할 때에 머리를 기르고 황간 황악산에 들어가 고자동 물한리에 숨었다. 뒤에 선(禪)을 벽송 지엄(碧松智儼)에게, 교(敎)를 정련 법준(淨蓮法俊)에게 전했다.

원래는 벽송 지엄이 가진 구도자적 이미지를 차용하여 서기의 이미지로 바꾸었다.

 

p.73

 

*화두(話頭):선종에서 고측(古則), 공안(公案) 등의 1절이나, 1측을 가리켜 화두라 한다. 종장(宗匠)의 말에서 이루어진 참선자가 연구하여야 할 문제. 두(頭)는 어조사.

 

 

5. 기방에서 찾은 법열(法悅)

 

p.75

 

*법열(法悅):법을 듣거나 생각하거나 행하거나 함으로써 생기는 위없는 기쁨.

 

*이지번:李之番. ?-1575(선조 8). <토정비결>로 유명한 지함의 형이며, 선조 때 영의정 산해(山海)의 아버지이다. 천문 지리에 모두 정통하였다. 인종 때 문음으로 추천되어 벼슬길에 올랐으나 당시 윤원형이 권력을 잡아 횡포하므로 벼슬을 버리고 단양 구담에 집을 짓고 수양하며 세월을 보냈다. 항상 푸른소(靑牛)를 타고 강가를 오르내리고 또 칡넝쿨로 줄을 만들어 구담의 양쪽 벽에 붙들어 매고 날아가는 학을 만들어 매달아 타는 모습에 신선이라 불렸다. 선조 즉위 후 청풍 군수를 지냈다.(소설에서는 명종대 특정기 사건으로 청풍 군수를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부제조(副提調):조선 시대 잡무와 기술 계통의 관아에서 겸직으로 각 관아를 통솔하던 관직. <경국대전> 이전(吏典) 승문원 조에 도제조는 정1품, 제조는 2품 이상, 부제조는 통정대부인 정3품 당상의 관원을 일컬었다고 되어 있다. <경국대전>에 의하여 부제조를 설치한 동반 관아를 보면 승문원은 정수가 없고 사옹원에 5인, 내의원에 1인, 상의원에 1인, 전옥서에 1인이 있었다. 그러나 서반 관아에는 부제조를 두지 않았다. 실제로 지번의 관직은 군수에 머물렀다.

 

p.76

 

*의금부(義禁府):조선 시대의 특별 사법 기관. 의금부의 사법 기능으로 첫째, 전제 왕권을 옹호를 들 수 있는데, 왕권의 확립과 유지에 필요한 일체의 반란 및 음모, 그리고 난언(難言)이나 요언(妖言)을 처단하였고, 왕권에 도전하거나 왕명을 거역하거나 왕의 심경을 거스르는 경우, 의금부가 동원되어 냉혹한 응징을 가하였다.

둘째, 조선 시대의 기본 윤리인 유교 도덕에 어긋나는 행위, 즉 강상죄(綱常罪)를 의금부가 전담하여 치죄하였다.

셋째, 왕의 교지를 받들어 추국하는 최고의 사법 기관으로 다른 법사에서 추핵(推劾)하던 사건을 재심 혹은 시정한다든지 이관받아 재판하며, 신문고를 주관하여 실질적인 삼심 기관의 구실을 하였는데, 의금부의 후신이 고등 재판소가 되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넷째, 대외 관계 범죄 전담 기관으로 외국 공관의 감시, 밀무역 사범의 단속, 외국인의 범죄 등을 취급하였다.

다섯째, 양반 관료의 범죄를 취급하였다.

의금부는 이러한 사법 기능 외에도 기타 여러 임무를 담당하였는데, 왕명을 받들어 특별 임무를 수행하거나 그밖의 잡무에 종사하였다. 즉 왕명으로 실정을 파악하거나 소방서에 해당하는 금화도감(禁火都監)의 구성원으로 의금부의 관원이 참여하였으며, 고사장(考査場)의 금란 임무를 수행하였고, 나례 의식(儺禮儀式)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금부도사는 의금부의 종5품직에 해당하는 벼슬아치이다.

 

 

6. 특정기(特定記)

 

p.89

 

*특정기: 안명세 참조.

 

*민이: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안명세의 동생, 이지함의 약혼녀로 설정되었다. 모시던 상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정순붕을 죽인 갑이라는 종이 모델이 되었다.( 정순붕 참조)

 

p.93

 

*조신:曺伸. 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한명회:韓明澮. 1415(태종 15)-1487(성종 18). 호는 압구정(狎鷗亭), 사우당(四友堂). 두 딸이 장순왕후(예종비), 공혜왕후(성종비)이다.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에게 접근, 무사 홍달손 등 30여 명을 추천하여 심복으로 삼게 하였으며,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의 참모로 큰 공을 세워 정난 공신이 되었다. 1456년(세조 2)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을 좌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도승지에 올랐다. 권람, 신숙주 등과 인척 관계를 맺으며 세조 치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세조 즉위 이래 성종조까지 고관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는데, 세조는 특히 그를 총애하여 나의 장량 이라고까지 하였다. 네 차례의 1등 공신으로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아 마음껏 부를 누렸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윤비 폐사에 관련되었다 하여 부관참시되었다가 뒤에 신원되었다.

 

*무오사화(戊午史禍):1498년(연산군 4) 김일손 등 신진 사류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 4대 사화 중 첫번째로 일어났던 사화이며, 사초 문제로 발단되었기 때문에 무오사화(戊午史禍) 라 한다.

성종은 학문을 좋아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중앙 정계를 장악하고 있던 훈구 관료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사림들을 등용하였다. 그 중에서도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영남 사림파를 불러들이게 되었다. 훈구파와 신진 사류는 주의와 사상이 서로 달라 대립하였고, 그 갈등이 날로 심화되어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적대 관계로 진전되어갔다.

무오사화는 1498년 <성종실록> 편찬 때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중국 진나라 항우가 초의 의제를 폐한 것과 단종을 폐위, 사사한 사건을 비유하여 은근히 단종을 조위한 글)과, 훈구파 이극돈이 세조비 정희왕후의 국상 때 전라 감사로 있으면서 기생과 어울렸다는 불미스러운 사실을 사초에 올린 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이에 세조의 신임을 받았던 노사신, 윤필상 등과 모의한 유자광은 김종직이 세조를 비방한 것은 대역 부도한 행위라고 상계하였다. 학자와 문인들을 경원시하였던 연산군은 유자광의 상소에 의하여 김일손 등을 신문한 끝에 이 사건이 모두 김종직이 교사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연산군은 이미 죽은 김종직을 대역죄로 부관참시하고, 김일손 등을 능지처참하였으며 정여창, 정희량 등 수많은 사림파들을 귀양보냈다. 이 옥사로 많은 신진 사류가 희생되어 그 사기도 크게 위축되었다.

 

*김종직:金宗直. 1431(세종 13)-1492(성종 23). 호는 점필재(점畢齋). 고려 말 정몽주,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 사림의 조종이 되었다. 문장, 사학에도 두루 능하였으며 절의를 중요시하여 조선 시대 도학을 이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후일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수록, 무오사화의 단서가 된 그의 <조의제문>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 의제와 단종을 비유하면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것으로 깊은 역사적 식견과 절의를 중요시하는 도학자로서의 참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그의 도학 사상은 제자인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유호인, 조위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조광조가 그 학통을 그대로 계승받았다.

저서로는 <점필재집> <유두류록(遊頭流錄)> <청구풍아(靑丘風雅)> <당후일기(堂後日記)> 등이 있다.

 

*조위:曺偉. 1454(단종 2)-1503(연산군 9). 호는 매계(梅溪). 7세 때에 시를 지을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다.

1498년(연산군 4)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종직의 시고(詩稿)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오랫동안 의주에 유배되었다가 순천으로 옮겨진 뒤 죽었다. 김종직과 친교가 두터웠던 초기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배중에도 저술을 계속, <매계총화>를 정리하였다. 저서로는 <매계집>이 있다.

 

*김일손:金馹孫. 1464(세조 10)-1498(연산군 4). 호는 탁영(濯纓), 소미산인(少微山人).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정여창, 강혼 등과 깊이 교유하였다. 주로 언관(言官)에 재직하였으며, 훈구파의 불의, 부패 및 권귀화(權貴化)를 공격하는 반면, 사림파의 중앙 정계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의 현실 대응 자세는 매우 과감하고 진취적이었는데, 그 결과 1498년에 유자광, 이극돈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에서 조의제문의 사초화 및 소릉복위 상소 등으로 능지처참의 형을 받았다.

저서로 <탁영집>이 있다.

 

*정여창:鄭汝昌. 1450(세종 32)-1504(연산군 10). 호는 일두(一두). 김굉필과 함께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논어>에 밝았고 성리학의 근원을 탐구하여 체용(體用)의 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490년까지 지리산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 1495년 안음 현감에 임명되어 선정을 베풀었는데, 특히 공명 정대한 그의 판결은 유명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 때 경성으로 유배,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되었다. 저서로 <일두유집>이 있다.

 

*사림파(士林派):16세기 훈구파와 대립한 재야 사류를 배경으로 한 정치 세력. 조선 초기에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을 가리켜 사류, 사족이라고 지칭하던 것이 16세기에 접어들어 사림이란 용어로 그 집단성이 더 부각된 것은 교육 제도의 발달로 재지 중소지주층의 지식인화가 촉진되고, 과거제를 통해 일정한 자격을 부여받는 수가 크게 늘어난 결과였다. 사림은 현직 관인보다 재야의 지식인들을 앞세우는 표현으로, 대과에 합격하여 벼슬에 나아갔다가 퇴직한 부류도 포함되지만 소과 합격자인 생원, 진사의 수적 비중이 컸다. 사림파는 신유학 중에서도 정주 성리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사림파의 정치적 활동으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향촌 질서의 재확립과 관련된 운동으로, 성종대에 김종직은 유향소 제도를 부활하여 <주례>의 향사례, 향음 주례를 시행하는 중심이 되도록 하였고, 중종대에 조광조는 주자의 여씨 향약을 고을마다 시행하고자 하였다. 이 일련의 운동은 조선 왕조 개창 후 농업 기술의 지속적인 발달로 농업 경제력이 신장되어 농촌 사회가 변화되었을 뿐더러, 새로운 부에 대한 관료제의 대응이 심한 사익 추구로 흘러 많은 모순이 있는 현실을 혁신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사림파는 군주 정치에 대한 인식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 즉 16세기 사림의 성리학적인 군주관은 군주가 진정한 정치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치인(治人) 을 위한 수기(修己) 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주자의 <대학>의 정신에 근거하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군주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주의 절대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후 조선 시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6세기의 사림은 정치적으로 훈신, 척신 계열과 대립하는 관계 속에서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규합되었다. 그러나 16세기 말엽 선조 즉위를 계기로 척신 정치가 일단 종식되고 사림이 관료로서 중앙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사림 사회가 학연에 따라 여러 정파로 나뉘는 변화를 일으켰다. 흔히 붕당으로 표현되는 이 정파의 분립은, 그러나 공도(公道)의 실현을 위해 정파간의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는 신유학의 새로운 붕당관으로 뒷받침되기도 한다.

 

p.94

 

*갑자사화(甲子士禍):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의 생모 윤씨 복위 문제로 훈구 사림파 중심의 부중 세력들이 화를 입은 사건. 성종비 윤씨는 왕비의 체모에 벗어난 행동을 많이 했다 하여, 1479년(성종 10) 폐하였다가 다음 해에 사사되었다. 연산군은 이 사실을 임사홍의 밀고로 알게 되고 윤씨 사사 사건에 관련된 성종의 후궁 엄, 정 두 숙의와 그 왕자들을 사사하였다. 연산군은 이어 윤씨 폐위, 사사 사건 당시 이를 주장한 사람이나 방관한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추죄하였는데 그 결과 윤필상, 이극균, 김굉필 등이 사형되었고 이미 죽은 한명회, 정창손 등이 부관참시되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이들이 연루되어 형벌을 받았다.

사치와 향략에 빠져 국가 재정이 궁핍하게 되자 연산군은 이를 메우기 위해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고, 공신들의 땅과 노비까지도 몰수하려 들었다. 이에 신하들은 왕의 부당한 처사에 제동을 가하려 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연산군의 방종을 충동질하며 자기 세력을 구축하려는 신하들도 있었다. 이러한 대립 상황 속에서 신하들은 궁중과 부중(府中) 두 편으로 갈라져 서로 반목, 대립하기에 이르렀고, 이때 임사홍은 궁중, 부중 양파의 대립 관계와 연산군의 복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이 사화의 결과 궁중 세력이 승리하여 정권을 잡고 신진 사류는 완전히 몰락하였다. 무오사화가 기성 훈구 세력과 신진 사류 세력의 투쟁이었다면, 갑자사화는 궁중 세력과 훈구 사림파 중심의 부중 세력과의 투쟁이었다. 특히 이 사화로 성종 때 양성된 많은 사림이 수난을 당하여 유교적 왕도 정치가 침체하고 학계가 위축되었다. 연산군의 폭정과 만행은 성균관과 사원을 유흥장으로 만들고, 훈민정음의 교습과 사용을 금하는 한편, 한글 서적을 불사르는 등 문화 정체와 인륜 질서의 파괴를 가져왔다.

 

*부관참시(剖棺斬屍):죽은 후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 대하여 극형을 추시(追施)하던 일. 원뜻은 관을 쪼개고 송장의 목을 벰.

 

p.95

 

*기묘사화(己卯士禍):1519년(중종 14) 남곤, 심정 등 훈구 재상에 의해 조광조, 김정, 김식 등 신진 사류가 화를 입은 사건. ( 조광조 참조)

 

*노사신:盧思愼. 1427(세종 9)-1498(연산군 4). 호는 보진재(보眞齋), 천은당(天隱堂). 1453년(단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박사에 선임되었다. 1465년 호조판서가 되어 최항과 함께 <경국대전>을 편찬하였고, 1476년에는 <삼국사절요>를 찬진하였으며, 1481년에는 서거정과 함께 <동국통감>의 수찬에 참여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도 총재하였다. 무오사화 때 윤필상, 유자광 등이 주동이 되어 김일손 등 사림파를 제거하는 논의를 할 때 세조의 총신이었다는 입장 때문에 미온적으로나마 동조하였지만 옥사가 확대되는 것을 극력 견제하여 사림파의 피해를 줄이는 데 힘썼다. 사옥(史獄)이 진행되는 도중 병사하였다.

 

*서거정:徐居正. 1420(세종 21)-1488(성종 19). 호는 사가정(四街亭), 정정정(亭亭亭). 천문, 지리, 의약, 복서, 성명, 풍수에까지 관통하였으며 문자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에 능하였다.

조선 초기에 문병(文柄)을 장악하였던 학자의 한 사람으로 그의 학풍과 사상은 이른바 15세기 관학(官學)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훈신의 입장을 반영하였다. 저술로는 시문집으로 <사가집(四佳集)>이 전하며, 공동찬집으로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경국대전> 등이 있고, 개인 저술로 <역대연표> <동인시화> <동인시문> <필원잡기(筆苑雜記)> 등이 있다.

 

*양성지:梁誠之. 1414(태종 14)-1482(성종 13). 호는 눌재(訥齋). 집현전 학자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고려사> 개찬에 참여하였다. 세종조부터 성종조에 이르기까지 6조에 걸쳐 역임하는 동안 그의 정치적 의견과 언론은 모두 시대를 일깨우고 후세의 귀감이 되었다. 사대주의에 물들지 않은 학자였으며, 군비에 대한 관심도 컸다. 또한 농정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의술의 발전, 보급에도 열심이었다. 저서로 <눌재집>이 있다.

 

*조광조:趙光祖. 1482(성종 13)-1519(중종 14). 호는 정암(靜庵). 김굉필에게 수학한 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아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1506년 중종 반정 이후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는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 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으며, 향촌의 상부 상조를 위하여 <여씨향약>을 8도에 실시하도록 주장하였다.

도학 정치에 대한 조광조의 주창을 계기로 당시의 학풍이 변화되었는데, 이것이 바탕이 되어 뒤에 이황, 이이 같은 대학자가 탄생될 수 있었다. 그의 도학 정치는 조선 시대의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놓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조광조는 현량과를 처음 실시하였는데 이를 통해 신진 사류들이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는 이들 신진 사류들과 함께 훈구 세력의 타도와 구제의 개혁 및 새로운 질서의 수립에 나섰다. 그러나 반정 공신들을 배척하는 이들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진 사류들의 급진적인 개혁은 마침내 훈구파의 강한 반발을 야기시켰고, 평소 신진 사류를 비롯한 조광조의 도학 정치와 과격한 언행에 염증을 느껴오던 중종은 훈구 대신들의 탄핵을 받아들였다. 결국 조광조, 김정, 김구 등 많은 신진 사류들이 투옥되었으며 훈구파의 득세로 사사되었다. 이 사건이 기묘사화이다.

이렇게 신진 사류들이 훈구파를 축출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세우려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 실패 원인은 그들이 대부분 젊고 또 정치적 경륜도 짧은 데다가 너무 과격하게 개혁을 이루려던 끝에 노련한 훈구 세력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었다.

 

*남곤:南袞. 1471(성종 2)-1527(중종 22). 호는 지정(止亭), 지족당(知足堂). 김종직의 문인이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서변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1506년 중종 반정으로 풀려났으며, 1519년 심정 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김정 등 신진 사림파를 숙청한 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에도 능하였으나 사화를 일으킨 인물이어서 후대 사림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저서로 <유자광전> <지정집>이 있다.

 

*심정:沈貞. 1471(성종 2)-1531(중종 26). 호는 소요정(消遙亭). 중종 반정에 가담, 정국 공신이 되었다. 1518년 형조판서의 물망에 올랐으나 조광조 등의 반대로 임명되지 못하여 원망을 품게 되었다. 다음 해 조광조 등이 위훈 삭제를 요구, 반정 공신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게 되자 조씨 전국(趙氏專國)이란 말을 궁중에 퍼뜨리고, 남곤, 홍경주 등과 모의하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경빈 박씨의 동궁 저주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와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자 유배되어 후에 사사되었다.

 

*김안노:金安老. 1481(성종 12)-1537(중종 32). 호는 희락당(希樂堂), 용천(龍泉).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가 몰락한 뒤 발탁되어 이조판서에 올랐고, 아들 희가 효혜공주와 혼인하자 권력을 남용하다, 1524년 탄핵을 받고 유배되었다. 1531년 재서용된 이후 실권을 장악하여 정적이나 뜻이 맞지 않는 자를 축출하는 옥사를 여러 차례 일으켰다. 이로 인해 윤원형, 윤원로도 실각 당하였다. 1537년 중종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의 폐위를 기도하다 발각되어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저서로 <용천담적기>가 있다.

 

p.96

 

*사주(四柱):난 해, 달, 날, 시의 네 육십 갑자(혼인이나 운수를 점치는

자료가 됨. 요즈음은 운명을 뜻하기도 함.

 

*음화(陰火):오행이 음에 속하는 화, 즉 정(丁). 양화는 병(丙)을 뜻한다.

 

*양수(陽水):양에 속하는 수, 즉 임(壬). 음수는 계(癸))를 뜻한다.

 

*중종 반정(中宗反政):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 1506년(연산군 12) 성희안, 박원종 등 이른바 훈구 세력이 임사홍, 신수근 등의 궁금(宮禁) 세력과 결탁하여 학정을 거듭하던 연산군을 폐위시킨 사건이다. 연산군은 당시 특권 관료층인 훈구 세력과 성종 때부터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신진 사류인 사림 세력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왕위에 올랐다. 그는 1498년 훈구 세력과 결탁하여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왕도 정치를 추구하는 사림파를 무오사화로 거세하였는데, 이로써 정치적 우세를 더욱 확고히 한 훈구 세력은 그 횡포가 더욱 심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연산군은 궁금 계열을 등장시켜 이번에는 훈구 세력의 경제 기반을 탈취하고자 1504년 갑자사화를 일으켰고, 이때 사림 계열도 희생되었다. 이러한 연산군의 학정은 궁금 세력과 결탁하여 이루어졌으므로 그를 축출하려는 움직임이 사림 계열에서도 있었으나 훈구 세력에 의하여 먼저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1506년 파직되어 한거 중인 전 이조참판 성희안과 박원종 등이 연산군의 폐추를 밀약하는 한편, 당시 인망이 높던 이조판서 유순정과 연산군의 사랑을 받고 있던 신윤무, 박문영, 장정 등이 호응을 하여 그 해 9월 연산군이 장단의 석벽으로 유람하는 기회를 노려 거사하였다. 정변이 성공하자 성희안 등은 성종의 계비이며 진성대군의 친어머니인 윤대비의 허락을 얻어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을 왕위에 올렸다. 이가 곧 중종이며 이 정변을 중종 반정이라 한다. 이로써 연산군의 학정은 끝났으나 정치의 주도권은 훈구 계열로 돌아갔다. 따라서 중종 이전부터 문제되어온 정치 체제의 모순에 대한 근본적인 시정은 이후에도 기대하기 어려워 이후 훈구, 사림 구 계열간의 대립이 재현되었다.

 

*정국 공신(靖國功臣):1506년(중종 1) 중종 반정의 공으로 봉하여진 공신. 박원종 외 104명이 이 칭호를 받았다.

 

*원종 공신(元從功臣):공신의 시상에 있어서 정공신 이외에 작은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 공신의 칭호. 이들 원종 공신은 각각 등급에 따라 녹권, 노비, 토지 등을 주었다.

 

p.100

 

*윤원형:尹元衡. ?-1565(명종 20).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세자(뒤에 인종)를 폐위하고 문정왕후의 소생인 경원대군 환을 세자에 책봉하려는 모의를 진행하여 세자의 외숙인 윤임과 알력이 생겨 외척간의 세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인종이 8개월 만에 죽고, 11세의 나이로 명종이 즉위하면서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자 이를 계기로 득세하였다.

윤임 일파를 숙청하기 위하여 이기, 정순붕, 임백령 등과 함께 음모를 꾸몄는데, 즉 임금(인종)의 병환이 위중할 때 윤임이 장차 제몸이 보전되지 못할 것을 알고, 계림군 유(留)를 세자로 세우려 하였다 는 내용이었다. 이에 문정왕후는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사사하였는데, 이 사건이 을사사화이다. 이어 1547년 양재역 벽서 사건을 계기로 송인수, 이언적, 정자 등 윤임의 잔당을 모두 숙청하였다. 영의정에 올라 온갖 영화를 누리던 중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실각하여 관직을 삭탈 당하고 강음에 유배되던 중 죽음을 당하였다.

 

*내의원(內醫院):조선 시대 왕의 약을 조제하던 관청. 내국(內局), 내약방(內藥房), 약원(藥院) 등으로 불렸다.

 

p.101

 

*사서오경(四書五經):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와 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기의 오경.

 

*부(賦):1)감상을 느낀 그대로 적는 한시체의 하나.

2)한문체의 하나. 글귀 끝에 운을 달고 대(對)를 맞추어 짓는 글.

3)과문(科文)의 하나. 여섯 글자로 한 글귀를 만들어 지음.

 

*송(頌):1)한문체의 하나.

2)시(詩)의 육의(六義)의 하나

 

*명(銘):한문체의 하나.

 

p.103

 

*성균관(成均館):조선 시대에 인재 양성을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국립 대학격의 유학 교육 기관.

<경국대전>에 명문화된 성균관 직제는 지사 1인, 동지사 2인, 대사성 1인, 사성 2인, 사예 3인, 직강 4인, 전적 13인, 박사 3인, 학유 3인, 서리 10인이다.

성균관 유생의 정원은 세종 때 2백인이었으며, 이 중 반은 상재생이라 하여 생언, 진사로서 입학한 정규생이고, 나머지 반은 하재생이라 하여 유학(幼學) 중에서 선발된 자들이었다. 성균관은 관리 후보생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었으므로 유생이 될 수 있는 자격은 대체로 양반 사대부 자제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성균관 유생들은 재학 중 학령의 적용을 받았는데, 학령은 성균관 학칙인 동시에 관학 일반의 학칙으로 주자학 정신이 철저히 반영되었으나, 그 윤리적 기초는 소학 정신(小學精神)에 두고 있다.

교육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사서오경을 비롯하여 <근사록> <성리대전> <통감> <좌전> <경국대전> 등이었는데 과거 과목에 따라 변동되기도 하였다. 이밖에 시, 부, 송, 책과 같은 글을 짓는 방법을 비롯하여 왕희지와 조맹부의 필법도 익히게 하였다.

성균관 유생들은 과거에 있어 여러 가지 특전을 부여받았는데, 관시, 알성시, 춘추도회 등이 그것이다.

유생들의 자치 기구로 재회(齋會)가 있었으며, 이런 자치 활동은 조정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시정 등 대외적인 문제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유생들은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소행(疏行:집단 시위)이나 권당(捲堂:수업 거부, 단식 투쟁) 등의 실력 행사로 맞서기도 하였다.

 

p.105

 

*박순:朴淳. 1523(중종 18)-1589(선조 22). 호는 사암(思菴). 1565년 대사간이 되어 윤원형을 탄핵함으로써 척신 일당의 횡포를 제거한 주역이 되었다. 1572년(선조 5) 영의정에 올라 약 15년간 재직하였다. 이이가 탄핵되었을 때 그를 옹호하다가 도리어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였다. 일찍이 서경덕에게 학문을 배워 성리학에 박통하고 특히 <주역> 연구가 깊었고, 문장이 뛰어나 글씨를 잘 썼으며 시에 능하였다. 중년에 이황을 사사하였고, 만년에 이이, 성혼과 깊이 사귀었다. 저서에 <사암집> 7권이 있다.

 

p.110

 

*화담 산방:원래 이름은 서간정으로, 그 유적이 지금도 개성에 남아 있다.

 

p.111

 

*도가(道家):도가 사상은 노장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철학으로 인간의 현실적 타락과 무지의 근거를 찾아 그것을 척결해 내고, 자연의 실상을 깨달은 참 지혜를 통하여 무위(無爲)의 삶을 추구하는 사상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 도가 사상은 신도 사상(神道思想) 내지는 선도 사상(仙道思想)으로 대표되는 민족 고유 사상과 자연 풍류 사상의 바탕 위에서 도교와의 분명한 구분 없이 혼합된 형태로 받아들여 이해되어 왔다.

도가 사상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유학에 대한 이단으로 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정도전이 쓴 <심기리편(心氣理篇)>에 잘 나타나 있다. 정도전은 유불도(儒佛道) 삼가 사상의 핵심을 불가는 심(心), 유가는 이(理), 도가는 기(氣)로 파악하였다. 우리 나라 도가 사상의 학문적 출발은 이렇게 기철학으로 성격이 규정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도전이 이해한 도가에서의 기 는 유가의 이 와 상대가 되는 기 의 의미를 지닌다기 보다는 오히려 유가에서의 이 이상으로 모든 것의 근원인 형이상적 실체이며 본질인 동시에 현상 그 자체 인 궁극적 실재라고 할 수 있다. 기 만을 문제 삼는 도가에서는 현상적 실상이 무엇인가가 문제이지, 현상적 존재의 가치론적 의미 , 즉 선악과 시비를 깊이 따지지 않는다. 기 는 그 자체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며 그저 현상 자체 이기 때문이다.

도가에서는 자연스러움 을 기 의 본모습으로 보고 목적이나 의도를 위하여 의미 를 추구하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유가는 반성을 통해 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나간다.

이러한 유학자들의 도가에 대한 이해는 서경덕에 와서 크게 달라졌다. 서경덕은 이 와 무관하게 독립적,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기 의 본질과 근원을 다루었다. 그는 도가의 기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유가적 이기 개념을 철저히 검토한 바탕 위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성리학(性理學):송명 시대의 유학. 우리 나라 성리학은 불교, 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때문에 성리학 연구에서 우주, 자연 및 인성(人性)에 대한 본체론적 형이상학의 탐구가 깊어졌고 심성 수양이 철저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유학의 형이상학적 이론과 수기의 이론이 특히 <논어> <맹자> <중용> <대학>에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성리학자들은 이 네 경전을 유학의 가장 주요한 기본 경전으로 간주하였다.

조선 초 성리학을 주도한 인물은 정도전과 권근인데, 정도전은 성리학을 옛사람들의 덕을 밝히고 국민을 새롭게 한 실학 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조선조는 성리학에 의한 통치를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성리학은 크게 발전하였다.

조선조가 기틀을 완전히 잡은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말까지가 성리학사의 관점으로 볼 때 사림파 학자들의 활동이 크게 돋보인 시기였다. 사림파 학자들이 성리학의 의리관을 실천에 옮기려는 경향은 사육신, 생육신의 절의 정신에 접목된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길재의 고려적 절의를 토양으로 하여 자라난 것이었다. 사림파 학자들의 체질화된 성리학 규범은 도덕적 규범의 성격이 강했지만, 동시에 정치적 성격을 지닌 규범이기도 하였다. 대의(大義)로 표현되는 정치 규범이자 그 실현을 위하여 실천 궁행, 살신 성인을 서슴치 않는 성리학 특유의 도통적 도덕 규범이었던 것이다.

조광조가 지치(至治)주의를 새롭게 표방하면서 각 방면의 정치적 개혁을 꾀한 것은 성리학적 대의의 정치적 합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의 이상 정치는 도, 즉 정(正)과 선(善)에 의한 정치이며 구체적으로는 의리, 공사(公私)의 변별 의식을 고취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상 정치는 의와 공에 입각한 것으로 지배층의 사리 사욕을 인정해서는 안 되었다.

성리학의 이론적 탐구는 이황과 이이의 사단칠정(四端七情) 에 대한 이기 해석론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그 뒤 3백여 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성리학자들은 온갖 예를 연구하면서 이의 실천을 역설하였으며, 그 실천 여부를 기준으로 개개인을 군자, 소인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국사를 논하는 장에까지 확대되어 당쟁을 야기시켰다. 그러나 당시 성리학은 이론을 연구하는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관학으로 불려지는 통치 원리였기 때문에 예송(禮訟) 형식의 당쟁은 바로 성리학의 명분론적 사고가 정치 현실에 투영된 합리적, 형식적 생활 양상이라 할 수 있었다.

 

*서경덕:徐敬德. 1489(성종 20)-1546(명종 1). 호는 복재(復齋), 화담(花潭). 어머니가 공자의 사당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낳았다 한다. 18세 때 <대학>의 치지재격물(治知在格物) 조를 읽다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을 하지 않으면 글을 읽어서 어디에 쓰리오 라고 탄식하고 천지 만물의 이름을 벽에다 써붙여 두고 날마다 궁구하기를 힘썼다. 31세 때 조광조에 의해 채택된 현량과에 응시하도록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성리학을 연구하여 독자적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의 학설을 제창하였다. 그는 <태허설>에서 우주 공간에 충만해 있는 원기를 형이상학적인 대상으로 삼고 그 기의 본질을 태허라 하였다.

서경덕의 학문과 사상은 이황과 이이 같은 학자들에 의해 그 독창성이 높이 평가되었으며, 한국 기철학의 학맥을 형성하게 되었다. 저서로 <화담집>이 있으며, <원이기(原理氣)> <이기설> <태허설> 등에 그의 사상적인 면모를 밝혀주는 대표적인 글이 실려 있다.

 

p.112

 

*편수관(編修官):조선 시대 춘추관에 두었던 관직. 사관의 하나로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였다. 품계는 정3품 당하관에서 종4품까지로 의정부,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승문원, 종부시 등의 해당 품계의 관원이 겸임하였다.

 

*정해봉: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안명세 항목에 나오는 인물에서 이미지를 땄음.

 

p.113

 

*정순붕:鄭順朋. 1484(성종 15)-1548(명종 3). 호는 성재(省齋). 명종이 즉위하여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자 윤원형, 이기 등이 을사사화를 일으켰는데, 이기 등과 어울려 음모를 꾸며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귀양보냈다. 을사사화의 공로로 유관(柳灌)의 가족들을 노비로 삼았는데, 그 중 갑이(甲伊)라는 여종이 주인 유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염병을 전염시켜 정순붕을 죽게 하였다 한다. 여기에 나오는 갑이를 소설에서는 민이로 바꾸어 등장시켰다.

 

p.117

 

*이산해:李山海. 1539(중종 34)-1609(광해군 1). 호는 아계(鵝溪), 종남수옹(終南睡翁), 내자시정(內資寺正). 지번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인 지함에게 학문을 배웠다. 156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570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도승지, 대사간, 형조판서를 거쳐 1589년 영의정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하였으나 탄핵을 받고 파면되기도 하였다. 북인이 분당될 때 대북파의 영수로 영의정에 올랐으며, 선조가 죽자 원상(院相)으로 국정을 맡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불렸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났다. 이이, 정철과 친구였으나 당파가 생긴 뒤로 멀어졌다.

 

*이산보:李山甫. 1539(중종 34)-1594(선조 27). 호는 명곡(鳴谷). 작은아버지인 지함을 사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였고, 요양에 머물면서 진군하지 않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설득하여 조선으로 들어오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군량을 조달하기 위하여 북도와 삼남 지방의 도검찰사로 나갔는데, 지난날의 선정에 감복하여 도민들이 적극 협조하였다 한다. 1594년 대기근이 들자 동궁의 명을 받고 밤낮으로 구휼에 힘쓰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성품이 소박하고 정직하여 이해 득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7. 원수의 아들을 스승 삼다

 

p.131

 

*군수(郡守):조선 시대 지방 행정 단위인 군의 행정을 맡아보던 장관. <경국대전>에 의하면 전국 82군에 82인의 군수가 파견되었다. 임기는 1,800일이며, 현령, 현감 등과는 수평 관계에, 감사와는 상하 관계를 유지하였다. 군수의 임무는 학교 문제, 군정, 사송(詞訟), 재지(在地) 세력을 잘 다스리는 것 등이었다. 이렇게 군수는 한 군의 행정, 사법,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p.138

 

*정렴:鄭렴. 1505(연산군 11)-1549(명종 4). 조선 시대 중종 때의 유의(儒醫). 호는 북창(北窓). 내의원 제조 순붕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천문, 지리, 의서, 복서 등에 두루 능통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약의 이치에 밝았는데, 1544년 왕의 병환에 약을 짓기 위하여 내의원 제조들의 추천을 받아 입진(入診)하기도 하였다. 그가 일상 경험한 처방을 모아 편찬한 것이라는 <정북창방(鄭北窓方)>이 있었으나 유실되었다.

<동의보감> 집필에 참여했던 정작의 친형이다. 북창이 원래 도가에 밝고 의학에 뛰어난 데다가 정순붕의 큰아들로서 스스로 관직을 버린 점을 살려, 소설에선 토정의 스승으로 설정하였다.

 

8. 도가(道家) 입문

 

p.158

 

*도량송(道場頌):새벽에 절내를 돌아다니면서 스님들이 외우는 경문. 새벽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p.162

 

*<참동계(參同契)>:후한(後漢)의 환제 때 인물인 위백양(魏伯陽)이 쓴 것으로 도교의 경전이다. 참(參)은 잡(雜)이요, 동(同)은 통(通)이며, 계(契)는 합(合)이니, 주역과 이치가 통하며 뜻이 합함 이라는 책명의 풀이처럼 연단법을 <주역>의 역리에 참동 계합시켜 설명하였다. 천지의 원칙에 따라 연단하며 연명 장수의 목적 달성을 역의 원리에 의하여 설명한 최초의 책이다. 여기에는 태식(胎息)과 같은 호흡 조절을 통하여 불로 장생이 가능하다는 내단설(內丹說)과 단약의 연제(煙製)가 역의 원리에 의해야 한다고 보고, 그 원리와 방법을 전개하는 외단설(外丹說)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다. 이러한 위백양설에 의하여 주역의 이론은 도교에 완전히 수용되었으며, <포박자> <황정경>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단서(丹書)로 인정받고 있다.

 

*<황정경(黃庭經)>:도교 경전의 하나.

 

*<옥추경(玉樞經)>:경객(經客)이 독경할 때 읽는 경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 이 경은 병굿이나 신굿 같은 큰 굿에서만 읽는데, 이 경을 읽으면 천리 귀신이 다 움직인다고 한다.

 

*<음부경(陰符經)>:도교 경전의 하나.

 

*<포박자(抱朴子)>:도교 저서의 하나.

 

*삼통사보(三洞四輔):도장(道藏)은 통진(洞眞), 통현(洞玄), 통신(洞神)의 삼통과 태현(太玄), 태평(太平), 태청(太淸), 정일(正一)의 사보로 분류된다.

 

p.164

 

*장악원(掌樂院):예조(禮曹)에 딸린 조정의 한 부서.

 

*주부(主簿):조선 시대의 관명. 각 아문(衙門)의 문서와 부적을 주관하던 종6품의 관직이다.

 

*관상감(觀象監):조선 시대에 천문, 지리, 역수, 점산(占算), 측후, 각루(刻漏) 등에 관한 일을 담당했던 관청.

 

*혜민서(惠民署):조선 시대 서민을 구료(救療)하는 임무를 관장하던 관서.

 

p.165

 

*풍류(風流):풍류는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 분방함, 즐거운 것 등 많은 뜻을 내포한다. 과거에는 풍류도라 하여 유불선(儒佛仙) 3교를 포함한 한국 고유의 정신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였다.

실제 상고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봄, 가을에 하느님에게 제사를 드리되 노래와 춤으로써 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하느님과 하나로 융합하는 강신 체험을 가졌고, 이것을 사상화한 것이 풍류도이다. 풍류도의 본질은 이렇게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많은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데 있었다. 이러한 풍류도를 몸에 지닌 이들이 바로 화랑이었다.

고려 때에는 풍류가 팔관회와 같은 국가적인 의례나 풍속을 통하여 나타났고, 음악을 통한 척사 위정(斥邪衛正)이나 신인 합일(神人合一)의 문제를 거론하였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풍류는 주로 음악과 관련하여 쓰였다.

 

*김시습:金時習. 1435(세종 17)-1493(성종 24). 생육신의 한 사람. 호는 매월당(梅月堂).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에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산사를 떠나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경주 금오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31세부터 37세 때까지 칩거하며 우리 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비롯한 수많은 시편들을 <유금오록>에 남겼다.

10대에는 학업에 전념하였고, 20대에 소오 산수(嘯傲山水)하며 천하를 돌아다녔으며, 30대에는 정사 수도(靜思修道)로 인생의 터전을 닦았고, 40대에는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고 행동으로 항거하다 50대에 이르러 초연히 낡은 허울을 벗어버리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59세의 나이로 무량사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신귀설(神鬼說)> <태극설> <천형(天刑)> 등을 통하여 불교와 도교의 신비론을 부정하면서 적극적인 현실론을 폈다. 이는 유교의 속성인 현실을 중심으로 인간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면과 맥이 닿는다. 잡저(雜著)의 대부분은 불교와 관계된 논문들인데, 그는 부처의 자비 정신을 한 나라의 군주가 그 백성을 사랑하여 부도덕한 정치를 제거하도록 하는 데 적용하였다. 백성을 사랑하는 이러한 애민 정신은 그의 <애민의(愛民議)>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대주(大珠):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정염의 스승으로 되어 있다.

 

*<도덕경(道德經)>:중국의 사상가이며 도가 철학의 시조인 노자가 지은 저서. <도덕경>의 사상은 한 마디로 무위 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이다. 무위는 도는 언제나 무위이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道常無爲而無不爲) 의 무위이고, 자연은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天法道道法自然) 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도덕경>의 사상은 모든 거짓됨과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이다.

조선조에 와서는 엄격한 주자학의 배타적 성격 때문에 <도덕경>에 대한 연구가 위축되었지만,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주석서가 쓰여졌다. 박세당은 <신주(新註) 도덕경>을 저술하였고, 이이는 <순언(醇言)>이라는 주석서를 펴냈다.

<도덕경>의 기본 흐름은 일찍부터 도교 신앙과 접합되어 민중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남화경(南華經)>:중국 전국 시대의 대표적인 도가 사상가인 장주(莊周)가 지은 책. 원래 이름은 <장자>였으나 당나라 현종이 존숭하는 뜻으로 책명을 바꾸었는데, 이때 장주에게도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존호가 붙여졌다. 장자의 사상은 세속적인 관습과 고정 관념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노자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노장 사상으로 통칭된다.

 

*열자: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 도가 계열의 사상을 지녔음.

 

*역리(易理):역학(易學):한국 사상사에 있어 역학의 위치는 철학적, 윤리적 내지 종교적 차원에서 최고의 원리였다. 한국 역학은 시대적으로 내용을 달리하는데, 고대에서는 점술, 중세에서는 신비주의적 자연론 내지 천문, 역법, 의약 등의 과학 사상을 볼 수 있으며, 주자학 수용 이후에는 주로 윤리적, 철학적 원리로 발달해 왔다.

역에는 변역(變易), 불역(不易), 간이(簡易)의 삼의(三義)가 있다. 변역의 측면을 강조하는 기학파의 대표로는 서경덕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음양지기를 철저화하여 태허지기(太虛之氣)의 유기론을 주장하였다. 서경덕은 천지미생 전을 전천지(前天地)라 한다면 천지가 멸한 뒤에는 후천지가 온다고 보았다.

한편 이황은 태극을 강조하여 지극히 존귀하여 만물을 명령하는 자리요, 어떠한 것에도 명령받지 않는 것 이라 하였다. 만물 중의 태극보다도 인심(人心) 중의 태극을 강조하여 인간 자아의 인격과 생명의 주체성을 진리의 근본으로 삼았다. 이는 불역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역학의 태극 음양 사상은 한민족의 신앙과 민족 예술, 윤리관의 형성 과정에서는 물론, 정치 제도와 관제, 그리고 군제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음양 오행론(陰陽五行論):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는 세계관. 음은 여성적인 것, 수동성, 추위, 습기, 부드러움을 뜻하고, 양은 남성적인 것, 능동성, 더위, 밝음, 건조, 굳음을 뜻한다. 이러한 두 개의 상호 보완적인 힘이 서로 작용하여 우주의 삼라만상을 발생시키고 변화, 소멸시킨다.

음양 사상에는 상반(相反)과 응합(應合)의 논리가 함축되어 있는데, 상반은 +와 -의 대립이고 응합은 이 두 가지가 상호 의존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가는 것을 뜻한다.

오행에 대한 설명은 <서경>의 홍범편에 잘 나타나 있다.

오행의 첫째는 수(水)이고, 둘째는 화(火), 셋째는 목(木), 넷째는 금(金), 다섯째는 토(土)이다. 수의 성질은 물체를 젖게 하고 아래로 스며들며, 화는 위로 타올라 가는 것이며, 목은 휘어지기도 하고 곧게 나가기도 하며, 금은 주형(鑄型)에 따르는 성질이 있고, 토는 씨앗을 뿌려 추수를 할 수 있게 하는 성질이 있다.

오행의 개념은 이와 같이 다섯 가지 기본적 과정을 나타내려는 노력의 소산이며, 영원히 순환 운동을 행하는 다섯 개의 강력한 힘을 나타낸다.

우주의 사물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사계(四季)나 순서나 공간적인 방위, 신체 기관, 색깔, 냄새, 맛 등에 모두 적용하였다. 여기에서 오행을 여러 가지 경우에 배열할 수 있는 두 개의 주요한 방법이 나타나게 되었다. 하나는 자연계의 운동을 음양이 서로 소장하는 다섯 가지 단계의 과정으로 생각한 것이다. 제1단계에서는 양이 성장하고, 제2단계에서는 양이 성숙의 경지에 도달한다. 제3단계에서는 양이 소모되나 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제4단계에서는 음이 성장을 시작하며, 제5단계에서는 음이 성숙하여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 도식을 오행 상생설이라 한다.

두번째 입장은 각 물질의 개별적인 힘을 강조한 것으로 각 물질과 각 단계가 선행자를 정복한 결과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하므로 오행 상승설이라 한다. 목은 금에 지고, 금은 화에 지며, 화는 수에, 수는 토에, 다시 토는 목에 지므로 목, 금, 화, 수, 토의 배열로 이루어진다. 이 입장은 물질 세계를 이루는 각 요소간에 끊임없는 갈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음양 오행론은 유교 도덕적인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관련되며, 민간에 흩어져 있던 풍수지리설이나 참위설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뿐 아니라 성리학적인 세계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우리 민족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다.

 

*참위(讖緯):앞으로의 길흉 화복의 조짐이나 그에 관한 예언.

 

*부적(符籍):종이에 글씨, 그림, 기호 등을 그린 것으로 악귀를 쫓거나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 부적에서 한자로 엮어진 것 가운데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있고, 불사(佛寺)에서 나온 것 중에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 부적은 일정한 과정을 밟아 만들게 되는데, 먼저 부적을 만드는 사람이나 사용하는 사람이 바른 마음을 갖고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부적 제작은 주술적인 기도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부적은 그 사용 목적과 기능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주력으로써 좋은 것을 증가시켜 이를 성취할 수 있게 하는 부적이고, 다른 하나는 사(邪)나 액(厄)을 물리침으로써 소원을 이루는 부적이다. 또한 부적의 종류를 형태에 따라 분류하면 그림으로 된 것과 글자로 된 것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황색 바탕에 붉은 색깔로 흔히 부적을 그리는데 이는 색체 상징에 비추어 의미가 있다. 황색은 광명이며 악귀들이 가장 싫어하는 빛이며, 주(朱)색은 중앙 아시아에서 귀신을 내쫓는 힘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술(呪術):초자연적인 힘을 조작하여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 주술은 주문, 주구(呪具), 주적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

주술은 그 원리에 따라 유감 주술 과 접촉 주술 로 나뉜다. 유감 주술은 모방 주술 이라고도 하는데,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발생시키고 또 결과는 원인과 유사하다는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예로 가뭄이 계속되면 물을 길어다 키로 쳐서 비가 오는 것처럼 했던 일, 첫 수확이 있을 때 비록 얼마 안 될지라도 큰 그릇에 담아 온 가족이 무거운 시늉을 하며 들어 옮기는 일 또한 앞으로 그렇게 많은 결실이 있기를 기원하는 유감 주술이다.

접촉 주술은 한번 접촉한 사실이 있는 것은 실질적인 접촉이 단절된 뒤에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호 작용을 계속한다는 원리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면 도둑을 잡기 위해 그 도둑의 발자국에 마른 쑥을 놓고 거기에 불을 붙여 뜨면 도둑의 발이 썩는다고 믿는 것 등이다.

주술은 그 기능과 목적에 따라 증식, 제액, 저주로 분류되기도 한다.

주술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라는 면에서 금기와 구분된다. 바라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거나 대항하는 적극적 기술이 주술인데 반하여 금기는 두려워 하고 기피하는 소극적 대응책이다.

 

*단전 호흡(丹田呼吸):단전을 이용한 호흡법으로 장생술의 일종. 도교에서는 익수 연명(益壽延命)하기 위하여 유연 체조의 일종인 도인(導引)을 비롯하여 식이 요법 등 많은 수련법을 행해왔는데 호흡법도 이런 맥락에서 개발되었다. 호흡법은 시대와 도맥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기본적인 것은 태식법(胎息法)이다. 태식은 태아가 모태 내에서 입과 코가 아닌 탯줄을 통하여 원기를 받아들이듯이 호흡하는 것이다.

상단(上丹)은 이환이라 하여 눈썹 위 3촌(寸)에 위치하며, 중단은 강국 금궐(絳宮金闕)이라 하여 명치, 하단은 흔히 말하는 단전으로 배꼽 밑 2촌 4푼에 위치하고 있다. 호흡기를 통하여 들어온 기는 관원(하단전 바로 위)을 거쳐 하단전 혹은 기해(하단전)에까지 이르며 수관에 의하여 뇌에 도달하고 뇌에서 다시 가슴으로 내려와 삼단전을 두루 거치게 된다. 이를 단전 호흡이라 하는데 항상 코로 가늘고 길게 숨을 들이쉬고 조용히 입으로 내뿜어야 한다.

 

*단약:도교를 수련하던 사람들이 제조하여 먹던 약. 이 약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함.

 

*소격서(召格署):조선 시대 도교의 재초(齋醮)를 거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경국대전>에 보면 소격서의 직제는 서원 이외에 도학생도가 10여 명 있었고, 금단(禁壇)을 낭송하고 <영보경(靈寶經)>을 읽었으며, 과의(科儀)는 <연생경(延生經)> <태일경(太一經)> <옥추경> <진무경(眞武經)> <용왕경(龍王經)> 가운데 3경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한편 성현의 <용재총화(傭齋叢話)>에 따르면 소격서에는 옥황상제를 비롯한 수백 개의 신위와 상(像)들이 마련되어 있고, 헌관(獻官), 서원(署員), 도류(도사)가 분담하여 재초를 집행하였다 한다. 그러나 소격서에서 행해지던 양재기복의 과의적(科儀的)인 도교는 유교로 사상을 통제하던 조선에서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겪은 뒤 선조 때 아주 폐지되고 말았다.

 

*토왕일(土旺日):무기(戊己) 토신(土神)이 왕(旺)한 것. 무기는 토신으로 화(火)로 이를 생(生)하면 토가 왕한다. 토신이 많은 것도 토왕의 하나이다. 후천운에 토운(土運)을 영(迎)하는 것도 토왕이다.

 

*단(丹): 단전 호흡 참조.

 

p.169

 

*주사(朱砂):경련, 발작을 진정시키는 데 쓰는 광물질의 하나. 수은과 유황의 합성 물질이다. 약간 차고 맛이 달다. 특히 급성, 만성으로 발열이 심하면서 경련을 일으키고 정신이 혼몽할 때 사용하면 경련을 진정시키면서 열을 제거하는 효능을 얻는다. 또 신경 쇠약으로 나타나는 정신 불안증과 자주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유정이 될 때에도 좋다. 한방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대표적인 처방으로는 주사정경환이 있다.

 

*벽사문(壁邪文):재앙이나 악귀를 물리치는 글.

 

p.171

 

*태극(太極):유학, 특히 성리학에서 모든 존재와 가치의 근원이 되는 궁극적 실체. 주자는 태극을 이(理)로 규정하여 형체도 없고 작용도 없는 형이상학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하는 근원 존재로 보았다. 이러한 태극은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 원인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현상의 존재자들 속에 이치로서 들어 있다. 이는 태극에서 만물이 나왔다는 논리에서 볼 때 만물 속에 태극이 그 원인자로 존재하게 되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므로 태극은 만물의 총체적인 보편 원리인 동시에 특수한 개별자들의 특수 원리가 된다. 즉 태극은 현상으로 드러나는 음양, 오행, 만물 속에 내재하는 보편의 원리이며, 또 개별적 존재자의 실(實)과 서로 상함(相涵)되어 있는 개별 존재의 원리이다. 따라서 현상으로 드러난 변화를 말할 때에는 태극에 동정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변화의 원인을 말할 때에는 태극은 본연의 묘(妙)이며 동정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 된다.

서경덕은 주기적인 입장에서 태극을 해명하였다. 그는 우주의 본질을 선천과 후천으로 나누고, 선천은 태허이고 태허의 본질은 허(虛)이며 곧 기(氣)라 하였다. 그러므로 선천에는 기만 존재하다가 이것이 후천으로 드러날 때 선천의 일기(一氣)가 지닌 양면성이 동정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며, 그 원인이 바로 태극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선천에는 기만 존재하다가 이것이 후천으로 드러날 때 선천의 일기가 지닌 양면성이 동정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며, 그 원인이 바로 태극이라 하였다. 따라서 태극이란 후천에서만 그 묘를 드러내는 존재로, 기의 변화 자체가 갖는 합리적 법칙이며 궤도로 이해된다.

 

*정법안장(正法眼藏):부처님이 말한 불교의 요체를 가리키는 선가 용어.

 

p.172

 

*활연개오(豁然開悟):도를 환히 깨우침.

 

p.173

 

*하도(河圖):중국 복희씨 때 황하에서 용마가 지고 나왔다고 하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모양을 그린 그림. 55점으로 이루어졌다. 낙서와 함께 주역의 기본이 된다.

 

p.174

 

*천수(天數):홀수로 나아가는 양의 수.

 

*지수(地數):짝수로 나아가는 음의 수.

 

p.176

 

*낙서(洛書):중국 하(夏)나라 때 우왕이 거북의 등을 보고 발견한 그림. 이로써 하도를 체(體)를 삼고, 낙서로 용(用)을 삼게 되었다. 그러나 구한말에 우리 나라의 김일부가 정역을 발명함으로써 하도, 낙서가 다 체가 되고 정역이 용이 되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마방진(魔方陣):자연수를 1로부터 중복이나 빠짐없이 하나씩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각 군의 수의 합을 일정하게 만드는 수표(數表). 동양에서는 역학과 관련된 하도, 낙서에서 그 시조를 볼 수 있다.

소설에 있는 마방진 숫자는 가로, 세로, 대각선 등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똑같다.

 

p.177

 

*목기(木氣):음양 오행의 하나인 목(木)의 기운. 음양 오행 참조.

 

*화기(火氣):음양 오행의 하나인 화(火)의 기운. 음양 오행 참조.

 

p.178

 

*금기(金氣)는 염(斂)의 기운이고, 수기(水氣)는 장(藏)의 기운이라네:금은 그 특성상 수렴을 하는 성질을 가졌고, 수는 모아두는 성질을 가졌다는 뜻. 그래서 금은 수확을 하는 가을을 상징하고, 수는 곡간에 곡식을 저장하는 겨울을 상징한다.

 

p.180

 

*자부선인(紫府仙人):옛 조선 때의 신선.

 

*금쇄경(金鎖經):도교 경전의 하나. 자부선인이 헌훤 황제에게 전한 천문, 병법, 장생에 관한 책.

 

p.182

 

*황제:곡물 재배를 가르치고 문자, 음악, 도량형을 통일시킨 전설상의 제왕.

 

*기백(岐佰):황제와 동시대 인물.

 

*간지(干支):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일컫는 말.

천간(10간)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지지(12지)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이를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등의 순서로 배열하고, 또 연월일에 붙여서 사용하는데 60회가 되면 다시 갑자로 되돌아오므로 이를 일갑(一甲), 회갑(回甲), 또는 주갑(周甲)이라 한다.

 

p.185

 

*경락(經絡):혈액이 흐르는 경로. 경(經)은 동맥, 낙(絡)은 정맥. 침이나 뜸을 놓는 자리로 삼음.

 

p.187

 

*도장(道藏):도교 경전을 집대성한 도교 일체경. 불교의 대장경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역대의 도교 총서를 가리키며 도장경, 도일체경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유행하는 도장은 <정통도장>과 <도장집요>가 대표적이며, 흔히 도장이라 하면 이들을 가리킨다.

 

*<황제내경>:도교 경전의 하나. 의학에 관련된 고대의 주요 문헌이다.

 

p.189

 

*좌찬성(左贊成):조선 시대 의정부에 소속된 관직. 종1품으로 3의정을 보좌하면서 대소 국정에 참여하였다. 의정부가 중심이 된 국정 운영(의정부서사제)과 국왕(육조)이 중심이 된 국정 운영(육조직계제)의 역학 관계에 따라 그 기능에 소장(消長)이 있었다.

 

*허엽:許曄. 1517(중종 12)-1580(선조 13). 호는 초당(草堂). 어려서 나식(羅湜)으로부터 <소학> <근사록> 등을 배웠고, 서경덕의 문인으로 학문을 익혔다. 벼슬을 30년 간이나 지냈으면서도 생활이 검소하였다.

저서로 <초당집> <전언왕행록> 등이 있다.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경상북도 영풍에 있는 우리 나라 최초의 서원.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이곳 출신의 유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를 설립하였다가 1543년에 유생 교육을 겸비한 백운동 서원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1548년 이황은 서원을 공인화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백운동 서원에 대한 사액(賜額)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따라 1550년 소수(紹修) 서원 이라는 사액과 함께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공인된 교육 기관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으로, 그 뒤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소수 서원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향촌 사림이 정치적, 사회적 기구로 정착되자 전국에 서원이 설립, 운영되어 조선 시대 사학의 중심 기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9. 민이의 죽음

 

p.196

 

*이산휘:이지함의 아들.

 

*정작:鄭작. 1533(중종 28)-1603(선조 36). 호는 고옥(古玉). 좌의정 순붕의 아들이다. 평소 학문에 정진하던 그는 을사사화를 주도한 아버지가 세인의 지탄을 받게 되자 술로 세월을 보냈다. 특히 서예에 뛰어나 초서와 예서를 잘 썼으며, 의술에도 뛰어나 1596년에 허준과 함께 <동의보감>을 편찬하였다. 특히 <동의보감>의 내경 은 그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10. 화담 산방

 

p.218

 

*박지화:朴枝華. 1513(중종 8)-1592(선조 25). 호는 수암(守庵). 서경덕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유불도에 통달하였다. 저서로 <수암유고> <사례집설(四禮集說)> 등이 있다.

 

p.219

 

*유형원: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225

 

*이기론(理氣論):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이와 기로 구성되었으며, 이와 기에 의하여 생성되고 있다는 이론. 즉 유형적 존재는 모두 무형의 원리 또는 원리에 의하여 생성, 변화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기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고, 동시에 서로 섞일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理)는 모든 사물과 관련된 법칙, 원리 또는 이치, 도리의 뜻을 나타낸다. 이는 사물 생성의 형식 또는 본질과 같은 성격으로 소리와 냄새가 없고 부피도 없고 겉과 속도 없고 정의도 없고 헤아림도 없고 조작도 없다 . 즉 직접 감각할 수 없는 이의 이러한 초경험적 특성을 형이상이라 부른다.

한편 기(氣)는 모든 구체적인 사물과 관련된 질료, 형질의 뜻을 나타낸다. 모든 사물을 이루는 데 있어 필요한 현상적 요소 이다. 이러한 사물을 이루는 현상적인 요소를 형이하라고 하는데, 이는 직접 감각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 성질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理)는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원리로 무형, 무위의 특성을 가지며, 기(氣)는 모든 사물의 현상적 요소로서 유형, 유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기론에 있어 이러한 이기의 특성은 각기 독립하여 존재하는 구체적 사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의 존재는 실상 현상적인 기에 의하여 그 존재성이 구현되는 반면, 기의 존재는 그 원인으로 이가 있어야 현상적 존재로 실현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이기론은 정도전, 권근에 이르러 학적 대상이 되었고, 서경덕, 이언적에게서 학문적 시도가 나타났으며, 이황과 이이에서 학문적 성과가 이룩되었다.

 

*사주 추명학(四柱推命學):사주란 태어난 해, 달, 날, 시를 간지로 계산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이다. 각각 간지 두 글자씩 모두 여덟 자로 나타내므로 팔자라 한다. 사주 팔자를 풀어보면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알 수 있어 운명이나 숙명의 뜻으로도 쓰인다. 사주는 간지로 나타내는데 간(干) 은 열 가지이므로 십간 , 사주의 윗글자에 쓰이므로 천간이라고도 한다. 지(支) 는 열두 가지로 십이지 또는 지지(地支)라고 한다. 천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지지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이다. 천간과 지지는 모두 음양과 오행으로 분류되고 방위와 계절 등을 나타낸다. 지지는 이밖에도 절후, 동물, 달, 시각 등을 나타낸다. 천간과 지지가 처음 만나는 갑자부터 마지막인 계해까지 순열 조합하면 육십 갑자가 되는데 사주는 이 육갑으로 표현된다.

사주가 그 사람의 운세를 함축한다고 보는 것이 명리(命理)이며, 사주의 구조를 분석, 종합하여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추리하는 것을 추명(推命)이라 한다. 추명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그 사람의 선천적 숙명을 판단하는 일이요, 둘째는 이른바 피흉취길하는 개운법이다. 사주로 알 수 있는 것은 성격이나 적성 등 인성에 관한 사항, 부모, 형제, 부부, 자녀 등 대인에 관한 사항, 관운, 재운, 학운 등 운수에 관한 사항, 그밖에 건강, 상벌, 재앙 따위가 있다. 이러한 사항들은 고정적인 것도 있으나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10년 단위로 유동하는 것을 대운이라 하고 1년 단위로 유동하는 것을 세운이라 한다. 개운법은 사주를 다른 술법에 원용하여 흉화를 길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사주는 기신(己身)이라 하는 일주 천간을 중심으로 간지 상호간의 합충과 육친의 관계, 음양의 조화, 오행의 생극, 십이 운성, 십이 신살, 길성과 흉성 그밖에 형(刑), 파(破), 해(害), 원진(怨嗔) 등을 살펴서 당사자와 시간, 공간상의 처지나 사람, 물체 따위 대상과의 화합 여부를 종합하여 운세를 판단한다. 사주는 무엇보다 균형과 조화를 중시한다. 음양이나 오행이 치우침 없이 고루 배합되어 있으면 길하고, 편협되어 있으면 그것을 균형과 조화가 잡히게 조정하여야 개운이 된다.

 

*운기법(運氣法):오운육기(五運六氣)에 따른 말로 기가 운행하는 이치.

 

*점성술(占星術):일월성신(日月星辰) 등 천체에 나타나는 천문 현상으로 인간 생활의 길흉을 점치는 일. 즉 별의 빛깔이나 위치로 길흉을 점치는 술법이다.

 

*풍수:음양론과 오행설을 기반으로 땅에 관한 이치, 즉 지리를 체계화한 전통적 논리 구조이며, <주역>을 주요한 준거로 삼아 추길피흉(追吉避凶)을 목적으로 삼는 상지 기술학(相地技術學)이다. 구성은 산(山), 수(水), 방위(方位), 사람 등 네 가지의 조합으로 성립되며, 구체적으로 간룡법(看龍法), 장풍법(藏風法), 득수법(得法), 정혈법(定穴法), 좌향론(坐向論), 형국론(形局論),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 등의 형식 논리를 가진다.

풍수는 살아 있는 사람과 땅의 관계뿐 아니라 죽은 사람의 경우까지 중요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풍수의 기본 논리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 땅 속에 돌아다니는 생기를 사람이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하는 것이다. 즉 경락과 같은 것이 땅에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죽은 자는 땅 속에서 직접 생기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산 사람보다는 죽은 자가 얻는 생기가 더 크고 확실하다. 그리고 죽은 자가 얻는 생기는 후손에게 그대로 이어진다고 믿어지고 있다.

 

*<좌전(左傳)>:춘추 삼전의 하나.( <춘추> 참조)

 

p.226

 

*기명(氣名) 68가지:한의학 전문 사전 또는 전문 서적을 보기 바람.

 

p.227

 

*경혈(經穴):경락 순행 경로상에 있는 부위로 한방에서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자리. 경혈의 발전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아픈 곳이 바로 혈이 되는 단계로, 일정한 경혈이나 취혈 방식이 없으며 아시혈(阿是穴)이라고도 한다. 둘째는 경험의 축적에 힘입어 어떤 질병에는 어떤 부위의 혈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아는 단계로, 혈의 위치와 이름이 정해진다. 셋째는 계속적인 경험의 축적으로 국부적이고 단순한 치료 형태에서 벗어나 상호 연계적이며 체계적인 치료 방식을 수립해 나가는 단계로 경혈 학설의 근거가 되는데, 경락은 이러한 경혈의 계통적 분류로 이루어진다.

 

*양생법(養生法):도가에서 수련하는 방법. 원래 병을 피하는 건강법으로 시작되었는데, 뒤에 의학적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11. 일시무시일(一始無始日)

 

p.232

 

*황진이:黃眞伊. 확실한 생존 연대는 미상이나 중종 때 사람이며 단명한 것으로 보인다. 용모가 출중하며 가창뿐 아니라 서사(書史)에도 정통하고 시가에도 능하였다. 당시의 대학자 서경덕을 사숙하여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 당시(唐詩)를 정공(精工)하였다. 그가 지은 한시로는 <박연> <영반월(詠半月)> <등만월대회고(登滿月臺懷古)> 등이 전하고 있으며, 시조로는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날 기나긴 밤을> <내 언제 신이 없어> 등 여섯 수가 남아 있다.

황진이의 작품은 주로 연석이나 풍류장에서 지어졌고, 또한 기생의 작품이라는 제약 때문에 후세에 많이 전해지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전하는 작품은 5, 6수에 지나지 않으나 기발한 이미지와 적절한 형식, 세련된 언어 구사가 뛰어나다.

 

p.234

 

*박계순: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249

 

*회음부:사타구니.

 

p.256

 

*천부경(天符經):대종교의 기본 성전. 천신인 환인의 뜻에 따라 환웅이 천부인을 가지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강림하여 홍익인간의 대업을 시작한 고사에서 연유하는 지고의 천서로 평가된다.

<대종교요감>에 의하면 천부경은 한배검(단군)께서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천하 만민을 교화하는 데 있어 조화의 원리, 즉 우주 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진경(眞經)으로 1에서 10까지의 수리로 천지인(天地人) 삼극의 생장노병몰(生長老病歿)의 무한한 반복의 경위를 설파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p.261

 

*수장(收藏):끌어모아 감춘다는 뜻. 가을과 겨울의 특성을 합친 말.

 

 

12. 빛을 잃은 태사성(泰史星)

 

p.262

 

*태사성:서경덕의 별로 설정되었으나 실제로는 관련이 없음.

 

 

13. 삼월 삼짇날

 

p.280

 

*주기론(主氣論):주기적 이기관의 대표적 이론은 이이에서 비롯되었다. 이이는 <천도책>에서 모든 자연 현상은 그 나타남이 기 아닌 것이 없으며 그 일어나는 까닭은 이 아닌 것이 없다, 따라서 천지 사이의 모든 사물은 각각 하나의 기라 할 수 있고 그 나누어져 있음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곧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이이는 오직 기만이 동정함이 있다는 것을 확언하였다. 이이는 이와 기를 두 물건이나 두 물체처럼 판이하게 이원적으로 규정하는 이황의 주장에 반대하여 이와 기가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것 을 강조하였다. 이이의 이기론의 대전제는 이는 이이고 기는 기로서 혼잡될 수 없는 개별적 존재이지만 이와 기를 분리하고서는 어떠한 존재도 성립할 수 없고 어떠한 존재 현상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가 발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부인하는 입장에서 기만이 능동성, 자발성을 가진다는 이기 관계의 기본 원칙에서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 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대저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는 까닭은 이이니,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또한 발하게 되지 못한다 고 말하였다.

 

*주리론(主理論):주리적 이기관의 대표적 이론은 이황에서 비롯되었다. 이황의 이기관은 우주의 생성에 있어 불변적인 요소로서 실재하는 존재를 이로 파악한 데 그 입장이 드러난다. 기의 생멸을 거슬러 올라가면 태초에 일원(一元)의 기 가 있게 되고 그 일원의 기의 생성도 일정한 원인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는데, 이때의 이는 모든 기의 생성 원인이라 간주되므로 일원의 기 생성의 경우도 이의 근원성을 인정하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황이 이기론적 전개를 자연 현상의 해명에 그치지 않고 당위론적 관점에서 도덕 실현의 해명 근거로 이해한 점이다.

우주의 생성을 기계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지 않고 합목적적인 생성 과정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합목적적 우주관은 성리학의 기본 성격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이황의 가치 성향, 즉 인간의 도덕 실현 능력 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황은 사단 칠정과 관련하여 사단(四端:惻隱, 羞惡, 辭讓, 是非)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七情:喜, 怒, 哀, 懼, 愛, 惡, 欲)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다 고 주장하였다.

이에 치중하는 주리적 관점은 기에 치중하는 주기관보다 가치 의식이 보다 높으며 규범적 요청성을 가진다. 주리론자들이 이존 기비(理尊氣卑) 등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게 사실의 측면보다는 이의 당위적 요청성에 근거한 것으로 이해된다.

 

p.285

 

*유마경(維摩經):반야경 다음에 나타난 초기의 대승 경전 중에서도 상당히 오래된 경전이다. 중인도 바이샬리를 배경으로 하여 그곳의 암라수원을 설처(說處)로 삼았다. 비말라키르티가 병이 들었으므로 붓다는 제자들에게 문안을 가도록 하지만 그들은 일찍이 비말라키르티로부터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고 말하며 거절한다. 마지막으로 문수사리 보살이 병문안을 맡는다. 비말라키르티는 보살에게는 병이 없으나 중생이 병든 탓으로 보살도 병든 것으로, 이는 자식이 병든 것을 본 부모가 병이 없음에도 아픈 것과 마찬가지라고 가르친다. 특히 보살의 오입(悟入)에 대해서 각 보살이 더러움과 깨끗함을 불이(不二)로 생각하는 것이 입불이(入不二)라고 말하는 데에 대하여, 문수는 무언무설(無言無說)이 입불이라고 말한다. 비말라키르티가 아무 소리도 않고 조용히 있을 때 문수가 이것이야말로 참된 입불이라고 말한 것은 후대 선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위 장면들은 교리적으로는 반야 개공(般若皆空)의 사상에 의해 대승 보살의 실천도를 앙양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토교의 취의(趣意)에 의한 재가 신자의 종교적 덕목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색이다. 유마의 방장이라는 장소와 동시에 암라수원에서 붓다가 직접 설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경전의 중요성이 엿보인다. 이 경전의 서두인 불국품 제1에서 마음이 淨하면 곧 土도 淨이다 고 말한 것은 <유마경>의 근본적인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며, 정토교의 취의가 되었다.

 

*천기(天機):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하늘의 이치, 비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현상 세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과학적 논리를 말한다. 그래서 주역 등 철학서를 읽고 깊이 탐구하면 천기마저도 밝혀진다고 하는 바 그것은 우주 운행의 원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p.289

 

*안명진: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290

 

*청명(淸明):춘분과 곡우 사이에 들며, 태양의 황경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하여 봄일을 시작한다.

 

 

14. 화담의 임종

 

p.292

 

*선지식(先知識):1)부처님이 말씀한 교법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

세계를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2)노소, 남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이.

3)이러한 의미가 변하여 스승이라는 뜻이 됨.

 

p.293

 

*선지(禪旨):깨달음의 중요한 이치, 또는 그 내용.

 

p.295

 

*조계종(曹溪宗):우리 나라 선종의 총칭. 1200년 불일(佛日) 보조 국사가 승주군 송광산 길상사에서 정혜사를 창설, 희종이 즉위하여 산 이름을 조계산, 절 이름을 수선사라 고친 뒤부터 조계종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1212년 고려 강종왕이 조계산 수선사파를 조계종이라 하였으나, 어느 한 종만이 독점한 것은 아니었고, 선종을 범칭하였다. 그 뒤부터 각엄(覺儼), 태고(太古), 나옹(懶翁), 환암(幻庵), 찬영(餐英), 각운(覺雲), 무학(無學) 등 여러 스님이 조계 종사, 조계승이라 하였으나, 항상 계속된 것은 아니다. 1941년 북한산 태고사를 서울 종로구 수송동으로 옮겨 짓고, 우리 나라 불교 총 본산을 만들면서 선교 양종이란 종명을 고쳐 조계종이라 하였다.

 

*화상(和尙):본래 아사리와 함께 수계사인 스님을 가리켰지만, 후세에는 덕이 높은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p.296

 

*진인(眞人):도교의 깊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

 

p.300

 

*<홍연진결>:<홍연비결(洪煙秘訣)>. <상서(尙書)> 홍범의 원리에 따라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견하고 피흉추길의 방법을 설명한 책. 저자와 간행 연대는 미상이며, 권두에 이장훈과 운담의 서문이 있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특히 <인명편>은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이 이미 사주 팔자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지만 하늘은 녹이 없는 사람을 생산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노력하면 운명도 개척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홍범>의 점법은 홍국(洪局)과 연국(煙局) 두 가지로 구분되어 발전해 왔는데, 양자는 수리의 분석에서 약간 차이점이 있다. 서경덕, 이지함, 기정진 등은 홍국과 연국 각각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은 수용하여 두 방법을 절충, 통합시켰는데 이 책은 그러한 입장에서 만들어졌다.

소설에서는 야사의 주장에 따라 서경덕의 작품으로 그려지고 있다.

 

p.301

 

*임종 삼매(臨終三昧):죽을 때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망념에서 벗어나는 것.

 

*입멸(入滅):1)생사의 고계(苦界)를 벗어나 열반의 증과(證果)에 드는 것.

2)증과(證果)에 들어간 사람의 죽음.

 

 

 

중권

 

 

15. 방장 명초의 비밀

 

p.11

 

*환신(幻身):거짓 몸 또는 거짓으로 형상을 만들어 보임. 인간의 신체를 고유한 것으로 보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한 사물로 보는 불교 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업(業):카르마.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업은 짓는다는 의미로 정신으로 생각하는 작용, 곧 의념(意念)이며, 이것이 뜻을 결정하고 선악을 짓게 하여 업이 생긴다. 업은 사업(思業)과 사이업(思已業)으로 나뉜다. 사업은 뜻으로 활동하는 정신 내부의 의업(意業)이며, 사이업은 한번 뜻을 결정한 후에 외부에 표현되는 신업(身業), 구업(口業), 곧 신, 구, 의 3업이라 한다. 또 몸과 입으로 외부에 표현되는 표업(表業)에 의하여 표업이 끝난 후에도 밖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그 선업이나 악업을 상속하는 것은 무표업(無表業)이다. 업은 선업, 악업으로도 나뉜다. 선업 중 주요한 것은 10선업, 그 반대는 10악업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로 업을 분류한다. 악업만을 단순히 업이라 하기도 한다.

 

p.13

 

*다비(茶毘):분소(焚燒), 연소(燃燒)라고도 한다. 시체를 화장하는 일.

 

p.20

 

*<육조단경(六祖檀經)>: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의 자서전적 일대기. 육조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도정(道程), 그리고 문인들을 위한 갖가지 설법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한 부분은 다음 세 가지 면이다. 첫째, 혜능은 부처님 이래 전수되어온 심인(心印)의 계승자이다. 둘째, 견성(見性)이 수도의 목적이며, 따라서 자성(自性)을 떠난 부처는 없다. 셋째, 돈오(頓悟)의 수행이다. 이 돈오의 수행 방법은 선종의 요체이며, 그 근원이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된다.

육조의 문하에서 임제(臨濟)라는 선승이 출현하여 남종선의 맥을 이었는데, 그 뒤 우리 나라 고승들은 거의 임제의 선맥을 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사상뿐 아니라 실천적인 면에서도 우리 나라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p.23

 

*전우치:田禹治.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기인, 환술가.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본래 서울 출신의 선비로 환술과 기예에 능하고 귀신을 잘 부렸다고 한다. 또 <오산설림(五山說林)>에는 죽은 전우치가 산 사람에게 두보의 시집을 빌려 갔고, <어우야담>에는 사술(邪術)로 백성을 현혹시켰다고 하여 신천옥에 갇혔는데, 옥사하자 태수가 가매장시켰고, 이를 뒤에 친척들이 이장하려고 무덤을 파니 시체는 없고 빈 관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남궁 두:南宮斗. 1526(중종 21)-1620(광해군 12). 조선 중기 단학파(丹學派)의 한 사람. 애첩과 당질간의 간통 사건으로 두 사람을 살해하고 중이 되었다. <해동이적(海東異蹟)>에 의하면 도교의 방술에 뛰어난 노승을 만나 신선술을 익혔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90살이 되도록 늙지를 않았고, 언제나 명산 대천을 떠돌아 다녀 사람들은 그를 지선(地仙)이라 불렀다.

 

p.24

 

*<신읍지(神邑誌)>, <궁을천가(弓乙遷歌)>, <답천보록(踏千寶錄)>:도가 관련 비서(秘書).

 

*서운관(書雲觀):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존속하였던 정부 직제의 하나. 천변 지이(天變地異)를 관측, 기록하고, 역서를 편찬하며, 절기와 날씨를 측정하고 시간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특히 세종대에는 영의정 책임하에 60인에 달하는 관원들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장영실 등이 물시계, 천체 관측용 기기인 관의(簡儀), 사계절과 일월 5성의 운행을 알아볼 수 있는 혼천의, 해의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는 앙부일구(仰部日구) 등 많은 측정기기들을 제작하였다.

특히 비의 양을 재는 측우기와 하천의 깊이를 알아보는 수표를 제작, 설치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세종 이후 몇 차례 개편되다가 세조 때에 이르러 관상감으로 개칭되었다.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대변설(大辯說)>, <조대기(朝代記)>,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지공기(誌公記)>, <표훈천사(表訓天詞)>, <삼성밀기(三聖密記)>:민간에 떠돌덪 비서, 참서들이다.

 

*파자(破字), 해자(解字):한자를 가지고 점을 칠 때 쓰는 방법. 한자를 부수로 나누어 뜻을 꿰어맞추는 것. 비서, 참서 가운데에는 일부러 획수 많은 한자를 써서 뜻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p.29

 

*열반(涅槃):니르바나. 불교의 최고 이상. 멸(滅), 적멸(寂滅), 멸도(滅度), 또는 무위(無爲), 무작(無作), 무생(無生)이라고도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진리를 궁구하여 미(迷)한 생사를 초월해서 불생 불멸(不生不滅)의 법을 체득한 경지이다. 소승에서는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지는 것을 이상으로 하므로, 심신이 있고 없음에 따라 유여의(有餘依), 무여의(無餘依)의 2종 열반을 세우며, 대승에서는 적극적으로 3덕(德)과 4덕을 갖춘 열반을 말하여 실상(實相), 진여(眞如)와 같은 뜻으로 본체 혹은 실재의 의미로 쓴다. 법상종에서는 4종 열반을 세운다.

 

 

16. 그 땅을 보고 인물을 보라

 

p.38

 

*운종가(雲從街):지금의 종로로 당시 국가에서 운영하는 상점이 많이 있었음.

 

p.51

 

*봉놋방:주막집의 여러 손님이 모여 자는 큰 방.

 

 

17. 신라에서 찾아온 아내

 

p.69

 

*섭생(攝生):양생(養生). 병이 걸리지 않고 오래 살기를 꾀함.

 

p.75

 

*숙명통(宿命通):6통의 하나. 지난 세상의 생애, 곧 전생의 일을 아는 신통력. 통력이 크고 작음에 따라 1세, 2세, 또는 천만세를 아는 차이가 있다.

 

p.82

 

*명리(名利):명예와 이익.

 

 

18. 화담이 살아 있다

 

p.88

 

*아전(衙前):조선 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관청에 근무하던 하급 관리로 경아전(京衙前)과 외아전(外衙前)으로 구분된다. 이들 아전은 모두 중인 계층이다. 아전이라는 말은 군수, 현령 등 지방 수령이 근무하는 정청(正廳) 앞에 그들이 근무하는 청사가 있었기 때문인데, 정청 앞에 있는 이방청을 비롯한 육방청이 외아전의 주근무처였다.

 

p.93

 

*일진(日辰):그날의 천간과 지지를 말한다. 일진은 음양 오행설에 따라 인간의 일상 생활에서 흉한 것은 피하고 길한 것을 택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달하였다. 일진은 일과 진을 합친 것으로 그날의 천간을 일이라 하고 지간을 진이라 한다. 일진으로 길흉을 결정하는 일을 택일이라고 하는데, 이 일진은 사람의 연령과 관계가 깊다.

소설에 나오는 일진이란 그 날의 운수를 말함.

 

 

19. 바다를 읽는 어부

 

p.96

 

*무극(無極):극이 없는 무궁(無窮)의 뜻. 태극 이전의 상태.

 

p.101

 

*윤회(輪廻):삼사라. 죽었다가 나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반복됨을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3계(界) 6도(道)에서 미(迷)의 생사를 거듭하는 것.

 

p.104

 

*운주사(雲住寺):전라남도 화순군 천불산에 있던 절. 절 좌우 산등에 석탑, 석불이 천이나 있다. 속칭 운주사(雲舟寺).

 

 

20. 두륜산

 

p.108

 

*조식:曺植. 1501(연산군 1)-(1572 선조 5). 호는 남명(南冥).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만 열중하였다. 1561년부터는 지리산 덕천동에 산천재를 짓고 강학에 더욱 힘썼다. 그는 의리 철학 또는 생활 철학을 표방, 특히 실천 궁행을 강조하였다. 일상 생활에서도 철저한 절제로

일관하여 불의와는 일체 타협하지 않았고, 독서할 때마다 몸에 긴요한 것이 있으면 이를 기술, 편찬하였다. 경상좌도의 이황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대유(大儒) 학자로 쌍벽을 이루었다.

조식의 대표적인 문인으로는 정구,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김효원 등이다. 이들은 한국 유학사에서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대부분 은둔적인 학풍을 지녔다는 점이다. 둘째,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진주 등지에서 학문에 정진하면서 유학을 진흥시킨 지역 문화의 기수들이었다. 셋째, 국가의 위기 앞에 문인으로 앞장서 전쟁에 참여하였다.

조식이 남긴 저서로는 <남명집> <남명학기유편> <파한잡기> 등이 있다.

(이지함이 산천재를 방문한 것은 30세 즈음으로 1547년 정도인데, 산천재는 1561년부터 열렸다)

 

*송순:宋純. 1493(성종 24)-1582(선조 15). 호는 성지(誠之), 면앙정(면仰亭). 1533년 김안노가 권세를 잡자 귀향하여 면앙정을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김안노가 사사된 뒤 수많은 관직에 등용, 파직되기를 수차례 거듭하였다.

송순은 성격이 너그럽고, 특히 음률에 밝아 가야금을 잘 탔고, 풍류를 아는 호기로운 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하로 박순, 기대승, 고경명, 정철 등이 있다. 면앙정은 41세 때 담양의 제월봉 아래 세운 정자로 호남 제일의 가단(歌壇)을 형성하였다. 그는 <면앙정삼언가> <면앙정제영> 등 수많은 한시와 국문시가인 <면앙정가> 9수, 단가 20여 수를 지어 조선 시가 문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문집으로 <면앙집>이 있다.

 

*정개청:鄭介淸. 1529(중종 24)-1590(선조 23). 호는 곤재(困齋). 어려서 영주산에 들어가 10년간 성리학뿐 아니라 천문, 지리, 의약, 복서 등의 잡학을 공부하였다. 1589년 정여립의 모역 사건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했다.

저서로 <우득록(愚得錄)>이 있다.

 

*법담(法談):1)법문의 의리(義理)를 말함.

2)선사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방계(傍系):직계에서 갈려나간 계통.

 

p.109

 

*직강(直講):조선 시대 성균관의 종5품 관직. 정원은 4인이다.

 

*해동청(海東靑):사냥용 매의 하나. <조선어 사전>에서는 해동청을 매의 일종으로 조선의 동북 지방에서 나며 8, 9월경에 남쪽에 온다(속칭 보라매) 고 하였다.

 

*대사헌(大司憲):조선 시대 사헌부의 장관. 품계는 종2품으로 정원은 1인. 사헌부는 시정(時政)을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원억(寃抑)을 펴며, 남위(濫僞)를 금하는 일 등을 맡아보던 관아였다.

 

p.116

 

*축기(縮氣), 방기(放氣):기를 모으고 내보내는 것.

 

p.117

 

*근기(根機):인간이 원래 타고난 기질이나 능력을 말함.

 

p.118

 

*김극기:金克己. 생몰년 미상. 고려 명종 때의 문신. 호는 노봉(老峰). 뛰어난 문장가로 특히 농민 반란이 계속 일어나던 시대에 핍박받는 농민들의 모습을 친근감 있게 적극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농촌 문제를 자기 것으로 삼았던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다.

이인로는 문집 <김거사집(金居士集)>에서 난새나 봉황같은 인물이었다 고 하여 벼슬에 연연해 하지 않는 고고한 그의 행적을 찬양하였다.

<동문선>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시가 많이 남아 있다.

 

 

21. 해사의 여인

 

p.125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마음의 조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뜻.

 

p.131

 

*함흥 차사(咸興差使):함흥에 가 있던 태조에게 보낸 사신.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아들 방원에게 환멸을 느낀 이성계는 고향인 함흥에 은둔하였다. 태종이 문안을 위하여 차사를 보냈으나 그때마다 돌아오지 않아 이때부터 갔다가 소식 없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함흥차사 라 부르게 되었다.

 

 

22. 미륵불이 가사를 벗어던진 사연

 

p.153

 

*미륵불(彌勒佛):대승 보살. 이름은 아일다,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내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존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있다. 석존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면 다시 이 사바 세계에 출현, 화림원 안의 용화수 아래서 성도하여 3회의 설법으로써 석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불의 제5불(佛)이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구리 바탕에 금물을 입힌 삼국 시대의 불상.

 

p.155

 

*강문우: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162

 

*법랍(法臘):중이 된 해부터 세는 나이. 납은 연말에 신에게 제사 지내는 이름으로 세말(歲末)을 일컫는데, 비구는 세속과 달라 안거 제도에 의하여 음력 7월 15일을 연말로 하고, 안거를 마친 횟수에 의하여 나이를 센다.

 

*탐진치(貪嗔癡):욕심, 성냄, 어리석음. 이 셋은 수행인을 가장 해롭게 하여 3독(毒)이라 한다.

 

p.163

 

*진각 국사(眞覺國師):혜심(慧諶). 1178-1234. 1208년 보조 국사가 법석을 전해주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수년 동안 자취를 끊었다. 1210년 보조 국사가 죽자 칙명으로 법석을 이어받았다. 고종이 즉위한 뒤 선사가 되고, 곧 대선사가 되었는데 선석에 뽑히지 않고 승질(僧秩)에 오른 이는 혜심이 최초였다. 1234년(고종 21) 병으로 월등사에서 죽다. 법랍 32, 시호 진각 국사.

 

*공안(公案):고측(古則), 화두. 선종의 대승이 심지(心地)를 밝게 깨달은 기연(機緣), 또는 학인을 인도하던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공부하는 규범이 되게 하였다. 선문(禪門)에서 수양하는데는 대승의 말과 행동이 모범이 되어 범치 못할 권위를 가졌고, 또한 학인의 깨치고 못 깨친 것을 판정하는 것이므로 세속에 비유하여 공안이라 하였다.

 

*명호(名號):1)부처님의 칭호. 이 명호는 덕을 포섭하고 실(實)을

나타내므로, 부처님은 그 명호로써 생각하는 중생을

구제한다. 아미타불에게는 4자, 6자, 9자, 10자의 명호가

있다.

2)명(名)은 부처님의 별명. 서가, 약사, 아촉, 아미타와

같은 것. 호(號)는 모든 부처님의 통칭. 여래, 응공,

등정각, 명행족 등 10호를 말한다.

3)명은 체(體)를 불러 나타내는 것. 호는 덕을 일컬어

표시하는 것.

4)명은 인위(因位)인 수행할 때의 이름, 호는 과위(果位)인

성불한 때의 이름.

 

p.164

 

*야수다라:구리 성주 선각왕의 딸. 석존의 외사촌. 석존이 출가하기 전 실달다 태자 때의 비(妃). 태자 19세를 맞아 아들 라후라를 낳고 출가하여 성도한 후 제5년에 이모 마하파사파뎨와 5백 서가족의 여자들과 함께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p.169

 

*석가의 도수(度數):부처의 가르침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2천5백 년을 말함. 5백 년씩 나누어 부처의 가르침이 쇠퇴해진다고 했는데, 2천5백 년 이후를 말법 시대라고 한다.

 

*선천(先天), 후천(後天):역학에서 인류의 역사를 크게 나눌 때 쓰는 말. 인류사의 전반기를 선천이라 하고, 후반기를 후천이라 한다.

 

p.173

 

*감로수:불사(不死), 천주(天酒). 소마(蘇摩)의 즙, 천신들의 음료.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이라 하여 감로라 한다. 예로부터 훌륭한 정사를 행하면 천지가 이러한 상서를 내린다고 한다. 불경에는 감로라는 말이 많은데, 불타의 교법이 중생을 잘 제도함을 비유한다.

 

p.177

 

*범종(梵鐘):절에서 대중을 모으거나 때를 알리기 위하여 치는 큰 종. 흔히 종루를 짓고 달아두는데 모양과 크기는 일정치 않다. 위에는 달기에 편하도록 용두(龍頭)라는 꼭지를 만들고, 아래는 상대로 두 개의 당좌(撞座)가 있으며, 또 당좌를 연결한 조대(條帶)와 여기에 수직한 조대가 있다. 상부를 둘러 있는 유곽은 이 조대로써 구별하였다. 커다란 종 마치를 뉘어 달아 당좌의 부분을 쳐서 울린다. 옛날 중국의 종과 인도의 건추(건椎)를 본떠 만들었는데, 범종이라 함은 범찰에서 쓰는 종이라는 뜻, 혹은 청정한 불사에 사용하는 종이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큰 것을 인경이라 한다.

 

 

23. 날개 잃은 해동청

 

p.180

 

*향약(鄕約):조선 중기의 사림파 조광조 등은 주자학적 이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민속을 단속하는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519년 조광조 일파가 몰락하는 기묘사화로 말미암아 이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향은 이(里)와 현의 중간인 면(面)을 의미한다. 한 면이 천 명 내외였으므로 향약을 실시하기에는 면 아래 몇 개의 자연 촌락을 합친 동약이 알맞은 규모였다. 향 은 지방 자체의 범위로 향인 사이의 교제도 대체로 향 내부로 한정되어 지연 결합의 한계로서 중앙 권력과 직접 접촉하지 않은 생활권이었다.

향약은 보통 민간의 유지가 발기하는 경우에는 자연 촌락 몇 개를 합친 동계가 기본 단위이지만, 수령이 선도하는 경우에는 군과 현이 단위가 되었다. 도약정(都約正), 향약정(鄕約正) 등으로 불리는 덕망 있고 나이 많은 자가 여론에 의해 수령이 되었는데 그는 각 면의 약정을 임명하였다. 약정은 1개 면의 일을 총찰하고 강신회(講信會), 향음례(鄕飮禮), 향사례(鄕射禮)를 치렀다. 또한 약중의 상부 상조와 질서를 유지하고 납세, 역 등이 순조롭게 운용되도록 규제하며, 선악적을 두어 소문에 따라 기록하고 상중하의 태벌을 행하였다. 향약에서 가리키는 선과 악은 다양하지만 상하, 장유(長幼), 내외의 분(分)을 지킬 것을 권장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향약은 유향소(留鄕所)를 중심으로 운용되었다.

 

*균전제(均田制):균전론:조선 후기 실학자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제기하였던 토지 제도 개혁론. 이는 당시 소수 지주들의 농지 겸병으로 말미암은 농촌 사회의 피폐를 근본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거론되었는데, 대체로 중국 고대의 정전법과 수당의 균전법에 의거하여 토지 국유, 경자 유전(耕者有田), 균등 분배의 원칙을 근간으로 한 농지 소유 제도의 개혁론이었다.

 

*공납제(貢納制):지방의 토산물을 현물로 내는 세제의 하나. 1413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공납제의 공물에 대한 부담은 지방 관부를 단위로 하여 품목과 수량이 규정되었다. 지방관은 이 중에서 관에서 마련할 성질의 품목과 백성에게 부담시킬 것을 가려 배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중렴(重斂)과 방납(防納)이라는 큰 폐단이 생겨났다. 중렴이란 부산공물(不産貢物)의 분정 및 공물의 가정(加定), 인납(引納)을 말한다. 나라의 공물 수요가 늘어나면 우선 그것을 가정하거나 인납함으로써 긴급한 수요에 충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것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으며 중기로 오면서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납이란 이듬해 공물을 올해에 미리 상납하게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가정과 다름이 없었다. 공물의 방납은 상납공물에 대한 척퇴를 전제로 하였다. 중앙 각사의 공납 업무를 담당하는 서리들은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지방 각 관에서 상납하는 공물에 대하여 갖가지 구실을 붙여 척퇴하게 한 다음, 그 공납 의무를 대행하고 나서 비싼 대가를 강제로 징수하였다. 이러한 폐해로 공납제 대신 수미법(收米法)이 거론되었으며, 1608년 대동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왕도 정치(王道政治):왕도 사상. 유학의 정치 사상. 맹자의 정치 사상의 핵심으로 이상적인 정치 형태를 말한다. 국가 사회나 더 나아가 인류 사회는 민생의 안정과 인간다운 삶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데, 그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힘과 무력에 의한 강제적 해결이 아닌 통치자의 인격과 덕의 감화력에 의한 평화적이고 순리적인 해결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는 사상이다.

왕도 라는 말은 <서경> 홍범편에 치우침이 없고 공정하면 왕도가 광대하고, 공정하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가 평이하며, 뒤집힘이 없고 기욺이 없으면 왕도가 정직하다 는 말에서 나왔는데, 왕도는 공평무사한 중용의 정치를 의미한다.

맹자는 왕도 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을 통한 민생의 확립이 가장 기초적인 문제라고 하였다. 항산(恒産)을 가지지 못하고서 항심(恒心)을 가지기 어렵다는 맹자의 말은, 민의 안정된 생업을 보장해 주지 못하면서 충성과 의무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통치자에 대한 경고였다.

왕도 사상은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은 조선조에 와서 더욱 강화되었는데, 백성의 아픔을 살펴 갖가지 시책을 펴나간 세종의 업적이나, 군주의 정심(正心)을 터전으로 삼대(三代)의 이상 정치를 구현하려 한 조광조의 도학 정치는 모두 왕도 사상의 구현이라 하겠다.

 

*사장학(詞章學):문장(文章)과 시가(詩歌)를 다루는 학문.

 

p.181

 

*승문원(承文院):조선 시대 사대 교린(事大交隣)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던 관청. 이문(吏文)의 교육도 아울러 담당하였다.

 

*예문관(藝文館):조선 시대에 사명(詞命)의 제찬(制撰)을 담당한 관부. 사림원, 한림원이라고도 한다.

 

p.183

 

*합죽선(合竹扇):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부챗살에 종이 또는 깁을 붙여 만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접부채가 단죽을 이용한 데 대해 합죽선은 겉대를 합하여 만들었으므로 합죽선 이라 하였다.

 

p.187

 

*운성(運星):12운성을 말함. 사주를 볼 때 천간 지지의 결합에 따라 정해짐.

 

p.188

 

* 말(馬)은 양화(陽火)이니 선생님의 음수(陰水)와는 상극입니다 :12지지 가운데 말은 남쪽, 불을 나타내므로 북쪽을 가리키는 수와는 상극이 된다는 오행상의 이치.

 

p.193

 

*기대승:奇大升. 1527(중종 22)-1572(선조 5). 호는 고봉(高峰), 또는 존재(存齋). 이황의 문인이다.

그의 관직 생활에 변화가 많았던 것은 직설적인 성격과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 기인하였다. 특히 1559년에서 1566년까지 8년 동안 이황과 나눈 사칠 논변(四七論辨)은 유학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논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학행(學行)이 겸비된 선비로서 학문에 있어서는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고, 행동에 있어서는 지치주의적(至治主義的)인 탁견을 진주(進奏)하였다.

문집으로는 원집 3책, 속집 2책, 별집 부록 1책 등 모두 15책의 <고봉집>이 전해진다.

 

*소미성(少微星):소설에서는 남명 조식의 운명을 주재하는 별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천문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이런 식의 인사를 주고 받기도 한다.

 

p.194

 

*천수(天壽):하늘이 정해준 목숨.

 

*지수(地壽):천수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 만든 어휘임. 소설에서는 혼백 중 혼은 천수, 백은 지수를 따라 사는 것으로 설정되었음.

 

p.195

 

*서치무: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196

 

*임천(林泉):은사(隱士)의 정원을 이르는 말.

 

 

24. 돌림병

 

p.208

 

*풍경(風磬):처마 끝에 달아서 바람에 흔들려 소리가 나게 하는 경쇠.

 

p.210

 

*포도청(捕盜廳):조선 시대 죄인의 심문이나 포도, 순라 등의 일을 맡았던 관청.

 

p.226

 

*사상(四象):<주역>의 복희 팔괘와 64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음과 양이 처음 중첩되어 이루어지는 네 가지 형상, 또는 이 네 가지 형상이 상징하는 자연의 네 가지 원소, 변화 상태. 사상이라는 용어가 처음 보이는 곳은 <주역>의 계사전이다. 즉 역에 태극이 있으니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고 하여 팔괘가 태극, 양의, 사상의 단계를 거쳐 형성됨을 설명하였고, 역에 사상이 있음은 보이고자 하는 것 이라고 하여 사상이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자연 현상을 상징함을 말하였다.

사상은 본래 점서에 있어서 시초에 의한 점법에 나타나는 과정의 하나인데, 여기에서 태극, 양의, 사상이라는 일종의 철학적 개념, 즉 존재의 근원과 자연 현상에 대비하는 사상으로 발전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사상의 개념은 시대의 변천과 각 시대의 주도적 사상에 의해 변화, 발전되었다.

<주역>에 대한 연구가 심화된 조선조에 있어서도 사상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였다. 서경덕은 천에는 사신(日月星辰)이 있고..... 일월성신은 천에서 상(象)을 이루고 수화토석은 지에서 질(質)을 이룬다 고 하였다.

또한 조선 말기의 의학자인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은 사람의 체질을 사상으로 분류하여 치료한 독창적인 의서로서 사상의 의학적 연구 성과라 하겠다.

 

*오운육기(五運六氣):한의학에 맞게 정리한 역학의 한 원리.

 

*단방(單方):약 하나로 처방을 하는 것.

 

p.227

 

*입추(立秋):태양의 황경이 135도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가을 채비를 시작한다. 이때 농촌에서는 김장용 무, 배추를 심어 겨울 김장에 대비한다.

 

*처서(處暑):태양의 황경이 150도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25. 화담의 묘를 파보다

 

p.234

 

*박철환: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26. 신서(神書)

 

p.260

 

*혼백(魂魄):넋. 살아 있는 사람의 육신에 깃들어서 생명을 지탱해 준다고 믿어지는 가장 으뜸가는 기(氣). 기 는 기운 또는 운기라고 하는데 때로는 감각적인 형상을 띠고 나타난다고도 믿어져 왔다. 넋은 육신의 죽음과 무관하게 그 자체의 실체를 존속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에서 초월성을 지니고 있다.

혼 은 넋과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백 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혼 은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 양쪽에 걸쳐 쓰이지만, 백 은 죽은 이의 신격화된 넋을 주로 뜻한다. 조상령의 경우가 백 에 해당되는 것이다.

한편 영(靈) 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쓰이는 혼 과는 달리 사람과 자연 모두에 쓰인다.

 

p.264

 

*무정(無情):유정의 스승 휴정에서 이미지를 따고, 달리 구성한 허구 인물.

 

*도유(道遊) 선사: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265

 

*남사고:南師古.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학자, 도사. 호는 격암(格庵). 역학, 참위, 천문, 관상, 복서 등 모든 학문에 두루 통달하였다. 일찍이 이인(異人)을 만나 공부하다 진결을 얻어 비술에 정통하게 되었고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하였다. 명종 말기에 이미 1575년에 나타날 동서 분당을 예언하였고, 임진년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조선을 침범하리라 하였는데 왜장 가토가 백마를 타고 쳐들어왔다. 자신의 생사 문제까지 예언하였던 그는 저서로 <남사고비결> <남격암십승지론> 등을 남겼다.

특히 정감록 사상의 특징인 십승지지, 이른바 재난이 일어날 때 피신처인 열 군데의 보길지(保吉地)를 구체적으로 예언, 기술하였다.

 

p.266

 

*미륵경:미륵하생경. 미륵 6부경의 하나. 308년 축법호가 번역하였다. 미륵 보살이 당래세에 도솔천으로부터 하생(下生)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한 뒤, 3회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할 것을 말하였다.

 

*말법 시대(末法時代):3시(時)의 하나. 부처님이 세상을 떠난지 오래되어 교법이 쇠퇴된 시기. 3시에 대해서 네 가지 설(說)이 있다. 그 중 1설에 의하면 정법(正法) 5백년, 상법(像法) 1천년, 말법은 1만년이라 한다.

 

*기근겁:말세의 세상에 나타나는 가난, 흉년.

 

*질병겁:말세의 세상에 나타나는 질병.

 

*도병겁:말세의 세상에 나타나는 전쟁, 싸움, 투쟁.

 

*신장(神將):무당과 장님이 모시는 신으로 용맹스러운 장군의 신격. 원래 이 신은 도교의 신으로 오방 오제설(五方五帝說)을 기초로 한 전설적 성격이 있으며, 이것이 무속과 민간 신앙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흔히 오방 신장이라 하며 집이나 동네의 사방과 중앙의 오방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모셔졌다.

무당들은 신장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하여 장군의 복장을 하고 작두를 타거나 사슬 세우기(청룡도라는 신칼을 상 위에 세우는 것)를 하였는데, 경상도에서는 군웅굿(軍雄祭)이라 하여 놋동이를 입에 물고 춤을 추어 위엄을 나타내었다. 서울 지방굿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오방 신장기를 가지고 춤을 추고 나서 깃대를 한데 모아 기폭으로 감아쥐고 의뢰자나 손님에게 내밀어서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이를 기뽑기 라고 하며 뽑은 기를 보아서 운수를 점친다.

장님은 <신장경> 등을 읽으면서 신장대에 신장을 내리게 하여 이 신으로 하여금 잡귀를 쫓아서 병을 치료하는 의례를 행한다. 이때 무당과 다른 것은 무당이 신장기를 가지고 굿을 하면 무당 자신의 몸에 신장이 내리지만, 장님의 경우는 내리지 않고 신장대에 실린다는 점이다. 즉 장님은 신장을 부리는 것이다.

 

p.269

 

*<신서비해(神書秘解)>:소설 <토정비결>에 나오는 허구의 책.

 

p.273

 

*고누:두 사람이 말판에 말을 벌여놓고 서로 많이 따먹거나 상대의 집을 차지하기를 겨루는 놀이. 별다른 도구 없이 아무 곳에서나 두 사람만 되면 언제든지 벌일 수 있는 놀이이므로 민간에 오랫동안 전승되었다. 고누는 대중적인 놀이였던 만큼 상류층과는 관련이 깊지 못했고, 따라서 문헌의 기록도 찾기 어렵다. 고누는 제주도까지 전파되어 놀이의 분포가 전국적이고, 놀이의 방법도 다양하다.

 

 

하권

 

 

27. 세월에 지는 사람

 

p.11

 

*혜명(慧明):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12

 

*<벽암록(碧巖錄)>:선사들의 문답, 기행을 적은 중국의 선서(禪書).

 

*<조주론(趙州論)>:중국 선사인 조주에 관한 논.

 

*<선문염송(禪門염頌)>:선문염송집: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고려 조계종의 제2세가 된 진각 국사 혜심이 조계산 수선사에서 46세 때인 1226년에 제자인 진훈 등과 더불어 제가(諸家)의 어록과 전등(傳燈)을 연대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방대한 책이다. 부처님의 고화(古話), 화엄 등의 경전, 서천(西天) 28조, 중국 6조, 선사 및 선지식의 고칙(古則)의 순서로 배열하여 선맥의 유통을 살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울력:길흉사가 있거나 일손이 모자라서 가사가 밀려 있는 집에 마을 사람들이 무보수로 노동력을 제공해 주던 협동 관행. 울력은 협동 노동 방식이기는 하지만 무보수 노동력 봉사라는 점에서 노동의 교환 방식인 두레나 품앗이, 노임 취득을 목적으로 한 공굴(公屈), 고지, 돈내기, 부역 등과는 다르다. 일의 종류도 일정한 시기에 집약적인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는 곡물의 파종과 수확, 제초 작업, 살림집의 신축이나 개축, 지붕이기, 퇴비 마련, 장례에 따르는 일 등과 같이 협동 노동이 필요한 모든 일에 해당되었다. 울력은 무보수이지만 성의껏 마련하는 술이나 음식 정도는 취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뒤에 화폐 개념과 임금 노동 형태가 발달하면서 울력과 같은 봉사적 협동 노동 방식은 점차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p.16

 

*선화(仙化):노인이 병이나 탈 없이 죽음을 이르는 말.

 

p.20

 

*임꺽정:?-1562(명종 17). 양주의 백정 출신. 척족 윤원형, 이량 등이 발호하고, 여러 해 흉년이 계속되어 관리들의 수탈이 횡행하는 틈을 타 도둑의 괴수가 되었다. 황해도 구월산을 본거지로 하여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일대의 부잣집과 관아를 습격하여 재물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 5도의 군졸들이 임꺽정의 무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백성들의 도움으로 수많은 위기를 모면하였다.

1562년 구월산에 숨어 있던 임꺽정은 결국 남치근에 의해 체포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p.28

 

*정희량:鄭希良. 1469(예종 1)-?. 호는 허암(虛庵). 김종직의 문인이다. 무오사화 때 사초 문제로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어머니가 죽자 묘지기를 하다 산책을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총민박학(聰敏博學)하고 문예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음양학에도 밝았다.

 

p.32

 

*단전(丹田):1)배꼽 아래. 하단전.

2)마음.

 

p.33

 

*조산(祖山):지구의 근본을 이루는 산. 곤륜산이라고 하는데 상징성이 더 크다.

 

*곤륜산(崑崙山):중국 북부에 있는 산.

 

*종산(宗山):조산에서 뻗어내려온 기를 일시 멈추어 가두어 두는 산으로 우리 나라의 백두산을 가리킨다.

 

*백두 대간(白頭大幹):우리 나라 땅을 동서로 크게 갈라 놓은 산줄기 이름.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산줄기는 대간과 정간으로 이루어졌다.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줄기는 강의 유역을 경계지었는데, 동서 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 정간이라 하였고, 거기에서 다시 갈라져 하나하나의 강을 경계짓는 분수 산맥을 정맥이라 하였다. 백두 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 태백산 부근에 이르러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까지 이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우리 나라 땅의 근골이다.

언어, 습관, 풍속 등과 의식주의 다양함이 산줄기와 물줄기의 가름으로 인해 세분화되어 생활 철학을 탄생시켰다. 산줄기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어 행정 경계를 이루었으며, 이는 현대에 와서도 각 지방의 자연스러운 분계선이 되고 있다. 이 땅의 지세(地勢)를 파악하고 지리를 밝히는 데 있어서 백두 대간은 그 근본이 된다.

 

 

28. 도를 훔치다

 

p.40

 

*견성(見性):선가에서 견성 성불이라는 숙어로 쓰임. 자기 자신의 심성을 깊이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

 

*오도송(悟道頌):선사들의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시.

 

p.43

 

*공소(空巢) 선사: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지엄(智儼):1464-1534. 당호 벽송(碧松). 정심(正心)에게 전등(傳燈)의 비밀한 뜻을 연구. 지리산에 있으면서 지견이 더욱 밝아지고 계행이 청정하여 총림의 종사(宗師)가 되었다. <선원집(禪源集)>과 <별행록(別行錄)>으로 초학자들을 지도하여 지견(知見)을 세우게 하고, <선요(禪要)>와 <어록(語錄)>으로 지해(知解)의 병을 제하고 활로를 열어주었다. 조선 중종 29년 제자들을 수국암에 모아 <법화경>을 강하다가 방편품에 이르러 제법의 적멸상(寂滅相)은 말로 선설(宣說)할 수 없다 는 대목을 설명하다 문을 닫고 고요히 죽었다. 법랍 44세.

 

*금산(金山) 선사: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심공과(心空科):과거 시험 과목이라는 과(科)를 붙였으나, 입산 수도하여 공(空) 사상을 깨우치라는 비유이다.

 

p.44

 

*<전등록(傳燈錄)>:부처의 가르침이 대대로 전해내려 온 과정을 적고, 유명한 스님들의 행적을 덧붙인 불교 서적.

 

*<화엄경(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줄여 흔히 <화엄경>이라 한다. <화엄경>의 완전한 텍스트는 한역으로 두 가지, 티벳 역으로 한 가지가 있다. 산스크리트 원본으로 현존하는 것은 십지품 과 입법계품 이다.

<화엄경>은 구역에서는 7처(處), 8회(會), 34품(品), 신역에서는 7처, 9회 39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는 설법의 장소이고 회는 모인 횟수이며, 품은 장(章)과 같다.

제1 적멸도량회와 제2 보광법당회는 지상에서의 모임이요, 제3 도리천회와 제4 야천궁회, 제5 도솔천궁회, 제6 타화자재천궁회는 모두 천상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설법이 진행됨에 따라 모이는 장소도 차차 하늘로 옮겨지고 있다. 제7은 다시 지상의 보광법당회, 마지막 제8도 지상의 서다림회 즉 기원정사에서의 모임인데, 여기에서 입법계품 이 설해진다.

그러나 <화엄경>이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각 품이 독자적으로 내려오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하나로 정비되는데, 그 마지막 정리는 서북 인도나 중앙 아시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각 품 중 가장 일찍 성립된 것은 십지경 으로 대체로 기원 1세기 경으로 짐작된다. 그에 이어 몇 개의 품이 무리를 지어 내려오다 마지막으로 정리된 것은 3세기 무렵이다.

 

*<원각경(圓覺經)>:중국에서 찬술된 위경(僞經)일 것으로 여겨진다. 역자인 불타다라(佛陀多羅)에 대해서는 <개언석교록> 제9에서 사문 불타다라는 당에서 각구(覺救)라 한다. 북인도 사람으로 동도의 백마사에서 원각료의경(圓覺了義經) 1부를 번역하였다 고 하였다. 이 경전의 명칭에서 <원각수다라>는 호어의 원만수다라(圓滿修多羅)에서, <요의경>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

萬行首능嚴經)>에서 나온 것이므로, <원각경>의 내용은 후자의 경전에 근거하고 여기에 <대승기신론>의 교의를 짜넣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법화경(法華經)>:<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또는 8권 본이 있다. 고대 인도에서는 기원전부터 비구의 교단과는 별도로 재가(在家) 보살을 중심으로 한 보살단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보다 진보적이고 신앙심이 강렬한 집단이 나타나 기원을 전후로 새로운 입장을 추구한 새로운 경전의 결집이라는 종교 문학 운동을 벌여나갔다. 그러한 운동의 하나로 서북 인도에서 <법화경>이 결집되었다.

 

*반야경: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당나라 현장이 번역하였다. 4처 16회로 나누고, 80여 파의 명수를 들어 모든 법을 죄다 공하다는 사상을 밝혔다.

 

p.45

 

*승가(僧伽):승(僧). 3보(寶)의 하나. 중(衆)이라 번역. 교단 생활을 하는 화합한 대중. 최소한 4인(혹 3인) 이상의 비구가 한 곳에 모여 화합해서 수행하는 단체. 뒤에 의미가 변해서 불교를 믿으며, 가사를 수하고, 불교를 선전하는 이를 승이라 하였지만 본뜻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스님 또는 중 을 일컫는다.

 

p.49

 

*한 소식:깨달음을 가리키는 불가의 용어.

 

*선문답:선사들이 주고 받는 말. 주로 불법에 관한 이야기라서 난해한 것이 특징이다.

 

*조실:선을 주로 닦는 절의 최고 책임자로 주로 도력이 높은 선사가 이 자리를 맡는다. 원래는 그러한 선사가 묵는 방을 뜻함.

 

p.51

 

*도화살(桃花煞):점술이나 사주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살 중의 하나. 호색과 음란을 말한다. 여자의 얼굴에 불그스레한 기가 돌아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도화살이 끼었다고 하는데, 이 도화살은 인간의 본능인 성욕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도화살은 다른 살과는 달리 태어난 해와 날을 적용해서 본다. 신자진(申子辰) 년이나 날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유(酉)가 도화살이 되고, 인오술(寅午戌) 년이나 날은 오(午)가 해당되며, 해묘미(亥卯未) 년이나 날은 자(子)가 해당된다.

 

p.52

 

*서원도(誓願度):결정코 목적을 이루려고 맹세함. 불, 보살에게는 총(總)서원, 별(別)서원이 있는데 총서원은 4홍서원(弘誓願)으로 모든 불, 보살이 다 일으키는 것이고, 별서원은 아미타불의 48서원, 약사여래의 12원과 같이 한 부처님에게만 국한한 서원이다.

 

p.54

 

*혜가(慧可):487-593. 선종의 제2조. 이름은 신광(神光). 낙양 용문의 향산에서 중이 되다.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불교와 유교를 배우고, 32세에 향산에 돌아와 8년 동안 보리 달마를 찾아가서 눈 속에 앉아 가르침을 구하였으나 허락치 않으므로, 왼팔을 끊어 그 굳은 뜻을 보여 마침내 허락을 받고 크게 깨달았다. 552년 제자 승찬에게 법을 전하고, 업도에 34년 동안 머물렀다. 뒤에 관성현 광구사에서 <열반경>을 강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자, 질투를 느낀 중 변화(辨和)의 참소로 수나라 개황 13년 적중간(翟仲侃)의 혹형으로 죽음을 당했다. 뒤에 보각 대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달마:보리 달마. ?-528.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반야다라에게 도를 배우며 40년 동안 섬기다가 반야다라가 죽은 뒤 본국에서 크게 교화하여 당시 성행하던 소승선관의 6종을 굴복시켜 그 이름이 인도에 널리 퍼졌다. 520년에 중국에 당도하여 금릉에 가서 궁중에서 무제와 문답하다 연이 맞음을 깨닫고 낙양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 참선하였다. 신광이 찾아와 구도의 정성을 표하자 혜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깊고 비밀한 종취와 가사, 불발(佛鉢), <능가경>을 전하였다.

 

*활불(活佛):생불(生佛). 살아 있는 부처.

 

*격물치지법(格物治知法):사물을 궁구하여 이치를 알아내는 방법.

 

*진공법(眞空法):공 사상을 말할 때 참으로 비어 있는 것을 진공이라고 하고, 가짜로 비어 있는 것을 완공이라 한다.

 

p.55

 

*<선가보감(禪家寶鑑)>:서산 휴정이 쓴 <선가구감>에서 따온 허구의 책.

 

*<도가보감(道家寶鑑)>:서산 휴정이 쓴 <도가구감>에서 따온 허구의 책.

 

*<유가보감(儒家寶鑑)>:서산 휴정이 쓴 <유가구감>에서 따온 허구의 책.

 

 

29. 박수 두무지

 

p.57

 

*두무지: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강증산의 이미지를 따서 창조한 인물이다. 강증산은 영계를 다스려야 인간계가 편안해진다며 세상을 떠나갔다고 한다.

 

p.60

 

*신시(神市):고조선 건국 이전의 도읍지.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인용된 <고기(古記)>에 의하면,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부인 세 개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는데, 이곳을 신시 라 하였다. 신시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신시는 신정 시대 도읍 주위에 있던 별읍으로서 삼한의 소도와 성격이 같은 신읍이었다는 해석과, 둘째, 신시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으로 환웅을 가리키며, 그것은 조선 고대의 국가들에서 왕을 뜻하는 신지(臣智) 가 존칭화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신명(神明):신지핌 순간의 정신 심리 상태이자 신지핌에 따르는 앙분된 혹은 도취된 정신 심리 상태. 엑스터시(ecstasy). 신지핌은 흔히 접신 또는 빙의 상태(憑依狀態)라 한다. 신령이 인간 육신에 옮아 붙거나 육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p.63

 

*관상(觀相):상을 보아 운명 재수를 판단하여 미래에 닥쳐올 흉사를 예방하고 복을 부르려는 점법의 하나. 상에서는 얼굴의 골격, 색택(色澤) 및 주요 부위가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이것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밖에 주름살, 사마귀, 점, 모발 및 상처의 흔적, 손발의 형상, 신체 거동의 특징과 음성 등도 함께 따진다. 그래서 신체의 상은 얼굴, 뼈, 손, 눈썹, 코, 입, 귀, 가슴, 발의 생김새에 따라 면상(面相), 골상(骨相), 수상(手相), 미상(眉相), 비상(鼻相), 구상(口相), 아성(耳相), 흉상(胸相), 족상(足相)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동작에 있어서도 언어, 호흡, 걸음걸이, 앉은 모양, 누운 모양, 먹는 모양 등이 관찰되어 각기 그 특징에 따라 점친다. 또한 사주를 함께 따지기도 하고 기색(氣色)을 아울러 보며 심상(心相)도 헤아리므로 관상은 인간의 운명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종합적인 점법이라 하겠다.

 

*수상(手相):일반적으로 손금이라 한다. 그러나 수상이라고 하면 손금뿐 아니라 팔, 손, 손가락, 손톱 등의 생김새를 비롯하여 혈색과 빛깔과 살의 두께 등까지도 함께 본다. 즉 수상은 손에 나타난 모든 모습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성격 및 과거와 현재를 판단하고 그것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등 사람의 일생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족상(足相):발바닥을 보고 길흉을 알아보는 운명 감정법.

 

*역상(易象):주역의 괘상(卦象)을 줄인 말.

 

p.66

 

*접신(接神):귀신을 몸 안에 받아들이는 현상. 주로 무당들에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p.71

 

*쾌자(快子):깃, 소매, 무, 앞섶이 없고 양옆 솔기의 끝과 뒷솔기의 허리 아래가 터진 일종의 마상의(馬上衣). 조선 시대 초기에는 군신이 모두 철릭 위에 입었으나, 뒤에 와서 하급 군속 및 조례의 제복으로 착용되었으며, 검기무(劍器舞)를 출 때도 입었다. 검기무에서는 초록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고 쾌자를 입었으며, 남색 전대를 매고 전립을 썼다. 그밖에 무복으로도 착용되었다.

 

*활옷:조선 시대 여자 예복의 하나로 상류 계급에서 가례 때 주로 입었다. 활옷은 붉은색의 겉길에 청색 안을 넣어 만드는데 이는 남녀와 우주의 음양을 상징한다. 또 겉길에는 연화, 모란, 봉황, 원앙, 나비와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의 문양 등을 수놓는데 이는 대단히 화려하고 좋은 의미를 갖는다.

 

*홍천릭(紅天翼):조선 시대 무관의 제복. 당상관은 남색 천릭을, 당하관은 홍색 천릭을 입는다.

 

 

30. 지함이 사라지다

 

p.78

 

*유수(留守):고려와 조선 시대에 수도 이외의 옛 도읍지나 국왕의 행궁이 있던 곳 및 수도 경비에 필요한 곳에 두었던 특수 행정직. 특히 조선 시대에는 수도 방위를 위한 행정적, 군사적 중요 지역에 유수부를 두어 유수를 파견하였다.

 

p.79

 

*옥당(玉堂):홍문관(弘文館). 조선 시대 궁중의 경서, 사적의 관리와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부. 사헌부, 사간원과 더불어 삼사(三司)라 하였다. 홍문관 관원이 되려면 학문과 인격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가문에 허물이 없어야 했으며, 홍문록에 선발되어야 했다. 홍문록이란 홍문관원의 후보로 결정된 사람으로 홍문관, 이조, 정부의 투표를 통하여 다득점자의 순으로 결정된다. 홍문관원에 결원이 생겨야 홍문록 중에서 주의(注擬), 낙점(落點)된 사람으로 충원하게 되므로 홍문관원이 되기란 무척 어려웠다.

홍문관은 집현전과 같이 학술적인 성격과 정치적인 성격을 함께 가졌다. 특히 언론 삼사의 하나로 정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학문, 문화 사업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p.83

 

*보림(保任):깨달음을 더욱 철저히 다듬어 굳힌다는 불교 용어.

 

*잠룡(潛龍):물에 잠겨 아직 승천하지 못한 용이라는 뜻에서, 왕위에 오르지 않은 임금, 또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영웅을 가리키는 말.

 

p.89

 

*을묘왜변(乙卯倭變):1555년(명종 10) 왜구가 전라남도 강진, 진도 일대에 침입하여 약탈과 노략질을 한 사건. 을묘왜변의 배경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점과 일본 국내 사정이 혼란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박 70여 척으로 일시에 전라도 남해안을 침입한 왜구는 계속해서 달량포, 어란도, 장흥, 영암, 강진 일대를 횡행하면서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았다. 사태가 긴급해지자 조정에서는 호조판서 이준경을 보내 왜구를 토벌한 후, 무역 통제를 강화하는 강경책을 썼다. 이에 대마도주는 만행을 저지른 왜구의 목을 보내 사과하였고, 조정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세견선 5척을 허용하여 주었다. 그러나 일본 내의 혼란은 더욱 심하여 도요토미가 통일을 이룰 때까지 왜구의 침입은 그 이후에도 여전했으며, 결국 임진왜란으로 이어졌다.

 

 

31. 허생전

 

p.98

 

*허생전(許生傳):조선 정조 때의 문인, 실학자 박지원이 지은 한문 단편 소설. 이 작품에는 작가의 실학적 경륜과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주인공 허생이 장사를 하였다 하여 허생을 근대적인 경제 사상을 가졌던 중상주의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소설 <토정비결>에서는 허생의 이미지와 토정 이지함의 이미지를 혼합하여 구성하였다.

 

p.99

 

*경년(庚年):천간이 경인 해. 경신년(庚申年) 경인년(庚寅年) 등.

 

*축인양방(丑寅良方):동북방을 말한다.

 

*갑목국(甲木國):동방의 나라를 뜻함. 목(木)은 동쪽을 가리키는 방위임.

 

*삼포왜란(三浦倭亂):1510년(중종 5) 삼포에서 일어난 일본 거류민들의 폭동 사건. 조선은 건국 후 국방 문제를 감안, 무질서하게 입국하는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부산포, 내이포(일명 제포), 염포 등 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여 교역 또는 접대의 장소로 삼았다. 그런데 무역을 끝낸 왜인들이 계속 삼포에 남아 거류하였으며, 그 수가 해마다 증가하여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중종이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법규에 따라 왜인에 대하여 엄한 통제를 가하자 왜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1510년 제포의 오바리시와 야스고 등이 부산을 공격하며 왜란을 일으켰다. 이에 조정에서는 황형과 유담년 등을 삼포로 보내 이들을 진압하였다. 이 난을 계기로 삼포는 폐쇄되어 통교가 끊겼으며, 이 상태는 1512년 임신약조 때까지 이어졌다.

 

p.103

 

*<청오경(靑烏經)>:풍수지리학의 원조인 청오가 중국 한나라 때 자신의 학문을 요약하여 묘터를 정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리한 책. 내용은 하늘과 땅이 생길 때부터 음과 양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음양에 청탁의 구분이 있으며 청과 탁은 길과 흉을 수반하는 것이 풍수지리의 골자임을 지적하였다.

이 책은 특히 조선 시대에 잡과의 과제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p.105

 

*이산정:이지함의 아들. 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실제 인물들은 일찍 죽거나 호환을 당하여 가명을 썼음.

 

p.107

 

*목사(牧使):고려 이후 지방의 주요 행정 구획인 목(牧)에 파견되었던 지방관. 조선 시대에는 정3품직의 고관이 임명되었으며, 파견 지역도 경기 4, 충청 4, 경상 3, 전라 3 등 20여 목이었다. 주요 업무는 관할 지역에 대한 농업의 장려, 호구의 확보, 공부(貢賦)의 징수, 교육의 진흥, 군정의 수비, 사송(詞訟)의 처결 등이었다.

 

 

32. 토정의 난

 

p.116

 

*윤형진: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119

 

*정철:鄭徹. 1536(중종 31)-1593(선조 26). 호는 송강(松江). 10세 되던 해 을사사화로 유배를 당한 아버지를 따라 관북, 정평 등의 유배지를 전전하였다. 그 이후 담양에서 송순, 기대승 등에게 시와 학문을 배웠다. 1580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관동별곡>과 <훈민가> 16수를 지어 시조와 가사 문학의 대가로 재질을 인정받았다. 창평에서 은거 중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 가사와 시조, 한시 등 많은 작품을 지었다. 후에 서인의 영수로 권력을 차지하지만 결국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에서 은거하다 죽었다.

작품으로는 위에 소개한 4편의 가사 외에도 시조 107수가 전한다.

 

p.129

 

*<열반경(涅槃經)>:원 명칭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붓다가 만년에 왕사성을 출발하여 열반의 장소가 된 쿠시나라에 이르기까지의 도정과 그 사적(事跡)을 기록한 경전이다. 설법의 모양과 입멸 후의 화장, 유골(사리)의 분배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붓다의 전기에는 분명하지 못한 내용이 많은데, 이 경전은 입멸 전후의 사적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p.131

 

*분청사기(粉靑沙器):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胎土) 위에 정선된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뒤 유약을 씌워 환원염에 구운 조선 초기의 도자기. 조선 시대의 분장 기법은 무늬를 나타내는 수단이며,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워 백자로 이행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분장 기법을 발생 순서에 따라 살펴보면, 우선 일정한 무늬를 도장과 같이 만들어 그릇 표면에 찍은 뒤 백토 분장하는 인화 기법, 무늬를 선이나 면으로 파고 백토를 감입해 넣은 상감 기법, 백토 분장 뒤에 음각의 선 무늬를 나타내는 음각 기법, 무늬의 배경을 긁어내어 하얗게 무늬만을 남기는 박지 기법, 분장한 후에 철사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철화 기법, 귀얄이라는 시문 도구를 이용하여 백토 분장하여 나타내는 귀얄 기법, 백토물에 그릇을 넣어 분장하는 담금 분장 기법 등이 있다. 분청 사기 무늬는 활달하고 민예적인 것이 특색이다. 무늬로는 모란, 모란 잎, 모란 당초, 연화, 버들, 국화, 당초, 인동, 파초, 물고기 등이 주로 시문되었다. 특히 무늬의 재구성과 추상적인 변형은 조선 시대 도공들의 예술적 탁월성을 보여준다. 기형은 고려 말 청자의 기형을 토대로 율동적인 형태의 안정감 있고 실용적인 모양들이 많다.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조선 시대 종2품 관직. 도(道)의 국방 책임을 맡아 유사시에 군사적 전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병마절도사는 평시에 본인이 직접 또는 부하를 통하여 도내를 순회하면서 지방군의 훈련, 무기 제작과 정비, 군사들의 군장, 군사 시설 수축 등을 살펴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외적 침입이나 내란, 도적, 호환 등이 발생한 유사시에는 지방 군사력을 동원, 지휘하였으며, 임기응변으로 군사 조치를 취하고 이를 중앙에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초 이후 정병이 군포 대납 대상으로 변하여 도역(逃役)이 급증하는 등 폐단이 심화되어 진관 체제가 무너지고, 1555년(명종 10) 무렵부터 제승방략(制勝方略)이라는 분군법이 시행되기에 이르자 지방군의 지휘권은 병마절도사로부터 벗어나 비변사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정부에 직속되었다.

 

p.132

 

*<동다선(東茶選)>:<東茶頌>. 조선 후기의 고승 초의(草衣)가 다도, 특히 우리 나라 차에 대하여 송(頌) 형식으로 지은 책. 모두 31송으로 되어 있고, 송마다 옛 사람들의 차에 관한 설이나 시 등을 인용하여 주를 붙였다. <동다송>은 우리 나라 다에 대한 송이라는 뜻이지만, 이 책에서 우리 나라 토산차에 대한 송은 겨우 6송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중국 차에 관한 기이한 전설을 중심으로 차의 효험, 생산지에 따른 차의 이름과 그 품질, 다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초의는 토산차가 색깔, 향기, 맛 등이 뛰어나 중국 차에 뒤지지 않는다고 찬양하였다.

이 책에 나타난 초의의 다도 정신은 그의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과 통한다. 비록 초의가 <다경> 등 옛 문헌의 구절이나 시 등을 이 책에 많이 인용하였지만, 우리 나라 유일의 다서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다선(茶仙):초의(草衣)를 높이 부를 때 쓰는 말. 실제로 초의는 이 당시보다 훨씬 후대의 인물이나, 차의 이미지를 넣기 위하여 따온 것이다.

 

p.133

 

*다도(茶道):차를 마시는 일과 관련된 여러 다사(茶事)를 통하여 심신을 닦는 행위. 차는 처음에는 음료수의 일종이나 약용으로 등장하였으나, 차차 기호 식품화하면서 취미 생활과 연결되었고, 다시 일상 생활의 도를 끽다(喫茶)와 관련지어 차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삼국 시대 말에 차가 등장한 모습이 보이고, 9세기 전반에 성행하기 시작하여 고려 시대에는 귀족층을 중심으로 다도가 유행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다소 쇠퇴하였으나 사원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19세기 초 우리 나라의 다도가 다시 일어났는데, 특히 초의는 <동다송>을 지어, 차의 재배, 법제하는 방법 등 다도를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을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음다의 풍습은 주로 선가(禪家)에서 성행하였다. 이것은 졸음을 쫓는 차의 약리적 효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도의 정신과 선의 정신이 서로 계합하기 때문이었다.

 

p.136

 

*다선기(茶仙記):소설 <토정비결>에 나오는 가공의 책.

 

*김철순: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137

 

*보우(普雨):?-1565. 호는 허응(虛應). 명종의 모후 문정왕후가 섭정할 때에 강원 감사의 천거로 광주 봉은사에 있으면서 봉은사를 선종, 봉선사를 교종의 수사찰(首寺刹)로 정하여 승과를 회복하고, 승려에게 도첩을 주며 불교를 부흥하였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죽은 뒤 유신(儒臣)의 참소로 제주에 귀양, 목사 변협에게 피살되었다. 저서로 <허응집> <선게잡저(禪偈雜著)> 등이 있다.

 

*대선(大選):대선사(大禪師)?:고려 및 조선 시대 선종 승려의 법계 가운데 하나. 국가에서 실시한 선종의 대선(大選)에 합격한 자는 대덕(大德)-대사(大師)-중대사(重大師)-삼중대사(三重大師)-선사(禪師)의 품계를 거쳐 대선사가 되었다. 그리고 대선사에게는 왕사(王師)와 국사(國師)가 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선종선(禪宗選)에 합격한 승려가 중덕선사(中德禪師) 직을 거쳐 대선사에 이르게 되었으며, 나아가 도대선사(都大禪師)가 되면 선종 전체를 관장하였다. 그러나 1566년(명종 21)에 양종(兩宗)과 승과가 폐지됨으로써 이 법계는 없어졌고, 일반적으로 선을 닦는 승려들 중에서 견성하여 오도(悟道)한 고승에게만 국한하여 대선사라 하였다.

 

p.139

 

*삼별초(三別抄):고려 시대 최씨 정권의 사병이었던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을 말한다. 삼별초는 사병이기는 하지만 경찰과 전투를 맡은 공적인 성격이 농후한 군대로 도령(都領), 지휘, 교위(敎尉) 등 국가 관료가 그 지휘자로 배치되었다. 최씨 정권의 최우(崔瑀) 집권시 나라 안에 도둑이 들끓자 군대를 모아 매일밤 순찰, 단속하게 했는데 그 이름이 야별초였다. 그 후 도둑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야별초의 수가 많아졌으며 이를 나누어 좌별초와 우별초라 하였고, 몽고에 포로로 잡혀갔다 도망온 자들로 편성된 신의군과 함께 삼별초라 하였다. 삼별초는 대몽 강화가 이루어진 뒤에도 진도를 본거지로 삼아 몽고와의 항전을 계속 전개하였다.

 

 

33. 삼개나루

 

p.148

 

*세곡선:국가에 바친 백성의 세금(주로 곡식)을 조정으로 실어나르는 배.

 

p.155

 

*약방문(藥方文):한방에서 약을 짓기 위해 필요한 약의 이름과 분량을 적은 종이.

 

p.156

 

*<천기비전(天機秘傳)>:소설 <토정비결>에 나오는 상상의 책. 실제로 이 소설에서 묘사했던 책과 비슷한 책이 나중에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현무발서(玄武發書)>이다.

 

p.162

 

*황희:黃喜. 1363(공민왕 12)-1452(문종 2). 호는 방촌(방村).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침착하고 사리가 깊었으며, 청렴하고 충효가 지극하였다. 농사 개량의 일환으로 곡식 종자를 배급하고, 각 도에 명령하여 뽕나무를 많이 심어 의생활을 풍족하게 하였으며, <경제육전>을 펴내기도 하였다. 국방 문제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 북방 야인과 남방 왜에 대한 방비책을 강구하였으며, 예법의 확정(廓正)에 노력하였고, 천첩 소생의 천역(賤役)을 면제하는 등 태종대의 국가 기반 확립에 크게 공헌하였다. 세종대에는 국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경험과 식견, 세종의 신임을 배경으로 20여 년 동안 국정을 총리하는 의정부의 최고 관직인 영의정 부사로서 국정을 맡았다. 즉 4군 6진의 개척, 외교와 문물 제도의 정비,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의 진흥 등을 지휘, 감독하였다. 조선 왕조를 통하여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다.

 

 

35. 용호비결

 

p.190

 

*<용호비결>:<북창비결(北窓秘訣)>. 도교 내단(內丹) 수련법의 입문서. 정염(鄭렴)의 저술로 그의 호를 붙여 <북청비결>이라 하였다. 흔히 <용호비결>로 불리며, <용호결>이라 약칭하기도 한다. 내용은 내단 수련법을 제강(提綱), 폐기(閉氣), 태식(胎息), 주천화후(周天火候)의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p.191

 

*지관(地官):묘지나 택지를 선정할 때 그 지질과 길흉을 판단하는 사람. 조선 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관상감에 지리학 교수와 지리학 훈도를 두어 교육시켰다. 풍수지리 사상은 민간의 생활과 직접 관계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도 연구가 매우 활발하였다. 지관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으로는 도선을 비롯하여 봉안(鳳眼)거사, 성(成)거사, 두사충(杜思忠), 이지함, 서경덕, 남사고, 이준경 등이 있다.

 

p.194

 

*안자(顔子):공자의 수제자.

 

*아성(亞聖):공자에 버금가는 성인이라는 뜻으로 안자를 가리킴.

 

p.196

 

*지장보살(地藏菩薩):도리천에서 석가 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는 보살. 석존이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몸을 6도(道)에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대자 대비한 보살이다. 형상은 천관을 쓰고 가사를 입고 왼손에 연꽃을 들고, 바른손으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만든다. 혹 왼손에 연꽃을 쥐고 바른손에 보주를 들기도 한다. 후세에 <연명지장경>이 나오면서부터 석장을 짚은 사문 모습의 형상이 생기고, 그 뒤에 동자를 안은 지장, 육지장(六地藏), 승군지장(勝軍地藏) 등의 형상이 생겼다.

 

p.199

 

* 도(道)는 그 정(精)을 얻고 의(醫)는 그 조(祖)를 얻는 것이라네 :

 

*연단(煉丹):연단술:불로장생의 약으로 믿었던 단을 만드는 기술의 하나. 연단술은 원래 도교의 근본 사상을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여 도교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연단술은 크게 내단과 외단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외단이란 불로장생을 위한 또는 신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연단술은 외단을 완전히 무시한 채 음식 조절법이나 호흡 조절법 같은 전형적인 내단술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강한 유교적인 전통 속에서는 이러한 연단술이 크게 보급될 수 없었으며, 단지 의학 부문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p.201

 

*선정(禪定):6바라밀의 하나. 진정한 이치를 사유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드는 일. 조용히 앉아 선악을 생각지 않고 시비에 관계하지도 않으며, 유무에 간섭하지 않아 마음을 안락 자재한 경계에서 소요(逍遙)케 하는 것.

 

p.204

 

*여묘(廬墓):부모의 산소를 3년 동안 지킬 때 머무는 초막.

 

p.205

 

*참성단(塹城壇):단군 성조가 366가지에 이르는 치화(治化)의 공을 세우면서 아울러 제천의 대례를 행하고 보본(報本)의 뜻을 드높인 민족 제1의 성적(聖蹟)으로 마니산 제천단이라고도 한다.

 

 

36. 참성단

 

p.206

 

*유정(惟政):1544-1610. 호는 송운(松雲), 혹은 사명(四溟). 묘향산에서 청허의 정법을 받고, 금강산 등지를 다니며 수도하였다. 1592년 왜구가 침입하자 의병을 모집, 순안에서 청허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승군을 통솔하여 명나라 장수와 함께 평양을 회복하였으며, 권율을 따라 영남 의령에 주둔하는 등 전공이 많았다. 1604년 국서를 받들어 일본에 가서 덕천가강(德川家康)에게 두 나라 백성들이 오랫동안의 전란에 시달려 내가 그 고난을 구제하러 왔다 고 하자 가강도 신심을 내어 강화 조약을 맺고, 포로 3천 5백 명을 내주었다.

저서로 <분충서난록(奮忠서難錄)> <사명집> 등이 있다. 법랍 55세로 해인사에서 죽었다.

 

*명종주: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김술치: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여무소: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설영후: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고순부: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208

 

*<시헌기요(時憲紀要)>:1860년(철종 11) 남병길이 시헌법의 정요(精要)를 서술한 역서(曆書). 우리 나라에서는 1653년부터 시헌력이 사용되었으나 150년 이상 지니도록 그 요점을 정리한 입문서가 없어 <시헌역법> 이전의 역서로 초학자들이 역법을 학습하였다. 관상감 제도가 된 남병길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곧 이 책의 편찬에 착수하였다. 내용으로는 천문역법에 관한 지식과 실지 측정 방법을 제시하는 실용적인 지식의 소개 등이다. 과학성을 강조하여 전설적이고 신비적이며 상상적인 면은 배제하였다. 이 책은 <신법보천가(新法步天歌)>와 함께 음양과의 시험 과목으로 채택되어졌다. 소설 <토정비결> 연대보다 후대의 책으로 이름을 차용하였다.

 

p.215

 

*정여립:鄭汝立. 1546(명종 1)-1589(선조 22). 이이, 성혼의 후원과 촉망을 받았으나 뒤에 이이를 배반하고 동인이었던 이발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서인의 미움을 받아 고향 전주로 내려와 대동계를 조직하여 매달 사회(射會)를 여는 등 세력을 확장하였다. 대동계 조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황해도 안악의 변숭복, 해주의 지함두 등 기인(奇人), 모사(謀士)의 세력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던 중 1589년 이들이 역성 혁명을 꾀한다는 소문이 퍼져 관군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죽도로 피신하였던 정여립은 관군에게 포위 당하자 자살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인의 주요 인물들이 거의 제거되었는데 이 사건이 기축옥사이다.

정여립의 모반 사건은 무옥이라는 설과 모역이라는 양설로 나뉘고 있다. 정여립은 기축옥사의 장본인이 되어 동인의 정치권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전라도 전체가 반역향이라는 낙인이 찍혀 그 후 호남 출신 인사의 관계 진출이 어렵게 되었다.

 

*언관(言官):대간(臺諫). 감찰의 임무를 맡은 대관과 국왕에 대한 간쟁의 임무를 맡은 간관을 합하여 부르는 명칭. 이들은 각각 고려 시대에는 어사대와 중서문하성의 낭사에, 조선 시대에는 사헌부와 사간원에 소속되어 시정(市政)의 득실을 논하고, 군주, 백관의 과실을 간쟁, 탄핵하며, 관리 인사에 서경권(署經權)을 행사하는 등 중요한 정치적 소임을 담당하였다. 이같은 직임에 따라 언관, 또는 왕의 이목관(耳目官)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 시대의 대간은 왕권 및 의정부와 육조, 특히 이조와 상호 견제하도록 짜여진 권력 구조 위에서 정치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낭관(郎官):조선 시대 육조에 설치한 각 사(司)의 실무 책임을 맡은 정랑과 좌랑의 통칭. 특히 이조, 병조의 문, 무선사 낭관은 고관 회의에서 관리를 전형할 때 실무관으로 배석하여 피천자의 명단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낭관이 불만이 있을 경우 천망명단에 기록하지 않는 권한이 있었다.

 

p.216

 

*대동계(大同契):정여립의 역모 사건의 증거로 거론된 조직. 정여립은 병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전주, 금구, 태인 등의 여러 무사들과 공, 사천의 노비 등을 모아 계를 조직하고, 매월 향사회를 열어 궁술을 익혔다. 정여립은 1587년 전라도에서 왜변이 일어났을 때 대동계의 무사들을 신속히 동원하여 왜구와 싸워 그 이름을 높였는데, 이 계 조직이 뒤에 역모를 위한 준비로 간주되었다.

 

p.218

 

*융희(隆熙):1907년부터 사용된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 즉위로 연호가 광무에서 융희로 바뀌어 1907년부터 1910년 국권 상실 때까지 쓰였다.

 

p.220

 

*십승지(十勝地):전쟁이나 천재(天災)가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군데의 땅. 남사고가 선정한 십승지가 가장 유명하다. 이들 십승지는 대부분 깊은 오지에 위치하여 전쟁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사회적 혼란기나 일제 강점기 및 6.25사변 이후에도 <정감록>을 신봉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이른바 정감록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십승지는 하권 p.220 참조)

 

p.221

 

*동국지도(東國地圖):1463년(세조 9) 정척, 양성지가 만들어 조정에 바친 지도. 두만강, 압록강 일대의 하계망과 산계가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고, 도로, 부, 군, 현, 병영, 수영 등 인문 현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흑룡강이 동서로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도 이 지도의 특징이다.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1478년(성종 9)에 편찬된 팔도지리지. 세조의 명령에 의해 양성지가 만들었다. 양성지는 각 도별 지리지 편찬에 착수한 끝에 20년이 지나 성종에게 <팔도지리지>를 바쳤다. 이는 뒤에 <동국여지승람> 전 50권의 저본이 되었다.

 

p.223

 

*수영(水營):조선 시대 전라도와 경상도에 설치한 수군의 주진(主鎭). 조선 시대에는 왜구와 접촉이 극심한 전라도와 경상도에 한하여 수군절도사가 상주하는 주진을 각각 두 곳에 설치하였는데, 서울에서 보아 각 도의 서편, 즉 우편을 전담하는 주진을 우수영, 동편 즉 좌편을 전담하는 주진을 좌수영이라 하였다.

 

p.224

 

*이순신:李舜臣. 1545(인종 1)-1598(선조 31). 이순신은 충효와 문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시재(詩才)에도 특출났으며 정의롭고 용감하면서도 인자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47세 때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가 된 그는 왜침이 있을 것에 대비해 좌수영을 근거지로 전선(戰船)을 제조하고 군비를 확충하였고, 군량의 확보를 위하여 해도에 둔전을 설치할 것을 조정에 요청하기도 하였다. 1592년 5월 옥포대첩을 필두로, 당항포, 한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원균 등의 모함으로 한양으로 압송되는 수모를 겪었다. 백의종군하던 중 다시 수군 통제사로 임명되었고 명량해전에서 왜군과 대결, 크게 승리하였다. 1598년 노량에서 퇴각하는 적선에게 맹공을 가하던 중 적의 유탄을 맞고 죽었다.

이순신은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 시조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진중(陣中)에서 읊은 시조들은 우국충정이 담긴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p.228

 

*의병(義兵):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한 자위군.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 시대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특히 한말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승패를 가리지 않고 결사 감전(決死敢戰)하는 것이 의병의 본분이며, 의병의 역사에 있어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 병자 양란의 의병과 한말의 의병이었다. 임진왜란시 동족을 구하고 스스로 자기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의병이 일어났는데, 양반, 천민할 것 없이 신분을 초월하였다. 의병장은 대다수가 전직 관리이거나 유학자들로서 학식과 덕망이 출중할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큰 명문 거족들이었던 까닭에 그들이 궐기하면 그의 씨족이나 주종 관계에 있던 자들이 그 밑으로 모여들었고, 유랑민이나 관군을 기피하는 자들도 합세하여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 중 활약이 컸던 의병장으로는 곽재우, 고경명, 조헌, 김천일, 김면, 정인홍, 정문부, 이정암 등등이며, 이들 의병 이외에도 승려들로 조직된 의승군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묘향산의 휴정, 영규, 유정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왜란 초기 이들 의병의 전과로 관군이 재기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다.

 

p.240

 

*이발:李潑. 1544(중종 39)-1589(선조 22). 호는 동암(東巖), 북산(北山).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이념으로 삼아 사론(士論)을 주도, 경연(經涎)에 출입하면서 왕도 정치를 제창하여 기강을 확립하고 시비를 분명히 가렸다. 동인의 거두로 정철에 대한 처벌 문제에서 강경파를 영도하여 북인의 수령이 되었다. 정여립의 모반 사건으로 서인들이 집권하게 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은거하던 중 잡혀 죽음을 당했다.

 

*조헌(趙憲):1544(중종 39)-1592(선조 25). 호는 중봉(重峰). 이이, 성혼의 문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 1천 6백 명을 모아, 영규의 승군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충청도 순찰사 윤국형의 방해로 의병이 강제 해산 당하자, 7백 명의 남은 병력을 이끌고 금산으로 행진, 영규의 승군과 합진하여 전라도로 진격하려던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하였다.

 

*감영(監營):각 도의 감사가 집무하던 관청.

 

p.241

 

*최준호: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영어(囹圄):감옥, 교도소, 유치장의 통칭.

 

p.242

 

*요성(夭星):불길한 조짐을 나타내는 별.

 

p.247

 

*<내경(內經)>:<동의보감> 내경 편을 뜻한다.

 

 

37. 토정비결

 

p.249

 

*<토정비결(土亭秘訣)>:이지함이 지은 도참서. 태세(太歲), 월건(月建), 일진(日辰)을 숫자로 따져 새해의 신수를 보았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주역>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여러 가지 점에서 주역과 다르다. 첫째, <주역>은 중괘가 64괘인데 비하여 여기에서는 48괘만이 사용되었다. 또한 <주역>에서는 한 괘에 본상, 변상으로 총계 424괘의 상이 문제가 되는데 반해, 여기에서는 144괘만이 문제가 되었다. 둘째, 괘상을 얻는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며, 사주의 연월일시 가운데 시가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괘사의 내용도 달라서 <주역>이 인간의 수덕(修德)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데 비해 이 책은 길흉화복의 문제가 중심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또 한 가지 특색은 정월부터 12월가지 12개월의 운수를 4언 3구로 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책은 조선 말 민생의 곤궁이 절정에 달하여 일신, 일가의 화복만이 일차적 관심사로 등장하였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p.252

 

*격국(格局):격식(格式)과 방국(方局). 사주를 뽑아놓고 여러 가지 신살, 오행 등을 뽑아놓은 형상.

 

*살(煞):인간에게 해로운 기운. 구체적인 실체가 없으며 민간에서는 인간에게 발생하는 병, 사건, 관계 등이 모두 이 살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살풀이를 하여 살을 퇴치하는 것으로 보아 실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형태는 감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살의 종류로는 몽중살, 직솔살, 초상살, 거상살, 복채살, 불난살, 실물살, 목재살, 동토살, 산신살, 들룡살, 용왕살, 주당살, 성주님살 등이 있다.

 

p.253

 

*괘(卦):주역 64괘를 가리키는 말.

 

*태세수(太歲數):태세:해마다 돌아오는 해. 60년마다 같은 해가 돌아온다. 최초의 60년은 상원(上元), 다음의 60년은 중원(中元), 마지막 60년은 하원(下元)이라 한다. 해는 이와 같이 180년을 하나의 구절(區切)로 한다. 즉 180회의 해가 365일마다 찾아오는 것이다. 태세는 그 중 금년 1년을 주사하는 하나의 단위로 어떤 사람에게도 똑같이 찾아오는데 각 인의 사주 명식의 내용과 대운의 내용에 따라서 그 해의 길흉이 전부 다르다.

 

*상수(上數):토정비결을 볼 때 맨 앞에 두는 숫자.

 

*월건수(月建數):월건:매일의 지지(地支)로 그 달의 절기에서 다음 달의 절기까지 1개월 간을 주재하는 신이다. 물론 지신만이 독립된 것은 아니고 간(干)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으나, 월건은 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불변한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중수(中數):토정비결을 볼 때 중간에 두는 숫자.

 

*하수(下數):토정비결을 볼 때 맨 뒤에 두는 숫자.

 

*효(爻):주역의 한 괘에 속하는 여섯 개의 가로그은 획.

 

 

38. 마지막 일년

 

*군정(軍政):조선 시대 정남(丁男)으로부터 군포를 받아들이던 것으로 삼정(三政)의 하나. 조선 전기에 확립된 병농 일치의 군역제는 16세기에 들어 방군 수포제(放軍收布制)가 성행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1541년(중종 36)에는 군적 수포제를 법제화하였는데, 이는 지방 수령이 관할 지역의 군정(軍丁)으로부터 일괄해서 군포 2필을 징수하여 중앙에 올리면 병조에서 다시 군사력이 필요한 각 지방에 보내어 군인을 고용하게 하는 제도로 군역이 군포제로 운용되었다. 그러나 뒤에 군정이 문란해지면서 민란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

 

p.265

 

*사족(士族):1)문벌이 높은 집안의 자손

2)선비 집안의 자손

 

*김백남: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박필남:소설 <토정비결>의 허구 인물.

 

p.271

 

*호패(號牌):조선 시대에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발급한 패.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으로 호구 파악, 유민 방지, 역(役)의 조달, 신분 질서의 확립, 향촌의 안정 유지 등을 통한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실시되었다.

 

p.279

 

*48대원(大願):48팔원:부처님의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는데, 별원인 아미타불 본원에 48원이 있다. 아미타불이 법장 비구 때, 세자재왕 부처님 처소에서 세운 서원이다.

 

 

39. 다시 찾아온 두무지

 

p.290

 

*진방(震邦):진괘의 방향, 즉 동북방이다.

 

*선천 명수(命數):우주의 시간을 선천과 후천으로 나눌 때 선천에 해당되는 기간.

 

p.292

 

*이방(離邦):이괘의 방향, 즉 동쪽이다.

 

p.293

 

*진방(辰邦):동남쪽에 있는 나라.

 

p.294

 

*종법도 행법도(從法道行法道):진리를 그대로 따르고 실천하는 것.

 

p.295

 

*천즉불인(天卽不仁):하늘은 인자하지 않다는 뜻으로, 하늘은 세속 감정에 따르지 않고 원리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인물 됨됨이가 옳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하지 말라는 뜻.

 

p.299

 

*삼귀의(三歸依):귀의라 함은 귀순하여 신뢰함을 말함. 첫째, 부처님께 귀의, 둘째, 교법에 귀의, 셋째, 스님으로 귀의.

 

 

40. 토정, 그 후

 

p.305

 

*유성룡:柳成龍. 1542(중종 37)-1607(선조 40). 호는 서애(西厓). 서인 정철에 대한 처벌이 논의될 때 동인 중의 온건파인 남인에 속하여 같은 동인인 강경파 북인의 이산해와 대립하였다.

왜란이 있을 것을 대비해 권율과 이순신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 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하였다.

도학, 문장, 덕행, 글씨로 이름을 떨쳤고, 특히 영남 유생들의 추앙을 받았다. 저서로 <서애집> <징비록> 등이 있는데 임진왜란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군 통제사(水軍統制使):조선 중기에 신설된 종2품 외관직의 무관. 삼도 수군 통제사라고도 한다. 경상, 전라, 충청도 등 삼도의 수군을 지휘, 통솔한 삼남 지방의 수군 총사령관. 본래 삼남 지방의 수군은 5도로 분할되어 각 도에 수군 절도사를 두어 해구에 대처해 왔으나 임진왜란 중 각 도의 수사간의 원활한 지휘 체계를 위하여 1593년 삼도 수군 통제사라는 관직을 신설하고, 왜 수군을 크게 무찌른 전라 좌수사 이순신을 겸직으로 임용한 것이 이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율곡비기(栗谷秘記)>:율곡이 후세에 전하기 위해 썼다는 비서.

 

*도원수(都元帥):고려, 조선 시대 전시에 군대를 통솔하던 임시 무관직. 대개 문관의 최고관이 임명되어 임시로 군권을 부여받고 군대를 통솔하였다.

 

p.306

 

*<정감록(鄭鑑錄)>:조선 시대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온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예언서. <정감록>은 반왕조적이며 현실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조선 시대 이래 금서에 속하였으며, 민간에서 은밀히 전승되어 왔다. 작자를 정감, 혹은 이심(李沁)이라고 보는데, 이는 <정감록>이 정감과 이심의 대화 형식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도전이 조선 왕조의 역성 혁명을 합리화하고 민심을 조작하기 위하여 저술하였다고 추측되기도 한다. <정감록>이 한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용이 수십여 편의 비결류의 집성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형식면에서도 예언설, 참요, 역수의 풀이나 풍수지리설에 의한 해석 등이 다양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사상적으로도 유교의 외도나 도교 및 참위설, 음양 오행설 등 다양하다.

내용은 난세에 풍수설에 따라 복정(卜定)된 피난처에서만 지복을 누릴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정씨 성을 지닌 진인이 출현하여 이씨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이 중심이 되고 있다.

조선 후기 하대로 내려오면서 반란이나 대소규모의 민란은 모두 <정감록>의 진인 출현설이 배경이 되었고, 더욱이 19세기 민중 운동이 모두 <정감록>과 관련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동학을 기점으로 한 한국의 종교 운동이 거의 모두가 <정감록>과 일맥 상통할 만큼 <정감록>은 민중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의상:義湘. 625-702. 당나라의 불교가 성(盛)함을 듣고, 650년 원효와 함께 중국 유학을 위해 요동까지 갔다 원효는 무덤 사이의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유심(唯心)의 도리를 깨달아 돌아오고, 의상은 당나라에 가서 지엄에게서 <화엄경>을 전수받았다. 그 뒤 신라로 돌아와 화엄종의 10찰을 짓고 <화엄경>을 널리 전하였다.

 

*무학(無學):자초(自超). 1327-1405. 호는 무학. 용문산 혜명 국사에게 법을 묻고, 진주 길상사, 묘향산 금강굴로 다니면서 공부하였다. 나옹(懶翁)에게서 의발을 전해 받았다. 고려 말에 왕사로 봉하여졌으나 사퇴하였다.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와 함께 왕도(王都)를 물색하였다. 법랍 61세.

서산이 지은 <석왕사기>에는 태조가 왕이 되기 전에 설봉산 토굴에서 무학이 꿈 해석을 하며 그 자리에 절을 짓고 3년 기한으로 5백 성재(聖齋)를 베풀라 하므로 태조가 그곳에 석왕사를 짓고 그대로 하였다 한다.

 

*<토정가장결>:토정 이지하머이 그의 직계 후손들을 위하여 비밀스럽게 전한 비서. 지금도 전해진다.

 

*감사(監事):관찰사(觀察使). 조선 시대 각 도에 파견된 지방 장관. 관찰사의 임무는 첫째, 국왕의 특명을 받은 사신으로 도내를 순력하면서 1년에 두 차례 수령을 비롯한 모든 외관에 대한 성적을 평가, 보고하는 일이었다. 둘째, 지방 장관으로 모든 외관의 상급 기관이며 도내의 모든 군사와 민사를 지휘, 통제하였고, 독자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상당한 정도의 직단권(直斷權)이 주어졌다. 따라서 감사는 각 도의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를 겸임하였다.

 

*한준:韓準. 1542(중종 37)-1601(선조 34). 호는 남강(南岡). 정여립의 모역 사건을 알리는 고변서(告變書)를 조정에 비밀 장계로 올린 공으로 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특히 글씨를 잘 썼으며, 근면하고 검소하여 죽은 뒤 장사를 치를 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계(狀啓):관찰사, 병사, 수사 등 왕명을 받고 외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거나 청하는 문서. 장계 중에는 그 내용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일성록> 등의 관찬사서와 문집에 소개되거나 전재된 것도 있다. 장계는 그 시대, 지방의 중요한 사건을 보고 또는 청원한 것이므로 사료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장계는 승정원에서 뜯어보고 담당 승지가 이를 왕에게 올려 왕의 재가를 받은 다음, 계하인(啓下印)을 찍고 그 장계의 내용과 관계 있는 관서에 하달한다.

 

p.307

 

*기축옥사(己丑獄事):1589년(선조 22) 정여립의 모반에 의해 일어난 옥사. 1589년 10월에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였다 하여, 3년여에 걸쳐 그와 관련이 된 1천여 인의 동인(東人)계가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이때 제시된 정여립의 역모 죄상은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전주와 진안, 금구 등지를 내왕하면서 대동계를 만들어 매월 활쏘기를 익혔으며, 당시 민간에 유포되어 있던 도참설을 이용하여 민심을 현혹시킨 뒤 기축년 말에 서울에 쳐들어 갈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때의 상소로 말미암아 조정의 동인계 고관과 함께 호남 지방 사류가 연좌되었으며, 이 후로 전라도는 반역향으로 불리게 되었고, 호남 지역의 사류간에 서로 반복 대립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되었다.

 

*변숭복:邊崇福. ?-1589(선조 22). 조선 선조 때의 기축옥사 사건의 모반자. 정여립과 알게 되면서 서로 의기 투합하여 거사 계획을 세웠다. 후에 발각되어 관군에 포위되자 죽도에서 정여립과 함께 자결하였다.

 

*무소불위(無所不爲):못할 것이 없음.

 

*훈요십조(訓要十條):고려 태조가 942년에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몸소 지은 열 가지 유훈(遺訓). 훈요 10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훈요1조:국가의 대업은 여러 부처의 호위를 받아야 하므로 선(禪), 교(敎) 사원을 개창한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정권을 잡고 승려들의 간청에 따라 각기 사원을 경영, 쟁탈하지 못하게 하라.

훈요2조:신설한 사원은 도선이 산수의 순역을 점쳐 놓은 데 따라 세운 것이다.... 후세에 각기 원당(願堂)을 세운다면 큰 걱정이다. 신라 말에 사탑을 다투어 세워 지덕을 손상하여 나라가 망한 것이니 어찌 경계하지 아니하랴.

훈요3조:왕위 계승은 맏아들로 함이 상례이다.

훈요4조:예로부터 당의 풍속을 숭상하여 예악 문물을 모두 거기에 좇고 있으나, 풍토와 인성이 다르므로 반드시 같이할 필요는 없다.

훈요5조:나는 우리 나라 산천의 신비력에 의하여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서경(평양)의 수덕(水德)은 순조로워 우리 나라 지맥의 근본을 이루고 있어 길이 대업을 누릴 만한 곳이니, 사중(子午卯酉年)마다 순수(巡狩)하여 백일을 머물러 안녕을 이루게 하라.

훈요6조: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 명산, 대천, 용신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와 의식 절차의 가감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훈요7조:참소를 멀리하고, 간언을 좇으면 어진 임금이 되고 참소가 비록 꿀과 같이 달지라도 이를 믿지 아니하면 참소는 그칠 것이다. 또 백성을 부리되 때를 가려 하고 용역과 부세를 가벼이 하며 농사의 어려움을 안다면, 자연히 민심을 얻고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할 것이다.

훈요8조:차현(차령) 이남, 공주강(금강) 밖의 산형지세가 모두 배역하여 인심도 또한 그러하니, 저 아랫녘의 군민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 국척과 혼인을 맺고 정권을 잡으면 혹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혹 통합(후백제의 합병)의 원한을 품고 반역을 감행할 것이다. 비록 양민이라도 벼슬자리에 있어 용사하지 못하게 하라.

훈요9조:신료들의 녹봉은 나라의 대소에 따라 정할 것이고 함부로 증감해서는 아니된다. 또 이웃에 강폭한 나라가 있으면 편안할 때에도 위급을 잊어서는 아니되며, 항상 병졸을 사랑하고 애달피 여겨 요역을 면하게 하고, 매년 추기 사열 때에는 용맹한 자를 마땅히 승진을 시킬지어다.

훈요10조:국가를 가진 자는 항상 무사한 때를 경계할 것이며, 널리 경사(經史)를 섭렵하여 예를 거울로 삼아 현실을 경계하라.

 

*정언신:鄭彦信. 1527(중종 22)-1591(선조 24). 호는 나암(懶庵). 1582년 이탕개(尼湯介)가 쳐들어오자 함경도 도순찰사에 임명되어 이순신, 신립, 김시민 등 뛰어난 명장을 거느리고 적을 격퇴하였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 사건 후 그 잔당에 대한 옥사를 처리하던 중 정철 일파의 모함을 받아 갑산에 유배되어 죽었다.

 

*최영경:崔永慶. 1529(중종 24)-1590(선조 23). 호는 수우당(守愚堂). 조식의 문인이다. 정여립 역모 사건 때 유령의 인물인 삼봉으로 무고되어 옥사하였다. 당시 정적인 정철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의 사주로 죽은 것으로 보인다.

 

*쾌도난마(快刀亂麻):잘 드는 칼로 어지럽게 헝클어진 삼가닥을 자른다는 뜻으로 어지럽게 뒤섞인 사물을 명쾌하게 처단함을 비유.

 

p.308

 

*유게(遺偈):마지막으로 남긴 게송으로, 스님들이 죽을 때 남기는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