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재운 작품/소설 토정비결

나와 토정 이지함의 400년 인연

토정 이지함은 1517년생이시다. 보령에서 나고 자랐는데, 1523년생이신 우리 14대조 관 할아버지와 인연이 있으셨다. 토정 이지함의 조카 이산해가 동인이었는데, 관 할아버지도 동인이었으므로 자연히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관 할아버지께서 관향인 함평은 너무 멀다 하여 서울과 함평의 중간인 충청도 어디쯤에 내려가 사실 뜻을 말씀하시자 친하게 지내시던 토정 이지함이 보령군 청라면 장산리에 살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충청도 청양의 장승개 마을을 추천했다고 한다. 그때 한산이씨 집안과 함평 이씨 집안이 서로 인연이 되어 친하게 지냈던 듯하다. 그런 연유로 문과장원급제를 하신 관 할아버지에게 토정이 조카인 이산해, 이산보 등을 추천했을 것이고, 저절로 동인당을 이뤘을 것이다.

 

그때 지금의 선영을 토정이 잡아주었다는데, 여기에는 관 할아버지부터 여러 대 선조들이 지금도 묻혀 계시다. 토정 덕분인지 몰라도 우리 집안은 이후 큰 화를 입지 않으면서 조선조를 잘 살아냈다.

 

그 무렵 토정이 잡아준 터에 정식으로 이사를 하지는 못하고, 아마도 지금의 하남(당시 광주)을 거쳐 경기도 화성에 사셨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남에는 함성군 이종생, 함천군 이량 두 분이 남기신 토지가 많아 후손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 할아버지는 아드님인 효원과 함께 몽진하는 임금을 따라 의주까지 호종하셨다. 효원은 이때 호종일기를 쓰셨는데, 현재 상권만 남아 있고, 뒷권은 분실된 상태다. 앞권도 멸실된 부분이 있다.

관 할아버지는 임진왜란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벼슬을 내려놓고 청양으로 내려오셔서 1596년에 74세로 돌아가셨다. 말하자면 관 할아버지는 청양에 처음 들어오신 우리 집안 입향조시다. 그래서 선영의 맨 위에 계시다.

 

 

- 영모재 안채다. 이관 할아버지의 손자 함릉부원군 이해가 지었다. 관 할아버지가 이 집에 사셨던 것같다. 선영은 지붕 넘어 보이는 소나무가 있는 곳이다. 효원 할아버지가 이 마을에 사실 때 이해는 홍주목사였다.

 

- 선영에 서서 영모재를 앞에 놓고 청양읍 쪽으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이 집 오른쪽에 있는 당숙 댁에서 중학교 1학년을 다녔다.

 

토정 이지함과 우리 할아버지 관이 교분을 나누고, 토정으로부터 우리 집안의 양택지와 음택지를 추천받은 인연이 있은 지 400여년만인 1991년, 나는 우연히 토정 이지함을 소설화해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고, 아무 연고가 없는 줄 알고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자료가 없어 상당히 고생했지만 결과적으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는데, 그때 한산이씨 토정 이지함의 후손들이 찾아와 소설 덕분에 흩어졌던 토정의 후손들이 뭉치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땐 그런 줄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토정 이지함 선생이 우리 집안의 양택지와 음택지를 모두 잡아주셨던 것이다. 게다가 중학교 1학년 때는 바로 그 마을에 사시던 당숙 댁에 머물면서 학교에 다니고, 관 할아버지가 계신 선영을 아무것도 모르고 오르내렸으니 토정이 잡아준 자리에서 제대로 음덕을 입은 셈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런 은혜를 갚기 위해 복잡한 인연을 거쳐 내가 토정 이지함을 복권시키는 일을 해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 할아버지 관, 관의 아드님이신 효원 부자가 선조 이균의 몽진을 호종하면서 한양에서 의주까지 피란길을 가신 것도 그런 연유로 이 소설에 담겼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임진왜란 당시 이야기인 <당취>를 써서 <소설 토정비결 2부>로 붙였는데, 어쩌면 호종일기에 담은 우리 할아버지들의 절절한 마음이 내 소설에 저절로 표현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향신문에 당취를 연재할 때만 해도 우리 할아버지 두 분이 호종공신으로 고생하신 사실도 알지 못했다. 자료에 나오던 이관이 우리 할아버지인지, 이효원이 우리 할아버지인지, 그때 돌아가신 이각 장군 역시 그 이름만 보았을 뿐 우리 할아버지인 줄 까마득히 몰랐다.

 

어쨌든 <소설 토정비결> 1부 3권이 발간되자마자 그냥 인사 삼아 보령에 있는 토정 이지함의 묘소를 참배했었는데, 토정 선생은 또다시 내게, 우리 집안에 은혜를 베풀었다.

<소설 토정비결>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와 토정 이지함 선생이 하늘에서 내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나게 두런거리셨을 것만 같다. 그래서 어쩌면 토정 선생은 기왕지사 하늘에서  깨달으신 바를 모아 내게 <바이오코드>까지 선물하신 듯하다. 성격분석프로그램 <바이오코드>는 오직 영감과 과학에 의지해 20여년간 개발해낸 도구인데, 성격 분류 코드가 모두 144타입이다. 마치 토정비결의 144괘와 똑같다. 토정비결과 바이오코드는 아무 연관성이 없는데도 타입의 수가 일치한 것이다. 때때로 나는 <바이오코드>의 지혜를 토정 선생이 영감으로 전해주신 게 아닌가 머리를 갸웃거리곤 한다. 그래서 토정 선생이 토정비결을 퍼뜨려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 백성들을 위로했듯이, 나 역시 <바이오코드>를 퍼뜨려 성격 차이나, 성격의 대립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나눠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아마 언젠가는 그래야 할 것같다. 아직은 욕심이 남아 꼭 틀어쥐고 있지만 머지 않아 자유저작권으로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다.

 

- 왼쪽부터 바이오코드 개론, 소설 토정비결 초간본, 소설 토정비결과 당취 합본( 전4권)

 

<소설 징비록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