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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닭 기르기

전원 이야기 | 2007/09/09 (일) 11:06

 

텔레비전 고발 프로그램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닭고기나 달걀은 항생제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 먹기가 꺼림칙하다. 

지저분하고 비좁고 통풍 잘 안되는 사육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사료와 항생제만 먹이며 달걀이나 고기를 찍어내는 공장같은 이미지가 정말 싫다. 

사방에 쇠파이프로 가로막은 돼지우리나 평생 손바닥만한 공간에 갇혀 알이나 낳다가, 그것도 밤에까지 불을 밝혀 잠도 못자게 강제로 알을 낳게 만드는데, 그러고도 산란율 떨어지면 잡아버리는 양계장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난 불가피하지 않으면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잘 사먹지 않는다. 

지방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내 문제도 있지만.

 

그럼 달걀 안먹고 살 수 있을까. 

달걀은 완전식품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 

노른자위에는 두뇌영양소가 듬뿍 들어 있어서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꼭 먹여야 될만큼 좋다. 

난 닭 잡아먹을 생각은 없으므로 알을 낳게 할 목적으로 닭을 기른다. 

그런데 전원이라고 해서 닭기르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 챙겨야 할 게 너무 많다.

 

우선 닭은 풀어 놓고 길러야 잔병에 안걸린다. 

닭장에 가둬놓으면 항생제를 먹여야 되는 일이 생긴다. 

닭은 병약한 데다 유행병이 번지면 어김없이 걸리기 때문에 참 위험하다. 

아무리 물을 자주 갈아줘도 소용없다. 

항생제 안먹이며 기르려면 하는 수없이 열 평이나 스무 평쯤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운동량이 풍부해야 면역력이 강화되어 잘 병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집 닭은 약 20평 정도 되는 밭에서 사는데, 알낳는 장소가 한 군데, 횃대가 있는 잠자는 침실이 한 군데 있다. 

수탉은 한 마리, 암탉은 네 마리다. 수탉 한 마리에 암탉 다섯 마리가 안정적인 가족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암탉 한 마리를 더 늘려보려고 세 번이나 부화를 했다. 

처음에는 한 마리가 나왔는데 고양이가 물어갔다. 

두번째는 두 마리가 부화되어 한 마리는 생존하여 현재 암탉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되었다. 

다른 병아리는 마침 장마철이라 물구덩이에 빠져 바르작거리는 걸 에미가 모른 척하여 다 죽어가는데 내가 우연히 보고 구조해다 가까스로 살렸다. 명줄이 긴 줄 알았던 이 병아리도 나중에 고양이한테 물려갔다. 

세번째에는 딱 한 마리만 부화시켰는데 역시 고양이가 물어갔다. 

고양이는 담장을 타고넘어오지는 않는데 겁없는 병아리가 철망 밖으로 나가 놀다가 기습당한 것이다. 

그러고도 어떤 서울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이 학교앞에서 사온 건데 도저히 기를 수없어 몰래 가져와 닭기르는 집을 찾다가 여기 왔노라며 밀어넣고 간 게 있는데, 이 병아리는 큰닭들한테 미움을 받아서 나만 따라다니다가 내가 이불을 너는 동안 발에 밟혀 압사하고 말았다. 

10미터는 떨어져 있어 안심하고 이불을 널고 돌아서는데 그만 녀석 가슴께 절반이 밟힌 것이다. 

나밖에 모르는 놈이 내가 보이니까 최고 속도로 달려와 발밑에서 안심하고 서있는 것을 그만 밟아버린 것이다. 

재빨리 들고 방으로 뛰어들어가 온갖 짓을 다 해봤지만 내장이 파열되었는지 끝내 죽고말았다.

 

그래서 암컷 한 마리를 늘리기 위해 다시 부화를 시작했다. 

9월 5일에 한 알, 6일에 두 알을 넣어주었다. 

고양이가 자꾸 물어가 실패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달걀에다가 壽 福 貴 富 王 萬事亨通 같은 좋은 글자를 빨간 유성펜으로 적어넣고 날짜까지 적어넣었다. 

그러면서 내심 암컷 한 마리만 부화돼다오 했다. 

아마도 이번 추석 기간에 병아리들이 부화될 것이다. 

이러다 수컷이 나오면 이건 또 골치 아프다. 

어딜 줘야 하는데, 자연 상태에서 수컷은 그리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어이 도태될 게 틀림없다. 

한 공간에서 둘이 살면 죽어라 싸우기 때문에 같이 기를 수없어 누구네 주긴 줘야 하는데, 그러면 일년 이내에 잡혀먹힐 것이다. 제발 수컷 병아리가 안나오기만 빌어야겠다.

 

흙마당에서 닭을 기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전에 멋모르고 시골 생활 처음할 때 시멘트바닥에서 기른 적이 있는데 그만 닭들이 시름시름 앓더니 차례로 죽어버렸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보니 모래를 먹지 못해 항문이 막혀 죽었단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하여튼 모래를 먹지 못해 소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건 틀림없었을 것이다. 

내가 무지해서 그때 닭 두세 마리를 비명횡사시켰다.(동네 아주머니들이 달라고 하여 갖다 먹었다.) 

그래서 닭은 반드시 모래를 먹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폐쇄공간이라면 따로 모래그릇을 마련해 거기에 퍼주어야 한다.

 

실패담을 먼저 말하는 게 닭 기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니 그걸 먼저 말하자.

전에 연산까지 가서 오골계 병아리를 사다 길렀는데, 이놈들은 정말 야생에서 기르면 안된다. 

기러기나 꿩 기르듯이 하늘까지 망을 쳐야만 한다. 

이놈들은 어찌나 잘 나는지 웬만한 담장은 훨훨 날아 다닌다. 

우리집 토종 닭도 날기는 잘 하여 담장에 올라가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놈들은 반드시 도로 내려온다. 귀소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골계놈들은 야생성이 더 강해서 그런지 막무가내로 날아다니다 고양이한테 잡히기도 하고, 개들한테 걸려 죽기도 하고, 나름대로 사납게 산다. 

그러니 전원생활을 하는, 나처럼 취미로 기를 사람들은 휘귀한 닭을 기를 때는 그만한 각오를 하고, 또 공부를 하고 기르기 바란다. 

때깔 좋은 관상용 닭을 기르는 것도 아마 걸맞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우리 닭으로 돌아오면, 우리 닭들은 사실 지렁이며 메뚜기, 벌, 구더기 같은 걸 잡아먹으며 산다. 

가끔 제한적으로 텃밭을 공개하는데 이놈들은 이런 날이 잔칫날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으면 구구구 하는 소리(밥 줄 때 너무 기뻐 지르는)를 그치지 않고 온밭을 쏘다닌다. 

이렇게 텃밭을 공개하는 날은 시간을 정해 지켜 서 있어야 한다. 

안그러면 이놈들은 토마토나 익은 고추, 참외, 상추, 배추 같은 걸 너무나 좋아해서 순식간에 초토화시킨다. 

그 매운 고추를 좋아하는 걸 보고는 나도 놀랐다. 

초록고추는 절대 안먹고 붉은고추만 골라먹으니 그것도 신통하다.

 

닭장에는 풀이 마음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게 좋다. 

한여름 너무 메마른 날에 물을 뿌려주면 풀도 잘 자라지만 지렁이가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습기가 많아야 지렁이가 많이 살게 된다. 또 음식물 부산물을 갖다 묻어주면 지렁이들이 잘 먹고 잘 번식한다. 

초봄에는 5월이 되도록 닭장에 풀이 나지 못하지만, 6월이 되면서 닭이 먹어치우는 속도보다 풀이 자라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풀밭이 된다. 

그리고 풀은 싹이 날 때나 닭이 먹지 한번 자라버리면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에 이놈들은 무작정 자란다. 

닭장이니 거름 상태가 좋아 더 쑥쑥 자란다. 

그냥 크도록 두면 보기도 안좋으니 적당한 때 뽑거나 베어서 한쪽에 쌓아두면 거기에 또 지렁이나 굼벵이같은 게 서식하여 닭들에게 좋은 간식거리가 된다.

 

닭들이 좋아하는 풀을 일부러 기르는 것도 좋다. 

씀바귀같은 건 크게 자라도 닭이 좋아한다. 

상추같은 건 심어줘봐야 크도록 내버려두질 않는다. 

닭들이 너무 좋아해 줄기까지 파먹어버리기 때문에 자랄 수가 없다. 

가장 좋은 게 강아지풀인데 내버려두면 저절로 나는 흔한 풀이다. 

이건 닭이 잎끝부분만 먹기 때문에 두고두고 먹게 할 수 있다. 

또 토마토가 너무 많이 달리면 농익은 건 따서 닭장에 던져주면 얼마나 맛있는지 저희들끼리 싸우면서 찍어먹는다.

 

이 정도 해주면서 사료를 주면 녀석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건강하게 잘 살며 알을 쑥쑥 낳아준다. 

암탉 한 마리당 봄가을에는 3일에 두 개 정도 낳고,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이틀에 한 개 낳기도 한다. 

젊은 닭이 낳는 달걀은 작고, 깨보면 속이 탄탄하다. 

늙은 닭이 낳은 달걀은 크고, 깨보면 속이 푹 퍼진다. 

그래도 부화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걸 보면 젊은 닭이 낳은 거나 늙은 닭이 낳은 거나 무슨 차이가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방송에서는 젊은 닭이 낳은 걸 싱싱한 달걀이라고 선전하던데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소비자들이 작은 달걀만 찾으면 이년 이상된 암탉들은 죄다 도태될지 모르니 그러지 마시기 바란다.

 

난 날달걀을 하루에 두 개씩 먹는데 봄가을에는 그래도 달걀이 남아돌아 어린 조카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그러나 여름하고 겨울에는 우리집 식구 먹기도 벅차다. 

딸이 기숙사 학교에 다니니 망정이지 얘까지 집에 있으면 암탉을 더 늘려야 한다.

 

이쯤에서 우리집 수탉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우리 수탉은 신사다. 

모이를 주거나 가끔 보리나 쌀을 뿌려주면 이놈은 멀리서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초고속으로 달려와(반은 날고 반은 뛰어) 꾹꾹꾹 하면서 제 아내들을 부른다.(아이고, 이중에는 딸 하나도 있다만 이를 어쩌나. 남의 집닭하고 바꾸면 좋겠는데 잡아먹을까 무서워 못바꾼다.) 

그러면 암탉들이 여기저기서 날고 뛰고 하여 먹이가 있는 곳으로 모인다. 

암탉들은 정신없이 모이를 먹는데 이 수탉은 절대로 모이를 먹지 않는다. 

그러고는 목을 쭈욱 빼고 사방을 경계한다. 

그렇게 한참 경계하다가 암탉들이 거의 다 먹고 물러나기 시작하면 그제야 설겆이하듯이 암컷들이 헤쳐놓은 걸 주워먹기 시작한다.  

이녀석은 언제나 그렇다.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는 안그랬는데 살다가 암탉들(용인장에서 두 마리, 안성장에서 한 마리, 부화한 거 한 마리. 이 수탉은 안성장에서 사온 것이다.)하고 정이 들면서 그런 습성이 생겼는지 참 대견한 놈이다.

 

이놈은 목청도 좋아서 우리 동네 어딜 가든 꼬끼요 하는 우렁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놈이 짖을 때마다 "어, 씩씩하다. 그놈 시원하게 우는구나. 우리집에서 가장 생명력이 좋은 놈이야." 이러면서 좋아하는데, 그만 우리 둘만 좋아한다는 걸 지난 6월달에 처음 알았다. 

6월이면 한여름 아닌가. 앞집 아주머니가 대문을 두드렸다. 

집사람이 나가보니 우리 수탉이 새벽부터 우는 바람에 이층에 사는 며느리가 아침잠을 설치니 무슨 조치를 해달라는 거였다. 

일단 알았다고는 했다는데, 생각할수록 황당했다. 

시골에서 닭도 못기르는 시대가 되었나 싶어 영 기분이 찜찜했다. 

그래서 동네 아저씨에게 의논을 드리니 별 소릴 다 한다며 무시하라고 했다. 

하지만 며느리가 아침잠을 못잔다는데 그냥 못본 척할 수는 없다. 

더구나 바로 앞집에서 그러고, 뒷집에서는 차마 말은 못하는데 가끔 시끄러워 잠을 깰 때가 있다고 완곡하게 말하더란다. 

하긴 나도 우리집 수탉놈이 시끄럽게 울어대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시계를 쳐다본 적이  많다. 

이놈은 꼭 새벽 네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 주로 울어댄다. 

뭐, 원래 그렇다지만 얄밉긴 하다.


- 바로 이 놈이다

 

앞집 사정을 재차 문의하니, 며느리가 식당을 하는데 밤 열두시가 돼야 집에 돌아와 씻고 뭐하고 한두시에 잠을 자는데, 마침 한여름이라 창문을 다 열고 자다 보니 새벽잠을 설치기 일쑤라는 거였다. 

문을 닫아보면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여름이라 더워서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듣고보니 사정이 딱하다. 

그래서 수탉만 어디로 보낼까 하고 할머니들하고 상의를 하니 만오천원에 누가 사가겠단다. 

아, 내가 여태 정성껏 기른 수탉인데 만오천원이라는 숫자로 계량이 되고나니 갑자기 슬퍼졌다. 

내가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 녀석인데 만오천원이라니. 돈이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라 값으로 환산된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처음 녀석을 사올 때도 만원인가 주었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팔자니 서운했다. 

그래서 돈은 안받을 테니 안잡아먹고 관상용으로 기를 집 있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건 보장이 안된다고들 했다. 

하긴 앞집의 옆옆집에서도 닭을 기르는데 그 집 수탉하고 우리집 수탉하고 대낮에 울기 경쟁을 자주 벌였는데, 그집 역시 항의를 받았다. 

그러자 그집 주인은 그날 즉시 수탉의 목을 꺾어 삶아먹고는 어린 수탉을 사왔다고 한다. 

그러니 어린 놈이 자라서 울기 시작하면 또 목을 꺾어버리면 그 집은 그만이다. 

그 집은 참 편한데, 어줍잖게 시골 사람도 아니고 도시 사람도 아닌 내가 문제다.

 

그 다음에는 지난 여름방학에 강릉기도원으로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거기 노전도사가 기르는 닭들이 애완용으로 잘 있는 걸 보고는 거기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멀어 차일피일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녀셕의 그 신사같은 매너에 반해 난 놈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민이다. 

어떡해야 하나, 저놈을 어디로 보내야 하나. 시골어머니에게 보내놓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딱 잘라 거절한다. 

"닭 모가지 비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또 그짓하기 싫다!" 

이러면서 막무가내다. 

전에 며느리로 살면서 어쩌는 수없이 닭을 잡을 때마다 힘드셨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그게 싫어 내가 집에 올 때는 나 먹인다는 이유로 닭잡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적이 있었다.

 

우리집 닭들은 지금 마당에서 흙을 파헤치는 놈, 마른흙을 뒤집어쓰고 목욕하는 놈, 알 품는 놈, 담장에 올라가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놈 제각각이다. 

우리 닭들은 내게는 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닭 수명은 약 30년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겨우 3년을 길렀을 뿐이다. 

수탉하고 늙은 암탉은 4살이라고 추정한다. 

30년을 장담하기는 이래저래 어수선한 세상이니 사는 날까지나 행복하게 살다 가기를 바랄 뿐이다. 

덕분에 그날까지 건강하고 싱싱한 달걀을 얻어먹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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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추석이 부화 예정 첫날이다. 

25일에 한 마리, 26일에 두 마리가 나와야 계산상 맞다. 

추석날은 시골에서 보내고 이튿날 집으로 와 맨먼저 닭장으로 가보았다. 

암탉은 아직도 알을 품고 있다. 

막대기로 살살 어미 배를 쓸자 놈이 살짝 일어나는데, 거기 병아리 한 마리가 있다. 

털이 안마른 걸 보니 알을 깨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25일자 병아리는 예정대로 나온 것이다.

 

26일에 예정돼 있던 병아리는 26일 밤에 한 마리가 부화되었다. 

나머지 알은 둥글둥글 구석에서 구르기만 했다. 

내가 날짜를 잘못 계산했는지 싶어 그냥두었다가 28일 아침에 다시 확인하니 어미닭이 병아리 두 마리를 데리고 바깥 나들이에 나서는 게 아닌가. 

얼른 부화장에 가보니 알 하나가 껍질이 조금 벗겨진 채 그대로 있다. 

곯았구나 싶어 달걀을 들고보니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곯아서 안되었는지 껍질을 깨지 못해서 안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껍질을 깠다. 

웅크리고 있는 병아리가 나왔다. 

차갑다. 죽었나 싶어 손에 쥐고 날개를 건드려보니 살짝 움직인다. 

자세히 보니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체온이 너무 내려가 그대로두면 곧 죽을 것만 같다.

 

얼른 딸 아이 방에 보일러를 틀어놓고, 수건 두 개로 병아리를 감싸 놓았다. 

그러고서 볼 일 보러 나갔다가 저녁 때 돌아와 보니 아직 살아 있다. 

이때는 어미닭이 병아리 두 마리를 데리고 부화장으로 들어간 때라 이 생사불투명한 병아리를 어미 품 속에 넣어주었다. 

저녁에는 친구 모친상이 있어 갔다가 새벽에 왔는데, 아침에 나가보니 어미 닭은 여전히 병아리 두 마리만 이끌고 밭에 나가 흙을 파헤치는 중이고, 이 불쌍한 병아리는 부화장에 널브러져 있었다. 

또 체온이 떨어져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밤 사이에 어미 체온을 받아서 그런지 털이 말라 제법 병아리같은 때깔이 났다. 

밖에 내놓아보니 일어서질 못했다. 내가 껍질을 깔 때 다리를 건드렸나 싶어 확인해 보니 다리가 부러진 건 아니고, 아직 기력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하는 수없이 또 방으로 데려와 수건으로 감싸 놓았다. 

살 것같으면 삐약삐약 시끄러워야 하는데, 어째 조용하다. 걱정되어 만져보면 움직이기는 한다. 

병아리 살리는 법을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참 난감하다. 

똥꼬나 면봉으로 문질러 막히지 않도록 해야겠다. 

사나흘 안먹어도 문제 없다니 그건 걱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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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어젯밤에 어미품에 넣어주었는데 아침이 되어 나가보니 어미는 또 시원찮은 병아리만 남겨놓고 씩씩한 병아리 두 마리를 이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이 불쌍한 병아리를 만져보니 차디차다. 

죽었나 해서 배를 만져보니 조금 움직인다. 거의 죽을 지경이다.

다시 방으로 들여와 수건으로 감싸주어도 헉헉거리는 게 확연하다. 

물을 면봉에 찍어 먹였다. 

배를 보니 부화할 때처럼 불룩하질 않다. 

그새 소화를 다 시켜서 이젠 모이를 먹어야 하는 모양인데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 

포유류같은 태생이면 우유나 분유라도 먹이겠는데 병아리는 난생이니 이런 놈들은 어째야 할지... 

결국 고민하다 달걀을 깨어 흰자위와 노른자위를 섞어(내가 하루 두 개 먹는 걸 조금 남겨서) 이걸 면봉에 찍어 조금씩 먹이기로 했다. 

부리에 발라주면 이놈이 조금씩 먹는데 목이 막힐까봐 고개를 반짝 쳐들게 해놓고 먹였다.

지금 시각 낮 12시 43분, 삐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녀석이 기운을 차린 것같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다리 한쪽을 못쓴다. 다리가 성해야 땅바닥에 내려놓으면 걸어다니며 뭘 쪼아먹을 텐데, 어제도 이녀석은 일어서질 못하고 굴러다녔다. 모이는 스스로 먹지 못했다. 

너무 연약해 마사지를 해주지 못하고 가벼운 스트레칭 정도만 해주는 중이다. 살기는 살 것같은데, 아직 모르겠다. 

너무 약해서 사소한 게 잘못되어도 죽을 것이다. 또 저만 바라볼 수 없는 것도 문제다.

현관에는 디스크에 걸려 뒷다리를 못쓰는 말티즈 바니가 있는데,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다. 

기윤이는 두 마리나 다리를 못쓰는 게 '하늘의 계시 아닐까?' 하며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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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오전 10시, 다리를 못쓰는 병아리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기력이 없어 물을 줘도 잘 삼키지 못했다. 

죽든 살든 병아리 몸속에도 우주가 들어 있으니, 또 다른 우주 속으로 보낸다. 

나는 우리집 개나 닭, 오리 같은 생명들이 죽으면 꼭 나무나 꽃나무 옆에 묻는다. 

이번에는 구기자나무 밑에 묻어 구기자로 다시 태어나길 기다려본다. 

우주가 존재하는 한 너도 우주 아니냐.




- 9월 30일 생존가능성이 높아 기념으로 찍은 사진. 

그러나 이젠 사진을 더 찍을 수 없게 되었다.


오른쪽. 살아남은 병아리 두 마리를 이끌고 마당을 산책 중인 어미닭. 매정한 년. 

사진에 있는 병아리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또 고양이한테 물려갔다. 자연상태에서 새끼 생명체가 살아남는다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나름대로 들고양이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틀어막았는데, 이 겁없는 병아리들이 철망사이로 바깥을 드나들다 기어이 사고를 당했다.


- 10월 31일 현재 생존한 병아리와 어미. 병아리는 9월 25일생이니 36일령인 셈이다. 오른쪽은 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쳐든 병아리. 한 달간은 풀을 쪼아 수분을 섭취하더니 이젠 물을 마실 줄 안다.

어미닭을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요년들이 요즘 알을 잘 안낳는다. 어미닭 네 마리가 하루에 한 개만 낳는다. 웬일인가 살폈더니 녀석들이 토실토실하다. 겨울을 나기 위해 알을 적게 낳으며 살을 찌우는 모양이다. 겨울맞이 털갈이를 하는지 털빛도 깨끗하다. 네 마리 다 탐스럽게 살이 올랐다. 닭고기 좋아하는 사람들 눈에는 정말 마음에 들 것이다.


- 가을 닭하고 봄 닭은 큰 차이가 난다. 늦은 봄에는 털도 숭숭 빠지고 바짝 마른다. 마치 죄다 부화하고 나온 암탉처럼 못났다. 정신없이 알을 낳기 때문이다. 봄에는 거의 하루에 한 개씩 알을 낳는다. 양계장이라면 계절 차이를 잘 안보일 텐데, 반야생으로 기르다보니 이놈들이 계절에 민감하다.


- 11월 20일 촬영. 병아리가 날개를 치는 모습. 아직 암탉인지 수탉인지 모르겠다. 오른쪽은 확실한 아빠인 수탉과 함께 거니는 병아리.

큰 닭들은 횃대에 올라 자는데, 어미닭은 아직 병아리를 데리고 산란용 개침대에 들어가 날갯죽지에 품어 재운다.


- 2008.1.2  촬영. 확실한 암컷이다. 아직 어미 날개쭉지에 숨어 잔다.

가끔 횃대에 오르기도 하는데 자주 떨어지는 모양이다.

이젠 병아리처럼 삐약거리지도 않고 꼬꼬꼬 하며 모이를 찾아다니는 게 어미닭 비슷해져간다.

 

한겨울인데도 우리집 닭들은 알을 잘 낳는다. 우리집에서 부화한 두 마리를 빼고, 어미닭 셋이서 두 개씩은 꼭 낳는다.

너무 추운 날은 알이 얼어 터지기도 한다. 이놈들이 본능을 잃어버렸는가 보다. 알이 얼어터지는 날씨에는 낳지 말아야 하는데,

주인이 알아서 갖다먹으려니 생각하는지 마구 낳는다.

 

요즘 강아지용 캔을 두 박스 샀는데, 웬일인지 먹질 않는다. 잘못 샀나보다. 좀 싼가 싶어 샀더니 입을 안댄다. 병원에 가지고 가 거기 있는 유기견들에게 먹여봐도 신통칠 않다. 놈들이라도 잘 먹으면 다 갖다주려 했는데, 그것도 안되어 하는 수없이 닭들에게 주니 이놈들은 미친 듯이 먹어댄다. 하는 수없이 개먹이를 닭이 먹게 되었다.


- 2월 16일

마침내 우리집에서 부화한 병아리가 다 자라 오늘 처음 알을 낳았다.

메추리알만한다. 이 병아리가 어느 놈인지 이젠 분간할 수가 없다. 덩치가 어미들하고 똑같다.

작년 9월 25일에 태어난 병아리만 약간 표가 난다. 이놈도 자라는 속도가 워낙 빨라 3월말쯤이면 몰라보게 될 것이다.

2월초부터 병아리가 횃대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한밤중에 가끔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닭장에서 나는데, 아마도 횃대에 앉아 자는 게 훈련이 안된이 병아리 때문일 것이다.


- 가운데 작은 알이 우리집에서 출생한 병아리가 자라 처음 낳은 알이다.

앞에 비교적 흰 달걀은 가장 나이가 많은 닭이 낳은 알이고, 중간 알이 두 살쯤 어린 닭이 낳은 달걀이다.

 

- 달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집 개 세 마리는 이따금 이 좋은 달걀을 간식으로 먹는데, 최근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집 달걀을 개한테 주는 게 아깝다고 말이 많길래, 가까운 하나로마트(농협에서 운영하여 마치 신선하고 농약없고 깨끗할 것같은 착각이 드는 가게)에서 영양란이라는 걸 한 판 사다 삶아주었다. 우리집 개들로서는 오랜만에 하나로마트 달걀을 먹는 셈이다.

전에 닭을 기르지 않을 때에는 자주 달걀을 사다먹였는데, 닭을 직접 기르면서 집 달걀 남는 걸 먹여왔다.

잘 삶아 껍질을 벗기고 칼로 베어 먹기 좋게 서너 조각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도 먹지 않았다.

이럴 수가 없다. 달걀을 먹지 않다니. 개들은 대체로 달걀을 좋아한다.

배가 부르면 먹다남기는 경우는 있어도 이처럼 입도 안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실망한 나는 저녁이 될 때까지 내버려두었다. 그러자 이놈들도 끝내 먹지 않고 버텼다.

배고프면 먹겠지 했는데 굶으면서도 이놈들은 달걀을 먹지 않았다.

저녁에 사료를 주니 사료는 깨끗이 비웠다.

이튿날 아침에도 나는 또 달걀을 삶아 주었다. 어차피 한 판이나 샀는데 시험을 해볼 수밖에. 또 안먹었다.

연달아 아침을 굶길 수없어 이번에는 달걀을 수거하고, 사료를 넣어주었다. 역시 사료는 다 먹었다.

사흘째, 또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하는 수없이 남은 달걀을 다 삶아 으깬 다음 닭모이로 주었다.

닭들은 아무 불만없이 기쁘게 받아먹었다.

 

이유가 뭘까 고민해보았다.

그래서 결론낸 것이 양계장 닭들이 항생제나 이상한 사료를 먹고 낳은 알이라 후각 뛰어난 우리 개들이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고. 

조사는 해보지 않아 뭐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다시는 항생제 달걀을 입에 댈 수없다는 신념이 굳어졌다.

그 달걀 한 판만 그런 건지, 다른 달걀도 그런지, 우리집은 방송국이 아니라서 다 시험해볼 수도 없고, 그저 안먹는 수밖에 없다.

우리 닭들이나 정성껏 길러야겠다.

 

08.03.28

어미닭 한 마리가 기어이 죽었다.

며칠 전부터 행동이 굼뜨기 시작했다. 잘 움직이지 못하자 수탉이 수시로 달려들어 귀찮게 하고(하여튼 수놈들은 죄다 이런 건지) 다른 암탉들은 일부러 달려들어 머리를 쪼아대곤 했다. 부상을 입거나 병든 닭이 생기면 성한 녀석들이 그냥 두지를 않는다. 기어이 왕따시켜 이 어미닭 한 마리만 멀찍이 떨어져 지냈다.

 

동네어른들에게 물으니 가축약품 파는 데 가서 마이신 사다 먹이라고 했다. 일단 자주 가는 애견병원에 가 물으니 기생충 문제일 수 있으니 구충제하고 항생제를 처방해 주면서 하루 세 번, 1.5씨씨씩 물에 타 먹이라고 했다. 3회를 먹였는데 통 차도가 없다.

닭들은 병에 약하고, 특히 우리닭들은 항생제를 쓴 적이 없기 때문에 웬만한 전염병에 쉽게 당할 수 있어서 28일 아침에 축협에서 운영하는 동물병원으로 닭을 큰 쇼핑백에 담아 데려갔다. 그런데 용인 축협 동물병원은 간판만 동물병원이지 약이나 팔뿐 진료는 못하는 듯했다. 링거라도 놓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서 살려보려는데, 원장이라는 분은 닭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설사약 한 봉지를 주고는 용량에 따라 물에 타 먹이라고 했다. 뉴캐슬 병일지도 모르지만, 자기네는 분석할 능력이 없고 안성이나 수원쯤에 나가야 된다고 하면서 빨리 잡아죽이는게 제일 좋다고 권했다. 나도 그쯤은 안다. 병든 닭은 다른 닭들을 위해서 빨리 처분하는 게 좋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어미닭은 지금까지 2년간 꼬박꼬박 알을 낳아준 게 고마워서라도 함부로 목을 조를 수는 없다. 아마도 알 5백 개는 넉넉히 낳아주었을 것이다. 특히 이 닭은 내가 주인인 걸 알고 사료를 줄 때는 가까이 다가와 먹는 녀석이다. 다른 놈들은 내가 물러날 때까지 다가오지 않지만 수탉하고 이 녀석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와 모이를 먹곤 했다. 마당에 나서도 일부러 다가와 아는 체를 하곤 했다.

 

진료를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철망으로 된 개장(병원에서 쓰는 이동용 큰 게이지)에 닭을 넣어 놓고 병원에서 준 약을 먹여보았다. 그러고는 진주에 볼 일이 있어 놓아두고 갔는데, 이날 오후에 숨졌다. 

어미닭이 죽고나니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설사병인 모양인데, 진작 처방했어야 하는데 진주 다니느라고 이틀 정도 처방이 늦는 바람에 구하질 못했다. 다른 닭들이나 건강하도록 사료와 물에 약을 타주었다. 한 일주일치 계란은 품질이 썩 좋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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