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이야기 | 2007/09/30 (일) 17:00
8월말이 되면 가을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풀에 씨가 맺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눈썰미가 없으면 잘 안보인다. 그 다음 가을을 알 수 있는 것은 "맴맴"하는 매미소리 대신 "쓰름쓰름"하는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드디어 전원에 사는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음악회가 열린다. 대략 9월초에 시작되어 10월 초순까지 장기 공연이 이어진다.
이 시기에는 저녁일을 빨리 끝내는 게 좋다. 이 멋진 음악회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확신하건대 웬만한 인간 음악회보다 낫다.
일상을 서둘러 정리하고 오후 8시가 되면 전등을 끄고 창문을 살짝 열어두자.
그러고서 침대에 눕자. 잠이 안온다면 그냥 누워 눈을 감자.
이제 귀가 즐거울 시간이다.
여치, 귀뚜라미, 베짱이 등이 드디어 음악회를 시작한다. 어찌나 장엄한지 귀가 멍멍하다. 하지만 분명한 선율이 있다. 종마다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화음도 재미있게 이루어진다.
물론 이 음악회는 암컷과 수컷의 생식을 위한 것이다. 아마도 이 음악회가 끝나면 암컷 곤충들은 여기저기 알을 까기 시작할 것이다.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도록 나뭇잎이나 풀잎 등 안전한 장소를 찾아 알을 깐 뒤 이들은 죽게 된다. 그러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벌이는 음악 축제라고나할까.
일년에 한번 그리 길지 않은 동안 이루어지는 이 자연음악회를 놓칠 수 없다. 이들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온몸을 맡긴 채 잠이 드는 행복을 누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