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전원 이야기

이모작의 즐거움

전원 이야기 | 2007/10/04 (목) 22:49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모작이라고 하면 남방에서 벼를 일년에 두 번 재배하는 것만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용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 이모작이 가능한 작물은 매우 많다. 상추, 배추, 무, 파, 아욱, 향채 같은 건 언제든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모작으로 자라는 가을 채소들은 맛이 깊어서 "가을 아욱은 문닫아걸고 먹는다"는 속담이 있을만큼 귀하다. 배추와 무도 봄에 자란 것과 가을에 자란 것은 맛 차이가 매우 크다. 당연히 가을 배추, 가을 무가 맛이 깊고 아삭아삭할만큼 경도가 좋다. 여름에 뽑아먹던 향채 중 무녀리처럼 늦게 싹이 터 근근하게 자라던 놈들이 요즘 불쑥 일어났는데, 한 포기만 뽑아도 양이 많고 그 향기가 부엌에 진동한다. 같은 향채맛인데 봄향채보다 더 강렬하고, 혀를 감아도는 향이 미칠 것만 같다.
 
호박도 가을에 열리는 것은 여름에 열리는 것과 맛이 다르다. 토마토, 가지도 마찬가지다. 여름내내 탄저병에 걸려 신음하던 고추도 10월 들어 겨우 정신차리고 새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데, 조그만 것이 어찌나 매운지 모르겠다. 이런 것은 비록 봄에 심은 것이지만 열매는 언제 열리느냐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요즘 새로 싹이 난 봉숭아가 난리를 피우고 있다. 봄에 자란 것 이상으로 수북하게 떼를 지어 올라오는데, 저희들도 날씨가 가을이라는 걸 아는지 웬만큼 자라면 얼른 꽃을 피운다. 초여름에 제때 피는 봉숭아는 색깔이 맑고 투명한데, 요즘 봉숭아는 색깔이 매우 짙다. 또 취나물도 새로 올라온다. 양이 많으면 뜯어서 무쳐먹으면 좋을 텐데, 우리집 마당에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안팎으로 요즘에 민들레가 다시 나기 시작하는데, 이걸 뽑아 무쳐먹으면 좋다. 가을 민들레는 10월말이나 11월초에 캐어 햇볕에 말렸다가 한겨울에 먹으면 별미다. 아, 전원에 사는 분이라면 이때를 놓치지 말고 냉이를 캐어 무쳐 먹어보라. 아마도 그 맛을 본다면 이 귀한 정보를 알려준 내게 감사할 것이다. 봄냉이하고 차원이 다른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쑥 같은 것도 가을이면 새로 난다는 것을.
 
두번째 심은 쪽파를 뽑아 파김치를 만들었다. 어찌나 맛이 좋은지 먹다가 눈을 감을 때가 있다. 멀리 안성에서 용인장까지 와 판다는 할머니 말씀에 무작정 다섯 되나 사다가 여기저기 꽂아놓았더니 이놈들이 요란하게 자라나 이렇게 보은을 하는 것이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그는 위대해지고, 나는 더 행복해진다.

'파란태양 > 전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걷이   (0) 2008.12.14
철부지  (0) 2008.12.14
곤충들의 가을 음악회   (0) 2008.12.14
닭 기르기   (0) 2008.12.14
전원에서 아열대 식물 기르기   (0) 2008.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