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랍시고 부지런히 텃밭을 드나들다 그만 문을 열어놓았었는지 쥐 두 마리가 들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 다용도실에 한 놈이 들어가 살고, 서재에 한 놈이 사는데, 다용도실 놈은 얼굴을 보지 못했고, 서재놈은 새앙쥐인데 새끼손가락만한 길이다. 서재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걸 보았는데,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집밖에 사는 놈은 곤충이든 해충이든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게 내 원칙이다. 따라서 집안에 들어오는 건 별수없이 내몰거나 죽인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래도 다 죽이지는 못하고, 파리를 위해 창문을 열어주거나, 잘못 날아든 매미나 잠자리는 기어이 문쪽으로 유도해 내보낸다. 채소에 달라붙어 들어온 달팽이 같은 건 꼭 떼어내 밖에 내준다.
하지만 진드기도 들어오고, 작은 개미떼도 들어오므로 이들을 살려내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따금 방역을 하여 초토화작전을 벌이곤 하는데, 잔해를 보면 마음이 즐겁지는 않다.
이러는 내게 시험을 걸려고 쥐 두 마리가 들어온 모양이다.
이놈들이 대소변을 가리고, 적당히 주는 먹이나 먹어준다면 나갈 때까지 참아주겠지만, 그게 잘 안되었다. 일부러 문을 열어놓고 녀석들이 나가주기를 고대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했다. 내심 달아날 길을 열어주려는 것인데, 녀석들이 이 기회를 번번이 저버렸다. 그래도 공존할 길이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했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서재놈은 아무 때나 뭘 갉는 소리를 내어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이렇게 두 달 가까이 같이 살다가 도저히 어쩔 수 없어 쥐를 쫓는 방법이 없나 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밖으로 내모는 방법은 나오지 않고 덫이나 쥐약만 팔았다. 고양이를 포획하는 틀 같은 게 있으면 거기에 먹이를 놓아 유인해서 잡으면 좋은데, 꼭 죽이는 방법밖에 소개되는 게 없었다. 쥐를 살려내보낸다는 개념이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문을 열어놓고 나가기를 기다리는 방법은 실패하고, 공존하는 것도 불가하여 하는 수없이 비타민 K를 파괴한다는 쥐약을 놓았다. 그런지 사흘만에 오늘 서재놈이 나와 찍찍거리길래 가만히 잡아 밖에다 내놓았다. 한녀석은 잡는데 성공했는데, 놈은 결국 밖에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죽게 될 것이다. 이 쥐약은 급사시키지 않고 천천히 죽이는 게 특징이라니 그렇다. 다용도실 놈은 아직 기운이 드센지 나올 기세를 보이지 않느다. 거기야 고구마, 감, 옥수수 같은 먹을거리가 지천이니 제딴에는 천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타민 K 파괴 약이 퍼지면 점점 시력이 나빠지면서 밝은 곳으로 나오게 돼 있다니 조만간 놈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얼른 잡아 밖에다 놓아주어야 한다.
(쥐약으로는 비타민 K를 파괴시키는게 가장 효과가 좋고 위생적이다. 집안이든 창고든 약을 먹은 채 죽어 썩는 냄새가 나면 안좋기 때문이다. 이 약을 먹은 쥐는 산 채로 나와 밝은 곳으로 가기 때문에 그럴 염려가 없고, 조금만 먹어도 반드시 효과가 있다.)
눈앞에서 죽는 게 아니라 당장은 마음이 아프지는 않은데 밤공기 서늘한 이 시절에 오들오들 떨다가 죽을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 지난 여름에는 고구마밭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가보니 뱀이 개구리를 막 물고 있었다. 먹이사슬로 볼 때 내버려두는 것이 옳다고 배웠지만 당장 마음이 아파 그러질 못했다. 들고있던 막대기로 뱀의 목 부위를 살짝 누르니 뱀이 겁을 먹고 개구리를 놓아주었다. 개구리는 멀찍이 달아나고, 그제야 뱀을 놓아주었는데, 그런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는 않다는 걸 안다. 어차피 그 뱀은 다른 개구리를 잡아먹을 것이고, 그 개구리는 다른 뱀에게 잡혀먹힐지도 모른다. 그냥 먹이사슬일 뿐인데, 나는 가끔 왜 이놈의 세상은 이런 식으로 생명이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는지 화가 날 때가 많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살고, 내가 죽어야 남이 사는 이 상극 구조가 참 마음에 안든다. 어떤 화가가 유명세를 타면 그 동료 화가들이 싫어하여 뒤에서 씹어대고, 한 작가가 유명세를 타면 그 동료 작가들이 뒤에서 씹어댄다. 화가는 작가를 욕하지 않고, 작가는 화가를 욕하지 않는다. 마치 토끼는 개구리한테 관심이 없고, 개구리는 송사리한테 관심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저희들끼리는 치열하게 싸운다. 우리 암탉년들도 저희들끼리 싸울 때는 치열하다.
오늘 새앙쥐 한 마리를 집밖으로 몰아내고나니 시원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그까짓 쥐새끼 한 마리 가지고 별 궁상 다 떤다고 할지 모르지만, 생명은 크나작으나 다 마찬가지로 귀한 것이다.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없을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다 신약 효능 검사를 한다는 뉴스에서 실험쥐 얘기가 나오고, 이어 그 실험쥐들의 간이나 뇌수를 꺼내 놓고 비교하는 걸 보면 섬뜩하다. 남을 죽이지 않고 내가 사는 법, 이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난관에 빠진다. 내게는 이것이 화두요 공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