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아끼던 텃밭 70제곱미터 정도를 떼어내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근사한 닭장을 지어놓았다. 할머니하고 두 분이 사시는데, 텃밭 가꾸시는 것도 힘에 부쳐 닭을 치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데 큰돈 들여 공사를 하고나니 조류독감이 퍼져 닭을 사올 길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내게 찾아와 닭을 조금 나눠줄 수 없느냐고 청했다. 작년에 우리집 수탉이 새벽부터 울어제끼는 바람에 앞집 새댁이 새벽잠을 설친다 하여 원성을 듣고는 어디 보낼 데 없나 찾던 일을 그이들이 기억해낸 모양이다.
그 때 앞집 새댁은 식당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와 한 시나 두 시는 돼야 잠을 자는데, 그래서 늦잠을 푹 자야 하는데, 우리집 수탉 녀석이 새벽 세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이 색시가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네들도 참다참다 말한 것이라 사실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에야 항의가 들어왔고, 가을이 되면서 밤에는 닭장문을 잠가 여덟시까지는 안열어주니까 수탉도 울지 못해 그뒤로는 잠 못잔다는 말이 들어갔다. 한창 여름에는 세 시부터 울어대던 수탉이 가을이 되면서 여덟시는 돼야 밖에 나와 울기 시작하니까 그런대로 견딜만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미안하여 우리 수탉을 비롯한 일족을 안잡아먹고 우리처럼 계란이나 받아먹을 집을 수소문해보았다. 몇 군데 후보가 나타나긴 했는데, 닭을 잡아 데려다주는 것도 어렵고, 안잡아먹는다는 약속을 믿기가 어려워 차일피일했다. 그러던 중 이런 노력에도 허망하게 앞집 새댁이 식구들과 한바탕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언제부턴가 안보인다. 자세한 건 서로 묻지 않는 사이라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늦잠 잘 사람이 없어 수탉 우는 걸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없게 됐다.
덕분에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5월이 되면서 해가 길어지자 이 수탉놈이 본색을 드러냈다. 새벽 세 시부터 닭장에서 나와 울타리로 올라간다. 그러고는 목을 길게 빼어 한 바탕 소리를 질러댄다. 그래야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한편으로 조류독감이 퍼져 우리도 비상인 상황에 이웃집 할아버지가 닭을 좀 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섭섭하지만 그러기로 했다. 부실한 닭장과 우리 조건이 나빠 혹시라도 병에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되기도 하니까. 결심을 한 뒤, 할아버지네 닭장에 직접 가보았다. 닭을 파는 게 아니고 입양을 보내는 것이니(말하자면 분양) 미리 환경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울타리도 충분히 높아서 이놈들이 멋대로 올라가 노래를 부를 수는 없게 보인다.
그런데 우리 안에 은행나무 같은 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우리 닭들이 올라가 동네를 바라다보며 놀기에는 그만이다. 또 땅도 너른 운동장이 우선 마음에 든다. 우리집 텃밭보다 훨씬 좋아 기름져 보인다. 이게 중요한 것은 지렁이가 많이 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렁이가 많아야 우리 닭들이 간식삼아 즐길 수 있다.
난 우리 집 닭우리 안에 수채 같은 곳이 있어 여기에 자주 물을 흘려보냈다. 그래야 거기에 지렁이가 많이 서식하고, 우리 닭들이 간식이 먹고 싶을 때 날카로운 발톱으로 흙을 파헤치기만 하면 살찐 그 지렁이들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렁이가 잘 자랄 수 있는 그 집 닭장은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닭우리 안에 비를 가릴 수 있는 닭장 한 채를 새로 잘 지었는데 횃대도 큼지막하게 걸어 놓고, 사료급식통과 식수급식통을 제대로 된 것으로 구해 비치해 놓고 있었다. 알낳는 자리도 깔끔하다.
우리집 닭장은 횃대가 가늘고 부실해 녀석들이 오르다가 떨어져 한밤중에 소란이 벌어지는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 점에서 마음이 놓인다.
또 난 깨진 세숫대야에 물을 주고, 장독뚜껑에 사료를 주어왔다. 웬만한 그릇에 사료를 주면 닭들이 그 바닥에 서식하는 지렁이를 잡아먹는다고 그릇을 홀라당 뒤집어 놓기를 잘해 그러지 못하게 무거운 옹기 뚜껑을 사료그릇으로 쓴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할아버지가 만든 닭장은 시설면에서 여러 모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조류독감이 무섭다고 미리 소독약까지 넉넉히 쳤다고 자랑한다.
나는 그집 닭장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나머지 한 가지 조건만 맞으면 우리집 닭들을 죄다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 그 조건이란 우리닭들을 잡아먹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 수탉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먹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토종닭이 낳는 좋은 알만 얻어먹어도 엄청나게 건강에 좋으니 두 분이 알 잡숫는 재미로 기르시라고 부추겼다. 노부부는 쾌히 그러마 대답했다. 자주 와서 닭들을 보고가라고 일러주었다. 돈을 주겠다는 걸 손사래를 쳐 기어이 막았다. 돈을 받으면 그네들에게 입양이라는 의식을 심어줄 수 없다. 돈을 안받아야 미안해서라도 우리 닭들을 안잡아먹을 것으로 믿고 나름대로 이렇게 머리를 쓴 것이다.
저녁 나절, 해가 지기 전에 닭을 붙잡아 입양을 시켜야 하므로 장갑을 끼고 이동용 개장을 들고 닭장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닭을 잡는 게 어려웠는데, 닭장 횃대 쪽으로 모니 이 녀석들은 영문도 모르고 올라앉았다. 한 놈 한 놈 뒷다리를 냅다 나꿔채니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저희들을 잡아먹는 줄 아는지 구슬프게 울어댔다. 그 소리에 망을 보던 사람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새 정들었다고 나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멀리 보내는 것도 아니고 안전한 이웃집에 입양보내는 건데 그러지 말라고 위로했다. 우리가 보고 싶으면 언제나 볼 수 있고, 특히 수탉은 아침마다 울어댈 게 아닌가. 그때마다 정답게 들어주면 된다. 이렇게 해서 수탉 한 마리, 암탉 세 마리를 잡아 개장에 넣어 그 집 닭장까지 가서 넣어주었다. 사료 한 포대도 갖다 넣어주었다.
그렇다고 다 간 건 아니고, 어미닭 하나가 남았다. 아직 병아리가 나오려면 사흘 더 기다려야 하므로 부화된 다음에 따로 보내주기로 했다.
저녁 아홉시 무렵, 바니 오줌도 짜줄겸 마당에 나갔다가 갑자기 우리 닭들이 생각나 귀를 기울여보니 할아버니네서는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 날이 어둬 잠을 자는가 보다. 오늘밤은 낯설고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희 식구들이 다 같이 갔으니 덜 외로울 것이고, 새 집이 워낙 넓고 깨끗해 마음에 들 것이다. 며칠 안으로 정을 붙이고 내 집이려니 여기며 잘 살 것으로 믿는다.
닭들이 다 떠나면 닭 우리에는 고구마나 가득 심어야겠다. 거름이 좋아 아마 잘 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시기를 소원한다. 그래야 우리닭들이 다른 사람 손 안타고 살아남을 것 아닌가. 할아버지 연세가 팔십이 넘고, 몇 년 전 중풍에 걸렸다가 가까스로 회복되었는데, 어떻게든 오래 사셨으면 정말 좋겠다. 안되면 할머니라도 꼭 건강해서 그 집을 오래 지켰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닭들 목숨도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쓸쓸한 밤이다. 좋은 데로 보냈다고 믿기는 하지만, 자식들 맡긴 마음이라 불안한 게 왜 없겠는가.
5.11 아침에 눈을 뜨니 우리 수탉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힘차게 우는 게 밤새 잘 잤는가보다. 그런 뒤에는 누가 알을 낳았는지 알낳았다고 자랑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심이다. 잘 적응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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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양가던 날, 암탉 한 마리가 모이를 먹고 있는데 지난 겨울부터 닭모이를 먹으러 다니는 참새들이 또 찾아와 함께 먹고 있다.
우리집에 오면 손쉽게 사료를 먹을 수 있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참새들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참새들이 사료를 축내는 것같아 창문을 열고 소리쳐 몰아냈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참새들은 닭이 먹다남긴 가루같은 부스러기를 먹기 때문이다. 닭이 좋아하는 큰 덩어리를 참새들은 삼키지 못한다.
이 참새들은 처음에는 닭이 오면 도망가더니 요즘은 서로 낯이 익었는지 함께 먹는다. 하지만 이 사료로 끝이다. 닭모이 얻어 먹으러 우리집 마당에 찾아올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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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닭들이 떠난 오늘도 참새들 방문은 그치지 않는다. 우리닭들이 워낙 헤쳐놓은 사료가 많아 이삼일은 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나면 오지 않을 것이다.
6.7 병아리가 사료도 먹고, 땅을 파헤쳐 벌레도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 정도면 보낼 만하여 저녁 시간, 둥지에 앉은 모녀를 잡아 이동식 개장에 넣어 뒷집 할아버지댁에 갖다드렸다. 그 집 닭장 문을 여니 나뭇가지에 올라가 있던 수탉이 나를 알고 오는 건지, 아니면 낯선 사람이라 공격하러 오는 건지 냅다 달려왔다. 잘 있었니, 묻자 더 오지 않고 주춤거린다. 그러다가 암탉과 병아리를 내려놓자 수탉이 달려와 서로 어울렸다. 내가 닭장 문을 잠그고 물러나는데, 병아리는 낯선 환경에 겁을 먹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암탉은 제 친구들이 거기 다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을 놓는 듯했다. 그러는 걸 수탉이 냅다 달려들어 암탉 등에 올라타더니 애정 표현을 감행했다. 마음이 놓인다. 이제 우리집에는 닭이 없다. 아침마다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