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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잡초 잘 뽑는 법

 
전원 이야기 | 2008/05/06 (화) 10:56
텃밭을 가꾸려면 여름 내내 잡초와 씨름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 농사만 지은 우리 어머니는 콩밭에는 콩 아니면 다 잡초요, 고추밭에 고추 아니면 다 잡초요, 마늘밭에 마늘 아니면 다 잡초로 여겨 그게 무엇이 되든 뽑아없앤다. 그래서 감자밭에서 자라던 20년생 은행나무도 걸리적거린다며 일꾼을 불러 베어버리고, 내가 애지중지 길러온 하늘나리, 아이고, 이거 10년생도 넘는데 이 아까운 걸 절반은 뽑아다 개천에 내다버렸다. 지난 일요일에 또 시골에 내려가보니 재작년 동생하고 땀 흘리며 캐다 심은 으름나무 모가지를 똑똑 끊어 놓은 게 아닌가. "한여름에 심어 사나보자."는 여든 살 당숙모의 저주를 물리치고 내 재주를 다 살려 모조리 살려놓았는데,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면 보기 싫다고 어머니가 죄다 끊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뿌리는 다치지 않았고, 어머니 눈이 밝지 않아 드문드문 보지 못해 살아남은 것들도 있어서 "어머니, 제발 뭘 베거나 뽑을 때는 아들한테 전화 좀 하고나서 하시라"고 신신당부했다. 은행나무 벤 뒤에도 사정했고, 하늘나리 뽑아버린 뒤에도 사정했는데, 시골 갈 때마다 이런 사고는 늘 터진다. 작년에 희귀한 꽃이라 하여 흰 민들레를 밭가에 심었는데, 이건 어머니가 언제 뽑아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잔디마당 한켠에 심어놓은 꽈리를 뽑아버린다든가 더덕 같은 걸 줄기가 보기 싫다고 잡아 뜯어버린다. 개울가 둑에 심어놓은 보리수나무도 어머니는 고춧대 박는데 걸리적거린다며 뽑아버렸다. 쌀 아니고 보리 아니고 콩 아니고, 소채가 아닌 건 다 이런 식이다.
 
지난 일요일 시골에 고추를 심었는데, 내가 모르던 기술을 구경했다. 이랑에 비닐을 덮어 씌우고 고추를 심는 것쯤은 상식이니 새삼스러운 게 아니고, 이랑과 이랑 사이의 고랑에 무슨 부직포 같은 시커먼 걸 쭈욱 깔았다. 형 하고 둘이 잡아당기고 밀고 해서 죄다 깔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잡초 보기 싫어 요새 사람들은 다 이런다고 했다. 그놈의 잡초가 오죽 미우면 이렇게까지 할까 생각했는데, 어쨌든 고랑에 풀나면 어머니가 뽑지 내가 뽑는 게 아니므로 잔소리안하고 하라는대로 해주고 왔다. 어머니 인생 80이란 이렇듯이 잡초와 싸워온 역사가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풀 뽑는 법 얘기하려다 그만 어머니 흉보는 글이 돼버렸으니, 이제 본디 주제로 돌아가자.
답은 간단하다. 무리해서 뽑으려 들면 잡초의 목만 끊어지지 뿌리를 뽑을 수 없다. 잡초는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며칠 내에 다시 움을 틔우고 거뜬히 살아난다. 그래서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날 좋은 날(앞의 날은 해, 뒤의 날은 day) 나서다가는 성질만 버린다. 땅이 딱딱하게 굳어 있기 때문에 뿌리가 마치 시멘트 속의 철근처럼 박혀 있다. 호미, 괭이를 써도 힘들다.
옛날 농사지을 때야 날이 좋든 궂든 무조건 일을 해야 했으므로 어렵게 농사를 지었지만, 전원 생활을 하면서 그럴 것까지는 없다. 그러니 이런 날 용쓰지 말고 기다리면 되는 날이 있다. 바로 비오는 날이다. 비가 온 뒤 나가 만만한 잡초의 머리채만 살짝 잡아당겨도 잘 뽑힌다. 질긴 질경이, 쑥, 미나리 같은 것도 쑥쑥 뽑힌다. 그 이유는 비가 땅을 적시면 흙이 물러지는데, 이때 풀뿌리는 밀가루 반죽 속에 박힌 것같아서 힘을 안들이고도 쉽게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 사항은 비오기를 기다리다 보면 비가 오래도록 오지 않는 때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때 하늘만 바라보며 손을 놓으면 이 잡초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데, 그러면 지나가는 동네 할머니들이 혀를 찬다는 사실이다. 시골 사람들은 좀 말이 많은 편이다. 그런 것까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정 눈치가 보이면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흠뻑 뿌려준 다음에 뽑으면 잘 뽑힌다. 두어 시간 물을 뿌려줘야 흙이 물러지니 묽값을 각오해야 한다.
물을 주면 겉으로는 충분히 준 것같아도 막상 호미나 괭이로 파보면 겉만 젖어 있을 뿐 흙을 5밀리미터만 벗겨봐도 마른흙이다. 그러니 두어 시간 주고, 그러고도 충분히 젖어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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