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앞산 임도로 산책을 나갔다가 막 피기 시작한 동백꽃을 보았다. 바닷가에 피는 붉은 꽃 그 동백이 아니라 생강나무의 노란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충청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이라고 부르고, 생강나무 열매로 머리기름을 만들어 바르기도 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도 이 생강나무꽃을 가리키는 것이다.
* 주) 임도 : 산불나거나 벌목할 때, 또는 나무 관리 등을 대비해 산 중간에 내놓은 길.
해마다 봄이면 산수유 필 무렵에 더불어 피는 동백꽃을 보아온 지 오래 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입학하던 첫해부터 마을 입구 커다란 느티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언덕의 노란 동백꽃을 바라보곤 했다. 색바란 이른 봄 숲에서 홀로 노랗게 피는 동백꽃을 보면 어린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6년을 다니는 동안 해마다 봄이면 이 꽃을 보고 또 보았다.
그뒤 중학교 때부터 외지에 나가 살아온 터라 이 동백꽃이 필 때 그 자리에 있지 못했다. 대신 등산을 갈 때나 산책할 때 간간이 이 꽃을 보면서 어린 시절 형을 따라 학교에 다니던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동백꽃은 해마다 맑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새로 피어나지만, 왜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고, 갈수록 나이 들고 회한 많은 일이 이리 쌓이는지 모르겠다. 한 켜 기쁨이 꽃잎처럼 떨어지면, 한 켜 슬픔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또 그 반대가 되는 이 인생의 나이테가 지루할 때가 있다. 나도 동백꽃처럼 새로 꽃을 피우고, 잎을 내어 모든 걸 새로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룬 모든 걸 다 버리더라도 좋을 것같다. 기억이 다 지워진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같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내 부모형제, 내 자식과 헤어진다 해도 무릅쓸만한 가치가 있을 것같다. 동백꽃, 그 노란꽃을 볼 때마다 난 이렇게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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