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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지록위마 ; 머리 검은 짐승 잘못 거두면 사슴이 말이 된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진나라에 조고란 흉악하고 사악한 놈이 하나 살았다. 욕심은 많은데

학력, 경력, 집안, 재력, 샅샅이 살펴봐도 내세울 게 하나도 없었다. 출세할 길이라곤 단 하나, 불알을 까버리고 환관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침내 불알을 깐 뒤 진나라 환관이 되어 진시황 영정을 미친 듯이 섬겼다. 간이라도 빼줄 듯이 살살거리며 열심히 꼬리를 치다보니 마침내 문고리를 잡을 수 있었다. 환관이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문고리 잡는 자리다. 황제를 만나려면 이 문고리 잡은 조고부터 통과해야만 한다.

 

평소 조고에게 뇌물을 주지 않은 사람은 비록 정승이라도 "폐하께서 잠시 오수를 즐기는 중이십니다." 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진시황의 옛 친구가 찾아와도 "폐하는 지방 순시 중이십니다."하면 역시 그만이다. 그러니 고관대작이라도 문고리 잡은 이 환관놈에게 뇌물을 치든 눈웃음을 치든 살살거려야만 했다.

 

* 오수 : 낮잠.

 

그러던 중 마침내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는 주변 입단속을 시킨 다음 승상 이사만 몰래 불러들여 "승상하고 나하고 다 해먹읍시다." 유혹하여 그러기로 합의하고는 둘이서 황제의 유언을 꾸며댔다. 이사가 적어주는 대로 환관 조고가 조당에 나가 읽으면 그게 부고다. 문고리 권력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 폐하께서 방금 붕어하셨는데, 유언하시기를 <큰아들 부소는 덕이 없어 안되고, 둘째 호해가 후사를 맡는 게 좋겠다. 부소는 동생을 위해 자결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흉노를 막기 위해 전선에 나가 있던 똑똑한 부소는 하루 아침에 역적이 되어 자결하고, 어리바리한 둘째 호해가 느닷없이 황제가 되었다.

왕이나 황제를 내세우는 권력자들은 언제나 얼빵한 놈을 골라다 용상에 앉히는 법이다. 그래야 마음대로 국정을 농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동김씨들이 굳이 무식한 강화도령 이원범을 데려다가 왕(철종)으로 삼은 것이나 박원종이 쿠데타를 일으켜 연산왕을 몰아낸 뒤 마누라 손잡고 도망다니던 이역을 잡아다 이혼시키고 왕(중종)으로 만든 게 그런 이치다. 안동김씨들은 영화를 누렸지만 조선왕조는 그로 인해 망국의 길로 치달았다.

 

환관 조고는 새로 앉힌 황제 호해 옆에 딱 붙어 미인 원하면 미인 붙여주고, 술 원하면 술과 안주를 대령하고, 맛있는 음식 원하면 천리 밖에서라도 구해다 바쳤다. 그래놓고 정사는 제멋대로 했다. 문고리 권력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간 것이다. 역대 어느 환관도 조고만큼 높이 가지는 못했다.

- 황제가 저놈 죽이시란다.

그러면 영문도 모르고 문무백관 한 사람이 죽어나간다.

끗발이 낮은 환관이라면 황제의 귀에 대고 아무개 나쁜 놈이라고 속삭이겠지만 조고 정도 되면 알아서 죽여버리는 것이다. 감히 황제에게 찾아가 진위를 여쭤볼 사람이 없다. 이런 이치로 대통령실 문고리 잡는 비서, 국회의원실 문고리 잡는 비서, 시장 문고리 잡는 비서 중에 조고의 후예들이 아주 많다. 주인들은 까마득히 모르다가 이 환관같은 비서가 감옥에나 가야 그제야 "아, 머리 검은 짐승은 기르지 말랬는데..." 뒤늦게 후회할 뿐이다.

 

조고가 환관 주제에 이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중에, 딱 하나 제 머리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승상 이사가 걸림돌이 되었다. 동지는 동지인데 나눠 먹기에는 아깝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말로는 승상을 존경한다, 사랑한다, 우린 한 편이다, 서로 돕자, 이렇게 개수작을 늘어놓고 몰래 거사 시각을 정해 조당에 심복 역사를 미리 숨겨놓았다.

- 승상 이사가 역적모의를 했단다. 폐하께서 어서 잡아다 죽이랍신다!

그 즉시 "예이!" 하면서 역사들이 튀어나와 이사의 뒤통수를 쇠망치로 까부쉈다.

이렇게 해서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진나라의 최고 실세는 불알 없는 환관 조고가 차지했다.

환관 조고의 말은 곧 황제의 말이 되었다. 근본없고 입 더러운 조고의 입에서 생사여탈의 권력이 마구 쏟아져 나온 것이다. 조고가 한 번 웃어주면 경대부 벼슬이 뚝뚝 떨어지고 한번 노여워하면 작두가 떨어졌다.

승상 이사조차 찍 소리 한 번 못해보고 즉결 처분되었으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기세등등해진 불알 없는 환관 조고는 마침내 자신의 세도를 보이기 위해 작심하고 이벤트를 준비했다. 간신들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까마득히 모른다. 나가야 하는 건지 들어와야 하는 건지, 백성들이 절 미워하는지 이뻐하는지 도통 눈치가 없다. 이기붕이 늙은 이승만 대통령 이용해 마음껏 그랬고, 차지철이 유신으로 지친 박정희 대통령 몰래 멋대로 그랬다. 이 '머리 검은 짐승'들이 주인을 어떻게 했는지는 역사에 잘 기록돼 있다. 그걸 조고는 모른다.

 

 - 황제 아래 환관이 아니라 황제 위 환관이라는 걸 천하에 드러내자.

 

환관 조고는 황제 호해를 데리고 사냥터로 나갔다. 황제가 사냥터에 나갈 때는 모든 문무 신하들과 장수들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그야말로 진나라의 모든 실세들이 집합하는 것이다.


간신 조고는 통일제국 진나라의 모든 권력 실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슴 한 마리를 끌어다 황제 호해에게 바쳤다.

"폐하, 좋은 말 한 마리를 잡았사옵니다. 받으소서." 

- 사슴. 사진/위키백과 영문판

 

호해가 아무리 미련하다지만 그래도 머리 달린 인간인지라 그게 말이 아니고 사슴이라는 걸 모를 턱이 없다.

"에이, 사슴이구만 말이래?"

"폐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거 진짜 말입니다. 사슴이라니, 이 말은 사슴하고는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개그하냐?"

"폐하, 그럼 신하들에게 물어보시지요. 여보시오들, 이게 사슴이오, 말이오?"

조고를 추종하는 간신들이 벌써 입을 맞추어 "말입니다!" 하고 합창했다. 더러 "사슴이 맞습니다." 하는 아주 작은 목소리가 있었으나 옆에서 뒤에서 쿡쿡 찔러대는 바람에 금세 조용해졌다. 그까짓 여론이야 밟으면 짹소리도 못한다. 물론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은 나중에 온갖 혐의를 씌워 모조리 죽여버린다.

이런 지경이니 눈치를 본 황제는 할 수없이 간신 조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 말이구나. 뿔이 참 멋있네....."

(이 故事를 가리켜 指鹿爲馬라고 한다.)


지금 조고 같은 '머리 검은 짐승' 한 마리가 있어 귓속말로 이놈은 나쁜 놈, 저놈은 위험한 놈, 그놈은 교활한 놈이라며 소문을 내고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동원하고, 말 잘 듣는 다른 '머리 검은 짐승' 불러들여 함께 화음 넣고 장단 맞춘다.


독재정권, 군부정권을 거치면서 오랜 동안 권력 앞에 굴종해온 일부 시민들은 침묵하고 있다.

일제 때는 일본군의 거짓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믿는 척이라도 안하면 죽거나 교도소에 가야 했으니까.

6.25전쟁 터져 인민군들이 총부리를 겨눌 때 일부에서는 김일성 만세를 외치며 살아남았다.

또, 독재 시기에 사람들은 유신헌법에 찬성표를 던지고, 주임상사 앞에서 기호 1번을 찍은 투표용지를 보여줘야만 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직간접으로 겪은 시민들께서 크게 걱정한다.


과연 그런가?

사슴이 말이 될 수 있는가?

 

일제 헌병의 총칼 앞에서 떳떳이 대한독립을 외친 분들이 있었다.

인민군의 따발총 앞에서도 공산주의를 거부한 분들이 있었다.

서슬퍼런 독재자 앞에서도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간 분들이 있었다.

진실............

그리고 양심을 지키는 것, 그것이 자주 국민, 자주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거짓을 무기로 삼고, 욕망을 등불로 삼은 '머리 검은 짐승'은 기르는 게 아니다.

멋모르고 '머리 검은 짐승' 거두면 언젠가는 주인에게 사슴 보여주며 말이라고 우길 것이다. 그 지경이 되면 때는 늦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