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고속도로를 나가면 집표원들이 친절하게 군답시고 이렇게 인사한다. 그럴 때마다 난 기분이 나쁘다. 내가 왜 즐거운 주말이 돼야 하는지, 어법을 꼭 이렇게 써야 하는지 화가 난다.
- 즐거운 추석 되십시오.
-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십시오.
-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이게 언제부터 시작된 어법인지 모르겠는데, 널리 퍼지는 걸 보면 꽤 매력이 있는가보다.
- 추석(을) 즐겁게 보내세요
-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세요
- 여행(을) 즐겁게 하세요
이렇게 쓰던 말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홱 뒤집혀버렸다.
우리말에 일본식 어투와 영어식 어투가 상당히 많이 들어왔는데, 꼭 필요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다. 왜냐하면 일본어에는 일본식 사고방식이 배어 있고, 영어에는 영어식 사고방식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적을 더 중시하지만 영어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말은 '회사'에 가는 게 더 중요하지만 영어는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말은 넓은 데서 좁은 곳으로 들어가지만 영어는 좁은 데서 넓은 곳으로 나간다.
남편은 남편이지 '그'가 아 니고, 어머니는 어머니지 '그녀'가 아니다.
말을 잃으면 정신을 잃는다. 물론 요즘같은 국제화시대에 영어를 배워 미국인들이나 영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말을 먼저 갖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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