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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정도전, 그가 꿈꾸던 나라

독후감 1 그가 왜 죽어야 했는지를 영화처럼 극적으로 보여 준다

‘나는 고백한다 -정도전 암살 미스터리’를 읽고

* 2008년판에는 제목이 '나는 고백한다-정도전 암살 미스터리'였다. 2014년판에서는 '정도전, 그가 꿈꾸던 나라'로 바뀌었다.

 

이래덕(사회과학대학 교학계장

 

얼마 전 어처구니없이 불타서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던 숭례문, 오래 전 일제에 의해 철거된 돈의문, 아직도 장중한 모습으로 굳게 서 있는 흥인지문과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들. 그 많은 문화재급 건축물들의 이름과 5백 년 넘게 이 땅을 다스렸던 조선 왕조의 이름을 지은 이는 삼봉 정도전이었다. 또한 조선의 헌법과도 같았던 경국대전의 근거가 된 조선경국전을 지은 것도 삼봉이었다. 그렇다면 삼봉은 수백 년 동안 한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와도 관계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삼봉의 삶과 그가 겪었던 역경, 그의 정신과 그가 가졌던 포부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삼봉은 조선을 건국한 일등 공신이면서도 건국 직후 왕자의 난(정안군이 세자 방석과 당시 실세였던 정도전을 죽이고 실권을 잡은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조선의 건국과 5백 년의 치세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면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던 삼봉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보여 주면서, 그가 왜 죽어야 했는지를 영화처럼 극적으로 보여 준다. 동시에 사람들이 가졌던 일말의 궁금증을 그럴싸하게 풀어 준다.

 

   조선을 건국한 뒤 급하게 요동 정벌을 추진했던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이를 경계하여 두려워하다시피 했던 명나라, 그리고 새로 일어난 명나라의 힘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얽혀서 한바탕 참극이 벌어진다. 삼봉의 아들 정진은 무참히 죽어 간 아버지와 형제의 복수를 다짐하고 이를 갈며, 水軍(수군) 잡역부와 禁錮(금고)의 세월을 견뎌 낸다. 16년이 지난 어느 날 밤 돌연 태종의 밀사가 정진을 데려간다. 태종은 복수의 일념으로 와신상담하던 정진에게 화해의 잔을 건네며 지난 참극의 경위를 들려주지만, 그것은 단순히 참극의 經緯(경위)가 아니다. 작가 이재운은 삼봉의 입을 빌어 조선 건국의 위대한 취지와 고구려의 땅 회복에 대한 민족의 염원을 말하고, 태종의 입을 빌어 국가의 존망과 백성의 안위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태종과 삼봉 모두 나라의 존립과 백성의 안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음을 밝힌다. 이 대목에서 나는 늘 머리를 아프게 했던 문제, ‘강대국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자주독립이냐, 사대를 통한 생존이냐’는 딜레마에 또다시 빠졌다. 오늘날 강대국들의 틈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한국, 그 국민이라면 대개 그렇지 않을까.조정을 튼튼히 하고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삼봉의 뜻은 위대했다. 강한 명나라와의 전쟁을 피하고자 삼봉의 뜻을 칼로 꺾었던 방원도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가 옳았든 그 무엇보다 백성이 중요했다는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

 

   한편 작가 이재운은 요나라를 세웠던 거란족, 금나라를 세웠던 여진족도 우리 백성이며, 그래서 요동 평야는 되찾아야 할 우리 땅이라고 말한다. 조선을, 이성계가 대표하는 여진족과 정도전이 대표하는 고려인의 연합 정권으로 본다. 이성계는 본래 여진족이었으며 본명이 아가바토르였다고까지-그 진위는 史學者(사학자)들의 고증에 맡기자- 말한다. 작가는 우리 역사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아프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 나라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당연한 명제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흔히 인정하기 싫어하던 것과는 달리, 내 핏속에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생각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국제결혼을 통해 혼혈 한국인이 점점 증가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민족주의냐, 국가주의냐. 또 딜레마에 빠진다. 머리가 둔해서 생각이 맴돌다가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이렇게 결론짓고 만다. 한민족이든 한국이든,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은 말과 문화일 것이다. 말이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작가 이재운이 열의를 보이고 있는 우리말 연구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소중한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잘 지키고 더욱 발전시켜야 하겠다.


 

   제213호 2009.5.6. (수). 

 

출처 http://www.clickd.ac.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