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태안원유유출사건>은 틀린 말이다

 2008/02/03 (일) 11:01

 

말은 그냥 잉크덩어리나 소리뭉치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의지가 담겨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이번 서해안 원유 유출 사건을 보면서 이 사건 제목을 뭐라고 짓는가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상하다는 것은 손을 탄 듯하다는 뜻이다.
 
원래 유조선 사건의 경우 해당 사건을 일으킨 배의 이름을 붙여 무슨 호 사건이라고 하는 게 국제관례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 번 여수 앞바다에 원유를 쏟아낸 사건을 "씨프린스호사건"이라고 자연스럽게 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건의 경우 대부분 유조선이나 화물선, 시추선이 침몰하면서 생긴 사건이라 그 배의 이름을 붙여 사건명을 잡는 게 비교적 쉬웠는데, 이번 서해안 사건의 경우 유조선인 <허베이 스프릿호>와 사고의 직접 원인이 된 <삼성중공업 예인선 T-5> 둘 중 어느 배 이름을 따느냐 문제가 달려 있다.
 
주요 사건을 보자.
 
▲ 엑손 발데스호 사건(미국 선적), 1989년 3월 24일, 알래스카의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근해에서 좌초. 원유 1천92만 갤런 유출.
▲ 브리어호 사건(영국 선적), 1993년 1월 5일, 영국 셰틀랜드 제도(諸島)에서 좌초. 2천600만갤런의 원유 유출.
▲ 에게 해(海)호 사건(그리스선적), 1992년 12월 3일 = 그리스 유조선 ‘’, 스페인 서북부 해안에서 좌초. 원유 2천150만갤런 유출.
▲ 시 엠프레스 호 사건(시추선), 1996년 2월 15일, 웨일스 근해에서 좌초. 원유 1천800만갤런 유출.
▲ 니홋카호 사건(러시아 선적), 1997년 1월 2일, 일본 시마네현에서 중유 6240톤 유출
▲ 에리카호 사건(유조선), 1999년 12월 12일, 프랑스 브르타뉴 근해에서 침몰. 원유 300만갤런 유출.
▲ 코스코 부산호 사건(화물선), 2007년 11월 7일, 샌프란시스코 베이브리지 교각과 충돌, 벙커C유 5만8천갤런 유출.
 
이런 관례를 볼 때 이번 사건은 <허베이 스프릿호 사건>이나 <삼성중공업 예인선 T-5 사건>이 돼야 한다. 물론 삼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삼성중공업 예인선 T-5 사건>이라고 하자는 분들이 많겠지만, 법률적 판단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다. 아마도 어느 한쪽만 이름을 들어 사건명을 짓기가 까다로워 어정쩡하게 <태안원유유출사건>이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어설프게 <삼성중공업 예인선 T-5 사건>이라고 명명했다가 삼성에서 광고 안줄까봐 지레 겁먹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겨레신문이 광고를 못받았다고 하잖는가.
 
어쨌든 정부며 언론이 내놓은 사건명이 <태안원유유출사건>이다 보니 무슨 위로금인가를 주민들에게 지급하는데, 어업을 하든말든 이렇든저렇든 액수 가지고 시비가 많은 모양이다. 또 이 사건이 태안만의 사건도 아닌데 태안 주민들만 주목을 받다보니 사건이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면도 있다. 법원 1심 판결이 나오는대로 빨리 이름을 고쳐야 한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내용도 달라진다.
 
법원 심리 중인 현재 가장 정확한 사건 명칭은 이러하다.

- 삼성중공업 예인선 T-5와 허베이 스프릿호 사건

좀더 애국적으로 말하면 삼성은 살짝 배고(국가간에는 늘 이런 법이다) 이렇게 하는 거다. 

- 허베이 스프릿호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