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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미국 믿지 마라, 절대로 믿지 마라

나는 육이오전쟁이 끝난 지 여러 해 뒤인 1958년 9월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큰형은 1950년 9월에, 작은형은 1954년에 5월에 각각 태어났으니, 우리 세 형제가 어떻게 자랐을지는 뻔하다.

기어다니던 시절, 내가 점심을 굶고, 저녁으로 먹는 호박죽이 지겹다고 "호박죽은 밥이 아니야!" 아우성을 쳐대 어머니가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니 그때 우리 형들은 어떠했겠는가.

입을 옷이 없어, 헌 옷 모아다가 성한 데만 잘라 덕지덕지 기워 입던 시절이다.

다행이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국인들이 준다는 우유죽(옥수수 가루를 섞은)으로 못먹던 점심을 먹고, 미국인들이 준다는 헌옷을 입고 살았다. 헌옷을 가득 실은 트럭이 마을에 나타나면 동네 사람들이 죄다 몰려들어 저마다 헌옷이라도 한 벌 얻어 입으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마음대로 고를 형편이 아니어서 누구나 주는대로 받아들었다.

그런 걸 가져다가 어머니는 길면 자르고, 넓으면 줄여서 우리 형제들에게 입혔다.

이처럼 내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못먹던 점심을 먹게 해주고, 못입던 옷을 입게 해준 고마운 나라다.

 

그런데.

크고 보니,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다 보니 고마움은 잠시고 미움이 더 커진 듯하다.

일제의 조선 강점 때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너흰 조선 먹어라, 우린 필리핀 먹으마." 하던 미국의 속셈을 알게 되었고, 일제가 원자탄 두 발을 맞아 수십만이 즉사한 뒤 항복하자 엉뚱하게 일본은 미국이 혼자 다 먹고 애먼 조선을 갈라 소련과 미국이 갈라먹은 걸 알고는 속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반역으로 처형된 사람의 생구는 모조리 갈라먹게 되는데, 노비 부부 중 남편은 가가 데려가고, 아내는 나가 데려가고, 노비 자식은 다가 데려가고, 암소는 라가 가져가고, 암소새끼는 마가 가져가곤 했는데, 2차대전 전승국 미국-소련-중국이 딱 그 모양이었다. 중국은 미국이 던져준 만주국과 대만 먹느라고 바빠 조선 사정 봐줄 새가 없고, 소련은 홋카이도 이북 먹고, 중공업시설이 잘 돼 있던 조선 북부를 먹느라고 바빴다. 미국은 기막힌 미끼를 던져 일본을 통째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패전국 일본, 즉 핵폭탄과 B-29 폭격으로 온 국토가 폐허가 되었던 일본이 미국의 무지막지한 원조에 힘입어 기사회생하더니,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일본은 누가 봐도 미국이 거둬기른 새끼다.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 따위를 평화선에서 제외시킨 것도 다 이런 깊은 뜻이 있고, 오늘날 미국무차관이 일본 편을 들어 그까짓 위안부 문제로 싸워서야 되겠느냐고 나무라는 것도 이런 뜻이다. 미국은 어떤 경우든 일본편이다.

 

그러면 극우인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 육이오전쟁에서 우리나라를 구해주지 않았느냐고!

그런 말 들으면 내 가슴에서 피가 솟구친다.

어리석은 김일성 따위는 거론하지도 말자. 미련한 이승만 따위는 내 글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내게는 할 말이 있다.> 작가이니 언젠가 글로 말하겠다.

하여튼 미국 믿지 마라. 절대로 믿지 마라. 그것이 내가 우리 겨레에게 해줄 수 있는 불변의 진실이다.

그렇다고 반미운동하라는 것도 아니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알고는 있자, 이런 의미다.

 

<중앙일보 / 일본 편든 미 국무부 셔먼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