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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조선이 아침이 조용한 나라라고?

2008/10/08 (수) 17:01

 

한글날 용케 알고들 말하는 모양인데


어제와 오늘 신문을 보니 한글날에 맞춰 한 말씀씩 한 분들이 있어 눈여겨 읽어보았다. 하나는 우리말이 일본어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김세중 씨 주장이고, 또 하나는 박지성 이름을 한자로 알려면 일본신문 봐야만 한다며 개탄한다는 조갑제 씨 글이다.
나는 며칠 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시리즈로 <우리말 1000가지>, <우리 한자어 1000가지>, <우리말 어원 500가지>(예담)를 증보개정해내고 <우리 숙어 1000가지>(예담)를 증보판 및 신간으로 내놓았으니, 우리말에 관한 한 그이들의 주장에 토를 달 자격을 갖고 있다고 믿고, 한 마디 해보자.

먼저 김세중 씨 주장을 읽어보자.

- "한글이 일본어식으로 바뀌고 있다" <김세중 교수>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식구(食口)→가족(家族), 상오(上午)→오전(午前), 측간→변소(便所), 이문(利文)→이익(利益), 내외(內外)→부부(夫婦)라는 일본식으로 쓴다고 꼬집었다.
꽃다발(花束), 뒷맛(後味), 돈줄(金蔓)과 같이 일본말을 그대로 직역해서 쓰고, 관용구에서도 '새빨간 거짓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귀가 멀다'와 같이 일본식 표현도 많다고 주장했다.
고사성어도 일본식이 많아 공명정대(公明正大)→광명정대(光明正大), 의기양양(意氣揚揚)→득의양양(得意揚揚) 처럼 일본식을 점점 더 많이 쓰고 있고 아전인수(我田引水) , 대의명분(大義名分), 침소봉대(針小棒大), 진충보국(盡忠報國) 등도 일본식 사자성어라고 지적했다.
또 굴착기(掘鑿機)의 경우 일본말은 '착(鑿)'자와 음이 같고 획수가 적은 '삭(削)'자로 대체해서 쓰고 있는 데 우리는 그것도 무턱대고 흉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줄여서 쓰면 편리했던 것과 글줄이나 쓴다는 이들이 '의'를 쓸데없이 많이 쓴 탓으로 독서의 계절→독서하기 좋은 계절, 몸의 병→몸에 있는 병, 하늘의 별→하늘에 뜬 별, 불굴의 투쟁→굴하지 않는 투쟁, 철의 여인→강철같은 여인, 조용한 아침의 나라→아침이 조용한 나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걱정하는 말이 많다 등 조사 '의'의 범람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의'의 남발을 "겉에 붙은 살은 남의 살을 좀 가져다 붙일 수 있어도 뼈와 골수까지도 남의 것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표현했다.

일단 기자의 눈으로 걸러진 글이니 혹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쓴다.
김세중 씨의 주장을 들어보면 새겨들을만한 게 많다. 조사 ‘~의’를 안쓰고도 좋은 문장이 된다는 주장 같은 게 그런 것이다.

그런데 내 눈에 거슬리는 문제는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어는 꼭 지켜야 할 우리 문화전통이고, 일본에서 들어온 말은 써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자어는 신라가 백제를 강점한 이후부터 우리말을 밀어내고 들어온 외래어다. 고구려말도 이후 한자어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그 시절로 돌아가 말할 것같으면, 김세중 씨 같은 이들이 나서서 “요즘 우리말이 중국말에 오염되어…”라고 하면서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런 것이다.

 

중국에서 들여온 사자성어나 고사성어, 속담은 써도 괜찮고 일본에서 들어온 속담 등은 절대로 써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 그것도 이상하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중국식 숙어가 얼마나 많은데,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 오래도록 살아남을지 아직 모르는 일본식 어휘 몇 가지 가지고 무슨 민족정신이나 훼손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우리말에는 중국어, 일본어 말고도 몽골의 압제를 받으면서 받아들인 몽골어, 미국의 힘으로 해방된 이후 들어온 영어까지 해서 온갖 외래어가 들어와 있다. 굳이 일본만 가지고 그렇게 물어뜯지 말고, 언어란 본디 주고받는 것이고, 영향을 주거나 받는 것이라는 기본 이치를 이해하여 좀더 너그러워지기를 바란다. 프랑스-영국, 독일-프랑스 등 원수같이 지내는 나라 사이에도 닮은 어휘가 엄청 많다고 하니 우리도 말 가지고 너무 편협하게 굴지 않는 게 좋겠다. 오전이라고 하지 말고 상오라고 써야 제대로 된 우리말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스쿨존, 휘트니스, 비즈니스 프렌들리, 이런 영어나 우리말로 고쳐쓰려고 애쓰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한다. 하기 싫으면 그냥 두면 되고.

 

 

아, 참 덧붙일 게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아침이 조용한 나라’로 고쳐쓰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데 정말 웃기다. 혹시 조선을 번역한 영어 ‘morning calm country’를 번역하는 문제로 오해한 게 아닌가 싶다. 본디 ‘朝鮮’은 아침에 개도 안짖는 조용한 나라라는 뜻이 아니라 ‘아침처럼 신선한 나라, 새로 시작하는 깨끗하고 좋은 나라‘라는 뜻이다. 물론 당시에 명나라에 잘 보이기 위해 기자조선을 줄인 말이라고 보고는 했지만 본디 뜻은 그러하다. 그리고 아침에 사람들이 떠들지도 않고 개도 안짖는 조용한 나라라고 한다면 鮮朝라고 해야지 朝鮮이라고 하면 한자 문법에 맞지 않는다.

그 다음, 조갑제 씨 글을 보자.

- 조갑제, “박지성 선수 한자 이름 알려면 일본 신문 봐야” [조인스] “영국 프로 축구팀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의 진짜 姓名(한자 이름: 朴智星)을 알려면 일본 신문을 읽어야 한다”.
보수 논객 조갑제씨(조갑제닷컴 대표)가 한글날을 앞두고 한자를 외면하는 국어교육을 비판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국어교육=국민정신이 파탄 나는 나라’라는 글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달러가 되어도 한자 이름을 외국 신문을 봐야만 알 수 있는 국어 실력을 가지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 나라의 유명 인사 이름을 외국신문을 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국어 교육이 파탄났다는 의미”라며 “국어 교육의 파탄은 국민정신의 파탄을 뜻한다”고 꼬집었다.
조씨는 또“이름에 담긴 좋은 뜻은 한자로 써야만 전해진다. 한글로 고유명사를 표기하면 의미는 탈락된 채 소리로 전락한다”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귀중한 이름을 소리로 전락시키는 것은 그 이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은 분들에 대한 모독이요 배신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용범 기자

조갑제 씨 글에 무슨 토를 다는 내가 한심스럽지만 사람들이 또 오해할까봐 몇 자 적어본다. 나 역시 박지성 이름이 한자로 朴智星이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일본신문을 통해 안 조 씨보다는 우리 신문보고 안 내가 더 행복한 모양이다.
아무튼 한자어를 이렇게 무시하는 것도 아직은 때이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조 씨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고도 보지 않는다. 조 씨 주장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은”이라면 좋은데, 사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쟤도 아는 대로 말하자면, 누가 이름 짓는데 고상한 한자어 뜻을 새기며 지었던가?
대개는 성씨에다 항렬자 하나 넣고, 나머지 한 자를 끼워넣는데 이때 획수와 오행을 따져 지었지 그렇게 고상하게 이름을 지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항렬 자라는 것도 실은 오행 순서대로 적당히 골라 정해놓은 거지 집안을 번창하게 하라는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박지성은 외아들이라고 하니 항렬자를 썼는지 안썼는지 당장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개 그러하다는 건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사실이다. 박지성의 한자어 이름을 풀자면 지혜의 별이란 뜻인 듯한데, 아마도 이름을 지은 이는 이러한 뜻보다는 오행과 획수에 더 관심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울러 덧붙이자면 오행과 획수에 맞춰 이름을 짓는 방식은 빨리 버리는 게 좋겠다. 한글 이름은 그만두고라도, 조갑제 씨 주장대로 한자어의 의미라도 새겨짓는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더 안타깝고, 그래서 굳이 한자를 쓰지 않는 풍토가 생겨난 듯하다.
그러니 이런 것도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우리 한국인 이름이 무슨 암호같이 생겨먹어서 외국인들이 외우느라 무척 애를 먹는다는데, 국제화 시대에 점차 좋은 방향으로 고쳐지리라고 믿는다. 대안없이 다른 이 말을 무작정 씹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앞장서서 해결하는 노력하는 게 좋겠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박지성을 지숭빠레라고 한다던데, 그 이름이 더 외우기 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