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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안산세월호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에서

지난 해 4월 11일은 우리 리키가 갑자기 하늘로 간 날이다. 리키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던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났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중에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들이 집단 사망하는 초유의 사고가 난 것이다.

 

1주기인 오늘, 아침에 책상 앞에 앉았는데 도무지 일이 되질 않았다. 밖을 내다 보니 비가 내렸다.

그대로 일어나 안산으로 갔다. 가슴이 먹먹한 것이 안산이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았다.

 

사무실에 나가 사정을 말하니 후배가 기꺼이 동행해주었다. 슬픔도 나누면 견딜만하다.

분향소에 가 국화 한 송이를 잡고 줄을 따라갔다.

길어도 너무 길다. 영정을 일일이 보려 애를 써도 뒷사람에 밀려 다 볼 수가 없건만, 그러고도 줄은 한없이 길다.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실감이 확실히 다르다.

방명록에 사죄하는 글을 적었다.

-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내 나이에 이른 사람이 입에 거품 물고 남탓만 할 수는 없다. 잘못을 보고도 꾸짖지 않은 죄가 내게 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리, 부조리, 사기, 협잡을 귀찮다고, 내 일 아니라고 눈감은 적이 있다. 이런 무관심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냥 있었을 뿐이다.

세월호의 갖가지 사고 요인을 목격한 사람은 굉장히 많다. 평형수가 적다는 걸 알고도 모른 척 눈감은 사람, 자동차를 고정시키지 않은 걸 보고도 못본 척한 사람, 배가 기울고 있는데도 상황을 파악하려 하지 않은 교사와 승무원,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폭력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생산하는 주체가 대체로 무지와 탐욕, 이기심 등으로 뭉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본보다, 중국보다는 대한민국이 훨씬 덜 폭력적이라고 나는 믿는다. 또한 조선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매우 온순한 편이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분풀이해 가지고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 잘난 야당을 이끄는 자들 역시 지난 1년간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목표의식조차 없다. 그저 유가족들 틈으로 숨어들어가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거짓핑계를 구할 뿐이다. 국회의원 130여석이 어디 적은 권력인가.

 

인간은 권력을 갖는 순간 폭력적으로 바뀐다. 완장을 차는 순간 돌변한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속성이 그러하다. 오늘 대통령을 거칠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내일 어떤 인간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또다른 세월호 사고를 막을 수가 없다.

정의를 지키려는 굳센 의지, 불의를 보면 반드시 지적하고 응징하는 용기,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나가는 학습, 꼭 쥐고 있어야 할 것들이다.

 

분향을 마치자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