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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이재운의 소설 문장은 너무 쉽다고 불평하는 분들께

내 소설에 나오는 문체 혹은 문장이 너무 짧고 쉬운 말로 씌어졌다고 불평하는 독자들을 가끔 만난다.

바이오코드를 배우신 분들에게는 내가 1045라서 그렇다고 하면 군더더기없이 뜻을 전할 수 있는데,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렇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주로 한자어를 많이 안쓴다고 그러는 줄 다 안다. 작가 중에는 자주 쓰이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를 글에 많이 집어넣어야 된다고 믿는 분들이 더러 있다. 나는 그런 걸 지식의 사치, 지식의 허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문 원전으로 고전을 읽으며 살아왔다. 특히 스승이신 미당 서정주 선생께서 한문 공부를 많이 해야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충고하셔서 그 말씀을 충실히 따랐다. 사서삼경은 20대에 책이 해질만큼 보았고, 사고전서도 갖고 있으면서 가끔 들여다본다.

 

게다가 우리말에 관해서는 이미 사전을 4권 출간했고, 2권 더 지어놓았다.

이처럼 나는 누구보다 우리말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를 하고 있으며, 한자어와 한문에 관해서는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다.

한자어를 몰라서 안쓰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 쉽고 빠르게 전하기 위해 일부러 쉬운 우리말을 가려쓰고, 웬만한 한자어는 꼭 풀어 쓴다. 마음 먹고 한자어를 쓰기 시작하면 토씨 빼놓고 다 한자어로 도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독자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한 문장의 길이가 길지 않은 것도 내 글의 특징이다. <소설 토정비결>을 출간하던 1991년에는 이런 내 문체를 두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보면 그게 정상이고, 당시 다른 작가들의 글은 지나치게 길었다. 그때는 사설이나 수필에서 대여섯 줄씩 길다랗게 늘어지는 만연체 문장이 매우 흔했다. 그때 나는 독자를 생각해서 그런 유행을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또 나만의 고집이지만 비과학적이거나 비논리적인 글은 결코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픽션이라도 거짓말은 하지 않도록 작가 스스로 중심을 잡지 않으면 진짜 허당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소설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면 작품 자체가 죽어버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한자어휘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영어 어휘가 들어오는만큼 비례하여 빨리 사라지는 것같다. 

아마도 30년 전 작품을 보면 요즘 20대 독자들은 잘 읽어내지도 못할 것이다. 더구나 한자를 함께 표기하지 않은 채 발음만 적어놓으면 나중에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된다. 훗날 우리시대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아마도 우리가 조선시대의 가사와 부를 읽으면서 느끼던 그런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징과 비유에 관해서는 따로 시를 통해 익혔지만 소설에서 이런 재주를 너무 부리면 호흡이 가빠져서 글이 물렁해지거나 질퍽거리고, 색깔이 지나치게 화려해진다. 그래서 일부러 곧게 나가려고, 스토리 중심으로 주제를 향해 멀리 화살 쏘듯이 직선으로 쏘는 편이다. 아마도 역사소설을 쓰면서 나름대로 습관이 된 면도 있으리라고 본다.

 

작가들마다 자기만의 문체를 갖고 글을 짓는 건 좋은 일이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문체가 필요한 글이 따로 있다. 그래도 더 고민하고 더 생각해서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문장은 이야기를 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적당한 품위와 멋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니 어려운 한자어를 안쓰려고 노력하며, 지나친 상징과 비유를 삼가는 내 소신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