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에 고구마꽃에 대한 글이 모두 3편 있다.
지역신문에 난 고구마꽃 기사를 보고 구경삼아 갔더니, 밭 주인이 말하기를 해마다 핀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기자가 그렇게 기사를 써버려 난처하다는 말을 들었다. 알고 보니 자색고구마는 해마다 꽃이 피는데 기자가 백년만에 한 번 피는 꽃이라며 호들갑을 떨더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글에서 <고구마꽃>으로 검색해보면 멀쩡한 일간신문들조차 백년만의 행운이라느니 하면서 거짓 기사를 올리고 있다.
아래는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하도 답답해 써본 글이다.
고구마꽃을 보러가다 |
100년에 한번 피는 고구마꽃? 거짓말입니다 |
지겨운 고구마꽃 기사, 백년에 한 번 피는 게 아니라 해마다 핀다 |
그런데 올해 8월 초 <자색 고구마>가 아닌데도 꽃이 피는 <밤 고구마>를 발견했다.
농장주인에게 캐물으니 시장에서 고구마 순을 사다 심은 건데 꽃이 두루 피었단다. 자색고구마가 아니냐고 했더니 일반 고구마라고 해서 사다 심었다며 바로 알뿌리를 캐서 썰어보였다. 역시 그의 주장대로 밤고구마였다.
일반 고구마꽃도 매우 드물게 피는 조건이 있는데, 고온이면서 날이 매우 가물어 고구마 구근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꽃을 피워 다음 기회를 노린다는 이론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이 이론에 딱 맞는다. 물론 이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고구마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언론에 난 기사는 대부분 <자색 고구마>들이고, 실제로 기자들은 고구마의 종류를 의심한 기사가 한 편도 없다.
나는 꽃피는 일반 고구마 줄기를 끊어 집으로 가져온 다음 화분에 심었는데 어느 정도 꽃이 피다가 8월 중순경 꽃 피기를 멈추었다. 어떤 조건이 맞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이론적으로는 계속 피어야 하는데 멈추었다.
- 위가 꽃이고, 아래 왼쪽이 이 꽃이 맺은 씨앗이다. 오른쪽은 화분에 심은 고구마꽃 줄기.
- 고구마밭에서 꽃이 핀 걸 보고 실제로 캐보니 이런 덩이가 나왔다. 쪼개보니 밤고구마가 맞다.
자색고구마는 전에 실험해본 적이 있다.
이처럼 일반 고구마를 꽃 피우는 법을 알아보니 매우 쉬운 방법이 있었다.
즉 고구마 순을 잘라 메꽃이나 나팔꽃에 접목하면 대부분 꽃이 핀다. 메꽃이나 나팔꽃은 구근을 맺지 않으므로 영양분이 꽃으로 피어날 수밖에 없다. 이때 적절히 수분을 시켜주면 까만 씨앗이 맺히는데, 메꽃이나 나팔꽃 씨앗 모양과 비슷하게 열린다. 이 씨앗을 조금씩 깨어 심으면 발아율도 꽤 높다.
그러니까 고구마꽃은 100년에 한 번 피는 꽃이 아니라 개화 조건을 맞춰주면 언제든 필 수 있다. 또 자색고구마는 늘 꽃이 핀다. 다만 밭에서 기를 때 꽃이 피면 이 꽃을 따주어야 알뿌리가 잘 열린다.
일반적으로 가물면 고구마 꽃이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고구마 줄기를 심은 때부터 날씨가 건조하면 고구마는 이를 인식하고 처음부터 뿌리를 매우 깊이 내린다. 그래서 가뭄이 지속되더라도 고구마는 매우 깊이 뿌리를 내려 수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꽃이 피지 않는다. 이런 해에는 고구마를 캐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물을 자주 주면 겉흙 가까운 곳에 알뿌리를 키우기 때문에 나중에 캐기가 매우 쉽다. 내가 다 해본 일이다.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어 고구마가 안심하고 있던 상황에서 느닷없이 가뭄이 지속되면 고구마는 뿌리내리기를 포기하고 꽃을 피워 다음 기회를 엿보는 것으로 보인다. 즉 알뿌리를 키우기보다 꽃을 피워 씨앗을 맺는 노력이 훨씬 더 적기 때문에 고구마가 이런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구마도 이처럼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사람이 돼가지고 거짓에 흥분하면 안된다. 앞으로는 <백년만에 한 번 피는 고구마꽃>이라는 기사를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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