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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사람들/선시(禪詩) 감상실

기도하라. 기도하기 전에 이미 이루어진다

대학 3학년 때 진각국사 혜심(慧諶·1178~1234) 스님이 편찬한 한국 최초의 공안집 <선문염송(禪門拈頌)>을 탐독했다.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희열이 솟구쳐 내친 김에 주요 선서들을 찾아 탐독했다. 그래서 광주항쟁 이후 휴교조치된 텅 빈 학교에서 나는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란 공안해설서를 썼다.

내 나이 스물두 살 때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책을 쓰기에는 좀 이른 나이인 것같다. 새파란 어린애가 쓴 책인 줄도 모르고 당시 선방 수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어주셨다. 부끄럽다.

그런데 선문염송의 공안 제1칙(則)은 이러하다.


-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강림하셨으며 어머니 태(胎)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

아, 이 공안을 읽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해준다.


"기도하라. 그러면 기도하기 전에 이루어진다."

"당신이 기도하기 전에 하느님은 이미 이루어주셨다."


논리 모순인 듯한 이 말 속에 귀한 진리가 들어 있다.

오래 세상을 살다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